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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년의 조곡"

모스크바 메트로3 입구, 러시아

PVT. ᛄᛄᛄᛄᛄ 리 대위 임시계급 부여: 상장 // 코드네임 포르테 // 호출부호 포르테06

삼안-블랙리버 연합 특수임무부대

멸망전쟁 2XXX년 12월 21일


"10만년의 조곡"

모스크바 메트로3 입구, 러시아

PVT. ᛄᛄᛄᛄᛄ 리 대위 임시계급 부여: 상장 // 코드네임 포르테 // 호출부호 포르테06

삼안-블랙리버 연합 특수임무부대

멸망전쟁 2XXX년 12월 21일


"10만년의 조곡"

러시아

코드네임 포르테 상장

삼안-블랙리버 연합

12월 21일


********************


메트로 3에서 메트로 2로 올라와 메트로 1로 다시 올라가서는 바깥으로 나갈 터널을 찾기 위해 걷기 시작한 우리는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질문 있습니다."


"말해봐. 그리고 존대는 붙이지 말고, 어차피 손에 손잡고 지옥으로 걸어들어갈 사인데 존대 붙이는 것도 의미없지 않아?"


목소리를 들어보니 하르페이아 모델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하철 터널을 야시경과 불빛과 바이오로이드의 강화된 시력으로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악몽과도 같은 침묵 속에서 말 없이 서로 울리는 발소리를 듣고 있었다.


차라리 브라우니 하나라도 있었다면 눈치 없이 농담이라도 해서 분위기를 풀어줬을터인데, 다들 그런 눈치는 챙기고 있는지라 그저 묵묵하게 걸어갈 뿐인데 누가 질문을 해준다면 그만큼 고마운 것도 없었다.


"고준위, 그것도 대 방사능 처리가 된 것이 분명한 AGS도 바로 기능을 정지할 정도로 심한 방사능 지대 한복판으로 걸어들어가는데 보호장구 하나도 없이 들어가는거야?"


"그건 내가 설명할께."


메이 모델이 끼어들었다. 트윈테일 대신 그냥 머리를 풀고다니는 모델은 처음 봤는데 개성일까, 아니면 뭔 이유가 있어서일까.


"다들 오기 전에 주사 한 대씩은 맞았을거야, 그렇지?"


"그렇기는 하지?"


"오리진더스트는 세포 회복을 가속해, 방사능이 우리의 DNA 구조를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해도 오리진더스트의 자체 세포 회복 가속으로 최소한 48시간 정도는 버틸 정도로. 물론 그 이후는 절대 장담하지 못하지만."


"그러면 인간님들이 왜 그런 방식을 고르지 않은겁니.... 아 고르지 않은거야?"


"간단해, 우리 몸에 주입된 오리진더스트는 모스크바 일대에 있는 모든 오리진더스트를 싹싹 긁어모은 양이거든, 시체에서 모조리 추출한. 그거로도 방사능 내성을 최대한 쑤셔넣은 내가 최대 48시간이야, 로우코스트 양산기인 이프리트 모델은 아마 18시간 정도가 한계겠지."


"........."


"존만아 여기서부터 그런 진 빠지는 소리를 할 필요가 있었냐. 다들 알고야 있는데 그 현실을 직시해줄 필요가 있었냐고."


"존만이라고 부르지 마, 자꾸 그 납짝 대령이 떠오른단 말이야. 나도 잊어버리고 싶다고."


여러 감정이 섞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 메이 개체는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우리 모두는 패잔병이고, 마음속에 묻어두고 있는 사람은 넘치게 있으니까.


"미안하다, 그럼 뭐라고 부를까."


"메이, 그냥 메이라고 불러. 세상이 다 망해버린 판에 계급은 소용 없으니까. 지금 우리한테 중요한 건 어떻게 살아남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지구를 방사능 지옥으로 만들지 않는가야."


내가 아는 메이 모델의 성격과 훨씬 다른 140cm의 준장을 잠깐 바라보던 나는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시 한동안 군화와 구두와 비행화가 콘크리트를 걷는 소리만 한참 들리고 나서야 우리는 지하철 승강장을 발견했다.


강화된 신체는 간단하게 철로에서 승강장으로 도약해 올라갈 힘을 줬고, 티아멧 모델이 가장 앞에 서고 그 뒤에서 사방을 경계하는 방식으로 얼어붙은 역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체들, 수많은 사망자들을 묵묵히 바라본 우리는 더 할 말 없이 조용히 승장장을 넘어 대합실로 올라가 터미널에 도착했다.


재앙을 피하기 위해 도망친 자들은 엄청난 교전의 흔적을 남겼고, 피난민 대부분은 살아남지 못하 것이 확실했다.


박살난 AGS들의 잔해들, 사지가 잘려나간 바이오로이드들과 여러 자폭의 흔적들, 학살당한 민간인들과 마지막까지 저항한 흔적이 역력한 군인들의 유해까지.


"챙길 건.... 딱히 없겠군. 5번 출구 앞에 구형 Mi-24 하인드가 착륙해 있을거다. 그걸 가지고 어떻게든 공항으로 이동해야지. 조종법은 내가 알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망자들을 잠깐 바라본 우리는 묵묵히 지상으로 올라갔다, 사방을 경계하며 지옥같은 침묵 속으로 발을 옮긴 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구형 헬기를 끌어다 옮겼고 마지막 순간까지 지킨 스페츠나츠 알파팀의 유해를 확인했다.


"포르테, 그러면 어디로 이동할 거지? 우리가 이륙한 기지는 셰레메티 국제공항인데 북쪽으로 25km 정도 가면 나오지만 거기에서 살아서 빠져나온건 우리뿐이야. 철충들이 물자를 방치하고 갔을 리도 없고."


슬레이프니르 모델이 자신들이 빠져나온 상황을 브리핑해줬다.


"난 도모데도보 공항에서 이륙했어 전대장, 전투 마지막 순간에 간신히 탈출했지만...... 기제가 무사할지는 모르겠어 기지가 함락당하기 직전에 핵공격이 근처에 가해졌거든."


"내가 한 일이다, 하르페이아. 공항을 공략하려는 목적인지 연결체로 추정되는 적 다수가 나타났고 레이더 4기와 스토커 5기 이상이 한 장소에 집중되어 있었다. 거기를 날려버리느라 부대원들과 옥좌까지 모두 다 잃어버렸지만."


"레이더가 있다고요? 그러면 우리는 이륙 자체가 불가능한거 아닌......"


말 없이 사주경계를 하고 있는 발키리와 X-00, 그리고 헬기 내부를 확인하고 있는 이프리트 모델 대신 유미 모델이 아마 나와 메이를 제외한 이 자리 모두의 의심 혹은 호기심을 대변해줬다.


난 그 빌어먹을 해법을 하나 알고 있었고, 그 빌어먹을 방법을 명령해야 한다는 사실이 빌어먹을 정도로 문제라는거지.


"슬레이프니르."


"알아."


"우리가 공항에 도착하면 최대한 시간을 끌어줘, 레이더가 핵공격에 전멸했다면 다행이지만 그 자식들 내구도면 전술핵을 맞은 이상 멀쩡하게 살아돌아올 가능성이 크고 최소한 1기 이상이 하늘을 배회하며 비행체를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


"그렇겠지, 그래서 내가 그 녀석이랑 동귀어진을 하면 된다는 소리야?"


그걸 최대한 감정을 감추고 웃으면서 대답하는 슬레이프니르 모델이 나에게 오히려 질문을 해왔다.


"그렇....지."


"뭐 괜찮아, 그 자식한테 몰살당한 전대원들의 원수도 갚아야 하고. 우린 이미 죽은 목숨이잖아? 포르테 상장. 나랑 하르페이아가 오리진더스트 과주입을 받지 않았는데 이런 이유인거지? 뭣보다 거기 지하시설이라며, 우리같은 비행유닛이 필요할 리가 없지."


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손을 잡아줬을 뿐.


"내 마지막 상사가 바이오로이드를 잘 대해주는 상사라니, 이것 참 운이 좋네. 마지막까지 시간을 끌어줄 테니까 내 쇼, 잘 지켜보라고."


아마 마지막일 악수를 나누고 난 점검이 끝났다고 손짓하는 엘리 모델에게 알았다는 수신호를 보내고는 메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BB-910 가방형 핵탄두야, 48kt급의 위력이고 원래는 내 자폭용이지만 안타깝게도 내 옥좌가 추락해버려서 말이지. 기폭코드는 지금 막 전송했어."


"코드 확인 완료, 48kt면 어느정도 위력이야?"


"가방을 중심으로 1.5km 안에 있는 모든 물체를 소멸시키고 10.5km 안에 있는 물체에 2000도 가량의 열복사를 일으켜서 모조리 녹여버리지, 그 어떠한 철충도 그 범위 안에서는 버틸 수 없어."


"그럼 상장, 언제부터 시작하면 되는거야? 최소한 언제까지 버텨야 하고?"


"딱 한 시간만 버텨줘, 그리고 쇼의 시작은 지금 당장."


슬레이프니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우리를 살펴보고는 싱긋 웃었다.


"전장의 아이돌의 쇼가 시작될거야! 그러니 잘 지켜봐달라고!"


"행운이 있기를 제비 아가씨."


"날 제비로 불러준건 네가 처음이야 상장, 행운을 빌어줄께."




그녀는 폭음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정말 아름답게.


고속도의 비행체를 감지한 철충들의 공군 병력이 일제히 이륙하는 개판을 잠깐 바라본 나는 숨을 한번 내쉬고 바로 명령을 내렸다.


"다들 탑승해! 사수석에는 앉지 말고! 다들 수송칸에 탑승해! 이륙한다!"


티아멧, 유미, 메이, 하르페이아, 엘리, 이프리트가 헬기에 올라타는걸 확인한 나는 벌써부터 하늘에서 찢어지듯이 들리는 소음을 들으며 조종석에 올라탔다.


이제 시작이다.


**************


공항에서의 일은 간단했다, 사소한 철충 정도는 나나 발키리가 원거리에서 쏴서 격파했고 메이를 노리고 운 좋게 접근한 철충 하나는 이뱀의 박격포 풀스윙에 맞아서 그대로 뻗은 이후 티아멧의 대검에 난도질당했다.


박살난 칙의 회로 부분에다가 몇발 더 갈겨서 완전히 무력화시킨 발키리 모델이 그러는 동안 엘리가 바로 우리가 타고갈 비행기를 찾아냈다.




박살나고 회로가 핵무기가 만들어내는 EMP에 타들어간 전투기들과 수송기들 사이에 터보프롭 엔진을 달아놓은 틸트로터 항공기인 V-33 콘도르가 너무나도 멀쩡한 상태로 존재했다. 근처에는 이 수송기를 타고 서로 탈출하겠다며 서로에게 미친듯이 총을 갈겼을 멍청이들의 시신이 썩어가고 있었고 난 그들의 시신을 한번 걷어차준 이후 바로 이륙을 위한 점검에 들어갔다.


하늘에서 울려퍼지는 소닉붐의 공연을 들으면서 말이다.


"하늘."


티아멧과는 확실히 다른, 여러번 십자선 안에 집어넣고 여러번 십자선 안에 몰렸고, 여러번 같이 싸웠던 발키리 모델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두들기자 난 하늘을 날아가는 그 존재를 드디어 확인할 수 있었다."



철충들의 가장 강력한 항공 전력이라고 할만한 레이더는 여러부분이 고열에 녹아내리고 상징인 거대한 날개에 구멍이 송송 뚫려있었지만 저 하늘의 슈퍼스타에게 홀린 것 같았다. 그렇지, 니들이 머리가 좋다 해도 처음보는 기체가 나와서 작정하고 자폭작전을 시도할 만큼 큰 대의를 가지고 있는 작전은 처음 경험해볼터이니.


"왔군, 슬레이프니르가 잘 시간을 끌어줘야 할텐데."


항공함, 아니 항공함중에 가장작은 초개함 클래스만 있어도 저 개같은 레이더는 백 단위로 조질 수 있었을 터인데, 기업전쟁 기간동안 공포의 상징이 됐던 인류의 대형 비행체들은 철충들의 스토커 덕에 사용하지를 못했다.


제비에게 속아서 열심히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는 레이더를 바라본 나는 점검의 마지막 부분을 확인했다.


"연료 OK! 엔진 동조 OK! 항법장치 밑 수송석 기밀 OK! 다들 탑승해, 바로 출발한다."


난 쓰지 않고 조종석 중간에 내팽개친 무전기에서 노랫소리를 들었다, 아마 저 제비 아가씨가 하늘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으리라.


"출발한다, 비행시간은 약 5시간에서 6시간 정도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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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테 특수임무팀 현 상황


포르테 상장: 정상

멸망의 메이: 전투력 상실

P-49 슬레이프니르: M.I.A(작전중 실종)

T-9W 발키리: 정상

엘리 퀵핸드: 정상(비전투인력)

P-22 하르페이아: 정상

X-00: 정상

M-5 이프리트: 정상

커넥터 유미: 정상(비전투인력)


이제야 막 지옥으로 출발한 일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