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리콘이 있었다. 그리고 여느 날처럼, 전장은 그녀와 상관 없이 시끄럽고 잔혹했다.


 차가운 공기가 내외로 내려앉은 밤이 점점 끝나갔다. 어젯밤 서쪽 산길에 제 몸을 던져 잡아먹힌 태양이 동쪽의 하늘을 파릇파릇하게 물들이며, 자신이 돌아오고 있음을 예고하는 새벽 6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저 하늘에 가끔씩 날아오르는 몇몇 조명탄에 의지해야 했던 전쟁터에, 드디어 빛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 빛은 차갑고 미약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푸른빛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미약한 빛은 미궁요새 안의 사람들에게, 동이 트고 있음을 알릴 수는 있어도, 그 안을 비춰주기에는 너무 미약했다. 미궁 요새는 간신히 복귀된 전력으로 유지되는 몇 개의 방폭등만 가지고 있을 뿐이라. 그 방폭등이 꺼진 방은 빛 하나 새어오지 않아서, 정말로 어두웠다. 하지만 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 어둠이, 이 안에서 잠든 수많은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더 좋은 요람이었다.


 기상 시작 직전의 미궁 요새를 지배한 자들은, 블랙 리버의 해상육전대 병력과 미합중국 해병대도 아니었다. 바로 적막과 침묵이었다. 밤이 되면서 지하에서 설치던 러시아군 병력들이 물러났고, 블랙리버 군대도 병력이 소진되어 그들을 추격할 여력이 없어 방어를 강화하는 선에서 끝냈다. 그저 일부 병력들이 순찰하는 소리, 근무를 준비해야 한다며 깨우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남들이 고생하는 그 소리가, 왜인지 모르게 레프리콘-47183, 로자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악단도 제공할 수 없는 최고의 자장가로 다가왔고, 저 멀리, 미궁요새 너머에서 들려오는 산발적인 총성도, 지금 당장은 그녀와 상관이 없는 무언가였기에 가만히 있었다. 


 "으음..."


 어디선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자, 일어나야지, 스스로를 다독이는 그 소리는 분명 타냐 중사였다. 하지만 로자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베개 삼은 철모에 머리를 구겨넣고 침낭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얼마 남지 않은 수면 시간이라서 그런 건가? 달콤했던 잠이, 이제는 마약 같았다. 평생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잠을 자다가 전쟁이 끝나고, 군생활이 끝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새벽은 오고 있었다. 누군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그 말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애시당초 이곳에는 로자가 목을 비틀어버릴 닭 한 마리 없었고, 진짜로 존재해서 직접 두 손으로 그 목을 비틀어버렸다고 해도, 수많은 대포들이 깨어나 불을 뿜으며, 닭의 조그마한 성대 따위로는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우렁찬 소리를 낼 터였다. 그리고, 비현실적인 가정으로 로자가 양군의 포대를 전부 박살난다 해도, 공전과 자전에 따라 알아서 그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태양이, 이 작은 행성의, 그 작은 행성에 대도 먼지 한 톨조차 안되는 대포 따위에 신경을 쓰겠는가.


 별 생각이 다 들 때, 포격이 시작되었다.


쾅!


 6시 정각을 딱 맞춘 포격 소리가, 그만 일어나라고 명령해야 할 타냐의 짐을 덜어주었다. 화들짝 놀란 레프리콘-47183, 로자의 단 잠을 잘못 날아온 포격인 줄 알고 다시 눈을 감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쾅! 쾅! 쾅! 포격이 더 많이 날아와 지축을 뒤흔들며 로자의 정신을 극한까지 흔들었다. 로자는 깜짝 놀라서 베개 삼아 기댄 철모를 쓰고 바로 군장을 위로 들어올렸다.


 "적 포격! 적 포격!"


 "으악!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갓 전입해서 첫날 밤을 보낸 신병들이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폭발하며 귀를 먹먹하게 강타하는 폭발음, 포탄이 낙하하며 공기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고주파 괴성, 흔들리는 지축, 부르르 떨며 먼지를 흩뿌리는 요새. 로자는 훈련받은 내용대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로자와 분대원들이 벌벌 떨 동안, 타냐는 가만히 서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욕지거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잠잠한 줄 알았더니 또 시작이네. 시발."


 "아... 으아아아...! 으아아아아!!!!"


브라우니-541116, 로자 바로 옆에 있던 브라우니가 소리를 질렀다. 다른 이들도 몇몇은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그 브라우니는 상태가 특히 안 좋아보였다. 로자는 군장을 머리 위에 올린 채 덜덜 떨다가, 브라우니에게 고개를 돌려보았다.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브라우니-541116? 541116?"


 "으아... 으아악...! 안 해...! 못 해!!!!!!!"


 브라우니는 광증을 보이더니 일어났다. 그리고는 못해먹겠다면서, 나가겠다면서 발광하다가 급기야 생활관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로자는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해서 브라우니-541116을 붙잡았다. 전투를 한번 겪어본 브라우니가 그녀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까봐 당황했는데, 이렇게 패닉에 빠져서 도망치려 하니 당황스러웠다.


 "잠깐, 브라우니, 힘이...!"


 "못 해! 못 해! 못 해!!!!"


 통제되지 않는 생존 본능으로 마구 악을 내지르는 브라우니. 로자가 어떻게든 붙잡았지만, 그 초인적인 힘에 깜짝 놀랐다. 로자가 매달리니, 로자에게 붙잡힌 채로 그녀를 질질 끌고 나갔다. 로자는 당황했다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잠깐 생각하고는 자기 밑의 분대원들을 큰 소리로 불렀다. 


 "레키! 리나! 레키! 리나!!!!"


 "이... 일병 브라우니-578191!"


 "일병 브라우니-578192!"


 "와서 541116 잡아요!"


 "예?! 예! 알겠습니다!"


 레키와 리나는 당황해서 자기 관등성명을 부르다가, 로자의 명령에 정신을 차리고 호다닥 일어나서 브라우니-541116을 붙잡았다. 541116은 어떻게든 나가려고 악을 쓰다가 그대로 흔들리면서 넘어졌다. 하지만 로자가 양 다리를 붙잡고, 레키와 리나가 몸통을 잡아서 못 움직이게 막아도, 그 혀를 막을 수는 없었다.


 "로자 상병님! 나가게 해주십쇼!!!! 살려주십쇼!!! 으악! 으아아악!!"


 "541116! 지금 나가면 다 죽어요! 다 죽는다고요! 정신 차려요!"


 "흐악! 흐아아악!"


 "541116! 분대장 권한으로 명령합니다! 당장 정신 차리고 위치로 돌아가세요!"


 하지만 541116은 어떻게든 나가려고 발악할 뿐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다. 땅을 뒤흔드는 포격이 끝날 때까지도 그 광증이 이어졌고, 더 이상 도망칠 수 없게 되자 급기야 엉엉 울었다. 포격이 그친 이후, 서로 다친 곳이 없나 확인하는 와중에 브라우니-541116의 울음소리가 처량했다.


 "후우... 죽는 줄 알았어."


 "맨날 이러는 거야? 정말로?"


 "어제도 이랬지 말임다... 적응이 안 됨다."


 "잠깐, 저 브라우니, 엄청 울어대는데."


 소대원들의 시선이, 로자를 비롯한 1분대원들에게 집중되었다. 로자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라고 배웠는지 떠올렸다. 레프리콘을 비롯한 블랙리버의 바이오로이드 모델들은, 엄격하게 통제된 환경과 전 단계에서 거치는 강박증적 안전검사와 품질관리를 거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안정적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전투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비이성적 공포에 빠지는 인원들은... 로자의 머릿속에서 교관의 말이 떠올랐다.


 '너희들을 포함해서, 모든 무기는 적들을 향해, 우리가 원하는 때에 적을 죽일 때 쓸모가 있는 거다. 우리 마음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무기는? 그건 얼마나 좋건 간에 쓰레기다. 아니, 좋으면 좋을 수록 쓰레기다! 우리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돌도끼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좋은 야전 급조 사례다. 하지만 통제되지 않는 핵무기는? 그건 재앙이지! 너희들도 똑같다. 너희들 중 미친 년 하나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수류탄을 뽑아들고, 안전핀을 분리하고는 함께 폭사한다고 생각해봐라...'


 로자는 고개를 돌려서,  "레나"라 이름 붙인 노움 상병에게 말했다.


 "노움! 와서 무장 해제를 도와주세요!"


 "알았어요!"


 세 명이 브라우니-541116을 붙잡고 있는 사이 노움이 브라우니에게 달려들었다. 먼저 총기끈으로 이어진 총기부터 빼낸 다음, 대검을 배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탄복을 해제하려 했다. 하지만 방탄복이 잘 벗겨지지 않자, 제일 위험한 수류탄만 수류탄 케이스째로 뜯어냈다. 


 "히익... 이이이익..."


 "브라우니? 브라우니? 정신 차려요!"


 "...레프리콘!"


 "상병 로ㅈ... 예! 상병 레프리콘-47183!"


 "무장해제는 끝났지?"


 "예! 무장해제 완료했습니다!"


 "그럼 걔 놔줘."


 "...잘 못 들었습니다?"


 "걔 놓으라고."


 "하지만, 지금 브라우니 상태가..."


 "레프리콘-47183. 그리고 거기 브라우니 둘. 1소대 부소대장인 내 권한으로 명령한다. 당장 그 새끼 잡은 손 놓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나라."


 명령. 그 이야기에 브라우니-541116을 붙잡고 있던 세 바이오로이드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마치 영혼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것처럼, 분명 그들의 몸으로 수행하는 동작이건만, 그들이 한다는 자각이 없었다. 그렇게 손을 놓자마자 브라우니-541116이 발광하며 


 "살아야 해... 살아야 해!!!!"


 "살기는 니미."


 타냐 중사가 도망치려던 브라우니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대로 콘크리트 바닥에 꽂아버렸다. 그러고도 제압당하지 않자, 머리채를 붙잡은 채로 벽면에 다시 꽂았다. 그러기를 몇 번, 광증을 보이던 브라우니-541116은 벽에 핏자국을 여럿 남기고 나서 기절했다. 그게 타냐 중사가 미친 년을 제압하는 방식이었다. 


 "...아침부터 정말로 훌륭한 점호로군."


 타냐 중사는 손바닥을 짝짝 쳐서 털고, 생활관 안의 병사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수면시간 중에 발생한 질병 등 손실은?"


 "...없습니다!"


 "1분대. 레프리콘. 너네는 있잖아."


 "죄송합니다. 브라우니-541116이 적 포격 낙하 중에 광증을 보였습니다."


 "그래, 앞으로는 그렇게 다 보고하라고. 어쨌든 간에..."


 타냐 중사는 상황이 어떤지 설명을 듣고 나서, 기절한 브라우니를 발로 쿡쿡 찌르면서 말했다.


 "나는 너희가 뭘 하건 신경 쓰지 않는다. 인간 병사들한테 담배 하나 얻어먹자고 그 새끼들 좆을 빨건, 아니면 그냥 좋아서 떡을 치건 내 알 바 아냐. 그런데 이런 식으로 미친 짓을 벌이는 건 곤란하지. 만약에 분대장이 얼타다가 쟤가 도망쳐서 탈영하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탈영하면 다행이지... 다짜고자 총 들고 난사하거나 수류탄 핀 뽑았으면 뭔 일 일어났겠어?"


 "..."


 죽는 걸 가지고 장난을 치던 타냐 중사와는 다른, 진지한 타냐 중사의 모습. 로자는 입을 다물고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동안 죽어나가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지만, 이렇게 죽는 건 용서하지 않는다는 걸까? 일부러 쉬도록 명령한 것도 그렇고, 인간적인 면모의 일종일까? 속을 알 수 없었다.


 "아마 그랬다면, 소대장님이랑 내가 이 미친 년 하나 때문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보고했을 거고, 너희들 중 절반은 숯검댕이 되고, 나머지 절반은 러시아군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병신이 되어서 이 전장을 떠났겠지. 여기 말고도 너희는 갈 데 많잖아. 놀이공원, 창녀촌, 그 외 기타등등... 뭐, 잡소리는 그만 하자. 레프리콘-47183. 경계근무 요령은 배웠지?"


 "상병 레프리콘-47183. 네! 맞습니다!"


 "그럼 브라우니 저 년 묶어라. 제 발로 걸어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묶어놓으라고."


 "예! 알겠습니다!"


 타냐 중사의 명령에 따라, 레프리콘은 기절한 브라우니를 묶기 시작했다. 어차피 지금 상태로는 총은커녕 양말 한 짝 필요없을 게 브라우니-541116의 상태인지라, 그녀의 군장에서 결박용 케이블타이를 꺼내 양 팔다리를 묶고, 서로 묶은 양 팔다리를 다시 케이블타이 여러개를 꺼내서 여러 겹으로 결박했다.


 "그리고 이 브라우니는, 정말로 운이 좋은 사례라는 걸 알아둬라. 적들을 기습하려고 야간에 기동하는데 이렇게 발작을 일으켰다면, 돌로 머리를 내리찍어서 죽였을 거다. 무기 창고에서 저랬다면... 뭐..."


 타냐 중사는 허리춤에 찬 권총집에서 권총을 빼냈다. 평범한 블랙리버 간부용 제식 권총이었지만, 이 상황에서 그 총을 보니 다른 감정이 느껴져, 생활관 안의 병사들이 전부 침을 꿀꺽 삼켰다.


 "솔직히 말하지. 난 싸울 때 소총을 쓴다. 권총은 안 써. 왜냐? 잔탄을 똑바로 확인하고, 잔탄이 모자라면 미리 장전하고 움직이거든. 권총은 총이 기능고장이 났을 때나 쓰지. 이 권총으로는, 저렇게 발광한 년들을 쏴죽이는 데 더 썼다 이 말이야."


 "..."


 타냐 중사는 권총을 다시 집어넣고, 그들에게, 그리고 타냐 중사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매우 당연한 이야기를 남기며 웃었다.


 "물론 내가 화난다고 너희들을 다짜고짜 쏴죽이는 미친년은 아냐. 그러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런 미친 새끼들은...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거든. 블랙 리버가 너희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런 건 아니고, 너희들은 저 바깥에 정부가 던져주는 연금이나 받아먹으면서 사는 거지 새끼들 기준으로는 자기 연금 평생분을 갖다 바쳐야 살 수 있는 비싼 자산이라서 그렇단다."


 "..."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너희들 중 하나를 죽여서 다른 '상품'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블랙리버는 그 상황을 받아들일 거란 말이다. 알아들었냐?"


 "...예! 알겠습니다!"


 "그래. 아침 점호에 말이 존나 길어진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뭐, 그렇게 됐고... 오늘은 작업이 있다. 아침 식사 끝나고 나서 군장 차고 집합해라.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타냐 중사는 말을 잘 듣는 병사들을 보고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로자와 로자가 맡은 분대원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턱짓으로 바깥으로 나오라고 말했다.


 "레프리콘-47183! 분대원들 데리고, 그 정신 나가버린 년 데리고 나와라. 오늘 식사 추진은 너희 분대가 간다."


 "상병 레프리콘-47183! 예! 알겠습니다!"


로자는 경례를 붙여가며 알았다고 대답하고, 뒤로 돌아서 분대원들에게 명령했다. 


 "레키, 리나. 브라우니-541116을 데리고 나오세요. 레나. 타냐 중사님 하시는 말씀 들었죠?"


 "네, 알겠슴다!"


 레키와 리나, 두 브라우니가 기절한 채로 꽁꽁 묶인 브라우니를 번쩍 들고, 레나도 그 뒤를 따라서 나왔다. 타냐 중사는 1분대가 나온 것을 보고, 바로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어제도 느낀 것이지만, 정말로 미로 같은 요새였다. 혼자서 이 요새 안에서 생활관으로 돌아오라 명령한다면, 방향제어 칩의 도움 없이는 한 걸음도 못 움직일 것 같았다. 그런데, 타냐 중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싸돌아다니는 게 신기했다. 그래서 타냐 중사의 뒷모습을 보는 와중에,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로자에게 말했다.


 "아까 전에 정신 없는 상황에서도 미친년 제압한 거. 잘 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판단은 좋았는데, 인력 사용에 있어서 좀 흠이 있었어. 훈련소에서 대인 격투술 몇 급 받았냐?"


 "...3급 받았습니다."


 "너도 오래 살기는 좀 힘들겠구나."


 타냐 중사가 칭찬했지만, 곧이어 이어진 말에 로자는 풀이 죽었다. 하지만 타냐는, 그런 로자를 보고는 피식 웃더니 어깨를 툭툭 쳤다.


 "너무 걱정 마라. 사실 여기서 싸우려면, 머리 돌아가는 능력도 중요하거든. 아무 생각 없이 돌격하거나, 겁에 질려서 처박힌 새끼들이 한 둘이 아닌데 너 같은 놈이 들어오니 기분이 좋구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난 네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넌... 쓸모가 많거든."


 "...상병 레프리콘-47183. 감사합니다."


 쓸모가 많다. 도움이 된다. 로자를 로자라는 사람이 아니라, 47183이라는 시리얼 번호를 부여받은 레프리콘이라는 '도구'로 보는 관점이었다. 그 관점이 조금 씁쓸하게 느껴졌지만, 타냐 중사 나름의 애정표현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타냐 중사는 미로 같은 요새 안을 앞장서서 가다가, 입이 간지러워서 그런지 분대원들에게 충고했다.


 "오늘 아침은... 내가 알기로 삶은 스팸이랑 콩 통조림이 나올 거다. 어제 생각 없이 스튜로 배급했더만 그거 쏟은 새끼들이 좀 나왔다 하더라고."


 "저, 정말입니까?!"


 브라우니들이 눈을 반짝였다. 타냐 중사에게는 짬밥이었지만, 미각마저 짬밥 수준으로 설계된 브라우니들은 스팸 얘기에 눈이 돌아갔다. 타냐 중사는 스팸 같은 가짜고기에 살고 죽는 그들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런데 저 미친 년 먼저 반품해야지."


 타냐 중사는 "대대 의무실"이라는 대충 휘갈겨쓴 글자가 붙은 곳에 먼저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브라우니-541116이 얼마나 정신이 나갔는지, 얼마나 정신이 나갔다는 걸 무슨 사건으로 판단했는지 설명했다. 그러자 듣고 있던 군의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다 두세요."


 "얘들아. 들었지?"


 "네! 알겠습니다!"


 로자와 분대원들은 시킨 대로 브라우니를 '반품'했고, 그 다음에 식사를 추진하러 갔다. 타냐 중사가 말한 대로, 대대 취사반에서는 스팸을 삶고 있었다. 원래 욕탕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보였는데, 펄펄 끓는 욕조 안에 수백개의 스팸과 콩 통조림들이 보였다. 욕조 안을 열심히 휘젓고 있던 취사병 브라우니가, 타냐 중사를 보고는 경례를 붙였고, 급양 담당자가 나와서 이야기를 하더니 알파 중대 거 내오라고 명령했다.


 "우와... 많다!"


 "이거 다 들고 갈 수 있는 겁니까?!"


 로자와 1분대원들은 눈 앞에 펼쳐진 가득한 통조림들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많은 양에 감탄했지만, 동시에 이 많은 양을 어떻게 다 들지 고민이 앞섰다. 타냐는 그들을 보더니 껄껄 웃고는 시범을 보였다.


 "엄살 부린다, 이 똥강아지들."


 타냐는 시범을 보인다며, 통조림이 가득찬 박스 네 개를 들었다. 그리고 로자에게 턱짓으로 하나 더 올리라고 명령했다.


 "뭐해, 너가 하나 더 올려줘야지."


 "괜찮으시겠습니까?"


 "레프리콘. 내가 여기서도 내 직권으로 너한테 강제 명령을 해야겠니?"


 "아, 알겠습니다!"


 로자는 빠르게 한 박스를 더 올려주었다. 로자보다 박스가 더 커보이는 초현실적인 광경이었지만, 타냐 중사는 전혀 힘들어보이지 않았다. 그 상태 그대로, 타냐가 고개를 뒤로 돌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너네도 할 수 있지?"


 그렇게 해서 모두 박스를 여러 개 들었다. 어찌저찌 아침 식사 수요를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브라우니인 레키와 리나는 타냐 중사를 본받아 다섯 박스를 들었고, 노움인 레나는 여섯 박스를 들었다. 레프리콘인 로자는 체력 쪽이 제일 약한 탓에 네 박스였지만, 어쨌든 다 해서 25박스로 중대가 한 끼를 때우기에는 충분했다.


 "무겁냐?"


 "아닙니다!"


 "무거우면 나 말고, 갑자기 정신 나가버린 그 년 탓해라. 그리고 너희들, 다음부터는 해보지도 않고 된다 안 된다 말하지 말고, 일단 해 보고 안 되면 안 된다고 말해라.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해 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어딨냐? 그 이야기에서 로자는 옛날 훈련교관의 흔적을 느꼈다. 세 명이 달라붙어서 텐트를 세우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이야기에, 훈련교관은 보는 앞에서 혼자 텐트를 만들고는 해 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말하고 있냐며 혼냈지. 딱 그런 느낌이었다. 간부가 되면 다 그러는 걸까? 골똘히 생각하면서, 슬쩍슬쩍 옆으로 돌아 타냐 중사가 가는 방향을 살펴 중대 생활관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타냐 중사는 또 입이 심심한지 여러 이야기를 했고, 레키와 리나는 용기를 내서 먼저 질문했다.


 "타냐 중사님."


 "왜."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러면서 두 번 질문하고 두 번 대답하게 하지 마라. 뭔 일인데?"


 "아, 죄송함다. 혹시 오늘 이거 배식 정량이 어떻게 됨까?"


 "그거? 오늘 아침 배식 정량이 아마 스팸 두 통에 콩조림 한 통이었을 거다."


 "와! 정말임까?"


 "오늘 많이 먹겠다! 하하!"


 로자는 타냐 중사의 눈치를 보면서,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타냐는 그런 로자를 오히려 막았다.


 "로자. 내버려 둬. 어차피 많이 먹으면 후회할 거거든. 너희들 말 잘 듣고, 오늘 아침에 잘 대처해서 내가 특별히 알려주는 건데 말이야. 오늘 아침은 덜 먹는 게 좋을 거다."


 "잘 못 들었습니다?"


 "너희들 여기 올 때 요새 바깥에 쌓인 시체들 봤지?"


 "네. 봤습니다."


 "그거 치워야 하거든. 비위 좋으면 먹고 구역질 버티면서 일하던지."


 "..."


 "..."


 올 것이 왔다. 로자는 박스에 가려져서 타냐 중사가 자신의 얼굴을 못 보는 틈을 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표정 관리도 중요한 덕목이였지만, 지금은 표정만이라도 열심히 박살내고 싶었다. 


 "왜? 하기 싫니?"


 "아닙니다!"


 "야, 하기 싫은 거 다 알아. 내가 병신도 아니고 그걸 모르겠냐? 그런데 중요한 건 그거지. 너네가 하기 싫다는 건, 작업을 배정하는 데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라는 거. 너희들도 알지?"


 "...맞습니다."


 로자를 비롯한 1분대원들은 이곳의 현실을 거침없이 꽂는 타냐 중사의 말에 맞다고 대답했다. 단순히 상관의 말이 무조건 옳고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맞는 말이라 대답해야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기에 진심으로 공감해서 나온 대화였다. 이리 됐든 저리 됐든, 타냐 중사가 도착하자 병사들이 나와서 그 박스를 받고 하나씩 내렸다. 타냐는 철문을 쾅쾅 두드리면서 외쳤다.


 "1소대부터 나와라!"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생활관에서 우르르 몰려나와 식사를 받아갔다. 인간으로 구성된 간부들은 스팸과 콩 통조림 두 개, 그마저도 까지도 않고 그냥 삶아서 낸 매우 무성의한 구성에 썩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정량보다 덜 가져갔지만,바이오로이드 병사들은 스팸과 콩 통조림 두 개라는 '호화로운' 식사에 감사하기로 했다.


 "어제보다는 훨씬 괜찮네!"


 "야, 빨리 먹자."


 "..."


타냐와 함께 식사를 추진하러 다녀온 1분대원들도 식사를 받았다. 타냐 중사는 고생했으니 더 받으라며 1인당 스팸 통조림 하나씩을 더 내밀었다. 레키, 리나, 레나는 흔쾌히 더 받았지만, 로자는 타냐 중사가 해주었던 조언을 듣고는 추가 배식을 사양했다. 


 "어? 로자 상병님은 더 안 드십니까?"


 "네."


 "어... 그러면, 저희가 더 먹으면 안되겠슴까?"


 "아까 전에 타냐 중사님이 말씀하신 거 못 들었어요?"


 "에이, 우리가 화학전 현장 가는 것도 아닌데 별 일 있겠슴까? 헤헤."


 "...그렇다면야."


 로자는 자신이 받아야 할 추가 배식을 받았다. 그리고 추가 배식 이외의, 그녀가 먹어야 할 큼지막한 통조림도 하나 더 브라우니들에게 넘겼다. 브라우니들은 그걸 보고 놀라서,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로자 상병님? 이거 저희가 먹어도 되는 검까?"


 "네, 뭐..."


 "앗싸! 신난다!"


 레키와 리나는 기분이 좋아서 노래를 부르고, 로자의 좁은 위장과 자비를 예찬하며 통조림을 깠다. 레나는 그들을 웃으면서 바라보다가 로자를 보는 눈동자에는 걱정을 담아서, 그녀에게 물었다.


 "로자. 괜찮겠어요? 시체가 보통 무거운 게 아닐 텐데 그 정도만 먹어서 힘이 날 지..."


 "토해서 힘 빠지는 게 더 클 거 같아서 말이죠."


 로자는 통조림을 까고 포크로 푹 찔렀다. 우걱우걱 씹어먹으면서, 어제의 그 정체를 모를 스튜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얼굴에 만족을 피웠다. 어제의 스튜는 충격이었지만, 오늘 먹는 건 꽤나 괜찮았다. 그들 기준으로 '맛있는' 식사였고, 괜찮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로자는 맛있게 삼키는 이 고마운 음식이, 나중에 작업을 나가서는 위장 속에서 살아나가겠다고 식도를 기어오르는 웬수덩어리가 될 게 걱정이었다. 씁쓸한 불안을 삼키며 깨작깨작 식사를 하다가, 겨우 작업 집합 시간에 맞춰 식사를 다 먹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아주 끔찍한 걸 보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타오 소위님. 얘네들은 여름 캠프 온 걸스카우트 애들이 아니라 살인을 하러 온 살인마 집단입니다. 좀 더 규율이 잡혔고, 부모란 게 없다는 게 차이점이지만요. 일종의 정신교육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여기서 안 본다 해도, 몇 주 뒤면 제 내장을 제 손으로 집어넣고 있는 러시아놈들을 볼 텐데요."


 "타냐 중사. 좀 틀린 말도 하시고 그러란 말입니다. 제가 할 말이 하나는 있어야죠."


 "하하하. 어쨌든 다 모였으니, 중대장님 불러와야지 않겠습니까?"


 "제가 가서 보고하겠습니다."


 타오 소위가 전 중대 병력을 대신해 중대장을 불렀다. 중대장은 타오 소위에게 집합 완료를 보고받고, 그들 앞으로 나와서 작업 내용을 설명했다. '작업'을 설명하면서, 철모에 방탄복을 입고, 거기에 간부용 주요부위 증가장갑 키트까지 장착한 모습을 보았다. 1소대 1분대, 로자와 분대원들은 왜 저러는지 알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겨우 '작업'에 왜 저렇게 살벌한 군장을 차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서 있었다. 테일러 중위는 그들을 돌아보고 운을 뗐다.


 "간밤에 잘 잤냐, 밥 먹었냐는 말은 생략하겠다. 어차피 다들 서로 많이 했을 테니까. 이 좃같은 요새를 점령한 것까지는 좋은데, 바깥에 봤지? 시체가 한둘이 아니라서 그걸 다 태워야 한다. 태우는 거야 이그니스가 오건, 아니면 석유 붓고 태우건 우리 알 바 아니지만, 태울 시체를 쌓는 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이 말이에요."


 이미 들은 얘기였지만, 새삼스럽게도 1분대원들도 혼란스러워하는 병사들의 감정에 동참했다. 로자는 그에 대비해서 식사를 줄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길바닥에 토사물을 남기지 않기 위한 방책일 뿐 다가올 좆같은 운명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행동은 아니었으니까. 중대장도 그들의 썩어가는 표정을 알았지만 그들의 의사는 금일 작전간 그가 신경써야 할 요소가 전혀 아니었기에, 안전에 관한 교육으로 할 말을 맺었다.


 "다들 나가기 전에 군장이랑 총기 다 챙기고 나와라. 작업 구역 일대에서는 러시아군 잔당 출몰 보고가 없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끼들이 튀어나올 수 있으니까 방심은 금물이다. 시체 수습 작업이 언제 실전으로 바뀔지도 모를 일이거든."


 실전? 싸움? 러시아군? 그 이야기에 중대원들이 웅성웅성거렸다. 테일러 중위는 갑작스럽게 웅성대는 그들을 불편한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타오 소위가 눈치를 보자 타냐 중사가 앞에 나서서 철문을 쾅쾅 두드리며 소리쳤다.


 "중대장님 말씀하시는데 왜 이렇게 잡소리가 많나! 중대장님께서 말씀하시면, 너희들은 그냥 들으라고! 정숙!"


 """정숙!"""


 그 이야기와 함께 병사들이 전부 입을 다물었다. 테일러 중위는 타냐 중사에게 고맙습니다, 잘 했어요, 1소대 부소대장, 이라고 대충 칭찬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러시아군이 오지 않더라도 군장은 전부 착용하고 있어야 할 거다. 러시아 새끼들이 뭐가 아쉬운지 자꾸 여기다가 의미없는 포격을 날려대고 있거든. 아까 일어날 때 존나 시끄러웠지? 중대에서 정신 나간 새끼 하나 나왔다며? 그게 또 일어날 수 있고, 요새 안에 있으면 모를까 요새 바깥에 있으면 그게 의미있는 포격이 될 거다. 아주 큰 의미가 있는 포격이."


 말이 길었군, 테일러는 박수를 짝짝 치고 그들에게 명령했다.


 "나 테일러 중위가, 중대장 권한으로 명령한다. 총기랑 단독군장 챙겨서 10분 내로 집합해라. 실시."


 "예! 알겠습니다!"


 '명령'이라는 단어에 바이오로이드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에게는 구타 같은 폭력적인 수단이 필요 없었다. 그들에게는 "명령"이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본능보다도 더 큰, 제 1의 동기로 작동하고 있었다. 상관의 명령이라고 생각하니, 그들의 움직임은 10분이 아니라, 3분을 줬어도 충분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중대장님. 중대 전 병력 집합 완료했습니다."


 "그래. 출발하자."


 저벅저벅 걷는 발소리가 중대급으로 불어나고, 군장과 총기가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합쳐져서 울렸다. 파바방! 파바바방! 복도 같은 빈 공간을 따라서, 아니면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뚫고 전해지는 총소리에도, 그들은 묵묵히 인솔을 따라 걸어갔다. 로자는 걸어가면서, 자대배치를 받을 때 왔던 길과는 다름을 깨달았다.


 "...어디로 가는 거지?"


 "알고 싶냐? 우리는 지하로 간다."


 "지하 말씀이십니까?"


 "잔말 말고 따라오면 알 수 있다."


 잔말 말고 따라오라는 말대로, 입을 다물고 계속 따라갔다. 붉은색 경고등만 빛나는 지하에서 바깥 세상의 흰 빛이 보였다. 작은 틈새로만 들어오던 햇빛이 반가워 레나가 웃었다.


 "로자! 햇빛이에요! 작업하면서 일광욕도 하겠는걸요?"


 "일광욕... 네. 일광욕 좋죠. 일광욕."


 하지만 로자는 웃을 수 없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햇빛과는 전혀 거리가 없어보이는 지독한 냄새에 웃음을 지웠다. 로자는 이 냄새를 잘 알고 있었기에, 다른 이들이 이상한 냄새에 코를 부여잡고 이상증상을 호소하는 동안 말없이 방독면을 착용했다.


 "..."


 타냐 중사는 방독면 렌즈 너머, 냄새를 두려워하는 레프리콘의 눈빛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머리 좋은 녀석 같으니라고."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시체 처리 작업"의 실체를 두 눈과 ,두 코로 확인하게 되었다. 


 포격으로 난 큰 구멍을 통해 바깥으로 나왔다. 전쟁이 지옥이라고 하지만, 그 지옥이라는 단어마저도 전쟁의 실상에 대면 그저 단어에 불과할 뿐이라. 눈 앞에 가득한 시체들은 온 몸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벌레와 까마귀가 달라붙었다. 그들은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 평생 잊지 말라는 듯 끔찍한 냄새로 그들의 정신을 두들겼다.


 "레키?"


 "웁, 우붸에에엑..."


레키가 사양 없이 한 시신 위에, 추모의 의미로 자신이 꿀떡꿀떡 집어삼킨 스팸을 육개장마냥 쏟아붓는 것을 시작으로, 열댓명이 넘는 이들이 오물로 가득찬 시체 무더기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레나는 그 광경을 보고, 로자를 따라 말없이 방독면을 착용했다. 


테일러 중위를 비롯한 간부들은 시체 냄새가 익숙한지 껄껄 웃었지만,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야, 일 안 하냐?"


 "시작하겠습니다!"


 하지만 어쩌랴. 그들은 이곳의 실상에 고통받으러 온 영혼이 아니라, 이곳에 쌓인 시체들을 처리하러 온 바이오로이드들이었다. 제일 대응하기 쉬운 카빈 소총을 든 레나가 혹시 모를 살아있는 러시아군을 처리하기로 하고, 나머지가 시체를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멀쩡한 시체부터 시작하죠."


 "네, 알겠슴다. 이... 브라우니 괜찮아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레키가 시체를 질질 끌고 가서 올리는 동안, 로자와 리나는 시체를 붙잡았다. 잡을 때마다 느껴지는 특유의 그 차가움, 뼛 속까지 차가운 그 느낌과 딱딱함이 불쾌했다. 로자는 시체를 던져놓고 나서 다음 타겟을 찾다가...


 "으, 으아악?!"


 "로자 상병님! 괜찮으십니까?"


 시체 무더기 사이에 다리가 걸려 넘어지고, 균형을 잡으려고 뻗은 손은 질척한 내장 속으로 들어갔다. 로자는 손에 엉겨붙은 갈색과 붉은 색의 조합을 보고 가만히 침묵했다.


 "어... 로자 상병님?"


 "..."


 로자는 이 상황이 정말로 싫었지만 일어났다. 그리고 말없이 다음 시체의 팔다리를 잡았다. 어차피 다 더러워질 것이다. 지금 미리 손을 더럽힌 게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실제로도 그랬다.


 "으악! 내 손!"


 "으아악!"


 "야! 뭐야?! 러시아군이야?!"


 "그, 그게 아니라..."


 "별 것도 아닌 걸로 호들갑이야! 빨리 일 안 해?!"


 "죄송합니다!"


 다른 이들은 뭐라고 말하다가 불호령을 들었다. 저런 꼴이 나느니 묵묵히 일하고 만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작업에 점점 속도가 붙었다. 다른 이들이 10구의 시체를 옮길 때 그들은 15구 정도를 옮겼다. 확실히 작업이 빠른 게 눈에 보이는지, 타냐 중사는 1분대를 보고 허허 웃으며 작업을 거들기 시작했다.


 "타냐 중사님?"


 "빨리 하고 들어가야지. 포탄 떨어지면 나도 뒤지거든."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던 간부들도 하나둘 시신을 들기 시작했고,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반경 500m에 쌓여있던 '멀쩡한' 시체들은 전부 정리했고, 이제는 몸이 박살난 시체를 다룰 차례였다.


 "으..."


 "이건 좀..."


 바이오로이드들은 시체의 상태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날아간 시체야 팔다리가 붙어있으니 그렇다쳐도, 가슴 밑이 사라진 시체, 몸통 위가 없는 시체, 어쨌든 있어야 할 게 없어서 온갖 곳에다가 내장을 흩뿌린 것들이 가득했다. 서로 하기 싫어서 미루다가, 그 꼴을 보다 못한 타오 소위가 나섰다.


 "잘들 한다. 잘들 해."


 "타오 소위님?"


 소대장이 직접 흩뿌려진 내장을 삽으로 퍼내고, 시체를 붙잡아서 시체더미에 휘휘 던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바이오로이드들은 상관이 하는데 부하가 안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앞뒤 따져보지 않고 시체로 달려들었다. 아까 전에 구토를 해서 쏟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낸 덕일까? 구토 증세를 일으키는 이들은 없었다. 


 "하나... 둘... 셋!"


 "조금만 더 하지 말입니다!"


 "레나? 가서 우리를 지켜야..."


 "말이 좋아 지키는 거지, 사실상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요. 이런 일에서 도와야죠."


 레나도 열심히 일하는 분대원들을 보니, 가만히 있기도 뭐해서 총을 뒤로 매고 시체 조각들을 줍기 시작했다. 시체 조각들은 보기만 해도 충격이었지만, 엄청나게 끔찍한 광경을 보고 나니 충격의 역치값이 올라갔는지, 아니면 명령이 본능을 앞섰는지. 끝이 없는 시체 처리 작업의 터널이 보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런 씨발! 적 포탄 낙하!!!!"


 로자 옆에서 시체 처리 작업을 거들던 타냐가, 로자의 머리를 붙잡고 엎드리고, 로자의 머리가 터져 있는 시체의 내장에 처박혔다. 하지만 포탄이 터지는 와중에 로자가 대가리를 들 틈도, 항의할 틈도 없었다.


 그녀를 지켜주던 미궁요새의 흙 벽도, 강화된 프레임도, 철근 콘크리트 방벽도 없다. 로자는 그제야 테일러 중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단독군장을 차라고? 마음 같아서는, 그녀의 몸 안에 방탄 플레이트를 두 겹은 더 넣고 싶었다. 온갖 포격이 떨어지는 상황, 그런 생각을 하며, 로자는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복강 속에 대가리를 처박은 채 견뎠다.


 "..."


 "..."


 알파 중대는 포격 이후에도 작업을 계속했다. 처음 온 신병들은, 먼저 와 있던 브라우니의 해진 옷과 먼지 먹은 몸을 훈장처럼 여기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이라고는 한번도 보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그게 부러워할 일이 아님을 단 1분만에 깨달았다.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의 고깃조각이 온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고, 피가 비처럼 내리고. 새 군복은 그렇게 죽음의 맛을 깨닫고 남의 피를 열심히 빨아들였다. 그 중에서, 로자는 특별히 남의 내장에 얼굴을 처박는 경험까지 했다. 


 "그만! 여기까지! 작업 중지! 돌아간다!"


 "작업 중지하라십니다!"


 "작업 중지!"


 안타깝게도,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테일러는 그들의 감정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무기질적으로, 무너진 시체 무더기가 다시 쌓이는 것을 바라보다가, 어느 정도 작업이 끝났다고 판단하자 돌아간다고 결정했다. 정말로 큰 기적이 일어났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타냐 중사는 입 안에 들어간 시체 조각을 퉤! 뱉으며 하필 시체더미 사이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완벽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타냐 중사는 죽은 눈으로 가만히 걸어가는 로자를 보고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걱정 마라. 죽음은 이것보단 나을 거다."


 "...조언 감사합니다."


 로자는 영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파 중대는, 시체 냄새 잔뜩 밴 옷을 입고 그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레프리콘이 있었다. 그리고 여느 날처럼, 전장은 그녀와 상관 없이 시끄럽고 잔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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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