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울 수 있음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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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읽어보면 좋음


느와르 사령관


느와르 리리스


느와르 아르망


느와르 팬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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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의 밤은 지독히 어두웠다. 침묵이 내리깔리기도 했고 종종 새 울음소리와 어수룩한 보초들의 시시껄렁한 잡담이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내리 깔리는 무음의 검풍과 총탄. 일방적인 비극을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보초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속도와 상황이었다. 


레이스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한발에 하나씩. 원샷 원킬. 그녀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생존해왔다. 물론 그녀에게도 이 원칙을 제 스스로 무시한 적은 있었다. 단 한 번의 그릇된 판단으로 인한, 이성의 부재로 벌어진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팬텀에게 도움을 받고 ‘보스’에게 거두어졌지만 그 날 이후로 그녀는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로 원칙에 집착했다. 바로 지금처럼.


정확하게 그어진 목을 붙잡을 새도 없이 쓰러지는 하나와 미간에 총알이 박혀 생을 마감하는 하나. 그렇게 밤의 침묵속으로 사라지는 보초들을, 레이스는 수풀 안에서 스코프로 바라보고 있었다.


팬텀은 방금 까지 숨 쉬고 있던 이들의 피를 그들의 수의에 닦아내었다. 지방이 엉겨뭍어 끈적한 점액들에는 차가움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야만 잡념이 사라질테니. 그녀는 귀에 붙은 통신기를 두 번 두드렸다. 약간의 잡음과 함께 귀에서 울려퍼지는 레이스의 목소리는 지극히 냉정했다.


“선배. 진입로 가까운 곳에서 적의 발전소가 있다. 탱고 셋. 내부는 알 수 없다.”


“계획대로 파괴 공작 후 섬멸. 번복은 없어.”


“알겠다. 선배. 적의 전력이 차단되면 같이 진입하겠다. 그 전 까지는 서포트에 집중하겠다.”


“응.”


레이스는 짤막한 통신 후에 가벼운 숨 고르기와 함께 제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어두운 밤 같은 총탄이 허공을 가를 때 마다 하나의 생명이 숨을 잃었다. 부서지는 조명들은 유리 파편을 내 뱉으며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무지에서 비롯된 공포가 그녀들을 옥죄었다. 으드득거리며 부서지는, 제 형체를 잃어버린 공허함을 달랑거리는 동료들이 하나씩 쓰러질 때 마다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는 것 보다 의심하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의심암귀는 모두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자신의 옆에 있는 이가 과연 동료인지, 아니면 제 목숨을 앗아갈 유령인지. 공포에서 비롯된 의심은 결국 변질되어 버리기 마련이었다. 그녀들은 서로를 찌르고 쏘아죽이며 혼돈 안에서 허우적거렸다.


첫 희생양은 가녀리지만 강인한 인상의 바이오로이드였다. 그녀는 아주 능숙한 관리자로써의 면모를 보였다. 조명을 파괴한 이를 찾는 대신 사이렌을 울리는 판단. 누구던지 납득할 만한 대처라고 자부할만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임무였다. 찰나의 순간. 버튼을 누르자마자 그녀의 팔목이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베어지는 목.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비명 없이 끊어진 마지막 외침에서 그녀는 슬픈 눈의 유령을 눈에 담았다.


물론 그녀들도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모든 조직에는 통제를 해야만 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하나씩 스러져갔다. 보이지 않는, 망토를 뒤집어 쓴 비극에게 비명조차 지르기 못하고 목이 그였다.


비명과 괴성. 그리고 혼돈. 그 사이에서 팬텀은 제 스스로 추악하다고 여기는 춤을 추었다. 조금이라도 고통 없이 보내줄 뿐이었다. 쌍방적인 학살. 서로를 짓이기는 그녀들에게 이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강렬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묻힌, 그들의 아우성이 울러퍼졌다. 그럼에도 팬텀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의 정도가 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임무를 되뇌이며 자신의 적들을 짓이겼다. 어찌되었든 그녀들은 그녀의 ‘가족’을 건드린 무뢰한들이었기에. 그래야했다.


팬텀은 혼돈 속을 능숙히 뒤집고 뜷고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멈춰버린 레이스의 지원에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분명 진입을 준비하고 있거나 자리를 옮겼거나. 둘 중 하나라 단정지었다. 그녀가 아는 자신의 후배는 이런 곳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칠 정도로 허술하지 않다고도 믿었다. 그렇기에 제 스스로도 해야할 일을 다시 되뇌였다. 눈 앞에 보이는, 방금 전보다 경계가 강화된 발전소를 무력화 시키는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그녀는 조금 소란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품에서 점착 폭탄 하나를 꺼내 들었다. 거미 모양의 도구는 우악스럽게 멀리 던져졌다. 돌입할 문과 정 반대되는 곳에서 터진 폭발은 모두의 관심을 쏠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누구던지 제 앞의 동료가 고깃덩어리가 되어 흩어진다면, 그럴것이었다. 그리고 팬텀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우연찮게 위화감을 보초 하나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비극이었다. 가녀린 손에서 피어오르는 우직한 힘이 그녀의 목뼈를 으스러트렸다. 그 몸뚱아리가 쓰러지기 전에, 옆에 서 있던 보초 또한 목이 그여 천천히 주저 앉았다.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허공을 데웠다. 지방과 섞인 꾸덕한 진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럼에도 팬텀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그녀는 ‘일’을 하는 중이었으므로. 대신 일말의 자비로 눈을 감겨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이러니였다.


조심스럽게 삐걱거리며 움직이는 문이 틈 사이로 발전소 안에 빛을 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여러개의 섬광이 쏟아져 내렸다. 쇠와 쇠가 부딫히는 하모니가 오랫동안 울려 퍼졌다. 어림 잡아도 다섯 이상의 인원이 흩뿌린 총탄의 양은 적지 않았다. 벽에 박혀 일부가 된 쇳덩어리와 제 기능을 잃어버려 나뒹구는 작은 납탄들. 총들이 철컥거리며 침묵을 맞이한 그 순간, 작은 구체 하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번쩍거리며 터지는 구체 사이로, 내달리는 이가 있었다. 팬텀은 문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가장 앞에 있는 여자의 목을 찔렀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피를 뿜어내는 유기물 덩어리를 뒤로 한채, 그녀는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기관단총에서 탄환을 쏟아내었다. 가열되며 내 뱉어지는 철의 비. 간신히 비명을 지르며 무가치하게 변해버리는 이들은 쓰러질 뿐이었다. 몇몇은 비명을 내 지르며 그녀를 향해 내 달렸다. 채 장전할 시간도 없이 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급박하게 내려쳐지는 총과 살의를 담은 단검들.


팬텀은 생존 본능이 이성을 앞설 때, 가장 상대하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장 먼저 내려쳐지는 총을 피하고 가슴에 단도를 박아넣었다. 그 다음으로 찔러지는 단검은 방금 목숨을 잃은 시체에 박히게 했다. 찔러 넣어진 도구는 살과 근육에 파 묻혀 가볍게 빼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다른 시체가 만들어지는 시간이었다. 180도 올린 뒷꿈치에 머리를 찍힌 순간, 바닥에 피와 뇌수가 흩뿌려졌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와이어에 팔이 잘려 비명을 지르던 이는 목이 끊어져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쇠사슬에 목이 감긴 이는 난간에 메달려 바둥거렸고 팬텀보다 머리 두개는 커보이는 보초는 그녀가 무릎으로 쳐 올려 박힌 단검을 자랑하듯 턱에 온전히 박힌 채 굳어있었다.


다시금 고요함 속에 자그마한 파문이 일었다. 그녀는 천천히 발걸음을 내며 소리의 근원지에 총구를 겨누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머뭇거림이 있었다. 벽에 등을 맞댄채 얼굴을 가리고 몸을 웅크려 떨고 있는 작은 바이오로이드 하나. 아직 성장이 덜 된듯한 그렘린 개체. 눈물을 흘리며 훌쩍이는 이 생명은 겁을 먹은 채 팬텀을 향해 간절히 빌 뿐이었다.


“살... 살려주세요...”


팬텀은 자신도 모르게 구역질이 올라왔다.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우악스럽게 튀어나와 그녀의 목구멍을 두드렸다. 어린 바이오로이드를 위해 어린 바이오로이드를 죽인다. 이 모순에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헤집어졌다. 바들거리는 총구와 흔들거리는 눈동자. 더 이상 그녀의 눈은 슬픔을 담지 않았다. 그 자리를 혼란스러움과 절망이 채워져 흔들거릴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충동이 일었다. 한 명 정도는 살려도 되지 않을까. 이 정도는 보스도 이해해 주지 않을까 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총구를 조금씩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 순간 총성이 울렸다. 아무런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가련한 소녀. 흠칫 놀란 팬텀은 바로 총구를 뒤로 돌렸다.


희미한 빛 사이로 보이는 백색에 가까운 은발. 그녀의 ‘후배’인 레이스가 연기가 새어나오는 총구를 천천히 떨구고 있었다. 레이스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팬텀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배.”


“레이스...”


“보스가 내린 임무.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어린 아이였어.”


“받은 명령은 ‘생존자는 없었다.’. 그것에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난... 모르겠어. 우리의 일이 옳은일인지. 아닌지...”


“보스가 임무전에 해준 말이 있다. 만약 선배가 그런말을 한다면 전해달라고 했다.”


“좋은 말은 아닐 것 같아.”


“...임무에 감정을 섞지 마라. 분명 그렇게 말했다.”


팬텀은 보스 다운 대답이라고 여기면서도 그 명령에 따라야 하는 자신을 원망했다. 그는 어찌되었든 공리주의자였다. 이런 사소한 감정도 허락하지 않은 부류의 인간. 그렇기에 그녀는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자괴감과 회의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레이스는 고개를 떨구고 손을 꽉 쥐고 있는 팬텀을 그저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있어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의 고민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자신은 그렇게까지 다채로운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선배. 나는 선배가 좋다. 하지만, 나는 병기이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이해해줄 수 없다.”


“이해하지 말아줘. 고통받는 건 나만으로 족해.”


“... 임무를 속행해야 한다. 선배.”


“응... 해야지. 임무니까.”


팬텀은 눈에 흐르는 회한을 닦으며 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 뒤로 레이스가 뒤를 따랐다. 그곳에는 슬픔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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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가 끝나고, 팬텀은 자신의 자리인 기록물 보관소의 구석에 웅크리고 무릎에 얼굴을 파 묻고 있었다. 어제 임무에 대한 회의감과 죄악감이 뱀처럼 온 몸을 감싸고 귀에 속삭였다. 우울한 감정이 자신의 살을 파먹듯 안에서 부터 채워져갔다. 익숙해질만도 했지만 여전히 잔여물들은 그녀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녀의 상관은 그렇지 않았다. 기록물 보관소의 문이 열리고 하나가 들어왔다. 비뚤게 쓴 페도라와 은은한 향이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팬텀 앞에 선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담배가 타 들어갈 때까지 구석에서 움찔거리는 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 또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 했기에, 사령관은 필터만 남은 담배를 발로 짓밟아 끄며 말했다.


“팬텀. 내가 원망스럽나.”


팬텀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보스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마른 자국이 얼굴에 눌러 붙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일종의 항명이었다. 의심을 가지지 말아야할 이가 의심을 품는다. 그것은 하나의 반항이자 반란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납득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그렇겠지. 너는 감정이 풍부한 아이니까. 암살자를 하기엔 너무나도 여려. 지나치게 온순해. 그러니, 감정에 쉽게 휘둘리고... 뭉개지지.”


다시 담배에 불이 일었다. 짓이겨지는 필터 안으로 연기가 조금씩 스며들었다. 그는 담담하게 향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그를 향해 말했다.


“보스... 그 아이는 총을 들고 있지 않았어요.”


“그래. 그럴 수도 있을테지. 그런데 그것이 임무에 감정을 섞을 만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나.”


“총구는 총을 겨눈 이에게 겨눠야 하는 것 아니었나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도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그 대답은 둘에게 어떠한 의미도 없을테니까. 평행선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에게 이야기 해야만했다.


“누군가는 가족들을 위해 손에 피를 묻혀야 한다. 설령 그것이 원치 않는 일이라 해도.”


어찌되었든 사령관도 피를 뒤집어 쓰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있어 그녀의 행동은 칭얼거림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팬텀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잠시간의 침묵. 그것을 깨며 입을 연 것은 그녀였다.


“벌을 받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저는 임무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어요. 언젠가 저는 제 후배와 보스를...”


“당연하다. 가족에게 훈계와 체벌을 가하는 것도 보스로써의 일이지.”


당연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녀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그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기록물 보관속의 구석 대신, 사령관실의 구석에 있어라. 마침 호위가 하나 더 필요하던 참이었으니까.”


사령관은 제 할말을 내뱉고 몸을 돌려 문을 향했다. 가장 의외의 대답이 나옴과 동시에 팬텀의 얼굴에 의아함과 당혹감이 새겨져있었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그는 나지막히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팬텀. 실망시키지 말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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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좀 훈훈하게 끝내고 싶기도 했고 팬텀이 은근 온순하고 살인 싫어 하는 성격이라 조금 더 부각시켜 봄


근데 전투신 들어가고 매운 맛 억지로 우겨 넣으려니까 분량이 좀 많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드라


어찌되었든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