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응.. 오빠. 듣고 있어.."


"나는 지금까지 내 몸을, 정확히는 내 눈의 상태를 다른 아이들에게 말한 적이 없어. 왜 그런지 알아?"


사령관의 말에 닥터는 내심 울컥했다. 단 한번의 언질도 해주지 않고, 자신을 포함한 오르카호의 모든 언니들의 속을 갉아먹은 주제에, 이제 와서 한다는 말이 그뿐이었으니 기가 차고 자신을 놀린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감정을 소모한 탓인지 기운이라고는 사령관을 쏘아붙일 말 한마디밖에 남지 않은 것이 아까울 뿐이었다.


"몰라, 모른다고. 오빠 말마따나 한번도 얘기해준 적 없잖아. 그렇게 언니들 속을 썩여가면서까지."


"그래... 그렇겠지."



"..."



"..."



대체 무엇때문에 이렇게나 뜸을 들이는 것일까. 이렇게 닥터는 조용히 뇌까리며 사령관을 기다렸다. 하지만 전과는 달리 확연한 답을 해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예감에 닥터는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닥터"


"응.."


"아까 네가 말했었지. 바이오로이드와는 다르게 인간의 수명은 짧디 짧다고."


"미안해, 오빠 그건..."


"괜찮아 닥터. 혼내려는 게 아니야."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은 과거와 비교해서 매우 많이 늘었다고 들었어. 평균 수명이 40세도 채 되지 않았던 옛날과는 다르게 100세를 크게 상회할 정도로 말이야. 대체 뭐가 그 엄청난 기술의 발전을 이끌었을까. 죽음에 대한 공포였을까? 아니면 더 먼 미래를 보고 싶다는 욕심? 그것도 아니라면 태생적으로 짧은 수명을 가진 인간에게 내재된 아주 오래된 열등감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무엇이었든, 결과적으로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냈고, 결국 우리 귀엽고 똑똑한 닥터도 태어나게 할 수 있었지."


사령관은 닥터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붉어진 눈시울에 얕게 맺힌 서러움을 가볍게 닦아내며 말했다. 그 간단한 행위에 닥터의 마음은 치유를 받는 듯 했고, 닥터는 자신의 마음을 가볍고도 깊게 어루만진 사령관의 손길이 야속할 뿐이었다.


"처음으로 바이오로이드를 만든 인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드론 화기에 머리를 저격당하고도 그 자리에서 지휘를 해낸 마리의 육체를, 망상으로 여겨지던 건카타로 최고위 계층을 경호하고, 최강의 바이오로이드인 라비아타를 단 3 개체만으로 능히 제압할 수 있는 리리스의 전투능력을, 다수가 모이면 수십 년은 족히 걸릴 기술적 특이점도 일으킬 수 있는 닥터의 지능을 처음으로 만든 인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마 신이 되었다고 생각했겠지. 실제로도 그랬고."


"..."


"그럼 인간 스스로의 몸은 어땠을까. 얘기해줄 수 있어, 닥터?"


"...오리진 더스트의 발견으로 인간님들은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수명을 얻을 수 있었어. 그래서 돈만 있다면 수술을 받아 수명을 늘릴 수 있었지. 하지만 인간님들이 간과한 게 있었어. 아마 원래 수명으로는 크게 와닿지 않는 문제였기 때문에 그랬을 거야. 평균 수명이 80대에서 100대, 다시 120에서 140대로 넘어가면서 문제가 드러났어.


수명이 120세를 넘어가면 오리진 더스트의 영향으로 세포의 재생능력이 폭증하면서 암의 발병확률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130세를 넘어가면 갑작스럽게 재생능력이 떨어지면서 암환자는 줄었지만, 치매에 걸리지 않은 인간님들이 없었어. 그리고 140세를 넘기면 빈 껍데기처럼 변해갔고, 껍데기가 되어버린 자신의 부모에게 '스트럴드브러그' 라는 멸칭까지 붙이며, "폐기"하는 일도 간간히 일어났다고 해.


하지만 여러 뛰어난 인간님들과 나같은 닥터 개체들의 연구 끝에 오리진 더스트를 융합한 줄기세포의 성공적인 배양이 가능해졌지. 그렇게 거부반응도 없고, 성공확률도 매우 높은 수술 방법이 만들어졌고, 지구상에 알려진 모든 질병의 치료가 가능해졌어. 그래서 나는 치료를 피하고 스캔마저 거부하는 오빠를 이해할 수 없어. 이렇게 좋은 기술이 있는데 왜 쓰지 않으려는 건지 모르겠다고.


설령 지구상에 발견되지 않은 병이라도 괜찮아. 나 닥터야. 오빠, 그리고 연구할만한 시설도 있고. 적어도 오빠가 병으로 죽기 전까지는 치료제를 완성할 수 있어. 그러니까..."



"닥터, 그 이야기는 나중에. 대화가 끝나면... 대화가 끝나면, 너에게만 모든 것을 말해줄게."


"싫어. 언니들에게도 얘기해줘."


 

"안돼."


"왜"



"..."



"..."



"후... 알았어. 알았다고. 적어도 다른 아이들에게 내 상태를 알리는 걸 막지는 않을게. 그건 네 몫이야. 하지만 대화가 끝나면이야. 닥터. 대화가 끝나면. 아직 할 말이 다 끝나지 않았어. 약속할게. 너에게만 이야기를 하든, 모두에게 이야기를 하든. 대화가 끝나면 모든 것을 알려줄게. 자연스레 알게 될거야. 그러니까..."


"알았어. 오빠. 그대신에.."


"그래. 닥터"


"그 말 꼭 지켜. 안그러면 나 진짜 화낼거야."


닥터는 진정을 찾아 작업때처럼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언제라도 끓어오를 것처럼 조용히, 그리고 아주 차갑게 불타오르고 있었으며, 그녀의 말에는 서슬퍼런 묵직함이 담겨 누구든지 겁먹게 할 정도의 분위기를 퍼뜨리고 있었고, 사령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긴장한 사령관은 내심 안심하고 있었다. 어느 곳을 향하든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쉬이 꺾이지는 않음을 알고 있었고, 닥터 또한 그러함을 사령관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래 물론이지."


"그럼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래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병은 없다고 했었지. 그럼 닥터 하나만 물어볼게. 페가수스에 대해 알고 있어?"


페가수스? 이 오빠가 갑자기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인간님들의 수명 연장, 바이오로이드의 개발, 질병의 극복에 이어서 또 무슨 할 말이 남았나 싶어 마음의 준비를 했더니만, 갑자기 페가수스라니? 화도 나지 않을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갑자기 페가수스는 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인 벨레로폰테스가 키메라를 쓰러뜨릴 때, 아테나의 도움으로 탈 수 있었다는 날개달린 말, 페가수스."


"닥터, 현재의 생명공학으로 페가수스를 만들 수 있을까?"


"그게 무슨.. 그야 물론 새의 날개를 이식한다면 모양 자체는 만들 수 있겠지. 하지만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건 불가능해."


"그래? 어째서?"


"어째서냐니. 말은 애초부터 날아다니는 동물이 아니니까. 거기다 새도 앞다리에 해당하는 부위를 빠르게 휘저어야 하늘을 날 수 있어. 단순히 말의 등에 새의 날개를 붙인다고 해서 날 수 있는 게 아니야. 달리는 게 목적인 말의 앞다리를 새 날개로 대체한다고 해도 땅을 박차는 것과 다르게 공기를 휘젓는 건 완전히 다른 알고리즘이라고. 


지금까지 현존하는 동물중에 등근육만으로 날 수 있는 동물을 찾는다면 그나마 날개근육으로 날아다니는 곤충 수준일텐데, 얇은 곤충날개의 형태로 말을 띄우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고 설령 그게 가능할 정도의 양력을 만들기 위해 크기를 늘린다한들 공기저항에 찢어질거야. 애초에 곤충의 날개근육원리를 포유류의 등근육에 대입시키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그래 맞아. 원래부터 날지 못하는 동물이 날 수 있도록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 그럼 슬레이프니르는 어떨까?"


"슬레이프니르 언니?"


"아니 우리 아이돌 아가씨 말고, 이름의 원형이 된 슬레이프니르 말이야."


"원래 슬레이프니르?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다리가 8개인 말을 말하는거지? 그거라면..."


닥터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채 고뇌에 빠져들었고, 2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눈을 뜨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것도 힘들겠지.. 아까도 말한 것처럼 원래 없던 부위를 붙인다고 해서 자기 몸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원래의 건강한 다리처럼 근육을 활성화시켜서 붙인다고 해도 기형아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할거야. 


원래 말은 4개의 다리가 가장 기본적인 형태고 뇌에 있는 신경도 그렇게 설계되어 있으니까. 추가적인 운동기관을 붙인다고 해도 그걸 움직이고 담당할 신경이 없다면 그냥 더미 데이터에 불과해. 원래 다리에 있던 신경을 복사해서 유전자 지도에 붙여놓는다면 모를까... 그리고 만약 그렇게 한다고 해도 고려할 사항이 아주 많아."


"그것도 맞아. 설령 내 몸에 원래부터 있는 기관이라고 해도 추가적인 기관을 덧붙이는 건 힘든 얘기지. 생물의 몸을 본떠 로봇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 둘의 설계 난이도는 천지차이니까. 그럼 이쯤에서..."



"닥터"


"응?"





"신체의 스캔준비를 부탁해, 원하는만큼 실컷 해도 좋아"




"..."




"..."




"...진짜?"


"그래 진짜."



닥터의 그 작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몸을 넘어서는 기쁨에 자신의 몸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이 틀림없었고, 이윽고 튀어올랐다.


"진짜? 진짜지? 방금 한 말 다 녹음해뒀어. 무르기 없기야? 바로 준비할게. 조금만 기다려, 오빠! 어디 가면 안돼!"


"그래그래, 우리 닥터 원하는만큼 해. 서두르지는 말고. 그러다 다친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일어나 트리 밑에 정성스럽게 놓여진 선물상자를 본 어린아이처럼 닥터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얼굴에 가득 띠운 채로 금방이라도 자신의 오빠가 도망가려는 것을 막으려는 듯이 언제나 입고다니던 가운도 팽개치며 스캔장치로 내달렸다. 




사령관은 그 발랄한 광경에 마음으로 눈물을 삼켰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너무나 힘들게 했던 것은 아닐까. 

닥터의 말대로 내가 아이들을 믿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절망에 빠진 아이들이 다시 일어서지 못할 거라 과소평가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사령관은 다시 삼켰다. 맛도 느껴지지 않는 짜디짠 눈물을.


"..."



불안감이었다.


기쁨에 몸부림치는 닥터가 달려나가고 사령관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뒤 찾아온 것은 불안감이었다.


닥터가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되찾은 사령관의 실날같은 희망을, 무자비하게 강탈하는 커다란 불안감이었다.



사령관은 두려웠다. 닥터가 결과를 보고 무슨 말을 할지. 처음엔 그도 구원받고 싶었다. 그렇기에 방황했고 탐구했다. 끊임없이 탐구했다. 그런데도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쌓인 절망감이, 슬픔과 절박함에 섞여 그를 움직였고 또 짓눌렀다. 모든 것이 답을 위해서였다.


그런데도 두려웠다. 닥터의 다음 말이 두려웠다. 원하던 대답이 나온다면 좋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에게 답을 보여준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되기만 한다면 지금 당장 닥터와 함께 이 기쁜 소식을 퍼뜨릴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닥터마저 답을 주지 못한다면? 오늘 사령관이 내보인 마음은 그 어느때보다 노골적이었다. 그런데도 답을 찾지 못했다면?


99일째의 병사를 본 공주는 자유를 떠올렸다. 그가 아니면 나갈 수도 없는 이 빌어먹을 정도로 넓고 갑갑한 방안에서. 그러나 사령관이 방을 나서기에 등불은 고장나 무엇 하나 보이지 않았고, 길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으며, 지난날들이 그의 다리에 박혀 움직이는 것조차 금지한 채 그를 절망의 뒷편에 던져넣었다. 100일째 되던 날, 동쪽에서 떠오른 태양의 헤일로가, 사령관은 너무나 두려웠다.



스캔을 기다리는 사령관의 모습은 사형시각을 기다리며 차가운 감옥에 갇힌 사형수의 그것과도 같았다.



"오빠! 준비 다 됐어! 빨리 와!"


"응.. 닥터. 듣고 있어. 바로 갈게."



사령관은 과거의 어느 옛저녁에 찢어진 마음을 기워 다잡으며, 일어섰다.






겨울이어따.

반응도 볼 겸 콘 좀 넣어봤는데, 닥터는 빡친 얼굴이 없어서 잘 됐으려나 모르겠음.

근데 사령관은 얼굴 하난데 뒤에 대사 따라 표정이 달라보여서 편했음.


"닥터.. 괜찮아?"


'...뭐래는거야 병신새끼가'


"담배 마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