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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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적당히 오전을 보낸 나는 엘라를 차에 태우고 어제 떠올린 곳으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니, 엘라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따라 내렸다.

 

엘라는 내 옷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저기, 저는 계속 같이 지내도 괜찮아요. 꼭 이러시지 않아도…….”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왜? 너도 여기서 지내는 게 더 좋지 않아?”

 

눈 앞의 건물을 바라봤다.

건물의 정문에는 ‘와쳐 오브 네이쳐’라고 적혀있었다.

처음에 엘라를 회수한 그곳이었다.

 

엘라를 사느라 돈을 적잖이 쓴 건 맞지만, 그건 결국 이미 써버린 돈이다.

마음 편해지기 위해 기부한 셈치면 아깝긴 해도 못 넘어갈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어차피 서로 한집에 있어도 불편하기만 할 뿐이라면, 나보다 더 엘라가 필요할 곳에 데려다 주고 끝내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녀석도 마지막을 모르는 사람 옆에서 눈치보며 지내는 것보다는 지인들과 보내는 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썩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그게, 제가 곁에 계속 있으면 그분들이 괜히 슬퍼하시니까…….”

나는 그제야 엘라가 스스로를 배출 신청 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아무래도 은근히 눈치를 많이 보는 건 나랑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본인 성격인 것 같다. 하지만,

“네가 계속 있으면 내가 불편해.”

“아…….”

 

조용해진 엘라를 데리고 정문 옆에 있는 경비실로 향했다.

경비원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경비원은 담당자를 데려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5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건물 안에서 흰 가운을 걸친 여자가 뛰어 나왔다.

그날 본 연구원이었다.

 

“엘라야, 너……!”

 

떠나간 가족을 다시 만난 듯 놀라는 연구원에게 대략적인 사정을 설명했다.

연구원은 내게 거듭 감사를 표하고는 머뭇거리는 엘라의 손을 잡고 연구소 안으로 향했다.

 

 

 

점심 때가 되어서, 기왕 나온 김에 주변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가까운 햄버거 집에 들어가서 가장 싼 메뉴를 골랐다.

 

가게 안은 조금 붐볐다.

나온 메뉴를 받아서 가게 구석 자리에 앉았다.

 

묘하게 양이 줄어든 듯한 햄버거를 멍하니 씹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였다.

 

그냥 무시할까 20초 정도 고민하다 결국 전화를 받았다.

달갑잖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아, 바쁘냐?”

“왜 전화했어요?”

“일 그만 뒀다고 들었다. 조만간 한번 들려라. 얘기 좀 하자.”

“저 바쁩니다.”

“백수인 거 다 안다.”

“쯧.”

“몇 일 있다 부를 테니까, 부르면 와라.”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젠장.”

일 관둔 건 어떻게 안 걸까.

흥신소라도 고용했나?

 

입 맛이 떨어져 먹던 버거를 그대로 버리고 가게를 나왔다.

 

집 가서 술이나 마실 생각으로 편의점에 들려 안줏거리를 몇 개 사서 차로 돌아오니 차 옆에 사람 두 명이 서있는게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사람 둘이 아니라 사람 하나와 바이오로이드 하나였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나는 연구원에게 물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연구원은 나를 보더니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아무래도 재단을 후원하는 기업에 그새 새 바이오로이드를 신청한 모양이다.

이 상태에서 이미 폐기하기로 한 바이오로이드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가 걸리면 횡령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같다.

 

“에머슨 법 이후로 안 그래도 기업 측 손해가 큰데, 잘못 걸리면 재단에까지 피해가 갈 수 있다고 해서요…….”

연구원은 그렇게 말하더니 지갑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이거, 제 명함이랑 카드에요. 돈은 필요한 만큼 쓰셔도 좋으니까, 제발 엘라를 마지막까지 맡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명함은 그렇다 쳐도 카드까지 주는 건 심히 당황스러웠다.

이 여자는 엘라라는 바이오로이드를 위해서라면 모르는 사람에게 자기 카드를 넘길 수도 있는 것일까?

내 상식에서는, 가족이 같은 상황이어도 망설일 행동이었다.

 

옆에 서있는 엘라를 바라보았다.

엘라는 눈이 마주치자 멋쩍은 듯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문득 이 녀석의 무엇이 연구원에게 그렇게까지 하게 만드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명함과 카드를 받아들고 말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여러번 감사인사를 하는 연구원을 보내고, 결국 다시 엘라를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 엘라는 그새 익숙해진 듯 소파로 향했다.

 

바로 술을 까기에는 시간이 애매해서, 안주를 대충 던져두고 노트북을 폈다.

저번에 봐둔 일자리 몇 곳에 지원서를 쓰려고 했지만,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억지로 몇 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결국 때려치우고 엘라와 체스를 한 판 두었다.

 

조금 빠르게 저녁을 먹고 정리를 한 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식탁에 낮에 사온 안주를 늘어놓고, 맥주 캔을 따는데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엘라가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라고 묻자 “아무것도 아니예요.”라고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시선의 이유를 짐작해보다, 시간상 엘라가 점심을 안 먹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아니라 안주 쪽을 바라본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맥주와 안주를 들고 테이블로 향했다.

 

“먹어도 돼.”

“네? 어……. 감사합니다.”

 

그냥 술만 마시기도 심심해서 TV를 켰다.

 

TV에서는 덴세츠 동화의 마법소녀물이 방영되고 있었다.

 

전에 덴세츠의 촬영현장으로 수거 업무를 하러 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기분이 나빠져서 채널을 돌려버렸다.

 

 

 

맥주 두 캔을 비우자 적당히 취기가 올라왔다.

빈 봉지와 캔을 정리하고 잘 준비를 했다.

TV는 엘라에게 리모콘을 주고 적당히 보다가 졸리면 끄라고 말했다.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 안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위치 탓에 거실의 TV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벽을 지나면서 뭉개져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게 된 TV소리를 들으며, 나는 몽롱한 취기 속에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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