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화(첫 만남)   2화(등대로)   3화(시동 걸기)   4화(초읽기)  5화(고비)  6화(미친놈과 더 미친놈)  7화(한결같은 엔딩)  

8화(재정비)  9화(송충이에게는 솔잎을)  10화(장비를 연결합니다)  11화(200톤짜리 로데오)  12화(개X끼여도 우리 개X끼)  13화(포식자와 피식자와 관전자)  14화(잘못된 만남)  15화(Deja Vu)  16화(니가 왜 거기서 나와)  17화(마른 하늘에 날벼락)


“마리 대장님의 부대가 교전을 시작했어요. 에이다 씨 쪽은 어떠세요?”

 

[이쪽도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다만, 이쪽에는 대공 전투에 적합한 병력이 적으니. 레이더를 노리는 건 프란츠 각하의 기동부대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트릭스터들이랑 나머지 철충은 에이다 씨 쪽에서 맡아주세요. 전 잠시 기동부대의 지휘를 진행할 테니, 혹시 아군 보병부대에 연락할 일이 있으시면 마리 대장님께 직접 연락하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건투를 빌죠.]

 

에이다 씨는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통신을 끊으셨다. 나 역시 통신을 끊고 전황을 살펴보았다. 트릭스터들과 레이더, 그리고 휘하 철충들을 둘러싸고 있는 아군 병력의 모습은 충동적으로 떠올린 작전이 성공했음을 알려주었다. 철충들이 저 배양관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던 게 가장 큰 성공 요인이겠지.

 

“급하게 짠 작전 피치고는 잘 먹혀서 다행이네...큰일 날 뻔했어.”

 

강력한 연결체인 트릭스터의 능력을 고려한다면, 우리 병력이 가장 적게 있는 동쪽 방어선 정도는 약간의 전투만 거치면 금방 도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레이더의 지원을 기다렸다. 자신이 확보한 배양관의 안전을 위해. 레이더가 동쪽 방어선을 헤집고 주변을 확보하는 것을 기다린 뒤, 자신은 슬그머니 빠져나가기 위해. 

 

그 사실을 깨닫고 난 뒤, 난 내가 떠올린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통신기에 불이 나도록 연락을 돌렸다. 작전의 목적은 트릭스터 1호의 유인 및 연결체 3기의 포위 및 사살. 이를 위해 마리 씨가 남쪽 방어선의 병력을 몰래 빼돌리는 한편, 트릭스터 1호의 병력 상당수를 지뢰밭으로 유인해 그 수를 줄였다. 그동안 기동부대는 레이더와 계속해서 교전을 통해 트릭스터에게 배양관이 빼앗길 수도 있다는 압박을 넣었고, 나머지 부대는 동쪽 방어선 근처의 숲에서 가만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배양관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트릭스터 1호는 아군과 교전중인 레이더와 합류할 수밖에 없었고, 트릭스터와 레이더에게 둘러싸이는 걸 대비해 기동부대가 철수하면서 연결체 3기가 한자리에 모이게 됨으로써 내 작전은 성공으로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포위당한 세 연결체와 나머지 철충들을 처리하는 것뿐. 하지만 트릭스터도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프란츠 각하! 트릭스터 1호가 자기 휘하의 철충을 전부 고기 방패로 삼아 아군의 포위망에 빈틈을 만들고는 2호를 도주시켰습니다! 전선에서 급속도로 이탈 중인데, 기동부대가 아니라면 놈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상대로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에이다 씨랑 얘기가 끝난 부분이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레이더를 상대해주세요. 에이다 씨? 전에 부탁드린 건 어떻게 됐나요?”

 

[지뢰의 해체 및 재매설 작업, 완료했습니다. 작업 중 폭발이 염려되긴 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군요.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에이다 씨에게 받은 지도에는 무수히 많은 X 표시가 연구도 주변, 특히 포위 지점 동쪽에 주로 표시되어 있었다. 아군이 적을 포위해 교전하는 동안, 에이다 씨의 AGS 일부가 사전에 매설해놓았던 지뢰를 파내고 다시 묻은 지점이었다.

 

[트릭스터 2호가 도주 중인 방향은...포위망 동쪽이군요. 저쪽은 지뢰가 특히 빽빽이 매설된 지점인데, 아무래도 프란츠 사령관님의 예상이 적중한 모양입니다. 전황을 보시는 눈이 대단하시군요.]

 

“아니,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일부러 그쪽에 병력을 적게 배치했거든요. 트릭스터 하나만 간신히 빠져나갈 정도의 구멍을 보여주면, 저쪽에서는 모든 병력을 소비해서라도 그쪽을 공략할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나저나, 저 배양관, 안 깨지겠죠?”

 

[그레고르 사령관님이 제작한 지뢰의 폭발력은 고려한다면 도중에 파손될 가능성도 적지는 않습니다만, 애초에 트릭스터가 배양관을 억지로 뜯어낸 시점에서 내부의 샘플은 이미 사망했을 겁니다. 만일 파괴되더라도 프란츠 사령관님의 탓은 아닙니다.]

 

“죽은 사람의 사체를 훼손하는 것도 썩 달갑진 않은데요...”

 

[그건 2호기가 비교적 약한 지뢰를 밟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군요. 그럼 전 셀주크 부대에 포격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사령관님도 병력을 포격 범위 밖으로 대피시키십시오. 적들의 발은 저희 AGS 부대가 묶어놓겠습니다.]

 

“그러면 에이다 씨의 AGS 부대가 피해를 보시지 않나요? 괜찮으시겠어요?”

 

[걱정하지 마십쇼. 기간테스나 포트리스 같은 대형 AGS는 직격당하지만 않으면 문제없으니. 그럼 이만 통신 포트를 닫도록 하겠습니다. 일이 있으면 추후에 연락드리죠.]


"네? 벌써요? 아직 철충도 남아있고, 굳이 통신 포트를 닫을 필요까지는 없을 거 같은데요? 계속 열어두는 편이 나중에 다시 연락하기 쉽지 않을까요?"


[그렇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이번 작전에서 새로 알아낸 정보를 정리하고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한동안은 연락이 뜸할 것  같으니까요. 굳이 통신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뮈...알았어요. 아쉽긴 하지만, 제가 강요할 수는 없겠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실례하죠. 이번 작전 동안 저희 쪽 부대와 발맞춰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에이다 씨는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통신을 완전히 끊으셨다. 나는 마리 씨와 다른 부대에 후퇴 지시를 내리고는 노이즈 낀 화면 앞에서 잠시 감상에 젖었다. 

 

“조만간 다시 만났으면 좋겠네요...기왕이면 좋은 소식으로.”

 

애초에 우리의 지원이 필요해서 일시적으로 통신 포트를 개방한 거긴 했지만, 아쉬운 느낌이 없진 않았다. 도움도 많이 받았고, 갑작스러운 요구에 적절한 자료를 제공해주는 듬직한 부관을 잃은 것 같아 조금은 쓸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에이다 씨가 한창 지휘하고 있을 셀주크 부대의 포격 소리를 배경 삼아 멍하니 앉아있었다.

 

갑자기 무식할 정도로 큰 폭음과 함께 버섯구름이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이게 무슨!?”

 

혼란스러운 상황에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을 때쯤, 누군가가 통신을 걸어왔다.

 

[프란츠 각하? 들리십니까? 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마리 대장님! 이게 무슨 일이에요? 지금 뭐가 터진 거예요? 또 적습인가요?”

 

[아, 오르카에서도 들렸나 보군요, 그 폭음. 뭐, 위력을 생각하면 보이지 않는 게 더 이상하긴 하겠지만. 일단 적습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쇼.]

 

“적습이 아니라고요? 저게요? 오르카에서 저 정도 포격이 가능한 대원은 없었는데요?”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면 좀 복잡합니다만...]


마리 씨는 한동안 끙끙대며 말을 고르시더니, 이내 설명하기를 포기하시고 무전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넘기셨다.


[...그렘린, 자네가 설명하게.] 


[ㄴ, 네? 제가요!?]


[애초에 자네가 만든 거지 않나. 어서.]


[아니아니, 애초에 그레고르 사령관님이 말씀하셔서 만든 거고, 저도 저건 만들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미리 말씀드렸단 말이에요! 저도 피해자예요!]


[피해자치고는 꽤 공들여서 만들었던데? 지금 터진 거, 그거 아닌가? 자네가 '내 마음이야'라고 네임펜으로 낙서해놓은 거.]


[...]


[어차피 그레고르 각하가 께어나시면 알게 될 일이네. 차라리 지금 미리 말하는 편이 낫지 않겠나?]


마리 씨의 마지막 한마디 이후, 몇십 초 가량의 침묵이 흘렀다.


[라비아타 씨가 날 죽이려 들 거야...여보세요? 사령관님?]

 

“잘 들려요, 그렘린 씨. 혹시 저게 뭔지 아시나요? 저 정도의 포격이 가능한 대원은 오르카에 없을 텐데...아! 혹시 AGS분 중에 저런 출력을 가지신 분이 계신 건가요?”

 

[어...으으음...저거, 제가 만든 지뢰에요.]

 

“...네?”

 

[전에 말씀드렸죠? 오르카에 남아도는 포탄과 미사일을 분해해서 그걸로 지뢰를 만들었다고. 주로 아머드 메이든이나 AA 캐노니어 대원분들의 포탄을 쓰긴 했는데...몇 개는 예외가 있었거든요...좀 큰 걸 쓴 게.]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도, 그렘린 씨도, 마리 씨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다른 누군가가 입을 열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사령관님. ALCM이라는 거, 혹시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쉽게 말하면 그냥 무식하게 크고 센 미사일인데...창고에 사용 일자가 다 돼가는 게 하나가 있어서요.]

 

“그런 게 왜 오르카 창고에 있는 거예요? 저 정도 미사일이면 미사일 기지나 그런 곳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상식적으로는 그렇긴 한데...그걸 쓰는 바이오로이드가 하나 있거든요...멸망의 메이라고.]

 

흡사 고해성사하는 듯한 그렘린 씨의 고백 이후,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통신기 너머로 어이없어하는 마리 씨의 형식적인 보고와 함께 들리는 그렘린 씨의 세상이 끝났다는 듯한 한숨소리. 그 와중에 나는 어렴풋이 기억하던 멸망의 메이라는 바이오로이드의 정보를 떠올리며 어떻게든 현실을 이해하려 했다. 계속되는 사고에 뇌가 생각을 포기하려 할 때쯤, 익숙한 누군가에서 통신 요청이 들어왔다. 오만가지 감정이 섞인 채 통신을 연결하자,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령관님, 에이다입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에이다 씨의 목소리에서도 나만큼이나 복잡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네, 간만이네요, 에이다 씨.”

 

[...]

 

“...”

 

미치겠네.



다음화

                                                                              

 

드디어 3지+4지 끝

5지는 쓸까말까 고민중이긴 한데 한동안은 오르카 내부 사정 관리하는 이야기로 흘러갈듯

사실 뭘 쓰던 좋으니 전투씬만 안썼으면 좋겠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