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알콜향이 났다. 그리고 무언가 타들어가는 냄새까지.

샌드걸은 이시점에서 각성했다. 허겁지겁 고갤돌려 뒤에 달린 엔진을 더듬어보려다가 폭신함을 느꼈다.


"..."


거긴 침대 위였다. 타는 냄새는 담뱃재가 시트에 떨어져 살짝 타버린 것 떄문이었다.


"썅..."


숙취로 굳은 머리론 욕짓거리밖에 내질 못했다. 오늘이 몇일인지, 어떤 날인지, 이런 것 하나 고려하기엔 방금 전 겪은 착각은 꽤나 끔찍했다.


[피격당했다!]

[샌드걸, 당장 비상탈출해!]

["UP!- UP!- UP!- UP!- UP!-"]

[으아아앙! 샌드걸 언니!]


찡- 하고 무언가 머릴 스쳐지나갔다. 기수를 올리란 기계음과 함께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들, 피어나는 연기, 타는 냄새, 불, 가까워지는 땅...

추락. 추락. 추락. 추락. 추락. 추락. 추락-


"씨발!"


갖가지 소음과 함께 방 안이 난리나 버렸다. 쌓여있던 싸구려 맥주병이 무너지고, 갖가지 맥주캔이 으그러지고...

재떨이는 엎어져 바닥을 더럽혔다. 그래, 한순간의 충동으로 그녀의 방은 혼돈에 걸맞아지고 있었다.


"-하아아아...!"


자기혐오와 분노가 왔다갔다하며 샌드걸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러다 우울감에 휩싸이며 강제로 진정된 그녀는 책상 위 티슈팩을 뜯고는 바닥에 흩어진 담뱃재들을 대충 쓸어담아 닦아내었다.


까매진 티슈가 쓰레기통에 하나둘씩 쌓여가니 그제서야 바닥이 볼만해졌다.

글쎼, 그녀 스스로도 바닥이 꺠끗해진거 가지고 기분이 나아졌단게 이상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좀 우울했던 마음도 진정되는 것 같았다.


"..."


책상위에 켜져있는 서브 태블릿은 탈론허브가 재생되고 있었다. 작전 뛰는 동안 나중에 보려고 짜둔 리스트가 그대로 재생되고 있었다. 어젯 밤 틀어둔 영상에선 천박한 신음소리와 살이 맞부딫히는 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문득, 방이 너무 추잡해보였다. 마치 당장 지금의 샌드걸 자기자신 같았다. 벗어나고 싶단 충동감에 휩싸여 나가는 문 손잡일 잡다가-


"와..."


문 앞의 전신거울에 비친, 자기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밤새 자위하느라 땀에 절여진 머리카락과 셔츠. 그대로 위에 입어버려 찌린내가 날 듯한 팬티.

혹시 몰라 팔냄새를 맡는 순간 땀냄새에 코가 찡그려졌다. 아마 이대로 나갔다간 아무리 자유로운 오르카호 라지만 눈총을 살게 뻔했다.

아무리 그녀가 휴일 풀어져 지낸다 해도 이건 아니었다.





"샌드걸 중위?"

"...아, 아, 필승"


붉은 장발이 찰랑이며 고갤 저었다. "비번일땐 편하게 있으세요" 라며, 나이트앤젤은 샌드걸의 맞은 편 의자를 두드렸다

멍때리던 그녀는 그제서야 자기가 카페 테이블에 앉아있단 걸 깨달았다. 언제 온건진 몰라도, 아까 몸을 씻고 나온건지 피부에 남은 습기가 느껴짐에 안심하고 있었다.


"작전이 없으니 카페에 남는 자리가 없네요. 합석해도 될까요?"

"괜찮습니다.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여전히 경계심은 많군요"


실실 웃는 앤젤의 모습이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걱정해주는 맘에 저런걸란걸 샌드걸도 안다. 그래서 애써 부정적인 맘을 감추고는 헤프게 웃는 모습으로 가렸다.


"이번 복귀때 큰일났다면서요? 스토커가 저격했다던데"
"아, 네..."


머릿 속 금고문이 또 삐걱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공기를 찢는 에너지파... 불타는 금속, 불...

흔들리는 기수, 가까워지는 땅, 다시한번 그녀의 머릿 속이 떨어진다는 단어 하나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샌드걸?"

"..."


구역감이 그녀의 목구멍까지 치솟아올랐다. 땅을 짚는 순간 으깨지던-


"샌드걸 중위!"

"헉"


짝! 소리와 함께 귀가 얼얼했다. 날카로운 눈매로, 나이트앤젤은 그녈 직시하고 있었다.


"정신차려요, 샌드걸"

"아..."


그제서야 샌드걸은 주위상황을 인지할수 있었다. 그녈 쳐다보는 수많은 시선. 수근대는 바이오로이드들. 걱정스레... 또는 혐오스럽단 듯이 쳐다보는 거 같았다.

구역감이 일며 다시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이거 안돼겠네, 나앤"


명랑한 목소리에 힘겹게 고갤 돌리자 빨간 머리의 꼬꼬맹이가 있었다.


그 꼬맹이는 심통찮은 표정으로 자기 가슴을 내밀며 강조하고 있었다. 대장급이라 가슴도 그렇다고 강조하는 것인가? 좋지않은 상태에도 샌드걸은 먼저 디스할 거리부터 찾고 있었다.


"당장 데리고 닥터한테 찾아가"


그런 그녀에게 떠밀려 둘 다 카페를 떠났다. 그들에게 몰리는 시선을 보며 메이의 심기가 더 불편해졌다.


"뭐 구경났어? 신경끄고 할 일이나 해!"





"진정제 투입했으니 괜찮을거야. 들어가봐"


닥터의 고개짓에 그는 천천히 수복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있던 샌드걸은 땀범벅이었다. 진정제를 투여받았음에도 악몽을 꾸는걸까, 겨우내 잠든 지금에도 그녀는 끙끙대고 있었다.


"각하, 오셨습니까"


곁에는 발키리가 있었다. 언젠가 말했지, 파괴적이고 염세적인 샌드걸을 걱정한다고...

사령관은 저번 작전기록을 떠올렸다. 스토커의 저격에 의한 추락. 그리고 샌드걸은...


닥터가 건네준 샌드걸의 당시 수복차트를 살피던 그는 지끈거린 이마를 눌렀다. 닥터가 대충 번역해논 부상종류는 대부분 '왼쪽' 이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그것도 신체표에는 왼쪽 전신 고루고루 퍼져서 말이다.


살아있던게 기적이었다, 닥터의 그때 말이 기억난다.


"샌드걸은 어때?"
"한시간 전 잠든 이후로 악몽을 꾸는지...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닥터를 쳐다봤지만 어린 천재님도 별 수 없다듯 어꺨 으쓱대었다. 하지만 계속 쳐다보는 둘을 보며 "내가 졌다, 졌어" 라고는, 주사 하날 가져와선 샌드걸의 팔에 놓았다.

몇십초가 지나며 샌드걸의 신음소리도 잦아졌다.


"좀 독한 수면제야. 이거라면 꿈도 못꾸고 잠들어 있을걸"

"진작 놔주지"
"마약 성분이 있어서 안돼. 남용했다간 중독됀다고?"


까닥까닥 손가락을 젓던 닥터는 침대 한켠에 걸터 앉았다.


"전형적인 외상후 스트레스지. 기억소거 시켜도 돼겠지만..."

"샌드걸 성격상 찾아보겠지" "성격상 찾아보겠죠"


그 말이 맞다며 끄덕이는 닥터덕에 사령관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어떤 조치를 취해주던 샌드걸은 다시 날기 힘들 것이다.

재활을 한다 해도 오래 걸릴 것이다. 오르카호엔 그정도 여유는 있지만, 과연 이성적인 판단하에서 그러는게 이득일까?

카운슬링이라도 받게 할까? 안타깝게도 바이오로이드를 위한 카운슬링은 전례가 없었다. 폐기하는게 더 경제적이었니까...


씁쓸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샌드걸, 발할라, 그리고 사령관 본인까지.. 모두가 행복할 방법을 생각해내기 위해, 사령관은 아무말도 없이 고민을 거듭했다. 발키리가 쳐다보든, 닥터가 "고민해봤자 의미없다니까" 라며 자조적이며 현실적인 답을 해주든.


철의 왕자도 잡았다. 빠져나갈길 없어보이는 가상세계도 해쳐나왔다. 저 지하에서 로크도 끌어올린 그였다. 오만하지만 자신을 잘났다고 여기던 그에겐 이정도 건은 문제없어보였다.


"...어쩌지?"


그럴리가.


뭘 하든 안좋은 여론을 가져올 것이다. 지휘개체들에겐 "값지지 않은 소비"로 취급될 것이다. 계급이 낮은 바이오로이드들에게야 좋은 선전물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코 오르카 저항군 전체에 이득이 되는 방향은 아니었다.


"이상론은 여기까지야, 오빠"


닥터가 건낸 종이엔 "제대"란 단어가 적혀 있었다. 샌드걸을 의가사 제대시키자는 내용이 적혀있는 제안서 맨 아래에는 그의 이름과 함께 서명란이 비어 있었다.

사령관은 지금 자신 얼굴이 어떤지 몰랐다. 그야 닥터도 살짝 겁낼 정도니까. 아마도 여태 그가 보여준 화낸 모습 중 가장 강렬하겠지...

그런 잡생각을 떠올려야 할 정도로 그는 내몰려 있었다. 이대로 서명한다면, 샌드걸은 안전하게 제대처리 이후 그녀 의사에 따라 비전투 바이오로이드로 재배치 돼겠지.



근데 과연 그게 샌드걸 입장에선 옳은 선택일까?


"닥터, 다른 방법이-"

"오빠, 우리는 바이오로이드야."


샌드걸과 술잔을 나누던 나날이 떠올랐다. 매일 폭음을 들으며 사는데 회의감이 든다며 넌저시 염세주의를 보이던 샌드걸은 그래도 사령관을 위해 웃고 있었다. 그래도 그를 위해서 언제든 자긴 날 수 있다며, 나름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샌드걸.


"상품이 상하면 바꿔써야지 않겠어?"


씁쓸히 웃던 닥터는 마지못해 받아든 사령관을 꼭 안아줬다. 그러곤 힘없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수복실을 떠났다.


사령관은 이내 종일 구깃구깃 접으며 버릴려 했으나, 손목을 잡은 발키리에게 저지당했다. 눈가에 눈물을 맺은 채, 그녀는 고갤 저으며 그에게서 종일 뺏어 다시 펴고 있었다.


그러곤, 수복실에 비치되어 있던 책상에서 펜을 꺼내왔다. 조금은 거칠게 사령관의 품에 종이와 펜을 안기며 그녀는 눈물을 훔쳤다.


"가장 이상적인 건 이것 뿐입니다, 각하"


그녀도 조용히 수복실을 떠났다.


환자 모니터링 장치만이 소릴 내고 있었다. 아주 균일한 그래프를 보이며, 샌드걸이 아주 깊은 잠에 빠져있단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녀 옆에 괴로워 하는 남자의 심정과는 다르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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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해시켜야 할 섹돌을 처음 마주한 사령관을 상상하며 쓴 데스

부족한 필력으로 쓴 글을 봐줘서 고마운데수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