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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놓인 나무 문을 보고 곧바로 “아, 꿈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이런 악몽을 수십 번도 넘게 꾸었기 때문이다.


문 너머에서는 소리가 들린다.

주인님, 주인님.

어느 순간 귀가 들리지 않게 된다.

그리고 시야가 돌아간다.

이제 눈 앞에는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두 손으로 내 귀를 막고, 핏발 선 눈으로 앞을 보고 있다.

이윽고 그 시선이 나를 향한다.

그 눈에서는 일종의 귀기 같은 것이 서려있다.

두렵다.

나는 나무 단상에서 내려와 저 멀리 서있던 아버지에게로 향한다.

나는 아버지에게로 향하고 있는데, 여전히 시야에는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배신당한 표정을 하고 있다.

나무 망치 소리가 들린다.

세 번.

이제 어머니는 허공에 떠있다.

하얀 소복을 입은 어머니가, 축 늘어진 채 허공에 떠 삐그덕거린다.

두 눈이 마주친다.

생기없는 눈이 나를 노려본다.

나는 엉덩방아를 찧는다.

어느샌가 신경에 거슬리는 음악이 귓가에 울린다.

겁에 질린 나는 엉덩이를 끌며 뒤로 도망친다.

어머니는 여전히 나를 노려본다.

어깨에 가느다란 손이 올라온다.

아버지의 바이오로이드가 나를 내려다본다.

바이오로이드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내 귀에 속삭인다.

주인님. 주인님.

 

“……님? …주인… , ……주인님!”

“허억!”

 

튕기듯 몸을 일으킨다.

한 순간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하아, 하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알람을 거칠게 꺼버렸다.

 

옆에서 엘라가 조금 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저, 주인님? 괜찮으세요?”

“……그렇게 부르지 마.”

“예?”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그럼…… 뭐라고 불러드릴까요?”

“……주인님만 아니면 돼.”

“어……음…….”

 

엘라는 잠깐 고민하더니 말했다.

“……아저씨?”

 

20대 중반에 아저씨 소리를 듣는 건 조금 억울하게 느껴졌지만, 달리 떠오르는 호칭도 없었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침대에서 나와 방 밖으로 향하면서 물었다.

“왜 깨웠어?”

“아. 저, 아침 해놨어요.”

“나 원래 아침 안 먹어.”

“아……!”

 

내 말을 들은 엘라는 어쩔 줄을 모르며 당황했다.

 

방 밖으로 나오니 식탁에 놓인 토스트가 보였다.

나는 정수기로 가 냉수 한 잔을 비우고 식탁에 앉았다.

 

“드시는 건가요?”

엘라는 의외라는 듯 물었다.

 

“먹으라며.”

“억지로 드실 필요는 없어요.”

나는 굳이 대꾸하지 않고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토스트 자체는 빼어나게 맛있지도, 못 먹을 만큼 맛없지도 않았다.

다만 잼과 치즈, 양상추 같은 무난한 재료들만 사용해서 최대한 신경을 거스르지 않으려 했다는 게 느껴졌다.

 

소파에 돌아가 앉은 엘라는 곁눈질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소파 앞에 놓인 테이블 위의 컵라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자기 끼니는 저걸로 때운 듯했다.

 

부엌에서 가위를 꺼내서 먹던 토스트를 반으로 잘랐다.

입이 닿지 않은 부분을 앞접시에 담아 엘라에게 건냈다.

“자.”

“어, 혹시 입에 안 맞으시나요?”

“많아.”

“아. 네, ……감사합니다.”

 

다시 식탁으로 돌아오니, 엘라는 시선을 내리깔고 자기 몫의 토스트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는 식탁에 노트북을 폈다.

퇴직금과 모은 월급을 생각하면 아직 자금에는 여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새 일자리는 찾아야 했다.

조급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검색을 시작했다.

 

 

 

일자리는 전멸해 있었다.

특히 단순 노동 계열과 서비스업 계열의 일자리는 씨가 마르다시피 했다.

그나마 남아있는 일자리는 기업의 연구원과 같이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었으며, 심지어 그마저도 수십 대 일에 달하는 경쟁률을 자랑했다.

 

바이오로이드의 상용화 이후 실업률이 폭등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생계를 잃은 사람들이 폭력시위를 할 정도로 그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폭력시위로 인한 ‘폐기물’을 치워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여태까지는 그것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어딘가 먼 곳의 이야기처럼만 느껴졌었다.

실제로 백수가 되어 느껴본 취업난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처음 일을 구할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새삼 내가 이전 직장에서 생각보다 오래 버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 전 일의 특성이 아니었으면 나도 몇 년 일찍 이 취업난 틈바구니로 들어왔을 것이다.

 

폐바이오로이드 수거는 그 업무내용 탓인지 바이오로이드로 대체하기가 쉽지 않았다.

몇 번 바이오로이드로 교체해보려 했지만, 모두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심각한 정신적 문제로 기능 저하를 겪었기에 가성비가 떨어져 최근까지도 사람을 대체할 수 없었다.


사실 회수 업무를 하며 보게 되는 것들을 고려하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사람이라고 그걸 보면서 멀쩡할 것 같지는 않지만.

 

문득 후배 녀석이 생각났다.

일은 잘 하고 있을 지 모르겠다.

마지막까지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아마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고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뭐 해줄만한 것도 없었다.

 

“후…….”

전 직업을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해져 한숨을 내쉬었다.

시야 가장자리에서 엘라가 나를 돌아보는 게 느껴졌다.


잠시 모른 척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으니 시선은 곧 사라졌다.

 

곁눈질로 엘라를 살폈다.

엘라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색을 시작한 지도 벌써 두어 시간이 지났는데, 지루하지도 않은 것일까?

 

불현듯 엘라의 수명이 몇 달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확실히, 바이오로이드라고 해도 죽을 때가 다가오면 심란해 질 것이다.

 

다시 일자리를 찾아보려 했으나 도무지 의욕이 나지 않았다.

한동안 인터넷을 둘러보다가 집 어딘가에 예전에 쓰던 체스판이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침실 장롱 아래를 한참 뒤적인 끝에 먼지 쌓인 체스판과 말을 찾을 수 있었다.

거실로 나와 테이블에 체스판을 올려 놓았다.

엘라가 흥미롭다는 듯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체스, 할 줄 알아?”

“네.”

 

목소리가 조금 신난 것처럼 들렸다.

혹시 심심했던 걸까?

 

어렸을 때 조금 배웠던 만큼, 일단은 적당히 엘라의 실력에 맞춰주기로 했다.

 

 

 

엘라는 강했다.

네 판을 내리 졌다.

다섯 번째 판이 돼서야 의도적인 느낌이 다분한 엘라의 실수 덕분에, 겨우 스테일메이트로 무승부를 따낼 수 있었다.

변명은 아니지만, 체스를 배운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을 되살리는데 시간이 걸리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해도 엘라는 강했다.

 

게임을 진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만에 한계까지 머리를 굴리느라 제법 재미있었다.

다만 문제는 엘라의 과장된 리액션이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었던 것인지, 엘라는 사소한 것들까지 하나하나 과장되게 칭찬을 했다.

아마 나를 초보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뻔히 보이는 약점을 내어주고, 그것을 받아먹는 걸 갖고 대단하다고 추켜세워준다고 해서 기쁠 리가 없다.

그나마 한두번이면 이해하고 넘어가겠는데, 네 판을 계속 이기면서 그러고 있으니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해버리고 말았다.

 

“억지로 칭찬하지 마. 오히려 기분 나빠져.”

“아.”

 

엘라는 내 말을 듣고 의기소침해져서 사과했다.

“죄송해요…….”

 

조금 풀어지던 분위기가 다시 얼어붙어 버렸다.

게임을 더 해도 괜히 어색하기만 할 것 같아서 체스 판을 정리했다.

 

상당히 몰입 했었는지 시간은 어느새 저녁때가 되어 있었다.

 

적당히 배달음식을 시켜서 나눠먹었다.

 

조금 이르지만 딱히 할 것도 없어 잘 준비를 마치고 엘라를 보니, 다시 낮처럼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었다.

 

이전엔 늘상 방 안에 흐르던 정적이 유독 낯설게 느껴졌다.

앞으로 못해도 한달 정도는 같이 지내야 할 것 같은 상황에서 계속 이런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은 서로에게 불편하단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적으로 사람을 만난 지가 벌써 일 년이 넘은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가까워져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문득 하나의 의문이 뇌리를 스쳤다.

후배에게 부탁받긴 했다지만, 꼭 마지막까지 같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내일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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