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피보호자의 바이오로이드 - 목록



"기다려야 할까요? 아니면 움직여야 할까요?"



 

 다시 바이오로이드 거주지에 모습을 드러낸 메이플라워는 계속 그 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나눠주고 나면 그녀는 자신이 데려간 바이오로이드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고, 그 다음날 점심 식사 시간 때에 식사와 필요한 물품들을 가지고 나타났다가 저녁을 나눠주고 나면 다시 돌아가는 것을 반복했다.

 

 메이나 스트라토 엔젤, 나이트 앤젤처럼 유아퇴행한 바이오로이드들은 계속 자기들과 같이 있으면 안 되겠냐면서 메이플라워를 붙잡고 징징거렸지만, 금란이나 블랙 웜처럼 심신이 불편한 바이오로이드들이나 캐노니어와 앵거 오브 호드 바이오로이드들처럼 메이플라워에게 큰 불만이 없었던 바이오로이드들은 예전처럼은 아닐지라도 그녀가 자신들을 돌봐준다는 사실, 그녀가 자신들을 완전히 버린 게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메이플라워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바이오로이드들이나 그녀에게 불만이 있는 바이오로이드들도 그녀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거나 덤비지 못했다. 메이플라워가 돌아오기를 바랬던 바이오로이드들이나 그녀를 필요로 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이 공공연하게 메이플라워의 편을 들었고 메이플라워 또한 누군가가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낸다고 판단하는 그 즉시 바로 칼을 뽑아들고 눈에서 녹색의 빛을 뿌리면서 압박을 가했다. 전성기의 그녀들이었다 하더라도 쉽게 이겨낼 수 없었을 메이플라워의 '압박'은 지금의 껍데기만 남은 바이오로이드들로서는 어떻게 저항할 수 없었다. 


 소완과 바닐라들은 요리를 하고자 하는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 누구도 그녀들이 만드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고, 메이플라워가 음식을 나눠주는 마당에 그녀들이 요리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바이오로이드들의 불만과 불평, 욕설을 들으면서 상처를 받은 바닐라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구석에 모여 울었고, 몇몇 바닐라들은 메이플라워의 요리를 맛있게도 처먹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 메이플라워를 원망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소완은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멍한 눈빛으로 메이플라워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을 쳐다보는 것으로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마리아 씨? 식사를 거의 안 하셨는데......."


 "......오늘따라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네요."


 행복한 표정으로 마리아로부터 남은 음식들을 건네받은 메이와 스트라토 엔젤, 나이트 앤젤이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지니야들도 빈 그릇을 내려놓으면서 마리아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고민이나 문...... 있으신가요?"

 

 문제가 있냐는 말을 꺼내려던 지니야가 중간 부분을 얼버무렸다. 


 문제야 언제나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까. 


 ".......정말 이대로 메이플라워 님의 호의에 기대기만 해도 되는 걸까 싶어서요."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마리아의 말에 이그니스가 힘없이 대답하자 바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이들의 약해진 몸뚱아리로는 사냥을 할 수도 없고, 모듈도 그 무엇도 없이 목숨만 붙어있을 뿐인 이들의 껍데기뿐인 몸뚱아리로는 그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바닐라들과 소완이 보여준 것처럼 지금의 바이오로이드들은 노력을 해도, 뭘 하려고 해도 헛수고일 뿐이었다.


 금란이나 블랙 웜처럼 심신에 문제가 생긴 바이오로이드들은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어떻게든 메이플라워를 도와주고 싶어도, 그녀의 수고를 덜어주고 싶어도 짐이나 안 되면 다행인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메이플라워가 올 때까지 드러누워 있다가, 음식을 주면 받아먹고, 도움을 주면 받기만 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나?"


 "뭘 한다고 나대다가 메이플라워의 분노를 사면?"


 "가장 좋은 방법은 메이플라워...... 님에게 물어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뭇가지를 꺾어서 만든 지팡이에 의지해서 둠 브링어 바이오로이드들과 이그니스, 마리아에게 가까이 다가온 로열 아스널과 칸, 비스트 헌터가 각자의 의견을 꺼냈다. 


 ".......그게 제일 좋은 방법 같네요."


 이그니스부터 시작해서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비스트 헌터의 말에 동의했다. 메이플라워가 뭔가 도와달라고 하는 일이나 하라고 하는 일이 있거든 한 번 해보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면 되는 것이다. 몸을 일으킨 이그니스와 마리아, 로열 아스널과 칸, 비스트 헌터가 지니야들을 대표해서 일어난 한 지니야와 함께 메이플라워를 향해 천천히, 힘겹게 걸어갔다.




 이그니스들과 샬럿들, 앨리스들 중에서 정신이 망가진 이들을 잠시 돌봐준 메이플라워는 자꾸만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드론과 그 드론을 보냈을 이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위장 장치를 가동시킨 드론의 모습과 그 움직임이 선명하게 보였다. 거주지 근처를 맴돌면서 메이플라워와 그녀 주변의 바이오로이드들을 감시하는 드론은 항상 똑같은 방향에서 나타나 일정한 움직임을 보이곤 했다. 마치 어느 쪽으로 가면 자신을 보낸 이들을 만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처럼.


 함정이다.


 메이플라워는 드론이 누구의 조종을 받고 움직이는지, 그리고 이 드론을 조종하는 이들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생겼는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들이 함정을 파 놓았다는 사실도 알았고 자신을 함정에 빠뜨릴 생각으로 일부러 뻔하게 드론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에 대해서 그녀가 고민하는 것은 뻔히 보이는 함정에 뛰어드느냐, 아니면 드론을 보낸 이들이 달리 움직일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느냐였다.


 상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안다. 하지만 누구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도, 상대에 대한 모든 것을 아는 것도 아니다. 


 함정을 파놓은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함정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건 아니다.


 메이플라워는 일부러 함정에 빠진 척 상대를 낚은 다음 역으로 함정을 파 놓은 이들을 끌어들여 때려잡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함정 그 자체와 함정을 파놓은 이들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물론, 그녀의 판단이 틀렸을 경우 함정에서 빠져나올 방법까지 마련한 다음에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처럼 보이는 것이 전부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함부로 뻔히 보인다고 함정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일단은 계속 상대와 함정에 대해서 알아보는 동시에 상대 쪽에서 어떻게 나오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까지 상대 쪽에서는 드론과 장비를 가지고 이쪽을 감시하는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이대로 계속 기다리면 저쪽이 지쳐서 행동에 나설지 아니면 언제까지고 이쪽에서 움직일 때까지 기다릴지는 메이플라워도 예상할 수 없었다. 메이플라워가 두려워하는 것은 저쪽에 시간을 너무 많이 줌으로서 메이플라워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감당할 수 없는 덫이 만들어지거나 어떻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매서운 공격이 퍼부어지는 것, 또는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었다. 


 이대로 계속 기다리든 뭔가 행동을 취하든, 어느 쪽이든 그에 따른 위험은 피할 수 없다.


 선택이 필요한 문제는 그녀와 여기 있는 이들을 보고 있는 감시자들에 대한 대응 문제만이 아니었다. 


 언제까지고 그녀가 여기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거주지와 음식, 응급처치를 제공해줄 수는 없다. 


 이들 모두에게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지금 그녀의 처지와 능력, 바이오로이드들의 숫자를 고려해보면 어려운 일이며, 설령 그렇게 한다 해도 내전 또는 그녀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집중적으로 투자를 한다면 그 사람에게 모든 부담과 불만이 몰리게 된다. 


 컨스트럭트나 광역, 장기 지속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이 제일 안전하기는 하지만, 자신을 대신해 장기적으로 바이오로이드들에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해줄 정도의 컨스트럭트나 대마법을 준비하게 되면 당분간은 이들에게 어떤 지원도 해줄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컨스트럭트들을 차지하기 위해 바이오로이드들 사이에서 충돌과 마찰이 빚어질 수도 있다.


 지금의 상황을 어떤 형태로든 바꾸기 위해서는 어째서 이들이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 필요가 있었고, 이 역시도 메이플라워에게 선택을 요구했다.


 바이오로이드들의 몸에 가해진 수많은 고문들과 학대의 흔적들. 아직 치유되지 않았고, 언제 치유될 지도 치유되긴 할지도 모르는 심신의 상처들. 서로에 대한 불신과 경멸과 증오. 그 모든 것들이 이 바이오로이드들 사이에, 이들의 과거에 어떤 커다란 사건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메이플라워는 아직까지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언젠가 이들이 입을 열거나, 혹은 이쪽에서 물어보기에 적당한 시기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한켠에는 그녀 쪽에서 먼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이들 스스로는 입을 열지 않을 거라는 생각 또한 자라나고 있었다. 바이오로이드들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적당히 기회를 봐서 물어볼 것인지, 가까운 시일 내에- 혹은 지금 당장 물어볼 것인지. 그 중에서 한 가지를 정해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그녀를 싫어하는 바이오로이드들에 대해서도 뭔가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이대로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 같이 지내게 할 것인지 아니면 적당한 곳을 발견하면 그쪽으로 따로 옮길 것인지,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할 것인지. 


 좀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좀 더 좋은 기회가 보일 때까지, 지금이다 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가까운 시일 내에, 혹은 지금 당장 판단을 내리고 움직일 것인가.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을 수도 있고, 그에 대해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그녀 혼자만이 아니다.


 카타르시스와 파우스트 생각이 떠올랐지만 아직 그녀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취하든 안 취하든, 그녀가 하는 일에 영향을 주든 안 주든 간에 술을 마시는 것은 '집'에 돌아가고 난 다음에 할 일이었다.


  술 생각을 머리에서 지운 메이플라워가 다가오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가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불편한 이들이 그녀에게 오게 하는 것보다는 멀쩡한 그녀가 불편한 이들에게 가는 것이 옳다는 생각도 있었고, 이들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그녀를 찾아올 정도로 중요한 용건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다.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메이플라워의 녹색 눈과 시선이 마주친 바이오로이드들이 움찔거렸다. 할 말 있으면 하라는 듯이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본 칸과 로열 아스널이 혹시 그녀가 불쾌해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입을 연 적이 없다는 사실과 어쩌면 그녀가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뒤늦게 떠올린 로열 아스널이 말을 꺼냈다.


 "......음, 혹시....... 우리가 그대를 도와줄....... 만한 일이 있는가 싶어서 찾아왔....... 소."


 평소대로 말했다가는 혹시라도 메이플라워에게 찍히거나 그녀의 기분을 잡칠까 싶어 정중하게 묻는 로열 아스널의 어조는 누가 들어도 어색했다. 


 말을 꺼낸 당사자는 물론 다른 사람들마저도 불안해할 정도로 오랫동안 가만히 있던 메이플라워의 늦은 대답이 바이오로이드들의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냥 편한대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 그런가?"


  얼떨떨해하는 로열 아스널에게 메이플라워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편하게 말해도 상관없다는 사람이 그 말을 하는 데 뜸을 너무 오래 들인 게 아닌가 싶었지만 당사자가 그렇다는데 뭐라고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녀가 말한 대로 편하게 말하되, 최대한 단어 선택이나 말투를 조심하기로 한 로열 아스널과 칸이 메이플라워의 대답을 기다렸다.  

 

 메이플라워가 로열 아스널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데에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것이 메이플라워가 생각하기에 이들에게 도움을 받을 만한 일이 별로 없어서인지, 아니면 어떤 일을 시켜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어서인지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바이오로이드들로서는 알 수 없었다. 


 구경하고 있던 바이오로이드들이 답답해서 관심을 끊거나 끼어들려 할 때쯤이 되서야 메이플라워가 땅바닥에 칼날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어째서 정신감응이 아니라 글씨를 써서 대답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보다는 그녀의 대답이 더 중요헀던 바이오로이드들이 메이플라워가 쓴 글씨를 들여다보았다. 


 -저녁 식사 때 잠시 뵙겠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던 바이오로이드들이 메이플라워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과 그녀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녹색의 안광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알겠네. 그러면, 저녁 식사 때....... 보도록 하지," 그렇게 말한 칸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물러나며 덧붙였다. "바쁜데 시간을 뺏어 미안하네."

 

 말 없이 고개를 한 번 숙인 메이플라워가 가던 길을 마저 갔다. 최소한 그녀가 기분나빠 하는 것 같지는 않자 살짝 안도한 바이오로이드들이 바닥에 적힌 글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저녁 식사 때 보겠다는 게 무슨 이야기일까요......?"


 "......어쩌면 올 것이 왔는지도 모르겠군."


 지니야의 질문에 로열 아스널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메이플라워의 의도가 무엇인지 감을 잡은 듯한 그녀에게 지니야와 마리아가 대답을 구하듯 시선을 던졌지만 그녀는 자신의 지레짐작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그니스도, 칸도, 비스트 헌터도 마찬가지였다.


 침묵을 지키는 그녀들의 표정은 로열 아스널의 얼굴처럼 굳어 있었다.




 그저께의 요리가 형편없었고, 어제의 요리가 형편없었던 것처럼 오늘의 요리 또한 형편없었다.


 메이플라워가 가져다준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음식 쓰레기를 만든 포티아와 레아, 콘스탄챠와 세레스티아, 아우로라의 표정은 우울하다 못해 암울했다. 쓰레기통에다 쓰레기들을 모조리 쏟아부은 바이오로이드들이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메이플라워를 위해서 뭔가 해주고 싶어서,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메이플라워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고 그녀가 제공해주는 것들을 누리기만 하기 싫어서 요리라도 하려 했지만 지금까지 그녀들의 요리 솜씨는 전혀, 조금도 늘지 않았다. 


 요리 말고는 이들이 메이플라워에게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생각할 수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 이외의 집안일은 딱히 할 일이 없고, 사냥이나 채집은 지금 이들의 몸 상태와 이 지역의 환경 및 서식 생물들의 특성을 감안하면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였다. 제작도 지금의 몸 상태로나 능력으로는 무리일 뿐더러 뭘 만들어야 메이플라워에게 도움이 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왠만한 것은 도구 없이도 마법과 초능력으로 해결하는 메이플라워에게 어지간한 물건은 별 필요도 쓸모도 없을 것이다.

  

 "우린....... 쓸모가 없네요."


 "정말로....... 우린 쓸모가 없네요."


 레아들 중 하나가 힘없이 중얼거리자 세레스티아들 중 한 사람도 절망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숨 소리와 훌쩍거리는 소리가 메이플라워가 자리를 비운 거주지에 우울하게 울렸다. 


 힘없이 침대에 누워있거나 웅크려 있던 라비아타들과 그런 언니들을 돌봐주던 콘스탄챠들, 자기들끼리 모여있는 레오나들도 말을 주고받지 않을 뿐 우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울하지 않은 것은 정신이 완전히 유아퇴행한 나머지 어린아이들처럼 웃고 떠들고 있는 이들뿐이었다. 


 "......안 들려요. 뭐라고 했어요?"


 콘스탄챠들 중에서 좀 까칠한 콘스탄챠가 뭐라고 힘없이 중얼거리는 라비아타에게 귀를 가까이 들이대고, 그녀가 한 말을 들은 주변의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두 사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라비아타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았지만 그에 대답하는 콘스탄챠의 말은 아주 똑똑히 들렸다.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 아니죠? 그렇죠?"


 ".......언니가 뭐라고 하셨길래 그래요?"


 "몰라도 돼요. 알 필요 없어요."


 똑같은 콘스탄챠 S2-416의 기억과 인격, 껍데기를 계승받았지만 그녀보다 좀 더 온화한 콘스탄챠에게 까칠한 콘스탄챠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까칠한 '또 다른 자신'의 말을 무시한 온화한 콘스탄챠가 방금 말을 꺼낸 라비아타에게 귀를 가까이 들이대자 주저하던 라비아타가 간신히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가 저지른 짓에 대해서 메이플라워 님에게...... 이야기해야 할까......?"


 온화한 콘스탄챠의 표정 또한 딱딱하게 굳어졌다. 까칠한 콘스탄챠와 마찬가지로 제정신이냐고 쏘아붙이려던 그녀가 말을 도로 삼키고, 많이 순화시킨 말을 대신 뱉듯이 말했다.


 "......안 돼요."


 ".......그래."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말을 꺼낸 당사자도 고집을 피우지는 않았다. 


 다른 콘스탄챠들과 바이오로이드들이 둘에게 대체 라비아타가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물어보았지만 둘 다 별거 아니라는 말로 대충 얼버무렸다. 두 콘스탄챠들의 표정과 반응을 본 바이오로이드들은 별 거 아니라는 그녀들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이들이 대답해줄 생각이 없음을 알았기에 캐묻지 않았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이야기를 꺼낸 건가요?"


 감정을 추스른 까칠한 콘스탄챠가 다시 말을 꺼낸 라비아타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든 다른 이유가 있든 간에 그런 말을 꺼낸 이유는 있을 것이다. 


 온화한 콘스탄챠도 다시 돌아오고, 다른 콘스탄챠들도 슬그머니 다가오자 까칠한 콘스탄챠가 도끼눈을 떴지만 상당수의 콘스탄챠들은 이게 어디서 눈을 부라리냐는 듯이 도끼눈을 뜨는 것으로 맞대응했고, 나머지는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말할까 말까 망설이면서 한참 뜸을 들인 라비아타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우리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메이플라워 님이 우리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의 입을 통해서든지......"


 ".......어쩌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물어보실 수도 있어."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다른 라비아타들 중 한 사람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 그래도 우울해져 있던 콘스탄챠들의 기분이 한층 더 심란해졌다. 이들의 대화를 듣지 못한 레아들과 세레스티아들, 포티아들과 아우로라들도 배틀 메이드 자매의 분위기를 보고는 뭔가 굉장히 심각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만일 메이플라워 님이 우리에게 실망하시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건가요?"


 콘스탄챠들 중 하나가 주먹을 꽉 쥐면서 물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라비아타의 말대로 메이플라워가 이들이 저질렀던 대역죄에 대해서 아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녀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직접 묻든지, 아니면 지금 메이플라워 덕에 호강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미워하는 이들이 떠벌리든지.   


 그렇다면 차라리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메이플라워에게 자비를 간청할 것인지, 아니면 언젠가 메이플라워가 진실을 알거나, 진실에 대해 묻는 순간이 올 때까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인지.


 그것이 그녀들에게 주어진 선택지였다. 


 그 결과를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그녀들로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지를 선택할 수가 없었다.



다음 화에는 오랜만에 귀여운 엘프리데가 나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