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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 삐이, 삐이...-


수복실 당직인원인 다프네를 잠시 자리비워달라 요청하고 수복실에 혼자 서있다. 


벌써 새벽3시가 넘은 야심한 밤...


전투때마다 크고 작게 다치는 인원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장소였지만 한명만큼은 항상 자리를 지켰다.


수복실을 지키는 다프네? 아니면 가끔 알아듣지 못할말을 하는 리제? 그도 아니면 수복실 장비를 고쳐주러 오고 수복액을 채우러 오는 포츈? 아니. 그들이 아니다.


벌써 몇달이나 이자리에 누워있는 발키리다.


사령관이 오르카에 합류하고 많지 않은 인원들이 있을때 발키리는 S급 요원으로서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사령관은 발키리를 크게 신뢰했고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리로 보답했다.


하지만 단 한번의 실수였다.


불굴의 마리를 찾는 작전도중이었다.


공장내부에서 철충이 쏜 유탄이 발키리의 종아리를 맞췄고, 당황한 발키리가 움찔한 2~3초


그게 발키리에겐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단 한발의 총알에 균형을 잃은 발키리는 이어진 총알들을 상체라도 숙여 피하려고 했지만 유탄되어버린 총탄은 발키리의 상체나 하체를 가리지 않고 꿰뚫었고 결국엔 그녀의 의안까지도 박살내버렸다.


사령관은 크게 당황해 지원병력을 급하게 투입시켰고 


철충들은 소탕되었지만 발키리와 같이 작전하던 저격수 페어인 미호역시 큰 부상을 당했고 앞에서 방패를 들던 알비스는 방패가 파손되어 벽에 처박힌채 기절해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알비스는 방패가 완충제 역할을 해서 벽에 처박혀 바로 기절을 하느라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는것과


미호는 총열이 파손되었고 총을 몇발 맞았지만 급소는 전부 피해 이틀만에 회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발키리만은 결코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신체도 워낙에 훼손도가 심해 수복액으로 수복하고 있음에도 진전이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한달에 한번씩 보고서는 닥터에게서 올라왔다.


- 발키리 - 회복가능성 없음. 폐기요망함. -


.........!!


화를 낼수도 없다. 발키리의 실수가 아니니까.


나의 실수고 내가 미숙한것때문이니까..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요. 내가 감당해야 할 죄책감이다.


"...발키리.. 미안...미안해..."


발키리의 옆에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발키리의 손에 떨리는 손끝을 겨우 댔을뿐인데, 눈물이 쏟아진다.


지친몸에도 눈물은 흐른다.


몸이 더 지칠지라도 거칠게 흐른다. 죄책감이 내뿜는 토사물같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운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듯이 발키리의 손은 체온은 돌아왔지만 결코 움직임은 없다.


냉정한 현실을 깨우치듯이..


눈물이 그득 흐른채로 손을 거두어 발키리의 침대 이불을 올려준뒤 수복실을 조용히 빠져나갔다.


나가자 문밖에는 초조하게 기다리던 다프네와 자다가 깨서 온 리제가 덜 뜬 눈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주..주인님. 볼 일은 다 보신건가요..?"


다프네의 이미 모든것을 알고 있는듯한 질문. 아니 다 알고 있겠지.


"네.. 매번 새벽시간에 미안해요. 다프네씨. 리제씨도 깨워져서 불편했죠? 얼른 들어가세요. 좋은밤 되세요."


"네, 주인님도 좋은밤 되세요.."


다프네는 다시 수복실로, 리제는 하품을 하며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어 비상등만을 제외하고 모두 꺼져버린 어두운 통로.


나는 주먹을 세게 쥐고 아무것도 못한채 내 숙소로 향했다.


...


...


...


잠시 눈을 감았던거 같은데 어느새 내 옆에선 누군가 흔들고 있었다.


"주인님, 어서 일어나세요? 일어나지 않으면 아플지도 몰라요~?"


...아 오늘은 앨리스씨구나..


"..일어났어요. 오늘 일정좀 알려주실수 있을까요?"


"오늘이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궁금하면 얼른 일어나서 직접 확인해보시겠어요?"


오늘따라 앨리스씨가 조금 더 까칠한거 같다. 왜그런지도 모르겠네...


샤워실로 가서 밤새 피로를 가볍게 씻어낸다.


오늘도 찬물이 나오는걸 보니 보일러 담당병사가 또 자고있나보다.


오늘따라 물이 많이 차다.


샤워를 간단히 마치고 나오니 앨리스는 내 제복을 침대위에 던져둔채로 어디론가 자리를 이미 비운상태였다.


"하아..."


가볍게 한숨을 내쉬곤 제복으로 갈아입은뒤 어제 입은옷을 빨랫바구니에 넣어두고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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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오늘의 회의는 없습니다. 다만 각하께 부탁드리고자 하는게 있습니다."


부탁...? 불굴의 마리가 나에게 부탁을??


"뭔데요? 마리씨가 하는 부탁이라면 제가 힘내서 들어드리도록 할게요."


마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실은 바이오로이드들이 휴식을 갖추곤 있으나 아직 미루지 못한일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저희 바이오로이드들의 군사작전 효율성을 위해서 각하께서도 구역을 정해주셔서 작업을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칸과 홍련, 슬레이프니르는 크게 당황했으나 계급상 마리의 의견에 토를 달수 없었는지 그게 합리적으로 들렸는지 선뜻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기세에 마리는 회의실 탁상을 탁 하고 치면서 자신의 의견을 강력히 주장했고 그 기세에 눌린 나는 알겠다고 하는것밖엔 없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오르카 대 청소작업. 


스틸라인은 각 숙소와 복도,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는 목욕탕과 세탁실,


080기관은 닥터의 작업실


둠 브링어는 출격중


몽구스팀도 출격대기중.


배틀메이드는 각자의 숙소와 세탁실, 그리고 탕비실


스카이나이츠는 출격실과 간이정비소


앵거오브호드는 하선장


코헤이 교단은 기도실과 참회실


페어리는 각자의 정원


캐노니어는 복귀중, 복귀후 점검


여러부대가 자신의 위치로 지정되어 이동했고


나에게 배치된 구역은 어디보자..


- 분리수거장 -


뭐지? 잘못본건가? 분리수거장이라고?


"저..저기 마리씨..? 저 혼자 분리수거장으로 가라고요...?"


"아, 잘못보신게 아닙니다. 각하. 다른 인원들 역시 힘든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지휘관이란 무릇 아래 있는자들과 힘든일도 같이 하셔야합니다."


"그래도 분리수거장은 너무 넓지 않아요..? 오르카 모든 숙소에서 나온 쓰레기를 분류하는건 너무 힘들어보이는데.."


"사령관. 아무리 힘든일이라도 해야만 하는일이야. 고급 AGS를 분리수거 하는데 쓰는것도 좀 이상하지 않아? 그렇다고 다른구역을 청소한 자매들에게 또 분리수거까지 시킬셈이야?"


마리와 함께 손발이 짝짝 맞는 레오나씨..


요즘들어서 점점 더 나를 밀어넣는데 익숙해진거 같다.


그런데 화가 나지도 못하는게 이들이 하는 얘기는 전부 맞는이야기라..


전투용으로 개발된 AGS들을 분리수거에 쓰겠나. 


그렇다고 다른구역을 청소하고 기진맥진한 이들에게 또 시킬수야 없는노릇아닌가.


잉여병력이나 다름없는 내가 해야할 일이다.


고개를 끄덕여 그들의 뜻에 따르겠다 하고 분리수거할 거대한 포대자루를 한묶음 받은뒤 마스크와 작업용 장갑을 받고 오르카의 가장 아래있는 분리수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아직 다 도착하지도 않았건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쓰레기 냄새.


취사장에서 내려온 음식물쓰레기


공작실에서 내려온 금속부품과 폐유들


각종 일반쓰레기들


분리수거장에 도착하자 컨테이너 4개 분량만큼의 분리수거장이 터져나갈듯이 쌓여있었다.


"우와.. 난장판..."


나는 분리수거 하려고 가져온 포대자루를 바라봤지만 저 많은 양은 도저히 어떻게 할 엄두가 안난다.


일단 첫번째 쓰레기 봉투부터 뜯어 이곳에 펼쳐놓고 분리를 시작해야겠다.


비닐봉투를 뜯자 푸확하고 꾹꾹 눌러놓았던 쓰레기 더미가 온몸을 덮친다.


화장실휴지, 못쓰게 되어버린 스타킹이나 속옷, 다 써버린 화장품, 작전중이나 숙소에서 까먹은 음식포장지


모두가 뒤섞이니 구역질이 올라온다.


몇번이나 헛구역질을 하며 계속해서 작업을 해나갔다.


...


"사령관, 왜 이러고.. 있어...?"


"더치..걸...씨. 여긴 어떻게.."


"...묻는말에 대답해줘. 사령관.. 왜 사령관이 여기서 내 일을 대신하고 있는거야..?"


더치걸씨의 일이라니? 불굴의 마리씨가 나보고 해달라고 했는데..


"그.. 불굴의 마리씨가 부탁했는데, 지휘관은 힘든일도 할줄 알아야 한다고.."


"아니야, 사령관. 여긴 내 구역이었어. 우리 광산작업에 비해서 훨씬 쉬우니까..우리가 지원했거든.."


더치걸씨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는듯 광산에서 작업하던 더치걸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평소엔 광산에 배치되어 자주 볼일도 없고 잠항중에는 단순작업을 하기때문에 거의 볼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080 기관 작업에 붙어서 닥터의 작업실을 청소할줄 알았는데.


그보다 그럼 마리는 왜 나를 더치걸들을 속여가면서까지 여기로 보낸거지? 내가 아직도 보기 싫은정도일까?


"..관.. 사령관...? 괜찮아?"


어느샌가 더치걸들은 분리수거장 앞에 모여 내 앞에 서있었다.


잠깐 내가 너무 깊게 생각한걸까?


"사령관.. 괜찮아? 이제 곧 점심시간이야. 같이 밥먹으러 가자."


더치걸씨 들은 어느샌가 꽤 많은양의 쓰레기 봉투를 뜯어 분리작업을 마친상태였다.


벌써 내가 가져온 포대자루는 거의 다 써서 두어장밖에 남지 않았을정도였고 그 많던 쓰레기들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아이스크림을 큰 스푼으로 푸욱 퍼낸듯이 치운것은 보이기 시작했다.


하아...


"미안해요. 더치걸씨 지금은 도저히 식욕이 없는데 담배한대 주고 밥먹고 올래요?"


"..사령관. 금식은 몸에 안좋다고 나한테 알려줬잖아.. 그러지마.."


더치걸씨는 예전에 내가 알려준 금식은 하지 말아야 건강해진다는 말을 나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저는 여러분을 이끌고 받쳐야할 사령관이잖아요. 제가 신경쓸수 있어요. 다들 식사하고 오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치걸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으며 가지 않겠다고 버티기 시작했다.


내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들 역시 가지 않을것이다.


저 어린몸에 내가 걱정된다고 굶겠다니.. 안될일이다.


"...더치걸씨들. '명령'이에요. 식사하고 쉬었다가 오세요.."


더치걸들은 초췌한 얼굴에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최후의 인간인 내 명령에 묶여 취사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고개를 끝까지 내가 있는곳을 바라보며 울면서도..


하아..


마리는 대체 왜 나를 여기로..


머리가 아프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쓰레기로 더러워진 장갑을 벗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갑자기 머리가 아파온데에 니코틴이 들어간탓일까


평소였으면 띵하고 말았을 느낌이지만


기절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