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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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님.”

 

“... ...”

 

“오메가님. 15 km 밖에서 차량 한 대가 움직이는 것이 관측되었습니다.

그 밖에는...”

 

“그 밖에는, 뭐.”

 

“... 별 다른 것이 관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쓸모 없는 것. 그럼 그 남자가 혼자 여기 왔다고 하지 그래?”

 

“...”

 

“뭐, 병신 같은 거래로 날 부려먹을 수 있을 거라 상상한 놈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화를 내줄 수준도 안 되는 쭉정이 같은 남자. 회장님들께 보여드리기도 아까워.”

 

“... 주변을 더 관찰해보겠습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그 같잖은 남자가 같잖은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니까.

감히 회장님들을 위한 유토피아에 더러운 발가락을 들이 밀려고 해? 쉽게 죽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아니면, 델타, 그 년에게 보내도 상관 없겠네. 그 년이라면 가지고 재미있게 잘 놀겠지.”

 

“...”

 

“대답해.”

 

“... 알겠습니다.”

 

“하는 일 없이 드론이나 붙잡고 있으면 그 시간에 회장님들께 바칠 것이 무엇인지 하나라도 더 생각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내가 너 같은 걸 데려 오지 않은 게 뭐 때문인지 계속 생각하라고. 알았어?”

 

“...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알래스카의 깊은 내륙 지방, 앵커리지 내부의 약속 좌표에서 오메가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애 장난 같은 거래를 들이밀며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오르길 원하는 남자. 오메가의 눈에 그런 속 빈 강정 같은 자가 만족스러울 리 없었다.

 

혹시 회장님의 부활 이후 콩고물을 얻어 먹으려는 사람 아닐까? 오메가의 머리 속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부활을 위한 핵심 기술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회장님들도 이 인간을 제법 좋게 보실 테니까. 그렇다면 죽이는 건 뒤로 미뤄두어야겠네. 오메가의 생각은 거기까지 닿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잖은 거래를 들이민 것이 용서되지는 않는 법.

평소 같았으면 곁에 있는 커넥터 유미의 뺨을 때려서라도 분을 풀었겠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거의 백여 개에 달하는 미믹 부대를 데리고 온 마당에 그런 어설픈 년 하나까지 챙길 순 없다.

물론 평소에 챙기는 것이라 하면서 하는 짓은 곁에 두고 일만 잔뜩 시키면서 뺨 때리는 게 고작이었지만 말이다.

 

 

 

“후우... 오다가 얼어 뒤진 건가? 왜 이렇게 조용해?”

 

“... ...”

 

“15 km 라고 했지? 뭐, 오래 걸릴 거리는 아니네.

너, 대답해봐.”

 

“... 네에, 오메가... ... 님...”

 

 

 

오메가의 곁에서 기이한 케이블을 휘날리며 움직이는 존재.

다른 검정색 미믹들과는 달리 덩치도 두 배 이상 크고 자체 인공지능이 내장되어 있어 간단한 대화도 가능한 센티널 미믹이었다.

빨간 나노머신이 센티널 미믹의 케이블 속에서 송진 가루 피어 오르듯 올라와 흩어졌다. 

 

 

 

“근방을 수색해라. 인간이랑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생긴 게 있으면 바로 데리고 와.

더 기다리게 했다간 기술이고 뭐고 죽여버릴 테니까. 어차피 죽이고 나서 괌에 가면 뭐라도 얻을 수 있겠지.”

 

“... 아... 알ㄹ.ㄹ.ㄹ겠습니다... ...”

 

 

 

촤륵. 촤르륵.

 

미믹 수십 개의 케이블이 동시에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땅을 파고, 흙먼지를 내며 예열하기 시작한 미믹들은 주변의 유기물로 나노머신을 흩뿌렸다.

땅을 가르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먹어 치운다. 참으로 펙스의 기업 정신에 딱 어울리는 AGS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때, 땅 위를 헤엄치듯이 부들거리던 미믹을 바라보던 오메가의 패널로 작은 기계음이 들렸다.

 

 

 

“잠깐.”

 

“... ...”

 

“... 하, 연락을 해오시겠다? 10 km 밖에서?”

 

“그럼... 저희ㅣㅣ는... ...”

 

“가, 가서 다리를 자르든 팔을 잘라 오든 어떻게든 끌고 와.

주제 파악 좀 시켜줘야지.”

 

 

 

펙스의 드론 정찰로 확인해본 발신자의 위치는 오메가의 부대로부터 대략 12 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익숙한 숨소리, 목을 가다듬으며 빠져 나오는 목소리가 그 속 빈 강정 같은 남자였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래를 언제쯤 깨부술까, 언제까지 이 같잖은 놀이에 장단을 맞춰줄까, 그런 고민을 하며 오메가는 입을 열었다.

그 때쯤에 미믹들은 이미 자리를 박차고 나간 지 오래였다. 다섯 개의 다리로 수영하듯이 달려간 미믹의 자리에는 거칠게 파인 땅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후우, 반갑군요. 인간님.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죠.”

 

“우리가 언제 봤다고 그렇게 살갑게 인사를 나눌 사이가 됐지?”

 

“너무 그렇게 신비주의를 고수하시는 것도 좋지는 않아요.

어차피 이제 같이 회장님께 충성을 해야 할 사이 아닌가요?”

 

“... 하?”

 

“어머, 제가 잘못 생각했나요? 아니면 바이오로이드랑 같은 선상에서 회장님을 섬겨야 하는 게 불만이셨을까?

그래도 그 정도 양보는 하셔야죠. 아무리 당신이 회장님들의 부활의 핵심 단초 역할을 했다지만 저희도...”

 

“입 닥치고,

할 일이나 해.”

 

“... 까칠하시긴.”

 

 

 

조금 비릿한 웃음이 오메가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꼴에 인간이라고 바이오로이드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게 나름 체면을 차리려는 것 같아 귀엽게 보일 정도였다.

 

허나 말하는 투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보처럼 멍하게 서있기만 한 것도 아닌 듯 했다.

오메가는 음소거 버튼에 손을 올리고 주변에 있는 미믹 한 마리의 촉수를 붙잡았다. 콰득거리며 발버둥치는 미믹의 모습은 애처로울 정도였다.

 

 

 

“하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인간이 이렇게 바보 같을 리가 없지.

아무래도 뭔가 꼼수가 있긴 한 모양이야. 그렇지?”

 

“그... 렇습... ... 니ㄷㄷ다...”

 

“그럼 빨리 가서 붙잡아 와.

나름 준비를 하셨다니 우리도 맞장구를 쳐드려야지.

무슨 귀여운 생각으로 여기까지 오셨을까 보는 것도 재미가 있겠어. 후후.”

 

 

 

그녀가 손을 놓자 미믹 10마리가 촉수를 마구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발을 굴리기 위한 예열 준비 과정이었다.

그러곤 땅에 깊은 자국을 만들어내며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몸 길이만 수 미터가 되는 괴물이 한 순간 초속 20 m에 달하는 속도로 달려나가자 거친 소닉붐이 온 사방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며, 오메가는 다시 패널에 목소리를 흘려 넣었다.

 

 

 

“그나저나, 정말 혼자 오셨나 보네요.

이렇게 순수한 분은 처음인데, 신기하군요. 그런 분께서 지금까지 살아계신 건 더욱 신기하고.”

 

“그래? 내가 원래 좀 순수해. 정직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그러는 그쪽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네.”

 

“뭐, 대륙 하나를 장악하기 위해선 이 정도 의심병은 가지고 살아야 하는 법이죠.

그냥 대충 직업병이라 생각해주세요.”

 

“드론으로 날 보고 있는 것도 의심병의 일종인가?

아니면, 그 AGS인지 뭔지 모를 것을 내게 보낸 것도 의심병인가?”

 

“...”

 

“왜, 모를 것 같았어?”

 

“... 설마요? 그 정도 능력은 가지고 계신 분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부디 능력도 그만큼 있으셨으면 좋겠네요.”

 

“그래, 내 목숨이 붙어만 있다면 얼마든지 보여드리지.

그러니까 지금 보낸 것들은 좀 치워줄 수 없을까? 애들 달려 가는 소리가 패널 너머까지 들리는데.”

 

“죄송하지만 그럴 순 없겠어요. 성능 테스트를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어서요.

제가 모셔야 할 분께 하자가 있는 것을 바칠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누구의 하자? 그 AGS들? 아니면 나?”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죠. 후후.”

 

“하... 참, 남자한테 바쳐지는 취향은 없는데. 좀 불쾌하네.”

 

“푸흡,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께서 회장님을 살릴 방법을 구해 오셨다는 게 좀 어폐가 있군요.

아무튼 그냥 좋게 생각해보세요. 누가 자신에게 결점투성이인 물건을 주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잖아요?”

 

“그래, 뭐... 그렇게 생각하면 또 말이 되긴 하네.

하자가 있는 걸 바칠 순 없지. 그렇고 말고.”

 

“후후, 이해해주시니 감사하군요.

자, 그럼 어디 자기 상황까지 제대로 이해를 하고 계신지 물어볼까요?”

 

“...”

 

 

 

놀아주는 것도 지겹다. 미믹들까지 이동한 마당에 이 장단에 더 놀아나줄 이유는 없다.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이제 보여줄 때가 됐다.

 

그리 생각하며 오메가는 자신의 목을 풀고 성대의 울림을 한껏 낮췄다. 으득거리는 소리가 패널 너머 남자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내놓으세요. 제 미믹들이 그 비루한 몸을 갈아버리기 전에.”

 

“... 아, 그거 이름이 미믹이었어?

내가 몰랐네. 그럼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허세부릴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에요. 멍청한 인간 님.

이미 그쪽에 몇 마리를 보냈어요. 그러니 몇 분, 아니, 몇 십 초 안에 도착하겠죠.”

 

“오우, 소름 돋는 얘기네.”

 

“하아... 아직 상황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으신 모양이네요. 그럼 좀 이해를 도와드리죠.

지금 말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쪽 몸이 두 조각이 날지, 세 조각이 날지 모를 일이에요.

제가 그렇게 사소한 것까지 명령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나도 마침 그런 스타일인데 잘 됐네.

우리 잘 하면 좋은 콤비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네?

물론 내 기준으로 콤비라는 게 좀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지만.”

 

“후후후.”

 

“크흐흐.”

 

“후후... 역겨운 소리는 그쯤 하시죠.

미믹이 당신을 잡고 나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으면 제가 고민 정도는 해볼 게요.

제 발의 발닦개로 써먹는 걸 말이죠.”

 

“그래? 그거 좀 솔깃한 제안이긴 한데.

콧대 높은 년 밑에서 경멸 당하면서 쑤셔주는 것도 나름 맛은 있지.

그러다가 앙앙거리는 게 제 맛이긴 하지만.”

 

“... ...”

 

“아, 혹시 이것도 하면 안 되는 얘기였나?

우리 바닐라가 그러던데 난 이런 음담패설은 좀 절제를 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고.

내가 좀 절륜 해서 말이야.”

 

“...

...

... 하아... 그런 같잖은 얘기를 하면 할 수록 당신 점수만 더 깎아 먹을 뿐이에요.

괜히 도발할 생각은 그만하고 회장님께 충성을...”

 

“이미 뒤진 새끼들한테 충성은 무슨.

그러는 느그 회장들은 잘 있더냐?”

 

“... 하?”

 

“휩노스로 죽은 사람 시체를 포르말린에 절여 놓느라 얼마나 고생이었을까.

아니다. 살아서는 밤 상대도 제대로 못 해줬을 텐데 이렇게 죽어서라도 볼 수 있으니 너한테는 그게 더 좋았을려나?

죽기 전에는 발기부전 때문에 제대로 서지도 못했을 텐데. 나이 먹을 만큼 먹은 놈이 발기는 무슨.”

 

 

 

 

 

 

 

 

콰득.

 

“내 말이 맞지 않아? 솔직히 좀 귀찮잖아.

그 나이까지 벽에 똥칠하면서 살았으면 그거로 충분하고, 애먼 여자 하나 붙잡아 성고문까지 했으면 풀 성욕도 없을 텐데.

지도 양심이란 게 있으면 빨리 눈 감고 지옥으로 꺼질 것이지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는 건지 모르겠네. 그렇지 않아?”

 

콰득. 콰득.

 

“아, 너무 걱정하진 마. 발기부전은 노인들에게 흔한 증상이거든.

혹시 백 년 동안 인터넷에 남은 망가 같은 거나 보다가 뇌가 썩었을까 봐 말해주는 건데 은근 흔한 질병이었어. 발기부전.

만화 마냥 늙은 노인이 너 같은 젊은 여자 따먹어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단 말이지.

느그 회장들도 너네는 상대 안 해줬잖아? 아마 그래서 그랬던 걸 거야.

애초에 인간 여자가 있는데 멸망 전 인간들이 너 같은 바이오로이드를 상대나 해줬겠어? 좆 맛도 모르는 불쌍한 오메가 같으니.”

 

콰득. 콰득. 콰득. 콰득.

 

“그에 비해 내 몸은 한 번 달아오르면 좀처럼 풀리지가 않거든.

어때, 백 년 동안 골방에서 보지에 거미줄 치면서 살았을 텐데, 좀 풀어줄까?

내가 네 발바닥 정도는 혀로 몇 번 핥아줄게. 그 정도면 공정한 거래지?”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콰득.

 

 

 

 

 

 

 

 

 

 

 

“... 당신.”

 

“응? 불렀어?”

 

“곱게 뒤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래, 뭐. 그렇겠지.

그럴 거 알고 있었어.”

 

“나노머신을 이용하면 사람이 어디까지 고통스러워질 수 있는 지 내가 보여줄게.

감히 내 앞에서 회장님을 건드려? 지금 엄청나게 큰 말실수를 한 거야. 당신.”

 

“어허, 그렇게 말하면 내 기술은 못 줄 것 같은데. 그 늙은이들 못 살려도 상관 없나 봐?”

 

“기술? 그딴 건 괌에서 했던 실험 데이터를 가지고 다시 만들면 그만이야.

당신이 지껄인 말들은 내가 모조리 녹음해 회장님들께 전해드릴 거다. 그러니 희망을 버리는 편이 좋아.

회장님들만 부활하시면 이 지구 상에 네 놈이 발 붙일 자리는 없을 테니까...!”

 

“설마 내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왔을까?

이미 괌에 있는 데이터는 모조리 지우고 왔지. 내가 믿을 게 이거 하나뿐인데.”

 

“네 놈 하나 죽이는 데 그 따위 데이터를 희생해야 할 만큼 내가 어리숙한 줄 알아?

그 기술, 죽기 직전까지만 고문하고 자백제에 익사시켜서 죽기 전에 불게 만들면 그만이야.

대륙 하나를 장악한 게 애들 장난으로 보인 모양이지?!”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오메가의 분노를 느낀 주변 미믹들이 일제히 발을 굴렀다. 땅이 파일 정도로 무수한 흙먼지들이 쏟아졌고, 이미 몇몇은 그녀의 손짓에 따라 남자를 향해 출발했다.

 

백이 넘는 미믹 부대. 족히 수천에 달할 법한 엄청난 양의 미믹 부대는 오르카 호는 물론 용의 함대까지 전부 다 갈아 마실 만큼 강력했다.

주변을 침식시키고 모든 기계를 아군으로 만드는 힘. 물질을 분해하고 자동으로 재구성시키는 나노머신의 힘은 가히 대륙을 뜯어 갈아버릴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능, 혹은 치트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능력. 기술적 특이점 바로 밑 단계의 능력이라 칭함 받는 이 힘을 오메가는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었다.

강력한 힘 앞에 무릎 꿇지 않는 것은 없다. 기술도, 회장님을 모욕한 이 남자의 목숨도 그 힘으로 취해버리면 그만이다.

 

거칠게 분을 삭이며 오메가는 잠잠히 고민에 빠졌다.

이 남자를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 칭찬을 받을까? 익사? 쇼크사? 심장마비? 어떤 고문을 어떻게 조합해야 가장 고통스러울 지를 온 힘을 다해 계획했다.

 

미믹이 있는 이상 못할 것은 없다. 그 어떤 고문 기구도, 어떤 끔찍한 아이디어도 전부 현실화시킬 수 있다.

자신의 손에 놓인 만능의 물건에 취해 오메가는 케스토스 히마스까지 사용해가며 고문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이제 곧 패널 너머로 들릴 남자의 비명 소리를 기다리며.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들리지 않아다.

미믹이 도착했어도 진작에 도착했을 시간, 패널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자신의 속을 긁는 남자의 목소리뿐이었다.

 

 

 

“크흐흐...”

 

“... 웃어?”

 

“흐흐... 이번엔 진짜 좀 위험했어.

저어어어기 너머에서 미믹인지 뭔지 하는 것들이 오는 게 보였을 정도거든.”

 

“지금 뭐 하는...”

 

“왜, 설마 내가 진짜 아무 것도 없이 여기까지 올 거라 생각한 거야? 오메가치고는 너무 순수한데?

아니, 바보 같다고 해야 하나? 

진짜 힘으로 밀어 붙이면 끝날 거라 생각한 것 같은데, 너무 쉽게 생각했네.”

 

“...”

 

“아, 물론 저것들 싸우는 꼴을 보니까 그럴 만한 자격은 있는 것 같네.

지금 한 마리 죽이려고 애들이 수십 마리씩 뒤지고 있거든. 겁나게 쎈 놈들이네? 미믹이란 놈들.”

 

“... 애들...?”

 

 

 

차디찬 바람이 오메가의 패널을 치고 흩어졌다. 그에 따라 눈길을 돌린 오메가는 기묘한 장면이 패널 너머에서 보이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미믹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 카메라. 그것에 찍힌 물체는 남자가 아니었다. 단순한 자연 풍경은 더더욱 아니었다.

 

 

 

미믹을 씹어 먹고 있는,

철충이었다.

 

 

 

“고개를 들어봐라, 오메가.”

 

 

 

남자의 말에 홀린 듯이 얼굴을 하늘로 향하는 오메가.

그 위에는 작은 무언가가 비행운을 그리며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정확히 오메가가 있는 위치로, 무언가를 던진 채 말이다.

 

 

 

“상공 1,450 m. 아무리 미믹이 잘난 AGS라고 해도 신장이 3 m 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물체지.

그런 애들이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슬레이프니르를 맞추긴 쉽지 않을 거야. 그렇지?”

 

“지금... 대체 뭐하는...?”

 

 

 

오메가는 서둘러 남은 미믹들에게 손짓했다. 그 손길에 따라 미믹은 스스로의 형태를 바꾸어 커다란 대포를 만들어냈다.

 

이윽고 거대한 화염 소리와 함께 하늘로 포탄이 날아들었지만, 초속 수백 미터 단위로 움직이는 물체는 너무도 손쉽게 그것들을 피하며 약을 올렸다.

 

 

 

“오호, 미믹들에 그런 기능까지 있는 줄은 몰랐네?

내가 나중에 잘 써먹도록 하지.”

 

‘철충? 철충이 대체 왜? 대체 왜 여기에...???’

 

“아마 궁금한 게 많을 거야.

그런데 그런 걸 신경 쓸 시간은 없을 걸? 애들, 지금 잔뜩 화가 났거든.”

 

 

 

쿵! 

 

슬레이프니르가 떨어뜨린 물체가 땅 아래에 깊숙이 박혔다.

미믹들이 그것을 파내려고 했을 땐 이미 너무도 깊이 박혀 힘을 모을래야 모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떨어진 물체 앞에서 작은 드릴 같은 것 수십 개가 나오더니 자기 스스로 땅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거진 10 m 는 넘게 파고 들어간 물체. 너무나 당황스러운 등장에 오메가의 머리는 순간 굳을 수 밖에 없었다.

 

파내야 한다. 전술이고 전략이고 다 필요 없이, 그녀의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파내자니 그럴 수록 땅 속으로 파고 들고 있었고 앞에서는 철충들이 몰려오는 상황. 빠른 선택이 강요되는 순간이었다.

 

 

오메가는 머리를 굴렸다. 철충이 있다는 건 예상 외의 선택지였지만, 알래스카처럼 사람도 없고 춥기만 한 지역엔 대규모 철충 부대가 있을 리는 없다.

그러니 이 물체가 뭔지는 몰라도 철충을 무력화시키고 확인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런 판단을 내렸다.

 

합리적인 생각이고, 오메가가 알고 있는 정보들 한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음이 틀림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가 상대하고 있는 상대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했다.

 

 

 

“오우, 땅 울리는 걸 보니까 한 번 제대로 싸우기로 마음 먹었나 봐?

기특한 생각이야. 역시 회장이니 뭐니 해도 인류의 공통 적은 철충이잖아. 안 그래?”

 

“... 씨발...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대체 철충이 왜...?”

 

“안 그래도 설명을 좀 해주려고. 그래야 더 절박하게 싸우지.”

 

“절박하게?”

 

 

 

남자는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가며 말을 이어나갔다.

두꺼운 패딩의 겉면이 손가락에 의해 스치는 소리가 패널 너머에서 선명하게 들려왔다. 남자의 주변은 신기할 정도로 고요했다.

 

 

 

“철충은 말이야, 사람을 어떻게든 죽이려고 안달이 난 생물이란 말이야.

그럼 중요한 건 그거지. 사람을 어떻게 판별하느냐? 그 방법이 뭐냐?

그걸 아는 게 아주 아주 중요하단 말이야.

그런데 넌 그걸 몰랐을 거야. 내 말이 맞지?”

 

“... ...”

 

“왜냐!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나 같은 인간이 남아 있지 않았거든!

기껏해야 나중에 살리려고 고이 모셔 놓은 시체 덩어리, 느그들 회장들 밖에 없지.

자원이고 뭐고 있을 건 다 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이 없다는 게 참 안타까울 따름이야.”

 

‘... 회장님을 모욕할 생각이라면...!”

 

“아니, 모욕이고 자시고 내 말이 맞잖아. 그 대륙에는 인간이 없지.

그런데 시체뿐인 대륙에서 철충들이 인간을 찾으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겠어. 불쌍하게도.

그런데 문제는 네가 너무 잘 싸워버렸단 말이야. 사람 찾으려는 철충을 죄다 죽일 정도로.”

 

“뭐...?”

 

“그러니 사람 찾는 것보단 네 세력을 줄이는 게 철충의 제 1 목표가 되어버렸지.

인간을 찾으려고 해도 너는 너무 큰 방해 요소가 되어버렸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워, 워, 진정하시고.

아무튼 아메리카 대륙의 철충들이 너희들 때문에 고생하고 있을 때, 동아시아 쪽은 사정이 달랐어. 이쪽은 철충이 거의 다 점령한 상태였거든.

그러니 이제 중요한 건 점령이 아니라 탐색이 되었지. 인간을 찾는 것 말이야.

그럼 여기서 질문. 인간을 찾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 뭘까?”

 

“... ...”

 

“뇌파지. 뇌파로 찾는 거야.

눈을 감고 주변을 둘러 봐. 뭔가 익숙한 게 느껴지지 않아?”

 

 

 

오메가는 어느새 썰렁해진 자신의 주변을 바라보았다.

수천 기나 데려온 미믹들은 철충과 싸우기 위해 전장으로 미친 듯이 달려나갔고, 지평선 너머로 수천의 철충이 미친 듯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드론을 담당하던 유미는 충격에 말문마저 놓아버렸다. 아무리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한들, 광기로 가득 찬 철충의 물결을 맨 정신으로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던 중, 오메가는 문득 어색한 감각이 느껴졌다.

백 년, 어쩌면 그 이상의 세월 동안 느껴본 적 없던 파장. 모든 바이오로이드 안에 내재된, 본능과도 같은 감각.

 

인간의 파장이 느껴졌다.

슬레이프니르가 던진 물건 안쪽에서.

 

 

 

“익숙하지? 너도 바이오로이드인 이상 느껴지긴 할 거야.

내가 그거 만들려고 고생 꽤나 했거든.

내 뇌파를 분석해서 수천 배로 증폭시키는 파장 분할기를 말이야.”

 

“... 당신, 대체 뭘 한 거죠?”

 

“이제 좀 존댓말을 할 생각이 든 건가? 참 기특하네.

뭘 한 건 아니고, 난 그냥 적당한 곳에 숨어 있었을 뿐이야. 그러는 동안 내 뇌파는 최소한으로 지우고, 파장 분할기만 슬레이프니르에게 들려서 쏘아 보내는 거지.

혹시 떨어뜨리고 나서 너희가 부수면 안 되니 앞에 드릴 같은 것만 달아서 만들고.

재미있지 않아? 이런 걸로 철충을 유인할 수 있다는 게?”

 

“철충이 인간의 뇌파를 감지하다니, 들어본 적도 없는...!!”

 

“그러니까 말했잖아. 네가 너무 잘 싸워서 그랬다고.”

 

“... 뭐요?”

 

“북아메리카와 달리 동아시아는 철충들이 인간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지. 스스로 진화를 할 정도로 말이야.

그래서 좀 찾아보니까 놈들이 바이오로이드한테나 달던 뇌파 감지기를 스스로 머리 속에 집어 넣더라? 좀 고위급 개체들도 말이야.

그래서 실험을 좀 해봤어. 애들이 내 뇌파를 감지하면 따라오는 걸까? 따라온다면 어디까지 따라올까? 궁금하잖아?

그리고 실험 결과는 뭐, 보이는 대로지.”

 

“...”

 

“미쳤다고 싫어하는 물까지 뒤집어 쓴 채 괌까지 따라오는 걸 보고 영감을 좀 얻었지.

이 새끼들, 진짜 죽어라 따라오는 구나. 그럼 한 번 제대로 써먹어 보자.

그래서 동아시아 쪽에 남은 발할라 아이들을 데리고 실전 테스트를 몇 번 좀 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과하게 따라온 것 같네.

뭐, 나머진 네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순간, 오메가의 손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땅에 박힌 물건을 파내기엔 이미 너무 깊숙이 들어갔다. 이것을 파낼 미믹마저도 이미 전장에 간 뒤였다.

 

 

 

“... 설마 그럼 이 철충들은... ...”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전술. 그 전술에 만능이라 불리던 자신의 미믹들이 쓰러져 가고 있다.

 

자신이 방심했던 것일까? 그래, 분명 방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남자 하나가 어린애 땡깡 같은 거래를 빌미로 자신에게 접근했었으니까.

상대는 고작 말뿐인 구두 거래를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초보. 그런 남자에겐 방심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가 치욕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방심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 전술을 무력화할 다른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괴물처럼 쏟아지는 철충을 이겨내고, 저 남자에게 닿을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저 철충들은... 설마...”

 

“그래, 동아시아 쪽에서부터 내가 데리고 온 것들이다. 정확히는 발할라 애들이 수고해준 거지만.

물론 이 전부를 다 데리고 올 필요는 없었어. 여기 죽어 있는 AGS를 자기들이 알아서 부활시키고 써먹거든.

괌에서 한반도로 간 다음, 양 몰이 하듯이 여기까지 데리고 오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애들이 지금 잔뜩 화가 난 것도 아마 그것 때문일 거야.”

 

“... ... 하...!”

 

 

 

아메리카 대륙을 장악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을 때도 본 적 없었던 철충의 무리.

마치 무언가를 잡아 먹으려는 듯이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며 철충은 자신의 미믹 부대를 짓밟고, 씹어 삼키며 달려들었다.

 

물론, 그럴 수록 미믹들이 침식하는 철충의 양도 늘어갔다.

나이트 칙을 비롯한 수많은 철충이 미믹의 도움으로 빨간 눈동자를 닦아내고 푸르게 빛나며 총구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침식하는 양은 점점 더 많아졌고, 그에 비례해서 철충에게 쏟아지는 총알과 칼날의 양도 많아져만 갔다.

 

하지만,

달려오는 철충의 양도 커져갔다. 

시시각각, 죽은 AGS들이 좀비처럼 일어나며 미믹에게로 총을 돌렸다.

 

힘 대 힘. 광기 대 광기.

목숨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기계들의 싸움에 오메가는 침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이 모든 싸움이 한 사람의 계획 안에 이뤄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에.

 

 

 

“... 하... 하하...! 그래요! 철충을 이끌고 온 그 배짱 하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좋아요, 제가 회장님께 당신에 대해 잘 말씀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장난질은 이쯤에서 끝내시죠...!”

 

“에이, 벌써 그러면 어떻게 해.

하다 못해 땅에 박힌 그 파장 분할기라도 빼내보던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이미 철충을 괴멸시키기 위해 모든 미믹이 움직인 상황이에요.

당신 같은 전술가가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그러니까, 네 손에 흙 좀 묻혀보라고.

그러는 꼴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우리 쪽에 한 명 있거든.”

 

“실없는 농담은 그쯤 하세요!

당신이 이끌고 온 철충의 양은 인정하지만 고작 양이 많은 것 정도로 저의 미믹을 이길 순 없을 거에요.

한 부대만 있어도 연결체 한 마리는 너끈히 잡을 수 있는데, 고작 저 정도 철충 따위가 제게 문제가 될 것 같나요?

당신이 죽이기엔 너무 아까운 존재라는 걸 확인했으니 지금이라도 방법을 간구하세요!”

 

 

 

반쯤 절규에 가까운 부탁. 오메가의 심장이 이토록 빠르게 뛰었던 것은 휩노스 병으로 쓰러진 회장님을 본 이후로 처음이었다.

 

아무리 미믹 부대가 강력하다고 하지만 이 정도 물량의 부대라면 자기들의 손실도 불 보듯 뻔한 상황.

엡실론이 말한 탑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지기도 전에 이 정도 손실을 보는 것은 예상 외였다. 아니,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일이었다.

 

하물며 이 정도 대규모 전쟁은 케스토스 히마스로도 예측이 어려운 상황.

철충은 제대로 관측되지도 않고, 캘리포니아 생산 공장에서의 증원도 어려운 상황. 변수가 많아도 너무나 많았다.

정보도, 지원도 없다. 어쩌면 이것도 전부 저 남자가 계획했던 일이었을까?

 

최악의 경우 자신의 모든 미믹이 철충에 의해 괴멸 당할 수도 있다. 회장님께 바칠 물건, 그리고 나아가 행성 전체를 지배할 물건을 그렇게 잃을 수는 없다.

 

그러니 오메가는 자신이 짜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만들어냈다.

남자는 회장님께 인정을 받고, 자신은 안정적인 상황에서 미믹의 성능을 철충에게 시험한다.

남자가 이런 일을 꾸몄으니 해제하는 방법도 가지고 있으리라, 그리 기대를 하며 패널로 소리를 쳤다.

 

 

 

“... 하아, 너 진짜 철충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구나?”

 

 

 

하지만, 남자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 없었다.

 

 

 

“연결체 하나 잡을 수 있다고 뭐라도 된 것 같지?

근데 내 경험 상 철충이 무서운 건 그거 때문이 아니야. 연결체는 말 그대로 고위급 개체일 뿐이니까.”

 

“... 당신이 무슨 경험을 했다고 그러는 거죠?

그럼 대체 철충의 뭐가 무서운 거냔 말이에요!”

 

“뭐... 여러 경험을 했지.

핸드폰으로 게임도 하고, 변소도 올라가보고, 아주 그지 같은 철충 많이도 봤지.

어디 보자...

...

... 아, 그래. 여기까지 오는데 포트리스 잔해들이 좀 많이 보이더라?”

 

“포트리...스...?”

 

“그게 철충한테 들어가면 얼마나 좆 같은 물건이 되는지 알려줄까? 아마 아메리카 대륙과 알래스카에서는 관측해본 적 없던 철충일 텐데.

철트리스라고. 내가 그걸 상대하는 데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네.

그 좆 같은 3지역을 어떻게 잊겠어.”

 

“... ...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요, 당신. 고작 포트리스가 감염된 것 따위로 미믹을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연결체 수십 마리도 잡을 만한 수준인데 고작 포트리스 따위가...”

 

“그 미믹 설계에 좀 오류가 있더라고.

설계도를 보니까 눈 앞에 보이는 걸 우선 순위로 파괴하도록 코어가 만들어져 있던데, 철트리스를 상대할 땐 그렇게 만들 면 안 되거든.

정확히는, ‘눈 앞에 보이는’ 걸 파괴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거지. 그럼 보무 공격이 안 되잖아.

그 새끼들, 그러면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

 

“보... 무...? 

... 뭐라고요?”

 

 

 

허무맹랑하기 그지 없는 남자의 말. 하지만 오메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커넥터 유미가 조종하고 있는 드론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서는 남자의 말대로 모든 것이 이뤄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미믹들 수십 마리가 하나의 포트리스, 아니, 철트리스 위에 올라타 회로를 집어 뜯고, 고철을 갈아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록 철트리스는 자가 수리를 실행했다. 미믹의 나노머신들보다도 더욱 정교한 무언가가, 철트리스의 몸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것처럼!

 

 

 

“내가 동아시아 쪽에서 그게 실제로 있는 건지 확인하느라 발품을 좀 팔았지.

솔직히 너무 말이 안 되잖아?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철충이라니.

덴세츠에 골타리온이라고 비슷한 게 있던 것 같긴 한데 그거 원리는 나도 잘 모르니 제쳐두자고.”

 

“... 당신, 정체가 뭡니까...?”

 

“에이, 그건 지금 말해주면 너무 재미가 없지.

그것보다 좆 같은 철충 얘기는 좀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이번엔 인트루더라는 새끼인데, 이 놈은 뭐가 문제냐면 광피감인지 뭔지를 둘둘 싸매고 다닌다는 거야.

그래서 잡아 족치려면 다른 철충이랑 같이 때리면 안 되고 이 새끼만 따로 잡아야 해.

근데 이 새끼가 철트리스 뒤에 가있는다? 그럼 반쯤 리트할 거 각오해야지.”

 

“인트루... ... 뭐요?”

 

“내가 대충 보니까 애들, 아주 본능적으로 좆 같은 대형을 짜서 가던데 알아서 잘 해봐.

지금 네가 상대해야 하는 것들이 딱 그런 꼴이니까.”

 

 

 

남자는 마치 신이 난 것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철충에 관한 지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현실이 그에 응답하는 것처럼 기상천외한 철충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펙스에서 만든 왓쳐와 비슷하게 생긴 인트루더는 작은 드론 같은 철충들로 자신의 주변을 둘둘 감싸고 있었다.

그 상태에선 미믹이 아무리 공격을 해도 흠집 하나 제대로 나지 않았다. 

드론이 인트루더를 너무도 촘촘하게 감싸고 있던 탓에 미믹의 공격 한 번에 드론 수십 마리가 인트루더와 함께 타격됐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빨붐이라 설명한 라이트닝 붐버 Type – S는 그 어떤 공격에도 맞지 않는 기묘한 회피 기동을 선보였다. 

위상 장갑 같은 신기술을 가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미믹들이 멍청해지는 건지 모를 정도로 라이트닝 붐버는 미믹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스치지조차 않는 미믹의 촉수들. 그 좆같음에 오메가는 이마에 핏줄이 오를 지경이었다.

가끔 전기 구체를 발사한 붐버는 미믹에게 흡수되기도 했지만 구체 발사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었던 지라 죽어가는 라이트닝 붐버의 양보다 죽어가는 미믹의 양이 더욱 많았다.

 

스파르탄 부대의 모습을 하고 있던 철파르탄 부대, 세 가지 색상으로 알래스카 대지를 수놓은 철파르탄 부대는 아무리 강력한 미믹의 공격에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얼음으로 둘러쌓인 철파르탄의 장갑은 미믹의 촉수를 흘려 보냈고, 전기로 지직거리던 철파르탄은 미믹의 몸에 스파크가 일 정도로 짜릿한 전기 구체를 흩뿌렸다.

게다가 자기들끼리 공격을 하면 할 수록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철파르탄이 내뿜는 총구의 화염구는 기관총과 비견될 정도의 수준이 되어버렸다.

 

결국 직경 수백 미터짜리 구덩이를 미믹들이 파내어 생매장을 시킨 다음에서야 놈들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를 위해 희생된 미믹들만 해도 족히 세 자리 수는 될 것이었다.

 

 

 

‘이게... 이게 뭐지...? 대체 왜...?’

 

 

 

오메가는 아득해져가는 머리를 간신히 붙잡고 케스토스 히마스를 가동시켰다.

자신이 지금까지 상대한 철충만 해도 수백, 수천만 마리가 넘는다. 아니, 억 단위로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뒤틀리고 기괴한 철충들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대체 왜? 대체 뭐가 저 정도의 괴물들을 만들었던 거지? 저렇게나 비합리적인 존재들이 어째서 이 넓은 아메리카 대륙에는 한 번도 나타났던 적이 없던 거지?

 

그러다 문득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메리카 대륙은, 너무 빨리 철충을 잡아 버렸다.’

 

 

 

“철충은 기생한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진화하는 존재지.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의 철충들은 진화를 하기엔 너무 강한 존재를 만나버렸어.

그게 바로 펙스지. 안 그래? 오메가? 애들이 진화하기도 전에 네가 다 죽여버렸잖아.”

 

“... ...”

 

“뭐, 이번 기회에 새로운 내용을 배웠다고 생각하고 얌전히 물러가.

어차피 제대로 된 공략법을 모르는 네가 저것들을 잡을 리가 없어. 설령 잡는다고 해도 난 상관 없고.”

 

“...”

 

 

 

유미의 드론이 찍고 있는 장면만 보아도 이미 수백 기의 미믹이 희생당했다.

이게 곧 네 자리 수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이야기. 다른 레모네이드에게 숨기기 힘들 만큼의 손실이 이미 발생해버렸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빈 손으로 돌아간다? 미믹 수백, 수천을 잃고서?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그렇게 될 경우 자신의 주도 하에 회장님들을 부활시킨다는 계획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주도권이 뺏기게 될 경우, 제 아무리 부활을 시킨다 한들 자신이 받게 될 총애는 개미 눈꼽만 해질 것이 뻔했다.

회장님들은 쉽게 마음을 주지 않으시는 분. 자신들이 아무리 유혹을 했어도 안나 박사에게만 씨를 뿌릴 뿐, 자신들의 처녀는 가져가지 않았던 분들이었다.

 

그러니 최고가 아니라면 받을 수 있는 총애의 양은 보잘것없어지는 것이 상식.

바이오로이드가 충성을 약속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대가를 받아내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오메가는 그 총애를 위해서라도 이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자신의 압도적인 주도권을 뒤흔들 그 어떤 위험 요소도 허락하지 않기 위해.

 

 

 

“... ... 씨발, 씨발, 씨발... ...!!”

 

“워, 워. 진정해. 그러다가 너 뻥 터지겠다.”

 

“당신... 내 손에 잡히면 그 즉시 죽여버릴 거에요...! 반드시!”

 

“그러든지. 그래도 아까 고문이니 어쩌니 한다는 것보단 조금 나아졌네.

그래도 죽는 건 무서우니 내가 기회를 한 번 더 주지.”

 

 

 

기회.

그 말에 오메가의 귀가 쫑긋거렸다.

 

 

 

“내가 한 연구 시설의 좌표를 보내줄 거야.

철충을 다 잡고 나면 이곳으로 와라. 그럼 내가 나머지 기술의 파일을 전부 다 넘겨주지.

그냥 오기만 하면 이 기술은 전부 다 네 것이야. 내 간단한 부탁 하나만 들어준다면 말이지.

그게 우리의 거래였잖아?”

 

“... 나중에 다른 말을 하는 건 아니겠죠?”

 

“물론이지.”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통신망에서 나갔다. 한 가지 선물을 남기고.

 

그것은 일전에 남자가 보냈던 기술의 빠진 부분이었다. 

케스토스 히마스가 자료를 받은 즉시 분석을 진행하여 남자가 보낸 자료의 정체를 오메가에게 알려주었다.

 

빠진 퍼즐이 점점 맞춰져 간다. 남자가 퍼즐 조각을 던져주면 그것이 판에 쏙 하고 들어가며 오메가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었다.

그럴 수록 회장님의 부활이 눈 앞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남자가 하는 말은 허풍이 아니다. 분명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그리고 그 감춰진 것을 들춰내면, 그 자리엔 분명 회장님의 부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것만 잡아낼 수 있다면 미믹 몇 마리 잃은 것은 문제될 것도 아니다! 회장님이 살아 돌아오실 테니까!

 

 

 

‘... ...’

 

 

 

오메가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패널을 들었다.

이미 반쯤 파괴된 미믹 부대, 그리고 물 밀듯이 들어오는 철충들.

 

하지만 철충도 이제 힘이 빠졌다. 미믹의 나노머신으로 몇몇은 오메가의 통제 하에 들어오기까지 했다.

철트리스인지 뭔지 모를 것들도 일부 포획에 성공했다. 인트루더도 마찬가지.

 

괴멸적인 피해를 봤지만,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다. 

남은 미믹과 빼앗은 철충을 이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회장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곧...!’

 

 

 

회장의 부활에 눈이 먼 오메가는 그렇게 자신의 케스토스 히마스를 굴렸다.

웅웅 거리는 소리의 파장이 알래스카의 두꺼운 눈을 흩어 놓았다. 

 

그게 남자의 진짜 목적이었다는 것은 꿈에도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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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빨 오지게 받았던 오메가가 죽인 철충들은 메인 1, 2지역에나 나올 법한 애들이었구연.

이때 오메가가 상대했더 철트리스는 대충 600마리 정도 됩니다

그윽한 변소의 향기, 한 번 맛 보니까 정신 못 차리죠?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