1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046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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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하러 오셨어요?”

 

.. .”

 

별안간 눈앞에 나타난 그 낯선 사내는 멋쩍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벙쪄있던 나연은 여름날에 푹 익혀진 자두마냥 얼굴을 빨갛게 물들어선 문을 열었다방금까지 콧노래를 부르던 아가씨가 한낱 소녀가 되어 고개를 푹 숙인 모습에 사내 또한 별 말 없이 쭈뼛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못 보던 분이신데.. 이 동네 분 아니시죠?”

 

어제 내려왔습니다요 앞 농기계 대여센터 아들이에요.”

 

춘식아저씨 아들래미?!”

 

낯선 손님에게 이제라도 차분하게 보여야겠다는 마음을 굳힌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나연은 금세 방방 뛰었다그도 그럴 것이 자주 들르는 손님이 항상 입이 닳도록 자랑하던 아들인 것이다들을 때야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라 지겨웠지만실물을 보게 되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제 얘기 좀 하시던가요?”

 

부모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의 자녀가 으레 그렇듯이 사내는 걱정 반 반가움 반으로 입을 열었다이제 곧 머리를 맡길 미용사와 이대로 어색해도 좋을 것이 없었기에 그에게는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말도 마셔요아들이 착하고 잘생겼는데 머리도 좋다고 얼마나 칭찬을 하시던지아들 소개시켜줄 테니까 공짜로 해달라고 하신적도 있는데요?”

 

아이고 아부지..”

 

사내는 부끄럼 많은 소년이 되어버린 것처럼 수치심에 얼굴을 쓸어내렸다부모란 어째 집에선 벽창호 같으면서도 밖에선 팔불출이 된단 말인가하기야 자녀가 서울만가면 콧대가 높아지는 것이 시골 부모들 마음 아니겠는가.

 

진짜로 그러고 돈 안주신거 아니죠?! 안주셨으면 지금 드릴게요저희 아버지가 괜히 폐를 끼쳐서..”

 

아유 아녜요돈도 제대로 주셨고 저도 재밌어서 농담 자주 나누는걸요그렇게 잘나셨으면 어디 델꼬 와봐라 했더니 진짜 오셨네요.. 피부도 완전 서울사람.”

 

신나서 떠들던 나연은 능숙하게 장비를 준비하고 가게를 열었다늦게 열어서 미안하다는 말에 사내가 금방 왔다고 말하자 낯선 남자 앞에서 엉덩이를 씰룩이던 아침의 모습이 떠올라 더욱 부산하게 움직였다여러모로 더운 여름날이 아닐 수 없다.

 

근데 서울에선 왜 내려왔어요잠깐 쉬러 휴양오신건가?”

 

.. 아뇨아예 내려온 겁니다서울서 사업이 좀 안 풀려서 고민 중이었는데.. 아버지가 그럴 거면 내려와서 자기 일 이어받으라고 하셔서요몇 개월 고민하다 아예 내려오기로 했어요.”

 

아고.. 죄송해요제가 막 이것저것 캐묻고 그럼 안됐는데..”

 

.. 괜찮아요저도 얘기하다 편해져서 말한 거기도 하고지금 생각하니 별로 나쁜 일도 아닌 것 같아서요.”

 

괜한 말을 했다는 듯이 나연은 조금 풀이 죽었지만 사내는 그런 걸 신경 쓸 틈이 없었다헐렁한 그녀의 흰 티셔츠가 앞머리를 자르기 위해 숙여질 때마다 눈을 질끈 감았고간간히 느껴지는 향기가 그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불편하세요?”

 

?! 아뇨좋습괜찮습니다.”

 

그런 사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르신들 사이에 순한 소처럼 자라난 이 처녀는 순진무구하게 머리카락을 자르며 열심히 살갗을 붙여대는 것이다사내는 혹여나 덮어진 천에 뭔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두 손을 몰래 바지에 넣으며 공간을 넓혀보려 애썼다.

 

그래도 좀 불편하시겠어요.. 여기 진짜 아무것도 없는데서울 살다 오셨으니 엄청 심심할걸요?”

 

.. 괜찮아요사실 어려서부터 농기계에 관심은 있었는데 아버지가 반대했었던 거라.. 좀 늦었지만 좋은 기회라고 생각도 들고요.”

 

그래요역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죠.”

 

그렇게 말하는 나연의 눈은 맑게 빛났다작은 동내의 하루가 비슷하게 흘러가고그녀의 나날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지라도 그녀는 내일도 이곳으로 나올 것이다그것을 꿈꿨고매일 이루고 있으니까그녀의 손길이 그를 공감하듯이 부드럽게 머리를 쓸었다.

 

“...”

 

“..어디 불편하세요?”

 

죄송아뇨괜찮습니다.”

 

그런 그녀가 어찌나 아름답게 보였던지사내는 거울에 비친 나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그것이 손님의 반응에 민감한 미용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리 없었고나연은 한창인 아가씨인 만큼 얼굴을 조금 붉혔다

 

춘식이 아저씨가., 나이는 저보다 많다고 하시던데..”

 

한참 전에 끝난 머리정돈을 계속하며나연은 슬쩍 입을 열었다.

 

.. 몇 살인데요?”

 

“...오빠 지금 여자친구 있는지 알려주면 말해줄게요.”

 

 

 

타는 듯이 내리쬐는 태양빛마냥여름은 뜨거워지기 좋은 계절이다.

아마 젊은 두 남녀에게도 그랬으리라.

 

메밀꽃 필 무렵은 되지 않았지만

 

무더운 그 날은 달콤한 향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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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사는 최나연은 진짜 전설이다

반응이 좋아서 더썼음

야스는 메밀꽃 필무렵에 해서 애낳고 잘 살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