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마츠시타!”

 경비원들은 문을 열고 나타난 마츠시타와 토모를 보자 경계를 한다는 듯 권총집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들은 여차하면 총을 빼들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들의 반사신경은 역시 VIP실의 경비를 할만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토모는 경비원들의 행동을 보고 재빨리 마츠시타를 자신의 뒤에 서게 했지만 그럼에도 뒤쪽의 경비에게서 마츠시타를 보호할 수 없었다. 쉽게 말해 토모와 마츠시타는 포위된 것이었다. 토모가 마츠시타를 안전하게 도망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려는 찰나, 둘이 나온 옆방의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죠? 왠 소란이에요?”

 문으로 나온 여성이 누굴지 마츠시타는 알고 있었다. 그녀를 조금전 이미 보았으니까. 옆방에서 일어난 일로 그녀가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키리시마 이치카 중의원. 과거 마츠시타가 믿었던 의원이자 이제는 믿을 수 없는, 소위 키리시마 법이라 불리우는 바이오로이드의 권한을 빼앗은 법을 발안한 의원이었다.

 “쥰.”

 키리시마 의원은 마츠시타를 보자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여전히 키리시마 의원은 마츠시타를 쥰이라 부르고 있었다. 키리시마와 마츠시타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키리시마의 마츠시타를 부르는 호칭은 변하지 않았다.

 “키리시마 의원.”

 마츠시타는 아니었다. 그녀에게 키리시마 이치카 의원은 이치카도, 츠즈라누키 이치카도 아닌 키리시마 의원이었다. 그녀에게 키리시마 이치카는 일개 중의원에 불과했다. 그녀와 아무 관계도 없는, 아니 오히려 적대적인 인물에 가까웠다.

 “쥰, 여기에는 무슨 일이죠? 여긴 초대받은 사람만이 올 수 있는 장소에요. 쥰과 같은 기자가 환영받는 곳은 아닐텐데요.”

 “조금 길을 잃었거든요. 이런 가건물은 지도에 없어서요. 그럼 이만 내려가봐도 될까요? 같은 소리는 먹히지도 않겠죠. 취재에요. 당신들이 하고 있는 추악한 짓을 취재하려는 거에요. 저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나요?”

 마츠시타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로우사기의 시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만일 토모 때문에 마츠시타와 둘이 환풍구에서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저 바이오로이드는 자신이 젠틀맨이라 믿는 남자의 손에 죽었을 것이었다. 아니, 시로우사기는 죽었다. 젠틀맨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죽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건 제 소관도, 제 알 바도 아니에요. 이곳은 프라이버시가 있는 곳이에요.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싶은 일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하기 위한 장소에요. 사람들의 욕망이란 결국 자신만의 것이기를 바라는 거에요. 그것이 무엇이건 이곳은 그들에게 제공하는 곳이에요. 그리고 이건 전부 합법이에요. 덴세츠 사이언스는 욕망을 풀어줄 도구를 제공하고 저들은 욕망을 푸는 거죠. 이게 추악하다고요? 인간은 원래 추악한 존재에요. 자신의 욕망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고 싶기에 깨끗해 보일 뿐이죠.”

 “저 바이오로이드는 죽었어요! 자신의 손으로 말이에요! 당신들은 저 바이오로이드의 삶의 의욕을 앗아갔어요! 저들에게 있어서는 안될 고통을 만들어냈어요. 그게 욕망인가요? 그건 욕망이 아닌 범죄에요! 범죄가 추악하다는 것을 알고 설령 그럴 욕망이 있다 해도 그걸 억누르고 사는게 인간 아닌가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에요!”

 마츠시타의 외침에 키리시마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건 범죄가 아니에요. 오히려 범죄는 바이오로이드의 권리에 대한 기본 법 이전에, 바이오로이드라는 존재가 있지 않기 이전에 일어나던 것이에요. 옛날에는 이런 곳이 없었는지 아시나요? 옛날의 사람들은 선하고 현재의 사람들은 악하다고 생각하나요? 사람은 바뀌지 않았어요. 현대도 과거도 미래도요. 저 자리에 죽어 있던게 바이오로이드가 아니라 진짜 사람일 시대가 있었어요. 그리 오래된 과거가 아니에요. 바이오로이드는 오히려 사람을 지키고 있는 거에요. 저 자리에 진짜 사람이 올라가지 않아도 되도록이요! 인간은 악해요. 그건 바꿀 수 없어요. 위선이라는 가면을 쓴다 해도 결국 그 욕망은 언젠가 폭발하기 마련이에요. 그렇다면 그 욕망을 풀어줄 계기를 만들어주는게 오히려 옳은 게 아닌가요?”

 궤변이었다. 마츠시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이 악하다 하더라도 선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그럼으로 인간은 야만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저들은 생명이에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요!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못박아두면 다 용서된다는 건가요? 저들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못박아놓고 수십만, 수백만을 학살한게 인간이에요. 같은 인간을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을 그만둔지 겨우 1세기가 지났어요. 그동안 사람들은 좀 더 옳은 것, 좀 더 바른 것을 추구했어요. 그게 단 몇년만에 모두 무너졌어요. 더 이상 사람들은 옳은 것이 옳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런 것보다는 자신들의 욕망, 자신들의 욕심이 우선이라 말하고 있어요.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세요. 예전이라면 양지에 오르지도 못할 저 경기가 수많은 사람들의 환영속에 개최되고 있어요. 지금은 고대가 아니에요. 이건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사람들이 현대에 지친 거에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싸우는 것에 피로를 느낀 거죠. 자신의 욕망이 그릇되다 외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해냈나요? 그래서 세상이 옳게 변했어요? 오히려 이 나라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함으로 발전할 수 있었어요. 옳은 것만 하려던 지난 수십년보다 욕망을 쫓은 지난 몇년간이 더 큰 발전을 이뤘단 거죠. 사람들은 옳은 것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는데 한계를 느꼈어요. 아니죠. 오히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옳다고 믿게 된 거에요. 만일 바이오로이드들을 전부 사람으로 취급하게 된다면 지금껏 쌓아온 이 나라의 발전은 순식간에 무너질 거에요. 그건 일본만이 아닌 전세계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에요. 쥰이 원하는 건 그건가요? 잿더미 위에서 그래도 인간은 선하다고 자기위안 하는 것이요?”

 “그건 모르는 일이에요.”

 아직 인류는 바른 길로 발전할 수 있었다. 마츠시타는 최소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런 학대와 폭력,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다. 마츠시타는 인류를 믿을 수 없지만 최소한 노력할 수는 있었다. 결과가 어떻건 그 노력에 가치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게 만들겠습니다.”

 둘의 논쟁의 끊으며 경비원들이 총을 빼들었다. 토모는 다시 마츠시타를 보호했다. 그때 그들을 막은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잠깐 그만두세요!”

 키리시마는 경비원에게 달려가 그가 든 총을 붙잡으며 말했다.

 “제가 설득해볼게요. 죽일 필요까진 없잖아요.”

 경비원은 키리시마의 눈치를 보더니 권총을 쥔채로 손만 내렸다. 다른 경비원도 마찬가지였다.

 “위쪽의 명령입니다. 이곳에 들어온 일반인이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누출시킬 수 없다고 합니다.”

 “알아요. 제가 알고 있던 사람이에요. 설득할 수 있어요.”

 키리시마는 경비원들이 마츠시타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자 마츠시타에게 다가왔다. 마츠시타의 손에는 땀이 쥐어졌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언제라도 마츠시타를 쏠지도 몰랐다.

 “쥰. 이건 기회에요. 쥰과 저는 타협할 수 있어요. 이렇게 목숨을 걸지 않아도 돼요. 물론 지금 우리의 의견은 달라요. 하지만 우리사이에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거에요. 이렇게 서로 반목하지 않아도 될지 몰라요.”

 그럴 리가. 마츠시타는 키리시마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둘의 의견은 일부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근본적인 곳에서 달랐다. 둘은 서있는 곳이 달랐다. 한둘을 양보한다고 동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협박은 의미없어요. 여긴 VIP실이에요. 게다가 아랫층에는 수많은 관객들이 있고요. 여기서 총을 쏘겠다고요? 붉은 아레나의 첫 개최일이에요. 앞으로 떼돈을 벌 행사를 총소리로 망쳐버릴 일은 없을 거에요. 당신들은 총을 못쏠 거에요. 그건 위협용일 뿐이죠. 정 안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총을 쏜다는 의미죠. 내일 신문에 붉은 아레나의 대성공이 실리길 기대한 대주주들이 실제로는 붉은 아레나에서 일어난 사건을 마주하길 바라지 않는다면요.”

 마츠시타의 말에 경비원들은 말이 없었다. 원래 말이 없던 것일까, 아니면 마츠시타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는 것일까.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만들어낸 정적을 활용해 이곳에서 나갈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제발. 쥰. 이건 쥰에게 유일한 기회에요. 난 당신이 죽길 바라지 않아요. 바이오로이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제가 말했지만 덴세츠 사이언스는 애초에 사람의 목숨따윈 신경도 쓰지 않아요. 마츠시타도 아무것도 아닌양 죽일 사람들이에요!”

 “마츠시타가 말했잖아. 경비원들은 마츠시타를 쏠 수 없다고!”

 마츠시타 대신 토모가 외쳤다. 토모의 말이 맞았지만 동시에 마츠시타는 불안을 느꼈고 그녀의 생각이 맞았다. 경비원들이 다시 총을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희는 한 명령과 한 장비를 받았습니다. 명령이란 피치못할 상황까지 가면 권총으로 상대를 배제하라는 것이었고 장비는 아무도 듣지 않게 만들 소음기입니다.”

 경비원들은 주머니에서 원통 모양의 소음기를 꺼내더니 권총 앞에 장착했다. 그들은 진심이었다. 마츠시타를 ‘배제’할 생각이었다. 그들이 권총을 자신들에게 겨누기 전에 토모는 마츠시타를 안고 재빨리 몸을 날렸다.

 토모는 벽에 몸을 붙여 사선을 피할 생각이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토모는 격하게 몸을 날렸고 그 벽이라는 것이 석고보드로 만들어진 가벽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바이오로이드가 아닌 사람이 몸을 날렸어도 부서질 벽은 토모의 어깨에 의해 가볍게 부수어졌고 토모는 마츠시타와 함께 가벽 뒤에 만들어진 비계의 난간에 부딛히고 말았다. 그 충격에 두개의 쇠파이프로 만들어진 난간의 한 쇠파이프는 찌그러졌고 다른 쇠파이프는 떨어져 몇층 아래 바닥에서 소리를 울렸다.

 토모와 마츠시타는 자신들이 있는 장소와 고통에 놀랄 틈도 없었다. 총소리가 들린 것이었다. 소음기는 총소리를 완전히 가리지 못했다. 퓩퓩. 흔히 소음기를 단 권총은 그런 소리가 들릴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영화나 게임에서 흔히 듣는 총소리가 소음기가 달린 권총에서 날법한 소리였다.

 옆에서 작은 폭죽이 터지는 소리에 가까웠다. 진짜 총소리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작은 소리였다. 소음기는 소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줄여주는 것이었다. 관중들의 환성소리에 묻힐 수 있게, VIP실의 방음벽을 통과할 수 없게. 그정도의 소리만 나게 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 복도에 서있는 사람만이 이곳에서 총격전이 있었음을 알게 할 정도의 작은 소리였다.

 토모는 마츠시타를 일으킨 다음 비계 위를 달려갔다. 총알들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그 총알이 둘 중 누군가의 몸을 지나갈 것이었다. 앞에 장애물이 나타났다. 토모는 마츠시타의 몸을 붙잡아 위로 던져 턱에 매달리게 했고 자신은 단숨에 뛰어올라 그 위로 올라가 마츠시타를 끌어올려 위층으로 올라오게 만들었다.

 그곳은 VIP실 위였다. 최상층과 천장의 사이에 있는 공간이었다. 행사장 위에는 각종 조명기구와 스피커들이 매달려있었고 그것들을 점검하고 정비하기 위한 사다리와 다리들이 수도없이 놓인 곳이었다. 뒤를 돌아보자 경비원들이 벽에 난 구멍으로 나와 마츠시타와 토모를 향해 권총을 쏘았고 토모는 멈출 시간따윈 없다는 것을 알고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쪽으로 가는게 안전한 거 맞아?”

 마츠시타는 토모를 보며 말했다. 사다리와 연결된 다리는 길게 뻗어 행사장의 반대쪽까지 닿아있었던 것이었다.

 “이게 안전한 길이야! 마츠시타, 빨리 올라와!”

 “토모, 안전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너와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거 같은데...”

 마츠시타가 망설이는 순간, 사다리 위에서 불꽃이 튀었다. 경비원들이 쏜 총알중 하나가 사다리에 맞은 것이었다.

 “마츠시타! 멍하니 서있다간 죽어! 빨리 올라와야해!”

 마츠시타는 토모의 말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이곳은 안전한 길이었다. 다른 길에 비하면 죽을 확률이 적었으니까.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취재도 망했고 자칫하면 목숨도 망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버렸다. 사다리에 오르는 순간에도 경비원들은 계속해서 총을 쏘았다. 그러던 중 총소리가 멈추었다.

 “사격 중지. 구조물이 맞아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몰라. 도보로 쫓아서 잡아와!”

 한 경비원의 말에 다른 경비원들은 빠르게 달려왔다. 그것은 사람의 몸놀림으로 보이지 않았다. 경비원들 역시 바이오로이드인 모양이었다. 그들이 달려오자 먼저 다리 위로 올라간 토모가 마츠시타를 향해 손을 뻗었다.

 “토모! 빨리 올라와! 잡히면 안돼!”

 마츠시타가 토모의 손을 잡자 토모는 한숨에 마츠시타를 들어올려 그녀를 다리 위에 세웠다. 마츠시타가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경비들은 마츠시타 발밑의 사다리를 오르고 있었다. 마츠시타는 도망치기 위해 다리를 달려갔지만 다리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나자 그 자리에서 멈추어섰다.

 “토모, 정말로 괜찮은 거야? 으아악!”

 마츠시타는 다리를 보기 위해 아래를 보았다. 그러자 마츠시타의 아래로 펼쳐진 경기장과 관객석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츠시타의 발 아래에는 삐걱이는 발판 뿐이었다. 여기서 떨어지면 분명 죽겠지. 마츠시타의 다리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고 난간을 쉰 손에는 땀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아닌 본능적인 것이었다. 인간은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게 되니까. 본능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졌다. 본능적으로 높은 곳을 피하게 만들어졌다. 높은 곳으로 가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상상을 하게 만들어 높은 곳을 무서워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마츠시타는 그 본능을 이겨내야 했다. 만일 여기서 뒤에서 달려오는 경비원들에게 잡히면 그녀는 죽은 목숨일 테니까.

 “마츠시타! 달려!”

 마츠시타의 뒤에는 토모가 있었다. 그녀가 외치고 있었다. 만일 마츠시타가 잡힌다면 혼자 잡히지 않을 것이었다. 토모 역시 잡히게 될 것이었다. 만일 마츠시타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덴세츠 사이언스가 바이오로이드인 토모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토모는 분명 죽을 것이었다.

 토모는 마츠시타를 보호해주었다. 그리고 마츠시타 역시 토모를 보호해주어야 했다. 토모를 지키기 위해 마츠시타는 뛰어야 했다.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고 언제라도 무너질 것 같은 오래된 다리를 달려가야 했다.

 달렸다. 마츠시타는 숨이 차왔지만 죽는 것보단 나았다. 긴 다리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경기장 천장에 있는 보수용 다리였다. 사람의 다리로도 금방 반대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고도 짧은 다리를 건넌 마츠시타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추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마츠시타! 멈출 시간 없어!”

 뒤에서 달려온 토모는 마츠시타를 안아들었고 난간을 박차고 위로 뛰어올랐다.

 “으아악!”

 마츠시타는 비명을 참을 수 없었다. 높이가 얼마나 될 지 알 수 없었다. 마츠시타의 발도, 토모의 발도 어딘가에 지지하고 있지 않았다. 둘은 공중에 떠있었다. 토모가 어디로 뛰려고 했던 것인지 마츠시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토모가 거리를 잘 계산했길 바랄 뿐이었다. 이대로 바닥에 떨어져 죽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도 토모의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아니 계산이나 했을까. 자신이면 뛸 수 있다고 자신했고 그 자신이 옳았을 뿐일까. 토모가 어딘가에 올라가 멈추자 마츠시타는 그제야 안심하고 다리를 돌아보았다. 몇미터는 떨어진 다리의 난간에 경비원들은 멈추어서고 무전기에 대고 외치고 있었다.

 이제 저들을 따돌렸어. 마츠시타는 안심했다. 그러나 그 때였다. 바닥에서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난 것이었다. 토모의 다리일 리는 없었다. 바이오로이드의 뼈는 금속으로 만들어져 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것은 바닥이 꺼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바닥이란 아래층의 천장이었고 마츠시타와 토모는 아래층으로 떨어졌다.

 “으아악! 으으으...”

 마츠시타는 다시 비명을 질렀고 바닥에 떨어진 충격으로 신음소리를 냈다. 토모는 멀쩡한지 벌떡 일어나 주위를 보았다.

 “꺄아악!”

 한 여성이 비명을 지르자 마츠시타는 벌떡 일어나 토모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의 한켠, 남녀가 서로의 몸을 섞고 있었다. 분명 한 남자와 바이오로이드겠지. 그 남자에게 주먹을 쥐고 걸어가는 토모를 마츠시타는 붙잡고 문을 나섰다.

 익숙한 방과 문이었다. 마츠시타와 토모는 다리로 경기장의 반대편으로 왔지만 반대편에도 VIP실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문을 나선 마츠시타가 누구를 마주할 지는 뻔한 일이었다. 이곳의 벽에도 당연히 경비용 바이오로이드가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마츠시타를 보자마자 권총을 빼들고 소음기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토모는 벽을 뚫으려 했다. 그러나 그래봐야 이런 일의 반복일 것이었다. 마츠시타는 빠르게 아래로 내려갈 수단을 찾아야 했다. 그런 그녀의 눈에 한 문이 들어왔다.

 그것은 문이라 해야 할까, 일종의 서랍장처럼 보였다. 벽에 붙박이로 붙어있는 장 말이다. 이런 곳에 서랍장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런식으로 문이 달릴만한 물건은 소화전 아니면 쓰레기 투입구였다. 그리고 마츠시타는 그것이 쓰레기 투입구라고 확신했다.

 저곳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좁은 관을 신발로 속도를 늦추며 내려가면 떨어져 죽을 일도 없을 것이고 이미 수도없이 버린 쓰레기는 일종의 쿠션의 역할을 해줄 것이었다. 문제라면 냄새겠지만 지금의 마츠시타는 그런 것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토모! 이쪽이야!”

 마츠시타는 투입구의 문을 열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사각형 모양의 긴 알루미늄관으로 뛰어든 마츠시타는 이 긴 관의 끝에 부디 평화가 있기를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