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지휘관 무적의 용은, 바다에서 수많은 군함과 함께 동면해 있었다.


철충이 바다에는 접근하지 못하니 깊은 망망대해에 숨은 것이리라. 그녀를 깨우려면 괌에 위치한 해군 기지의 심처에 있는 함대 신호소를 통해야만 했다.


원래 게임대로라면, 주인공처럼 에바 프로토타입에게서 정보를 얻어야겠지만, 어쩐지 이 세계에서는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역시 게임과는 다른 세계라서 에바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수수께끼를 뒤로한 채 오르카호가 용을 일깨우기 위하여 해군 기지에 접근할 무렵이었다.


때마침 철충들도 공세를 퍼부어 왔다. 용과 사령관이 만나지 못하도록 공격하는 것이 분명했다.


적들과 마주친 사령관은 각 지휘관들에게 명해서 철충 부대를 막아내라고 한 다음, 자신은 해커 스카디와 리리스 자매를 데리고 해군 기지의 함대 신호소로 향했다.


그는 사실은 이번에도 오르카에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함대 신호소는 인간의 뇌파만을 키로 인식했기 때문에 이번만은 어쩔 수 없었다.


걱정대로 철충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으나 컴패니언의 활약으로 모두 고철더미가 되었다.


일행은 곧 함대 신호소에 도착했다.


신호소는 머리에 쓰는 송신 장치를 통해, 인간의 뇌파를 용의 불패 함대까지 전송하는 역할이었다. 뇌파를 감지하면 용과 함대가 동면에서 깨어날 터였다.


그런데, 뇌파 전송을 위하여 모종의 장치를 머리에 써야 한다는 말에 리리스가 걱정스러워했다. 이 장치가 뇌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어떡하는가, 하는 것이 그녀의 말이었다.


스카디가 한숨을 쉬며 설득했다.


"이건 그저 출력 장치일 뿐이에요. 사령관님의 뇌파를 증폭해서 보내는 송신 장치니까, 뇌에 해를 입힐 가능성은 없다고요. 정말."


"그렇지만 만에 하나를 대비해야죠. 주인님은 이 세상에 단 한 분뿐이세요. 이것이 어떤 물건인지는 완전히 모르잖아요? 주인님이 쓰시기 전에 경호대장인 제가 테스트를 해 보아야겠어요."


하치코도 거들었다.


"주인님이 머리에 이걸 쓰셔야 한다고요? 그럼 하치코가 먼저 쓸게요. 그것이 컴패니언이니까."


그러자 리리스가 눈을 감고 진지하게 말했다.


"하치코. 언니가 말했죠. 위험한 건 장차 주인님의 첫째 부인 될 언니가 먼저 테스트해 봐야 한답니다. 그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니까요."


"아. 그렇군요!"


스카디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둘의 만담을 지켜보았다. 사령관도 쓴웃음을 지었다.


게임의 전개상 사령관에게 해를 입힐 만한 장치는 아니었지만, 리리스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어쨌든 조금이라도 게임과 다를 위험성을 염두에 둬야 했다.


그러나 리리스와 하치코를 대신 희생시키는 것도 내키지 않았던지라, 사령관은 결국 자신이 직접 HMD를 쓰기로 결정했다.


리리스는 하는 수 없이 한 발자국 옆에 서서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를 예의주시했다.


스카디의 말마따나, 그리고 게임의 전개처럼 다행스럽게도 아무 일이 없었다.


이윽고 스카디의 조작으로 사령관의 뇌파는 무사히 인식되어, 용의 함대 쪽으로 동면 해제를 명령했다.


그러자 그때, 마침 철충들의 공격이 거세졌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특히 이제까지와 차원이 다른 숫자의 철충에 고전하여, 지원을 요청하는 급보까지 연이어 터졌다.


이에는 사령관도 슬며시 겁이 났다. 만약 휘하 부대들이 철충을 막지 못하고 무너진다면 어쩌지. 잘못해서 오르카호에 돌아갈 수 없다면 어떨까. 아무리 전개를 안다지만 현실을 직접 마주하는 입장에선 겁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던 중 지휘관 레오나에게서 다급한 통신이 들어왔다.


- 사령관, 철충 군단이 갑작스레 다른 쪽으로 이동 중이야…… 아니, 잠깐. 저게 도대체 뭐야?


레오나는 냉철한 성격답지 않게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자 사령관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철충과는 또 다른 적인 '별의 아이'가 나타난 것이었다.


설정에 따르면, 놈들이야말로 인류를 멸망시킨 주범이었다. 별의 아이가 내뿜는 FAN 파장이 휩노스 증후군을 일으켜서 인류 모두를 영원히 잠들어 죽게 만들었던 것이다.


철충들도 사령관의 한줌 군대보다는 별의 아이를 우선시했는지, 병력들을 모조리 별의 아이 쪽으로 돌렸다. 덕분에 사령관의 군대는 안전히 후퇴할 수 있었다.


급히 오르카호에 돌아간 그는 얼른 병력을 추스린 다음, 철충과 별의 아이가 싸우는 어부지리를 노렸다.


이때, 별의 아이를 공격하는 철충은 고위급 연결체 네스트였다.


네스트의 커다란 두 쌍의 날개를 지닌, 벌집을 닮은 금속 거체로부터 무수한 함재기들이 튀어나왔다. 놈은 그 벌떼 같이 많은 함재기 철충들로 별의 아이를 공격했다.


한편, 별의 아이는 네스트보다도 훨씬 거대한 전신에 자줏빛을 띠었다. 놈이 길고 긴 촉수와도 같은 팔을 휘두를 때마다 철충 함재기들이 잇달아 부서져 나갔다. 뿐만 아니라 네스트의 동체 여기저기에도 피해가 속출했다.


그래도 네스트는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함재기를 내보내 공격을 퍼부었다.


수많은 함재기가 광탄을 쏘아서 별의 아이를 공격한 다음,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직접 몸을 부딪혀 폭발했다.


마치 카미카제와도 같은 공격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저런 괴물같은 철충이 있었다니. 오르카호의 모두는 잠시나마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융단 폭격이 통했는지, 별의 아이는 점차 움직임이 둔해지고, 거듭해서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멀찍이 듣던 병사 바이오로이드들조차 귀를 막고 혼비백산할 정도였다.


그러나 네스트도 성치만은 않았다. 함재기 나오는 빈도와 수가 점차 줄어들 뿐만 아니라, 거대한 동체 여기저기도 이미 부서진 실정이었던 것이다.


한동안 밀고 밀리는 싸움 끝에 마침내 철충 쪽이 승기를 잡았다. 일순, 네스트가 쏘아보낸 에너지파를 맞은 별의 아이는 사람이 미쳐버릴 듯한 비명을 지르며 물러갔다.


허나 네스트도 더는 추격할 형편이 안되어 퇴각하려 들었다. 싸움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사령관은 바로 그때를 틈타, 미리 대기시킨 저격수들에게 명해 네스트의 코어를 부수도록 시켰다.


명령 아래, 오르카호 최고의 정예 저격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격을 개시했다.


"빵!"


순식간에 코어가 파괴된 네스트는 급속도로 전투력이 줄어들고 말았다. 사령관은 연이어서 정예 부대들을 투입해 네스트를 박살내도록 명령했다.


"저게 뭔지는 몰라도, 저놈은 날 가로막은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지휘관 레오나의 세밀하고도 정확한 지시를 받은 바이오로이드 부대가 화력을 퍼부었다.


안 그래도 성치 못한 상태에 집중 공격을 받으니, 거대한 철충이라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십자포화에 걸린 네스트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마침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각하, 놈이 사라졌습니다.


"응, 그만 후퇴해. 놈이 죽었든 도망쳤든 우리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마리가 그러마고 하는 그때 오르카호가 크게 흔들렸다. 이제까지 느낀 진동 중 가장 큰 것이었다.


- 사령관님, 그 괴물이 항로를 가로막았어요!


조타실의 부함장 세이렌이 겁에 질려 외쳤다.


네스트를 물리치니 이번에는 본부가 별의 아이와 조우하고 만 것이었다.


오르카호는 금방 별의 아이의 촉수에 휘감겨 옴싹달싹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게다가 튼튼한 외벽에도 조금씩 대미지가 누적되어 갔다.


이대로면 별의 아이에게 오르카호가 부서지고, 모두 저세상 행이었다. 바이오로이드는 물론 사령관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른 그때였다.


- 들어라! 전 함대, 포격 개시!


난데없는 함포 사격이 별의 아이에게 쏟아졌다.


불과 연기가 하늘을 찌르고 굉음이 바다를 뒤흔드는 듯하였다. 수십척의 구축함 등이 일제사격으로 화망을 펼친 것이었다.


과연 별의 아이도 싸움 뒤라서 약화되었는지, 무수한 포격을 견디지 못하여 오르카호를 풀어 주고 물러났다.


사령관은 물론 누가 도왔는지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이오로이드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곧, 통신 회선이 열리고 단아하면서 중성적인 미인이 나타났다.


- 괜찮소?


사령관은 그녀를 보자마자 그녀가 무적의 용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으응…… 그래. 도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오르카호도 침몰을 면했어."


- 음, 다행이오. 소관이 곧 그리로 가리다.


드디어 무적의 용과 그녀가 거느린 함대가 합세한 것이다.



* * *



무적의 용이 가세하자 사령관의 함대 전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용이 급하게 수습한 것만 항공모함, 레일건 전함, 미사일 순양함, 구축함과 심해탐사용 핵잠수함 등이 도합 120척이었고, 운용 바이오로이드 역시 3만 4천 정도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령관은 자신의 세력이 지구상의 적들 중 가장 약하다는 사실도 모르지 않았다.


7명의 비서 레모네이드가 이끄는 세력만 해도 북미를 지배 중이었다. 이 세계에서든 21세기에서든 미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사령관의 전력은 한참 모자랐다. 게다가 레모네이드 중 한명은 용보다 더 큰 함대를 이끌고 있다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사령관은 용에게 추가적인 전력 확보와 보급선 유지를 맡기기로 하고, 당분간 작전에는 참여시키지 않도록 결정했다.


한편 저항군 본부는 괌의 해군 기지에서 오르카호를 오버홀 시키기로 되었다.


그런데, 그 해군 기지 근처엔 '요정 마을'이라는 바이오로이드 공동체가 있었다.


요정 마을에선 마침 레모네이드가 주민들을 세뇌하고 생체 실험을 가하던 시점이었다. 이름하여 '신인류 프로젝트'였다.


게임에서처럼 레모네이드는 자기가 모셨던 주인의 부활을 획책했다. 그녀는 여기저기를 다니며 인간을 부활시킬 방법을 찾았다.


그런 레모네이드에게, 바이오로이드 공동체인 요정 마을은 좋은 생체 실험장에 불과했다.


그 같은 속사정을 아는 사령관은 라비아타 부대를 마을에 대신 보냈다.


휴가인데 전투 준비라니. 의아해 하던 라비아타도 곧 사령관의 의도를 깨달았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에 나타난 라비아타의 병력을 보자마자 공격해 왔던 것이다.


주민들은 무장 수준이나 실력이 변변찮기는 했으나, 여지껏 철충과 로봇만을 상대해 왔던 라비아타에겐 난처한 일이었다. 자칫하면 동족 살해를 해야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녀와 저항군은 이제까지 한 번도 동족을 살해한 적이 없었다.


그때, 마을 주민인 스노우 페더가 나타났다.


그녀는 촌장 세레스티아를 비롯한 모든 주민들이 세뇌당할 동안, 친구인 써니와 함께 간신히 몸을 빼서 테러 활동을 벌이는 중이었다.


물론 말이 테러 활동이지 아직까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세뇌된 촌장도 그녀를 범죄자로 수배해서 내쫓았을 뿐이었다.


페더는 마을 주민들이 세뇌 상태임을 알리고 선처를 호소했다.


"부탁드립니다. 다들 제정신을 잃었을 뿐이에요. 목숨만은 살려 주세요."


마침 라비아타도 동족 살해에는 거부감을 느끼던 차였다. 사령관 역시 사정을 알고 있어서 페더의 말에 동조했다.


그러므로 전투는 요정 마을 주민을 죽이기보다 무력화시키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물론 그러한 일은 라비아타와 그녀의 부대 같은 실력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일은 죽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다.


결국, 세뇌되어 공격해 오는 주민들을 제압하고, 로버트를 파괴하는 것으로 전투는 일단락되었다.


로봇 로버트는 레모네이드 대신 생체 실험을 수행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원래는 연구 로봇이었던 그 역시 레모네이드에게 지배되어 있었으므로, 그 나름대로의 안식을 찾은 셈이었다.


그런데 현장을 마무리짓던 라비아타가 질린 듯이 말했다.


- 레모네이드 양은…… 이토록 아무렇지도 않게 동족을 실험체로 쓰다니. 너무 잔인하군요. 아무리 자신의 주인을 위해서라지만…….


레모네이드는 세뇌만이 아니라 생체 개조 수술도 실험했다. 자신의 주인을 바이오로이드 몸에 부활시킬 때를 대비한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실험 구역에는 바이오로이드의 표본이나 폐기된 시신도 있을 지경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선 사령관도 순간 섬찟했을 정도였다.


- 그게 다 자기 주인한테 배운 거 아니겠어.


라비아타가 정색하고 말했다.


- 그래요. 그녀의 주인이 살아나면, 주인님께 큰 위협이 되겠지요. 제 아버님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령관은 일전에 라비아타의 창조주, 애덤 존스가 PECS회장단의 음모로 고문당했다는 사실을 라비아타에게 알렸던 참이었다.


라비아타는 그것을 알게 되자 레모네이드로부터 사령관을 지켜야겠다는 사명이 하나 더 생겼다.


만약 레모네이드의 교활한 주인들, PECS 회장단이 되살아난다면 누구 못지 않게 강적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싸움이 끝나고 사령관은 또다른 컴패니언인 스노우 페더와 포이를 받아들였다.


그간 요정 마을에서 홀로 싸워온 페더의 용기는 모두들 인정하는 바였다.


리리스도 흔쾌히 페더가 컴패니언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포이의 복원 또한 리리스의 주장에 따른 일이었다.


"주인님이 현장에는 나서지 않으셔도, 경호 강화는 필수예요. 이젠 레모네이드의 손길이 어디까지 뻗친지도 모르니까."


그 말에는 사령관도 찬성이었다.


사령관은 또한 괌의 군사 기지에서 거대병기 타이런트의 설계도까지 입수했다.


타이런트는 공룡 형태를 띈 중장갑 거대 로봇이었다. 과거 구식 군대에 심각한 피해를 준 전적이 있으며, 그 위용이 최강의 지휘관 HQ-1 알바트로스에 못지 않았다.


오르카호 저항군의 전력은 그와 같이 커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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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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