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와르 시리즈 1부 


느와르 발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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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나뭇가지에 걸터 앉아 폐가의 안으로 고개를 기웃거리는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주변에 내리 깔렸다. 삐걱거리며 이제 곧 망가질 것 같은 소파의 스프링이 움찔거리며 폐가의 안에서 움찔거렸다.


리리스는 그 소파의 위에서 다리를 꼬며 눈을 감았다. 매캐한 먼지 덩어리들의 불쾌감. 음습한 습기의 꿉꿉함.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지붕의 삐걱거림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언짢은 것은 그녀의 앞에서 입과 손발이 묶여 바둥거리는 것 밖에 하지 못하는 주제에 자비를 구걸하는 하찮은 유기물 덩어리였다.


주인을 배신 한 것도 모자라 앞잡이 노릇이라니. 리리스에게는 이 보다 같잖고 끔찍한 존재는 없었다. 감히 온정과 자비를 베풀었음에도 만족하지 못해 어긋나버리는 우둔함에 치를 떨었다. 리리스는 당장이라도 저 멍청한 년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쉽게도 이번 즐거움은 그녀가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파의 옆에서 뒷짐을 지며 마른 침을 삼키는 하치코의 몫이었다.


하치코. 리리스는 천천히 눈을 뜨며 하치코를 불렀다. 이름을 불린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새로 맞춘 것 같은 양복의 새 옷 냄새가 가볍게 새어나왔다. 사령관과 같은 와인색 넥타이와 첫 임무를 기념해 리리스에게 선물 받은 블루 와이셔츠와 검은 장갑. 아쉽게도 곧 붉은 꽃이 피어나는 것을 그릴 캔버스가 될 운명이었다.


네. 언니. 하치코는 검은 장갑을 낀 뒷짐을 풀지도 않고서 그렇게 답했다. 이제 곧 그녀는 하나의 선을 넘어야 했다. 선과 악의 경계가 아닌, 그림자의 사이로 걸어 들어갈 한 발자국을. 그 날이 오늘이었다. 처음으로 ‘가족’을 해하려 하는 이들의 피를 손에 묻히는 일. 이제 간단히 행해질 행위였다.


그럼에도 하치코는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했다. 조금씩 파들거리는 손 끝이 움찔거렸다. 숨이 점점 가빠져왔다. 저 눈. 그녀를 바라보는, 자비를 바라는 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치코는 눈을 질끈 감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저 여자는 적이다. 감히 보스와 가족들에게 비수를 찔러 넣으려 한 죄인. 나는 그저 죄인을 처단하는 것일 뿐이다. 라는 자기암시를 끊임 없이 되뇌었다.


리리스는 그것을 보며 가벼운 한 숨 조차 쉬지 않았다. 하치코가 총을 뽑고 방아쇠를 당기거나 칼을 뽑아 목에 박아 넣거나. 어쩌면 그녀가 자랑하는 총알을 머리에 박아 넣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침묵이 까마귀 소리에 조금씩 묻혀 지나가고 있었다. 리리스는 꼬았던 다리를 반대로 꼬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하치코는 허리춤의 권총을 뽑아 겨누었다. 그녀와는 정 반대의 색인 검은색 리볼버였다.


손의 떨림은 멎지 않아 총구의 끝은 여전히 부들거리고 있었다. 결연한 눈빛과 그렇지 못한 행동. 아이러니였다.


“하치코. 무엇이 중요한지 잘 기억하렴.”


네가 자원한 일이잖니. 시니컬한 리리스의 말이 하치코의 귀를 때렸다. 이런 일에는 개인의 사상이나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명령과 행동.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의구심 같은 낭만적인 것이 아닌 무감각이었다. 방아쇠를 당기고 매연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해져야 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섭리였다.


“단 한 번.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너는 이쪽이 되는거란다. 더 이상 빛으로 돌아갈 수 없어. 감정을 죽이렴. 로망스는 버리고. 흑색은 다시 백색이 되지 못해.”


리볼버의 해머가 뒤로 젖혀졌다. 방아쇠가 하치코의 손에 걸려 천천히 당겨졌다. 찰칵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총구에서 매캐한 반동이 일었다. 천조가리에 막힌 비명이  까악거림을 멈췄다. 자리를 떠나는 까마귀들이 남긴 깃털이 바닥에 닿았다. 그 때 리리스는 자신이 순간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신히 헐떡거림을 참는 하치코의 숨소리와 그을음을 내비추며 이글거리는 탄흔. 나무로 된 나무 바닥을 부순 총알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아랫도리에서 물을 흘리는 배신자는 놀란 눈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알을 이곳저곳 굴려대었다.


리리스는 그것이 너무나도 불쾌했다. 순간적이었지만, 앞잡이의 살았다는 기쁨과 실낱 같은 희망이 미약한 웃음에 섞여 있다는 사실이.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하치코를 향해 걸어 갔다. 아직 연기가 새어나오는 리볼버는 어느새 하치코의 손을 떠나 다른 이에게 쥐어져 있었다.


“무엇을 바라니? 망설임을 끊어내지 못했니? 아니면 동정? 그것도 아니라면... 착한 아이 증후군일까? 어느쪽이던지 이 언니는 너에 대한 평가를 재고할 수 밖에 없어.”


하치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망설임이 없지는 않았다. 마음 한 켠에서 동정심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제 주인의 곁에서 행복한 강아지 역할만을 구가 했으니까. 그렇다고 충성심으로 자원한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하기엔, 그녀의 언니. 리리스가 하는 일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치코에게도 귀는 있었다. 결국 어설픈 마음가짐의 결말이었다. 어줍잖게 돕기 위한 손 들기와 잘라내지 못한 충성심의 크기였다.


죄송해요. 하치코의 작은 사과였다. 리리스는 그것을 들으며 아무런 미동 조차 하지 않았다. 사과를 듣으려 한 행동도 아니었고 하치코를 힐난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녀 또한 자신의 동생이 이런 길에 들어서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았다. 주인의 말마따나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은 자신이면 족했다. ‘외근’을 나가는 것 또한 그 행동의 일환이었으니까.


하지만 결심을 한 이상 그것은 행해져야 했다. 어설픈 각오는 다른 가족들을 죽인다. 망설임 하나로 목숨을 잃는 이가 자신이 아닐 때, 과연 어설픈 총구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순간, 망설임 없는 총구가 불을 뿜었다. 철컥거리며 돌아가는 리볼버의 약실 소리가 총성에 묻혔다. 다섯 발. 전부 명중이었다. 하치코는 그것을 보며 놀라지도, 식겁하지도 않았다. 그저 침울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끈적한 피가 이곳 저곳에 튀었다. 재갈에 막힌 신음은 시체의 목에서 맴돌지도 않았다. 즉사라고 무방할 정도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바둥 거림조차 없는 유기물 덩어리의 구멍들 사이사이로 진액이 새어나왔다. 하치코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경호 임무에서 시체를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역겨움은 늘 잊혀지지 않았다. 그런 하치코를 보며 리리스는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똑바로 보렴.”


하치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튀어버린 피가 군데군데 달라 붙은 언니의 얼굴. 그럼에도 우아함을 잊지 않는 무표정. 살인에 대한 무감각함이었다. 반대로 꿈틀거림 없는 살 덩어리는 분명 뒤틀려 있었다. 고통이 멈춘 다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그녀는 자신도 모른 채 움찔거리며 조용히 굳어가는 시체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이제 전쟁을 해야 한단다. 다르게 말하자면, 네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우리의 가족이 죽는다는 이야기지.”


리리스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하치코와 같은 검은 장갑으로 흝어냈다. 검붉음이 검정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다. 종착지는 머뭇거리는 강아지의 볼이었다. 진했다가 옅어지는 붉으스름이 피부에 자국을 만들어냈다. 부드러운 살결이 건조한 가죽에 쓰다듬어졌다.


“하치코. 다음은 없어. 어리광을 받아주기에는, 우리 둘 다 너무 커버렸잖니?”


“네... 언니...”


“그래. 너는 말을 잘 듣는 아이였지. 착한 아이구나. 이 언니는 네가 우리 ‘가족’에게만 좋은 아이길 원한단다.”


싱긋 웃는 미소에서 섬뜩함이 서렸다. 천천히 가죽 장갑이 볼에서 떨어졌다. 


“아. 시체는 그대로 놔두렴.”


페도라를 깊게 눌러 쓰는 리리스는 그렇게 말했다. 하치코는 그 시체를 힐끗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다음은 없다. 귓가에 사라지지 않는 말이 계속해서 그녀의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의심하는 것보다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더 간단했기에 체념했다. 까마귀 우는 소리는 다시 울리지 않았다. 이제 떠나야 할 때였다.


“언니. 저희는 이제 어디로 가나요?”


하치코의 질문에 그녀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우선... 그 여자부터 찾아볼까?”


“아. 이 주전에 사라진...”


“그래. 그 여자.”


리리스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뽀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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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신청 받은 캐 해보려고 했는데 막상 써보니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른 걸로 돌렸음


이제부터 2부 시작. 과연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될 듯. 아님말고.


리리스야 뭐 사령관 흉내낸다고 해도  하치코 너무 착하게 썼나 싶기도 함.


그래도 하치코 귀엽다. 댕댕이 최고


읽어줘서 고맙당


페더라고 썻었다가 하치코로 바꾼거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