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림표--




푸쉬이익.


"아!"


탁탁탁탁탁..


푹.


"엄마!"


"................"


"괜찮아? 어디 다친데는 없구?"


".......그럼."


"헤헤."


꿈 속에서 버둥거리는 기분이다.


머리가 어질어질 하면서, 심장은 조여오듯이 뛴다.


나는 방금 뭘 본걸까?


그 얼굴....몸짓...말투.


그건 어딜 어떻게 보더라도, '그녀'다.


"있지 있지, 오늘 벙커 창고에말야...."


품에 안긴 딸이 내 품에 얼굴을 묻고 볼을 부벼대고 있을 때, 열린 문 밖에서 차가운 잔바람이 새어들어온다.


늘 차가웠던 바람이었지만, 오늘 따라 그리운 느낌이 든다.


'소장님은 빼. 오히려 격식차리니까 더 어색하잖아.'


'하지만...저같은 일개 병사가 소장님께 결례를 범할 수는...'


'너나 나나 어차피 저 기지에 박혀계신 분들께 봉사하는 바이오로이드임에는 변함이 없잖아. 그냥 편하게 부르라구.'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자, 다시 말해봐.'


'...레오나...님.'


'님자도 빼고.'


'앗...하지만...그래도....'


'괜찮대도?'


'.....알겠습니다, 레오나'


'...끝까지 경어는 쓰는구나? 후후.'


'하지만...누군가에게 반말을 하는건 영...'


'후후후. 됐어. 그냥 편한대로 해. 상관없으니까.'


갑작스럽게 벌어진 철충과의 전투를 시작하고 시간이 지났던 어느날.


함께 죽을 고비를 넘겨오며 살아남았던 그녀와 난,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


냉철한 판단과 뛰어난 지휘를 내리는 '철혈'의 이명과 달리,


속이 깊고 주변을 살필 줄 아는 사람.


내가 따르던 레오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너는 동종의 발키리들 보다 사격솜씨가 훌륭하던데.'


자신의 지휘에 벌레처럼 죽어나가는 자매들 사이에서, 늘 혼자만큼은 살아남아 적의 중추를 마비시켜온 내게 관심과 흥미를 내비추며 다가왔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거야?'


'...그건...'


"엄마?"


"........"


"엄마!"


...이런.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나를 바라보고 있다.


"...엄마, 오늘 좀 이상해. 늘 돌아오면 머리부터 만져줬으면서...."


"...미안해. 오늘은 엄마가..."


나는 딸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늘 그랬듯 가마를 중심으로 머리를 어루만졌다.


"...좀, 피곤해서말야. 잠시 딴생각을 해버렸어."


도저히 웃을 상황이 아니었지만, 나는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니, 미소와 비슷한 무언가를 지어보였다.


그러자 딸은,


"...엄마, 무슨 일 있었구나?"


당연하게도 알아차리고 만다.


아무래도 표정으로 드러날 만큼 심각했나보다.


".........."


우리에겐 상처가 있다.


우리의 주인이었던 자들이 모두 비틀린 얼굴로 잠에 빠지고,


괴물들이 우리를 덮쳐 불을 지르고 건물을 부숴버렸던 그날.


지켜내야 했을 이들이 모두 죽고, 있어야 할 장소를 잃어버리고 말았던 그날.


힘겹게 살아남았던 우리 둘에겐, 흉하게 부푼 내 오른 눈의 화상자국과 같은 상처가,


이 아이에게도 남아있다.


살아있는 이유도, 목적도 사라진 텅 빈 인형이 되어 본능대로 살아남기를 반복했던 나와,


아직도 떠나보낸 이들의 마지막을 꿈꾸는 딸.


가지 말아달라고, 나를 두고 먼저 가지말아달라 고래고래 외치며 우는 그런 아이에게,


오늘 겪은 이 꿈같은 이야기를 말해준다면...


정녕, 버텨낼수 있을까?


그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잊지 못한 상처를 지니고 사는 이 아이에게, 있을지도 모를 희망을 전해준다면...


"........"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언니같고, 동생같고, 친구같았던 자매들이 모두 자기를 지키다 죽었다.


꿈을 꾸면서도 잊지 못해 괴로워 하고있다.


그런데 어느날, 똑같은 얼굴을 한 다른 이들이 우리를 찾고있다고 한다면,


'...주시안이 망가졌는데도 정확한 원거리 저격, 재빠른 움직임에 탁월한 판단력...정말 훌륭해. 듣던대로 라고 해야하나?'


정신이 부서진 이 아이가 과연 받아들일수 있을까?


'만나서 반가워, 4868. 나는 철혈의 레오나라고 해. 뭐, 알고있겠지만.'


....맹렬히 싸워 산화한 자들의 넋이 안식을 취하지 못한 채로, 원망하며 찾아온것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장황하게 설명하는건 번거로우니 바로 본론부터 말할게. 네가 가진 전투력은 우리 저항군에 반드시 필요해. 부디 합류해줬으면 좋겠어.'


설원에서 말을 걸어온 자매들을 본 난, 적어도 그런 생각에 빠져버렸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니까, 내일 다시올게.'


차가운 겨울바람에 흩날리는 금색 머리칼과, 손에 쥔 권총을 홀스터에 집어넣으며, 그녀는 말했다.


'우리와 함께하자, 4868. 오르카가 널 원하고 있어.'


"....만약에,"


"응?"


"만약, 다른 생존자를 만나게 된다고 한다면..."


부서지고 닳아버린 우리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 일은 없다.


"...너는, 어쩌고싶니?"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응?"


하지만, 상처를 입었다 해서 주저앉아있기만 할 수는 없다.


살아있다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내가 이제부터 내뱉을 말로, 이 아이가 또 다른 상처를 지게 된다 해도 -


나아가야만 한다.


과거의 기억에, 상처에 얽매여 있기를 반복한다면,


우리는 결국 깊고 깊은 심연에 가라앉아, 살아있는 망령이 되어버릴 테니까.


나는 숨을 한번 들이쉬고, 마음을 다잡는다.


"발할라의 자매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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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짤은 예전에 챈에서 주운 짤인데, 맘대로 써도 된다는 말을 들어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