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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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시간이 지나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엘라가 거실에서 나와 인사를 건냈다.

 

“다녀오셨어요?”

 

고개만 끄덕여 인사를 받고 주방으로 향했다.

 

도시락은 혼자서 먹었는지 정리가 되어있었다.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식탁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며 천천히 머리에 남아있는 열기를 가라앉혔다.

부글부글 끓던 속은 차가운 탄산이 들이부어질 때마다 천천히 식어갔다.

 

 

 

기분이 낮게 가라앉은 날이면, 알코올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사라진다.

금새 맥주 한 캔이 비어서, 나는 냉장고로 가서 새 캔을 꺼냈다.

 

식탁으로 돌아오는 중에 소파에서 티비를 보던 엘라와 눈이 마주쳤다.

엘라는 내 쪽을 빤히 바리보고 있었다.

 

식탁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엘라의 시선이 내 손을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술을 마시고 싶은 걸까?

어쩌면 저번에도 안주가 아니라 술 쪽을 보던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맥주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마실래?”

 

엘라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종종걸음으로 유리컵을 챙겨와서 맞은 편에 앉았다.

 

엘라는 나에게 물었다.

“저 아픈데 술 마셔도 괜찮을까요?”

“모르겠네. 불안하면 안 마셔도 돼.”

“조금만 마셔볼래요.”

 

나는 맥주 캔을 따서 엘라의 컵에 반 컵 정도를 따라줬다.

엘라는 무언가 위험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컵을 들었다.

 

낯설어하는 듯한 반응에 나는 물었다.

“술 마셔본 적 없어?”

“네, 계속 연구소에서 지내서 접할 곳이 없었어요.”

 

듣고 보니 그랬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엘라의 손에 들린 컵에 내 캔을 가져다 대었다.

“건배.”

“어? 아, 네. 건배!”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캔을 내려놓자 엘라도 한 박자 늦게 맥주를 마셨다.

 

“마실 만해?”

“음…… 써요.”

 

별로 맛은 없는 것 같았다.

 

“몸이 정확히 어떻게 아픈 거야?”

전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까 얘기해드린 적이 없네요.”

엘라는 까먹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오염물질 때문에 골격이 부식됐어요. 원인 물질은 거의 제거했는데 부식된 골격에서 염증을 일으킨대요. 최대한 진행을 늦추고는 있는데 점점 상태가 나빠지는 걸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는 것 같아요.”

“골격을 교체할 수는 없어?”

“다른 부분은 그렇게 했어요. 근데 척추 쪽 골격은 바꾸려면 아예 신경계를 전부 들어내야 한대요.”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내 질문에 엘라는 잠깐 뜸을 들였다.

너무 무신경했나 싶어 사과하려고 했는데 엘라가 다시 무덤덤한 목소리로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천공의 숨결이라는 대체에너지를 이용해서 오염물질을 정화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원래는 환경오염이 심한 곳을 확인하면 그곳에서 정화작업을 했고요. 그때는 방화사건이 일어난 화학공장을 정화하러 갔었는데요…….”

“아, 뉴스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아. 직장에서 짤리고 보복으로 그랬었나?”

“네, 맞아요. 거기서 정화작업을 하던 도중에, 2차 테러가 발생했어요. 불이 나서 대피하던 중에, 폐기물창고에서 폭발이 일어났는데 마침 주변에 있다가 유독가스를 뒤집어 써 버렸어요.”

“…….”

“구조된 후에 들었는데 연구원 분들이 사비까지 써가며 다친 부분들을 새로 바꿔주셨지만, 척추 골격까지 교체해 버리면 이미 제가 아닌 다른 ‘천공의 엘라’ 기종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해요.”

 

조용히 맥주를 머금었다.

뭐라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뒤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셨는데, 저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 스스로 나오기로 했어요.”

엘라는 그렇게 이야기를 마쳤다.

 

엘라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며 슬픔이나 분노를 담았다면 나는 거기에 공감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엘라의 말투는 이미 다 지나간 일을 이야기하듯 무덤덤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엘라는 내 침묵을 다른 의미로 이해한 듯 했다.

“죄송해요. 괜히 우울한 이야기를 해버렸네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사과하는 엘라에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원래 기분이 어중간하게 우울할 때는 밑바닥을 찍고 털어버리는 게 나아.”

“그런가요?”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내친 김에 계속 물어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원망스럽지는 않아?”

“원망이요?”

“응. 결국 미친 인간들의 헛짓거리 때문에 죽게 되는 거잖아.”

“음…….”

 

엘라는 잠시 말을 골랐다.

“테러를 하신 인간님들도, 안좋은 일이 많아서, 화가 많이 나셔서 그렇지 원래 나쁜 분들은 아닐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

“네. 왜냐면 연구원분들이나 아저씨처럼 좋은 사람들도 많이 봤는 걸요.”

 

그렇게 말하며 엘라는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호의를 담은 그 미소를 정면으로 맞이하자 조금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빈말하지 마.”

“빈말이 아니예요. 억지로 칭찬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처음 체스를 두면서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

“……그 말 명령으로 들었어?”

“조언으로 들었어요.”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땐 좀 마음이 복잡해서 심하게 말한 거야.”

“아니에요. 저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는걸요. 그때 이후로 감정을 나타낼 때는 최대한 진심으로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그냥 한 말을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새삼 성실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엘라는 조금 망설이는 듯 하더니 나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어때요?”

“뭐가?”

“바이오로이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쪽에서 이런 질문을 해올 줄은 몰랐다.

 

“다른 인간님들보다 저희를 꺼려하시는 것 같아서요.”

“꺼린, 다기 보다는 조금 복잡한데…….”

 

아마 평소라면 이 정도에서 얼버무리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시다보니 평소보다 훨씬 취기가 잘 스며들어 있었다.

오랫동안 남에게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어렸을 때 얘긴데…….”

나는 그렇게 운을 떼었다.

 

 

 

내가 열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바이오로이드를 구매했다.

막 바이오로이드가 상용화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바이오로이드의 가격은 배우자 몰래 구매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으니 아마 어머니도 동의하신 일이었겠지만, 그래도 누구의 주도로 구매했고 누가 마지못해 동의했는 지는 명백했다.

 

어머니는 새로 집에 들어온 바이오로이드를 노골적으로 견제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그럴 때마다 바이오로이드를 두둔했다.

아버지가 바이오로이드를 감쌀 때마다 어머니의 견제는 더욱 공격적으로 변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바이오로이드와 바람이 났다.

 

이혼소송이 진행되었다.

아버지는 내 양육권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했지만, 아버지의 변호사는 본인의 승소율에 관심이 많았다.

어쩌다 보니 선택권이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어머니를 동정했지만, 그 당시의 어머니는 정신적으로 불안해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눈에서는 서서히 광기로 변해가려는 집착이 조금씩 엿보였다.

그 눈빛에서 나는 파멸의 예감과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결국 아버지를 택했다.

아버지의 변호사를 제외하면 누구 한 명 만족한 이가 없는 선택이었다.

 

얼마 후 어머니가 남성 바이오로이드를 구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뒤로 한동안 연락을 듣지 못했다.

 

어머니와 어머니가 구입한 바이오로이드 사이의 관계가 어디까지 발전했었는지는 이제와선 상상만 해볼 뿐이다.

어쨌든 뉴올리언스 학살 이후 남성 바이오로이드는 전량 회수 되었고, 어머니는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엘라는 내 이야기를 듣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의 바이오로이드분을 원망하시나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나한테 괜찮냐고 물어봐준 건 아버지의 바… 새엄마 딱 하나뿐이었어."


술을 마시려고 했으나 이야기를 하는 사이 캔이 비어버렸다.


"그래서, 바이오로이드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문제가 있는 건 정신 못차리는 인간들이지.”


캔을 들고 싱크대로 향하며 말했다.

“슬슬 자자. 늦었다.”

 

엘라는 말없이 컵을 들고 따라왔다.

 

그날은 그렇게 주변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