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와르 시리즈 1부 


느와르 발키리 / 하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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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 가득 담은 달을, 콘스탄챠는 제 눈에 담았다. 너무나도 밝은 밤이었다. 밤빛 머리가 찰랑거리는 것이 하나. 술잔에 독한 보드카를 담는 그의 주인이 하나. 그리고 침묵이 하나. 어우러지지 않는 아이러니함만이 남아 있는 사령관의 방 안에서 그녀는 그의 뒤에서 조용히 손을 무릎 위로 모아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아 순수하게 빛나는 보드카가 술잔에 내리 담겼다. 지나치게 독한, 어쩌면 사령관의 속을 태워버리지 않을까라는 걱정마저 들게 만드는 액체가 목을 타고 흘렀다. 신음 소리 하나 없이 비워지는 글라스에는 얼음 하나 찰랑거리지 않았다.


한 잔. 두 잔. 종종 집게에 짤그락거리는 얼음들. 아이스버켓에서만 맴도는 차가움은 담기지 못하고 서서히 달밤에 녹고 있었다. 그러다가 글라스와 술병이 마주치는 소리가 울렸다. 청아하게 울리는 공기의 진동이었다.


콘스탄챠. 사령관의 첫 마디였다. 그녀는 한 발자국 앞서 나가며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주인님. 외람된 말이지만, 걱정이 많아 보이세요.”


사령관은 제 옆에 쌓여 있는 보고서 뭉치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같은 말만을 늘어 놓기만한 제 할 일을 잃어버린 쓸모 없어진 종이 뭉치들이었다. 그는 가벼운 한 숨 대신 장갑을 낀 손으로 글라스의 겉면을 만지작거렸다. 톡톡 치기도 하고 강하게 쥐기도 했다. 가죽으로 느끼지 못할 굴곡들이 마찰을 일으키며 소리를 냈다.


콘스탄챠. 그는 다시 그녀를 불렀다. 심경의 복잡함을 알리는 증거였다. 콘스탄챠는 가벼운 한 숨을 속으로만 내 쉬며 가장 가까히 놓여 있는 위스키를 들어 그에게 다가갔다. 자연스럽게 들리는 글라스에 호박색 액체가 서서히 담겼다. 초록색의 눈이 액체의 사이로 검은 색 눈을 보았을 때 그의 눈에서는 공허함과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다.


위스키가 만들어내는 곡선이 서서히 얉아졌다. 하지만 능수능란한 메이드의 행동과는 거리가 먼, 가득 담겨 찰랑거리기까지 하는 글라스의 술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그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행하는 완곡한 걱정이었다. 사령관은 조금 솟아 올라 타원을 이룬 액체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기울여 조금 술을 입에 머금었다. 이제야 조금 부족하게 담겨진 글라스가 책상 위에 올려 놓아졌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액체는 지나치게 뜨거웠다. 온도가 아닌 타오르는 고통이. 계속해서 스쳐 지나가는 술을 타고 고민도 넘어가면 좋으련만. 사령관은 계속해서 남아 있는 감정과 문제들이 야속했다. 짓이기고 뭉개도 언젠가 돌아와 머리를 휘젓는 골칫덩어리들. 해결되지 못한 것들이 뭉쳐 막혀 있었다.


“뽀끄루 씨의 문제인가요?”


제 주인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은 메이드의 의무였다. 하지만 그것을 밖으로 내 뱉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사용인은 제 주인을 위해 일해야한다. 심기를 거스르거나 해를 끼치는 일은 허락되지도 못할 중죄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본심을 내 뱉었다. 더 이상 주인을 좀 먹는 의심암귀와 사념에서 그를 끌어내야만 했으니까. 그것이 등 뒤를 허락받은 여자의 의무였다.


사령관은 조용히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쳐댔다. 반듯하게 꼰 다리는 움직이지도 않았다. 일정하게 울리는 박자 사이에서 그는 입에 남아있는 잔향들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말했다.


“그녀는 떠났다. 내가 아무리 너희를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묶어 두었지만 자유 의지를 막는 것은 내 일이 아니야.”


“그럼에도 리리스 양을 보내셨죠.”


“배신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야 해. 사령관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그것을 원했다. 자신을 떠난 것이 배신이 아님을 바랬다. 어쩌면 자신의 손으로 뽀끄루를 죽이고 싶지 않았기에 집착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감정을 묻은 것이지, 죽인 것은 아니었기에. 다시금 글라스가 움직였다. 위스키. 호박색이 달을 머금어 그의 목으로 흘러 들어갔다. 비워진 술잔의 사이에는 잔향만이 맴돌았다.


“주인님. 무엇을 고민하시나요.”


“내 안일함으로 너희와 그녀. 모두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잡아 먹힐 것이. 지나치게 평온한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콘스탄챠는 그 말에서 단 하나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는 것. 그렇기에 그녀는 그를 따랐다. 등 뒤에서 그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


“사람은 변해. 뽀끄루는 변했기에 말도 없이 떠났다. 그 뿐이다.”


“하지만 주인님께서는 변하지 않으셨어요.”


“나는 그래야 해. 그렇게 해서야 지킬 수 있었지.”


자신에게 엄격한 이의 한탄이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도, 울렁거리는 감정도 뱉어서는 안되는 자리였다. 그는 언제나 강해야했고 슬퍼하지 않아야 했다. 나약함을 보이면 물어 뜯긴다. 세상은 그런 곳이었다. 제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수컷의 허세였다.


“콘스탄챠.”


네. 주인님. 콘스탄챠가 답했다. 그녀는 제 주인을 ‘보스’라고 칭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젠가 바뀌어버린 호칭들 사이에서도 바뀌지 않은 것은 그녀의 고집이기도 했거니와 일종의 안전 장치였다. 사령관이라면, 그가 바뀌었을 때 듣게 될 호칭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테니까. 물론 다행스럽게도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는 그녀에게 있어 처음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것이 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주인님께선 저를 구해 주셨죠.”


너무 많아. 그는 그렇게 답했다.


“첫 만남이요.”


“그때의 너는 구해진 것이 아니다. 내가 멋대로 구한 것이지.”


그래. 멋대로. 사령관은 그렇게 말의 끝맺음을 지었다. 말마따나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사령관이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에 깔린 콘스탄챠를 구한 것부터 시작이었다. 그녀는 은혜를 갚기 위해 메이드가 되기를 자청했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시답잖은 이야기였다.


“그럴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때의 주인님께서는 타인인 제 사정을 듣지도 않고 손을 내밀어 주셨죠.”


“이유는 필요 없었으니까.”


“네. 맞아요. 그리고 가족을 구하는 것에도 이유가 필요하지 않죠.”


사령관은 천천히 눈을 뜨며 달빛에 비춰진 콘스탄챠의 초록색 눈을 눈에 담았다. 은은한 미소와 함께 다소곳한 몸짓. 그럼에도 한 발자국 멀리서 자리잡는 섬세함. 사령관은 그것을 바라보며 품 안의 담배갑을 꺼내 들었다.


입에 물린 담배가 까딱거렸다. 그 다음은 콘스탄챠의 몫이었다. 품 안에서 나온 성냥의 머리에 불이 붙었다. 약하게 타오르며 피어오르는 초콜릿 향. 입에 머금어졌다가 퍼져 나가는 연기가 천천히 책상 위로 내리 깔렸다. 그는 다시금 약하게 눈을 감으며 그 향을 음미했다.


깊게 들이 마셨던 향이 내뱉어지고, 그을려 쓸모 없어진 재가 재털이에 툭하고 떨어졌다. 조금씩 짧아지는 하얀색 몸뚱아리가 반 쯤 남겨질 때 쯔음 그는 담배를 입에서 때어내어 조금씩 비비며 짓눌렀다.


“콘스탄챠. 너는 언제나 나에게 종용을 권하지. 오늘도 마찬가지고.”


“그것이 메이드의 의무에요. 주인님. 그러니, 이번에도 멋대로 구해보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어쩌면 뽀끄루 씨도 그것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콘스탄챠는 순간적으로 그녀를 떠올렸다. 자신과 같은 배틀메이드였던 그 하나의 난초를. 제 옆에 나란히 서 사령관의 등을 지켰던 여자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소중한 이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괴로움을 심어준 여인. 가혹하리만큼 남아 있는 무력감과 상실감의 트라우마 덩어리. 삶에서 가장 화사하게 피었던 꽃이 지며 문드러진 것이 괴로움이라니. 아이러니였다.


사령관은 그 말을 들으며 다시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짓이겨진 잿더미에서  은은하게 피어 올랐던 연기가 서서히 줄어들 때 즈음 그는 보고서의 키워드를 조용히 읆조렸다.


“델타의 구역. 마약. 밤의 가수. 배신. 명분.”


하나 둘 씩 끼워 맞춰지는 단어들 사이에서 그는 마지막 한 단어를 중얼거리며 글라스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글라스에 위스키의 포물선이 그어졌다. 


“가족.”


이번에는 절반 정도 채워진 호박색 액체가 사령관의 손짓에 맞춰 찰랑거렸다. 넘치지 않는 우아한 포물선들이었다. 그는 오늘 밤의 마지막이 될 술잔을 기울이는 대신, 콘스탄챠에게 말했다.


“방황을 하는 이들은 도중에 나아갈 길을 잃기도 하지.”


콘스탄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냉정한 말 사이에서 느껴지는 고양감. 오직 그녀만이 이해할 수 있는 목소리였다. 냉철함 속에 숨어있는 본심. 내 뱉어진 말에는 언제나 그런 감정들이 숨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너무 늦는군. 마중을 나가는 수 밖에 없겠어.”


“네. 주인님의 뜻대로. 그러면, 리리스 양을 대기시켜 놓을까요?”


사령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미건조한 무표정의 얼굴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배신자라는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만약에 정말로 배신이라면...”


서랍이 열리고 리볼버가 달빛을 머금으며 반짝거렸다. 과거, 끊어내기 위해 방아쇠를 당겨야 했던 남은 총알 하나와 같이.


“내가 끊어 내겠다. 그것이 보스로써의 의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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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고 쓴거라 이게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겠다 일단 질러


주당 최소 하나씩은 써야하는데 짬이 안나네 미안하다아ㅏ아


다음 뽀꾹이 편은 좀 빨리 써보도록 노력함 아니면 댓글문학을 열던가 해야할듯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