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디네는 자신작의 평가를 눈을 빛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재작년 크리스마스 때에는 어이없는 실수와 그 다음에 벌어진 복잡다단하고 낯부끄러운 일 때문에 오히려 대접받기만 하고 제대로 대접해주지도 못했었고, 그 다음 해의 크리스마스는 물리적으로 여건이 되지 않아서 아쉬움을 삼키고만 있었다. 


운디네에게 있어서 저 기합과 정성이 잔뜩 들어간 치즈 케이크는, 이 날만을 위해 2년 가까이 칼을 갈며 준비한 회심의 한 수였다.


포크로 잘라낸 한 귀퉁이를 집어넣고 음미하던 사령관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맛, 없어?"


덜컥, 운디네의 미간에 수심이 어렸다. 혹시 굽는 정도가 알맞지 않았나? 치즈의 품질이 별로였나? 너무 달게 맞췄나? 아니면...


"...최고야."

"...해냈다아아!!!"


사령관의 코에서 만족스러운 콧김이 뿜어져 나오며 엄지를 척 올려 보였다. 운디네는 쾌재를 부르며 방방 뛰었다.


사령관은 그냥 빈말이 아니라는 듯, 다음 한 입은 더 크게 잘라서 한가득 입에 넣었다. 달콤하고 고소한 치즈의 풍미와 입 안에서 포슬포슬하게 부스러지는 부드러운 스펀지의 질감이 혀를 더없이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와, 대박이다... 대박... 진짜 맛있다."


감탄하며 연신 케이크를 입속으로 밀어넣는 사령관을 본 운디네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령관의 품으로 달려들어 목을 끌어안았다.


"우앗!"

"하하, 다행이야. 정말... 고마워... 고마워, 사령관!"

"아니, 이건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운디네 덕분에 이렇게 맛있는 치즈 케이크도 먹어보고."

"지, 진짜? 아, 아무리 그래도... 급양관님이나 아우로라한테 비비기엔..."

"에이~ 이렇게 맛있는데? 되게 부드럽고, 치즈 향도 엄청 향긋하고, 또 너무 달지도 않아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먹어본 치즈 케이크 중에선 역대 최고야, 최고!"

"에헤, 에헤헤... 너무 띄운다..."


운디네는 헤실거리며 달아오르는 볼에 손을 짚었다. 2년간 쌓아올린 수련이 전부 보답받은 느낌이었다. 이 미소와 이 반응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그 고생을 얼마든지 다시 할 마음이 가슴에서 용솟음쳤다.


그리고, 그런 운디네의 앞으로 포크가 다가왔다. 먹기 좋은 한입 크기로 잘린 케이크를 꿴 채였다.


"...어?"

"운디네도 먹어 봐. 진짜 맛있다니까?"


운디네는 잠시 망설였다. 사실, 시행착오를 수없이 한 바람에 여러 범작들을 처리하는 것은 운디네와 시식을 도와주는 호라이즌 대원들의 몫이었고, 그 때문에 치즈라면 죽고 못 사는 운디네가 이젠 냄새만 맡아도 속에서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제일 먼저 나가떨어진 대원은 2일차에 포기한 테티스였고, 그 다음은 5일차에 운디네를 슬슬 피하던 네리였다. 부함장님은 끝까지 의리로 남아주시다가 6일차에 한입 베어무는 순간 화장실로 뛰쳐나가셨었지. 그 다음부터는 고독한 혼자와의 싸움이었다.


사령관이 포크를 내민 시간이 길어지자, 운디네는 이도저도 못하고 그저 눈앞에서 냄새를 뿜어내는 갈색빛 악마를 쳐다보았다. 아, 아무리 그래도 더는 도저히...


"아, 미안. 이 포크 내가 먹던 거였지. 딴 걸로..."


텁.


눈물이 어려오는 눈을 질끈 감고 한입 베어물었다. 니가 선택한 메뉴다. 악으로 깡으로 씹어서 목구멍으로 넘겨라! 운디네는 어느 나라에서 유래한 것인지 모를 심층 모듈 한구석에 잠복한 해병 정신을 끌어올렸다. 코로 숨쉬지만 않으면 그래도 괜찮았다. 꿀떡. 씹는둥 마는둥 한 덩어리가 목구멍을 긁으며 통과했다. 부드러워서 넘기기 쉬운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파하! 응, 내, 내가 만들어서 그런지 맛있네!"

"역시 그렇지? 그럼 다음도..."

"아, 아니야! 나는 만드는 도중에 이미 맛 봤어! 사령관을 위해 준비한 거니까, 사령관이 마저 먹어줬으면 좋겠어..."


진심이 담긴 운디네의 눈빛에 사령관도 더는 권하지 못하고 케이크에 포크를 가져갔다. 운디네는 자연스럽게 사령관 앞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서 한 모금 머금곤,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입 안을 슬쩍 헹궜다.


어느새 반쯤 먹어갔을까? 사령관은 갑자기 포크를 내려놓았다.


달그락.


"어... 더 안 먹어? 혹시... 질렸어?"

"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운디네는 안절부절못하며 사령관과 케이크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운디네와 마찬가지로 주저하던 사령관은, 이내 힘겹게 운디네에게 고백했다.


"그... 남은 케이크는..."

"남은 케이크는 왜? 히, 힘들면 내 눈치 안 봐도 돼. 다 못 먹겠으면 싸줄까?"

"아니, 그건 아니고...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데..."

"그럼 뭔데?"

"...그, 재작년처럼... 먹어 보는 건..."

"..."


운디네의 뇌리에 그 난장판의 추억이 단편적으로 스쳤다. 케잌 채로 자신을 깔고앉던 오드리님의 엉덩이, 자신의 몸에 묻은 이리저리 짓이겨진 케이크, 열심히 연습한 대사를 선보이니 박장대소하던 사령관, 그리고 치즈 범벅이 된 몸 위로 쏟아지던...


"...이, 이건 공 많이 들인 거니까..."

"아, 미안... 운디네가 노력한 것도 생각 안하고 너무 내 생각만 했네. 그럼, 마저 먹..."

"자, 잠깐!"


미안해하며 제안을 거두려는 사령관을 운디네의 다급한 외침이 멈추었다.


"...?"

"그... 어쩌다 보니, 망친 게 하나 남아서..."

"..."

"그건, 그... 이, 이러려고 일부러 준비한 건 아니고, 그냥 혹시 재작년처럼 사고가 일어나버리면... 크, 큰일이니까..."

"..."

"그, 어차피... 그렇게 써도 되는 케이크니까..."


필사적으로 변명하던 운디네의 몸은, 사령관의 두 팔에 번쩍 들렸다.


"꺄아악?!"

"...응, 더 설명 안 해도 돼."

"왜, 왜?! 사, 사령관! 하, 하다못해 케이크는 다 먹구우...!"

"더 맛있는 게 눈앞에 있는데, 못 참겠거든... 그것 먼저 먹으면 안 될까?"

"아, 아, 안..."


벌어진 입이 점점 작게 오므라들었다. 운디네의 얼굴도 푹 익은 바닷가재처럼 붉은 색이 되었다.


"...돼요."


허락인지 거절인지 모를 기어들어가는 듯한 속삭임과 함께, 둘만의 달콤하고 폭신하면서도 때로는 조금 새큼한 치즈 맛의 성야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