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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ㅎㅇ



* * *








"깊은 바다… 심연… 그 공포를 모르는 어리석은 말이군. 후후, 하긴 평범한 이가 그 코즈믹 호러블한 감각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


폐하의 뒤를 지키며 뒤따른 곳은 격납고였습니다.


오르쿠스급 핵잠수함, 오르카 1호.


폐하의 벗, 요람, 방주…


…제가 태어난 곳.


오르카에 대한 설명을 들으신 폐하는 저를 돌아보셨습니다. 

저는 고개를 숙였지요. 


아직은 마주 뵐 수 없습니다.

제가 폐하를 똑바로 마주보는 것은, 폐하께서 육체적으로 모두 준비되셨을 때.


"귀공, 듣고 있나?"


"…"


"귀공?"


지척, 귀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불렀어요?"


"…? 귀공. 괜찮은가? 아까부터 계속 멍한 상태이지않나. 말도 한마디 없고."


지금 막 제 어깨에 손을 올린 이 갑주 차림의 개체는, 기억이 맞다면 요안나라는 개체입니다. 요안나는 제 어깨를 살살 흔들어보며 반응을 살핍니다. 눈이 점점 가까워져서, 저는 요안나의 팔을 쳐내려다가 웃음지었습니다.


"괜찮답니다. 조금 생각할 것이 있어서."


"그렇다면 다행이네만. 그나저나 대단한 무력이었어. 순식간에 철충 다수를 대파한 것도 모자라 이 소녀까지 구해내다니."


이 소녀라는 것은 LRL입니다.

제쪽이 신경쓰였는지 지금 막 다가 온, 작은 개체.


"후. 후. 후. 알아본 게지. 이 몸에 둘러져 있는 영속적인 고귀함을. 구하지 않고서는 못배겼던 게야."


그렇다고 합니다. 안대 옆에 꺾인 V자를 그리면서요.


요안나와 LRL의 사이에 시선을 두고 있는데, 요안나가 말했습니다.

의아하다는 어조였습니다.


"…좀 이상하단 말이지."


요안나의 눈이 게슴츠레 좁혀졌습니다. 그냥 의아한 것이 아니라 의심스러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아, 실례. 아르망 추기경이 그렇게나 대단한 무력을 가졌던 이였던가 싶어서. 짐이 기억하기로 귀공은, 음… 검과 화약보다는 장서가 어울렸네만."


이제부터 너한테 어울릴 것은 관짝이 아닐까?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만, 참아야 합니다.


이젠 저도 저항군이니까요.


그래요. 요안나. 이 사제여왕은 계열이 달라도―저는 빌런즈입니다.― 저와 같은 덴세츠제 바이오로이드입니다. 그러니까 저를 안다는 듯이 말한 건 이상하지 않습니다. 멋들어지게 폐하 앞에 나타난 저에 대해 설명한 것도 요안나였던 것 같고요.


"검과 화약을 다룰 기회가 있었다고만 말씀드려도 이해해 주시겠죠? 사제여왕 님. 저희가 항상 시대극만 펼쳤던 건 아니었잖아요?"


"…으음."


요안나는 저에 대해 골몰하느라 턱을 매만집니다. 


둘 사이를 지나쳐 오르카로 다가서려는데, 다시 요안나가 붙잡았습니다.


"귀공만한 무력을 가진 이가 있었다면 풍문이 돌지 않았을 리도 없는데… 이상해. 각지에 퍼졌던 분대에게서도 보고가 없었고."


상당한 무력을 가진 바이오로이드 개체가 있다. 라는 보고가 없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저항군은 정보력에 자신이 있었던 걸까요. 정말로 마주친 적이 없다는 경우도 존재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뭐 사실 몇몇 분대와 마주친 적이 있긴 했습니다만, 제가 전부 몰살시켰다는 건 비밀로 두는 편이 좋겠죠.


저는 요안나에게 이제 그만 봐달라는 시선을 보냈습니다. 요안나는 좀 더 저를 바라보다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뉘앙스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딱히 의심할 필요가 없는 거겠죠. 의심이 든다한들 저는 말할 생각이 없고, 요안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아르망'이 존재할 수 있게 된 경위는 알 수 없습니다.


"그대, 내 마음에 쏙 들었어." 


요안나 다음으로 LRL이 말했습니다.


"어떤가? 이 몸의 두 번째 권속이 될 영예로운 기회를 주도록 하지. 후후… 고작 한조각일 뿐이지만, 그 권능의 한조각만으로도 그대 또한 영겁의 존재가 될 터…"


"첫 번째 권속은 누구죠?"


"으, 응…?"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는지 LRL은 당황스러워 했습니다.


"처, 첫 번째 권속은… 이, 인간으로 삼을 예정인데…"


"폐하?"


"히익…!"


"뭐야 이 바보. 또 왜 이래?"


그리폰까지 다가왔습니다. 폐하와 재회하고 얼마 안 된 지금까지, 몇 번이나 LRL을 바보라 부르던 개체입니다.


제가 보기엔 그리폰 쪽이 더 바보 같습니다.

행동거지말고, 외모 쪽이.         


"누, 눈이 무서워…"


그리폰 뒤에 숨은 LRL이 제게 검지를 세웠습니다. 짜증났습니다. 도시에서 놀 때나, 폐하께 향하던 길에 마주쳤던 바이오로이들 중에도 몇 명이 그랬거든요. 모조리 머리통을 날려버렸지요. 검지도요. 어디 감히 주제도 모르고 삿대질을 해댔던 건지. 


짜증을 억누르고 평온한 얼굴을 내보인 다음,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올려 예를 표했습니다.


"제의는 고려해보겠습니다. 고명하신 진조, 사이클롭스 프린세스 님."


풉.


이만하면 아르망다운 반응일 겁니다.


이젠 정말 오르카로 향하려고 지나쳐가는데 그리폰이 붙잡았습니다. 참. 왜이렇게 한마디씩 덧붙이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자신들이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도 모르나 봅니다.


"아르망 추기경이랬나? 너무 그렇게 보지 말아줄래? 바보가 바보짓 했을 뿐이잖아."


"바보짓이라뇨.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뭐 어떻게 봤다는 건지요? 별로 아무 생각 없었는데."


"그런 것 치곤 날이 서있던데?"


"잘못 보셨겠죠."


"그래? 그럼 다음에 바보 상대할 때는 손거울이라도 들고 있는 건 어때?"


"그것도 고려해보죠. 권속 제의 다음으로요."


아르망답게 웃어주고 그리폰을 지나쳤습니다.


"…싸가지…"


그렇게 중얼거립니다. 싸가지라니. 기싸움을 건 것은 제가 아니라 그리폰입니다. 조우했을 때부터 제 어디가 마음에 안드는 건지 아주 거슬리는 눈으로 보기도 했고요. 이 정도로만 끝낸 게 다행인 걸 그리폰이 알아줬으면 좋겠는데요.


폐하께 갔습니다. 폐하와 함께 있던 콘스탄챠가 오르카에 오르면 잠시 휴식하기로 했다고 전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먼저 오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르카에 올라 내부로 들어가려던 순간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따라 오시던 폐하셨습니다.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 듯 해서, 저는 발걸음을 빨리 했습니다. 


폐하와 따로 대화하는 상황이 생겨서, 폐하의 얼굴을 정면에서 마주보는 것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폐하는 완전하지 않으시니까.


제가 폐하 앞에서 고개를 드는 것은, 폐하께서 육체적으로 완전해지셨을 때입니다. 그렇다고 얼굴을 봐두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등대를 내려오며 곁눈질로 확인한 폐하의 얼굴은 절반이 새카매서, 흰색이었다면 오페라의 유령이라 여겨도 될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얼굴은 제 폐하가 아닙니다. 그런 몸은 제 폐하가 아닙니다. 따라서 폐하가 폐하임을 알아볼 수 있는 그 눈빛도 지금은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목소리는 비슷한 것 같지만… 확실하게 눈으로 구분 할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품게 되시는 것은, 아마도 좀 더 훗날.


익스큐셔너를 처치하고 찾아낸 생체 재건 설비를 통해 새로운 육체를 얻으신 날.


그 날이 와야 저는 지금의 폐하가 150년 전의 폐하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이 즈음에서 다시 정리해볼 때였습니다.


남자의 말대로 폐하는 정말 나타나셨습니다. 유성처럼. 아쉽게도 그 유성을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콘스탄챠와 그리폰, 요안나와 동행하시던 걸 보고 추측했을 뿐이지요. 


집중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콘스탄챠, 그리폰, 요안나.


제 기억과 똑같습니다. 150년 전과 똑같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150년 전의 제가 기록물 보관소에서 열람한 자료의 내용과 동일했습니다. 저는 본래 할로윈에 태어난 복원 개체이기 때문에, 지난 폐하의 족적은 기록으로 밖에 알 수 없었습니다. 


오르카에 당도하고, 바이오로이드들을 구출하고, 자원을 수집하고, 설비을 확충하고, 스토커를 상대로 미끼 전략을 사용하고, 프레데터를 제거하고, 트릭스터를 쫓고, 철로에서 레이더를 상대하고, 깊고 깊은 지하의 언더와쳐를 돌파하는,


제가 모르던 그런 폐하의 시간들이,


과연 똑같이 펼쳐질까요.

앞으로 보내게 될 시간들은 150년 전과 동일할까요.

폐하는 정말로 나타나셨고, 이번에도 콘스탄챠와 그리폰과 요안나가 최초의 동행자들이었으니 혹시.


150년 전엔 기록으로 밖에 알 수 없었던 그런 시간들이, 펼쳐질까요.


그러리라고 생각합니다. 폐하는 정말로 나타나셨으니까.


그렇다면 제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저는 이제 복원 개체가 아닌 멸망 전 개체라는 것.

앞으로의 전개가 예상되어도―기억과 동일하더라도― 처음인 양 행동해야 한다는 것. 

뭐, 저에 대해 말해도 아무도 안믿겠지만.


그리고,


철저히, 이용해야 한다는 것.


"아르망. 여기 있어?"


사령관실―과거엔 폐하의 집무실, 함장실, 여러 명칭으로 불렸습니다만, 명칭이야 어쨌든.―과 두 칸 떨어진 방이 열렸습니다. 오르카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들른 곳이죠. 제 집무실로 삼기 위해서요. 마음 같아선 폐하가 쓰시게 될 방 바로 옆으로 하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실수할 것 같아서 적당히 타협했습니다.


"폐하? 어떻게 아시고 오셨어요?"


저는 책상 뒤에 앉아 있었고, 폐하는 오늘부터 제 공간이 된 방을 고개만 돌려 둘러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다 뭐야?"


책장에서 책 하나를 꺼내서 좌르륵 펼쳐보십니다.


"제 짐이에요."


일단은 책장과 책만 풀어뒀습니다. 어디에 챙겨 가져왔냐고요? 장갑이요. 그 저택이 남자의 가방에 담겨져 있던 것이라면, 제가 받은 장갑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가능했습니다. 책, 술, 담배, SUV, 노래방 기기, 셋톱박스, TV... 많은 것들을 담아왔습니다. 그냥 저택을 통째로 담아오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요.


"으음... 아르망." 폐하가 책을 덮었습니다. "혹시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네?"


"인사만 하고는 여태 아무 말도 없길래. 혹시나 해서."


"폐하. 반대로 여쭤볼게요. 혹시 제가 신경쓰여서 곧장 이리로?"


"응? 그런데?"


일어서서 폐하께 다가갔습니다.


"계속 눈을 제게 향하고 계셨나요? 하우스… 콘스탄챠 씨랑 대화하는 중에요?"


"어…? 그런 건 아니고… 아르망 엄청 강하길래, 밉보인 거면 곤란하겠다 생각해서…"


"폐하."


폐하의 말허리를 끊었습니다.


"고개 숙여보세요."


눈을 여러 번 껌뻑이십니다.

의아하신 것 같습니다. 


폐하가 천천히 고개를 숙입니다. 


"내밀어보세요."


폐하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회백빛이 도는 얼굴은, 살짝만 건드려도 균열이 생길듯한 가녀린 백자 같았습니다. 눈에는 아주 인공적인 빛이 돌아서,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운 색깔이었습니다. 


저도 참. 그날까지는 폐하의 얼굴을 보지말자고 다짐했는데.


"더 내밀어주세요."


폐하는 눈을 여기저기로 돌리며 망설이셨습니다. 제 말에 따라버리시면 코가 맞닿을 거리였으니까요. '더 다가와 주세요.'가 아닌 '더 내밀어주세요.' 라고 말씀드린 것도 한몫했을 겁니다. 의미야 같지만 후자 쪽은, 살짝 위압적인 느낌이니까요. 물론 제 진심으론 전자야말로 채택하고픈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폐하."


아직은 폐하가 폐하인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요.


"부끄러우세요?"


서로의 얼굴이 교차하고, 폐하의 귀에 소곤소곤, 속삭였습니다.


"부끄럽지 않…지는 않네."


어색하게 웃으십니다.


귀여워.


이렇게 숫기가 약한 모습은 과거의 폐하와 닮으신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좀 더 짓궂게 굴어봤습니다.


"폐하. 저 어땠어요? 아, 움직이지 마세요. 이대로."


양손으로 폐하의 옆구리를 꽉 잡았습니다. 

그대로 등까지 파고들고 싶었습니다.


"어땠냐고?"


"폐하 앞에, 제가 인사드리러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음..."


"폐하. 빨리. 이대로 있다간 누가 올지도 몰라요? 그러면 더 부끄러워지셔요?"


"멋있었어."


아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


다행이야.


위기의 순간에 등장하는 검을 든 강한 여주인공.


그저, 나.


그야말로 운명적인.


폐하께 제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조금은 걱정했었습니다.


폐하께 기이한 인상을 드리고 싶진 않았습니다.


딱 필요한 상황에 등장하는 것은 분명 멋있습니다. 심플하지만요. 하지만 심플 이즈 베스트니까. 그러나 그건 제 생각일 뿐이고, 폐하는 불현듯 나타난 의심스러운 개체라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근데 뭐, 폐하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계획된 운명의 첫 단추는 잘 꿰어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잘 꿰어지길 바랍니다.

마지막 단추까지 꿰어지면,

그 단추들을 단번에 통째로 뜯어버리고, 

폐하를 나체로 만들겠습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할 것 같아. 그러니까 아르망. 오늘은 쉬도록 해.난 일단 포춘 누… 포춘에게 여기저기 안내받아야 하니까…"


"그래요. 폐하, 무리하지 마시고요."


내일 봐요. 폐하.


이미 밤이었으니 침대에 누웠습니다. 침대가 따로 없었으므로 장갑을 통해 꺼낸 것이었습니다. 담요도요. 


이곳은, 처음 왔지만 제가 태어났던 곳.

내 족적은 없으나, 존재했던 곳.


이곳이야말로 제가 쌓아올릴 수 있는 장소이겠죠. 진정으로 쌓아올릴 수 있는 시간이 펼쳐지겠죠.


범고래는 이미 헤엄치기 시작했는지, 간간히 육중한 구동음이 벽을 타고 들려왔습니다.


눈을 감았습니다. 범고래의 품에서, 저는 잠을 청했습니다.


그날, 꿈을 꿨습니다. 

꿈의 내용은 비밀입니다.

그저, 아주 행복한 꿈이었다고만 말해두겠습니다.


새벽에 잠시 잠에서 깼습니다. 꿈치고는 모두 기억 났기 때문에 행복한 여운이 머리에 감돌았습니다. 그 여운을 그대로 품에 안고 다시 잠을 청하려다가, 기록실을 찾아갔습니다.









* * *






아르망이 오늘 폐하를 뵙습니다.

저는 인류가 멸망하기 이전, 샬럿이 주인공인 시대극의 진행을 맡기 위해 제조된 기종이랍니다.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희가 연기하던 극은 한없이 실전에 가까웠기 때문에 돌발 상황도 빈번하게 발생했었죠.


덴세츠사에서는 그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극에서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제 연산 기능을 특별히 높게 조정해서 투입시켰답니다.


그런 이유로 제게 충분한 자료와 근거만 주어진다면 저는 미래 예지에 가까운 결과 예측이 가능하죠.


씁쓸하게도… 기록에 의하면, 이러한 제 능력은 총사 대장의 폭주를 막는데 주로 쓰였다고 해요…


하지만 인류가 멸망하고 라비아타에 의해 복원된 지금은 철충들과의 전투에서 전황을 예측하는데 유용하게 쓰고 있지요.


제가 자비로우신 폐하의 옆에 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저는 제가 가진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폐하께서 현 사태를 수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어요.








* * *







다음날, 함교에서 다시금 통성명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폐하께서 원하신듯 했으니 저야 따랐지만, 그리폰이 노골적으로 마음에 안든다는 시선을 쏘아대는 걸 보아 상당히 무뚝뚝한 소개였던 것 같습니다. 뭐 그리폰과는 첫인상부터가 최악이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도 상성은 절망적으로 좋지 않겠죠.


빨리 주제를 알았으면 좋겠는데.


"좋아. 다섯 명은 오늘부터… 21스쿼드야."


"…아하."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신 거군요.


저를 제외한 네 명은―네 개라 하고 싶지만― 그저 특별한 편성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인간에게 직접 명명받는다는 것이 그렇게나 기쁜가 봅니다. 저야 뭐, 마냥 기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기쁘지 않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기쁨보단 묘한 기분이 더 컸거든요.


빌런즈에서, 21스쿼드라.


"혹시 별로야?"


제가 신경쓰이셨는지 폐하께서 다가와 물으셨습니다. 함교의 창을 보자 그곳엔 눈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고개를 저어 황급히 웃는 얼굴을 만들었습니다.


"아뇨. …괜찮네요. 21스쿼드."


이날부터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이 펼쳐지게 됩니다.


폐하는 등대에 통신기를 설치하셨다는 듯 합니다. 포츈에게 부탁받아서 말이죠. 

그것도 오밤중에, 제가 자는 사이에.


포츈을 조져버릴까 생각했지만, 이것은 좋은 구실이 될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는 저를 빼놓지 마시라는, 엄포의 구실.


그리고 정말로 폐하는 저를 빼놓지 않으시게 됩니다. 어지간히도 충격이 크셨던 것 같았습니다.


조금 몰아세웠을 뿐, 뭐라고 했길래 폐하가 저를 빼놓지 않으시게 된 건지는 생략하겠습니다. 난처해하시는 폐하는 꽤 귀여웠습니다. 


AGS들과 바이오로이드들을 구하고, 성가시게 구는 스토커를 처리했습니다. 폐하께서 미끼가 되는 위험한 작전이었지만, 정말로 속전속결로 끝내버렸기 때문에 스토커는 레이저 한 줄 쏘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최전선에 섰으니까. 저는 다 알고 있었으니까.


"아르망 진짜 강하다… 내가 따로 지휘 안해도 되는 거 아냐…?"


"후후… 과찬이세요. 저는 반드시 폐하의 지휘가 필요하답니다?"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인간을 죽일 수 있게 된 접니다. 그런데 철충이라고 어려울까요. 폐하와 뵙기 전에는 지루한 게 싫어서 수십 수백마리를 죽여봤고, 바이오로이드도 그 비슷한 숫자를 죽여봤습니다. 어느 쪽이 더 지루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면, 후자라고 말하겠습니다. 반응이 다채로웠거든요.


지금의 아르망은, 실은 폐하의 지시는 전혀 필요 없다고 해도 됩니다.


때문에, 마리를 구하기 위해 프레데터를 상대했던 때에는 조금 무리를 해버렸습니다. 작살난 프레데터의 머리통 처럼 제 다리도 작살나버렸지요. 한동안은 계속 수복실에 누워있어야만 했습니다. 이런 피해는 그 남자의 수복캡슐 한 알이면 몇 십초도 안되서 회복되는데.


그래도 그 수복캡슐이 없는 지금이 더 좋았습니다. 폐하가 제 옆에 꼭 붙어있는 시간이 많아졌거든요. 처음 몇 일은 엄청 화를 내셨지만, 저는 그 분노마저도 사랑스러웠습니다. 약 냄새와 알코올 냄새, 무광 리놀륨 바닥까지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폐하가 진지하게 화를 내시는데도 저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다음엔 꼭 폐하의 지휘에 따르겠다고 애교를 부렸습니다. 


제가 그렇게 걱정되셨어요? 제가 드러누웠다고 식사 거르시는 건 아니죠? 죄송해요? 식사 준비 못해드려서. 콘스탄챠가 차리는 식사는 입에 맞으시나요? 아하하. 폐하.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 안죽었잖아요. 어머. 화내는 얼굴 귀여워. 폐하. 얼굴 꼬집어봐도 돼? 내일부턴 마리가 올 거라고요? 폐하 바빠? 응? 마리가 고맙대요? 아뇨아뇨, 폐하. 폐하가 오세요. 마리 들이지 마요. 그나저나 폐하. 저 환자복 어울려요? 냄새 맡아 볼래요? 이런게 병원 냄새라는 건데. 아, 병원이 어떤지 모르시는구나? 아하하. 귀여워.


이런 시간을 마련하려고 일부러 부상을 당했다는 건 비밀로 했습니다. 구출한 바이오로이드 중 선의로 임명된 다프네가 고개를 몇 번 갸웃댔지만, 그래요 뭐, 모르겠죠.


트릭스터를 쫓게 됐을 때엔 거의 확신했습니다. 150년 전과 동일한 사건들이 시간에 따라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걸. 150년 전과 완전히 같다는 걸. 똑같이 전개되는 건 아닐까 크게 긴가민가하던 날엔, 예지를 사용해볼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관뒀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지를 한 게 도대체 언제인지 모르겠거니와, 그래서 예지한다한들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냥 하기가 싫었습니다.


그야 저는 바이오로이드가 아닌 걸요. 예지는, 바이오로이드 아르망이 하는 거니까. 예지해버리면 스스로를 바이오로이드로 격하시키는 꼴이니까. 


인간만이 가진 돌발성과 임의성을 어우러뜨려서, 폐하와 저만의 특별한 관계성을 자아내고 싶으니까.


폐하에 대한 십 수만 분의 경우를 상정하고 그 경우에서 몇 가지 경우를 제하고. 그런 게 무슨 인간이란 말인가요. 예지를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냐는 거에요. 아무리 기억 속의 기록과 똑같은 사건들의 연속이라고 해도 직접 보고 느끼는 경험과는 비할 바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 기록과 완전히 동일하게 전개되지도 않아요. 할로윈에 복원되야 할 아르망이 멸망 전 개체가 된 시점부터 그랬지만요. 


그러니까, 영화에 비유하자면요. 재편집 같은 거죠. 확장판, 감독판같은 거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아르망으로 재편집되는 영화.


"살려줄게."


숲으로 달아난 트릭스터를 제압하고,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래도 있지. 나중에 구별은 해야되니까 혀는 자를게?"


웬만해선 사용하지 않는 참수검을 꺼내서 트릭스터의 혀를 베었습니다. 순식간이었기에 트릭스터의 괴성은 좀 늦게 들려왔습니다.


"어서 가렴? 두쪽 내버리기 전에. 빨리 가서 에바 머리통을 날려버려."


"아르망! 상황은!?"


체액을 휘날리며 멀어지는 트릭스터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교신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놓쳤어요."


"이런… 어쩔 수 없지. 자네같은 강한 개체가 있었기에 손쉽게 밀어붙였던 거니까. 역시 혼자선 힘들었겠지. 내 오판이었다. 자네 쪽에 인원을 붙였어야 했는데."


착하네. 


마리의 한숨이 계속 들려와서 통신기에서 귀를 뗐습니다.


"각하께 면목 없게 됐군."


"저 들으라고 하는 소리세요? 그만하시죠? 트릭스터야 다시 잡으면 그만이잖아요."


"그래… 한숨 쉴 때가 아니지. 복귀하게. 자네에게도 면목 없군. 작전 수립에 각하의 보좌에 현장임무까지 나서잖나.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였던 거야. 하아… 모처럼 현장지휘를 하게 됐거늘."


그렇게 아쉬워할 거였으면 네 특기인 외몸육탄돌격이라도 하시지 그랬어.


"복귀하겠습니다."


"그래. 나는 이만 각하께 보고드리러 가지. 고생했네."


"……보고요? 아뇨. 그냥 계세요. 폐하께는 제가 보고드릴 테니까요."


"무슨 소린가. 보고는 해당 임무의 지휘관 소관이잖나. 자네는 복귀하면 바로 쉬도록 해."


"제가 한다니까요?"


"자네 오늘 좀 이상한데. 이미 각하께 향하고 있다. 쉬도록. 교신 종료."


이년 봐라?


돌아오자마자 제 방, 집무실로 돌아가서 유미를 호출했습니다. 통신에 관련된 업무 전반을 도맡고 있지요. 본래부터가 이동식 기지국으로 쓰이던 년이니 능률은 뛰어납니다. 아주 물고기에게 물을 부어준 격이었죠.


"작전참모님. 들어가도 될까요?"


말만 저렇게 하는 겁니다. 노크도 안하고 들어오지요. 평소에 제가 편하게 대해줬거든요. 


더해서 작전참모라는 직함은, 폐하께서 직접 내리셨습니다. 150년 전에도 참모였다는 것은 같지만, 권위와 권한의 격이 다릅니다. 저항군 운영에 관한 제반사항 전반에 권한을 가지고 있고, 폐하의 목소리를 제가 내거나, 제가 내는 목소리가 폐하를 통해 나올 때도 있지요. 


그간 최일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니까요. 

다 알고 있었고, 다 알고 있는 일들이 일어나니까.


바보가 아닌 이상 공을 세울 수 밖에 없겠죠.


이런 의미에서도 예지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니, 150년 전과 완전히 동일하고, 그걸 모두 알고 있다는 점에선 상시예지를 펼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왜 부르셨어요?" 유미는 편하게 제 방에 있는 테이블 소파에 앉았습니다. "아아, 참. 임무 고생하셨어요."


그런 다음 테이블 위의 스낵 몇 개를 멋대로 입에 가져가더니 커피포트를 작동시켰습니다. 잔은 두 개 꺼냅니다. 본인 거 하나, 내 거 하나. 한 잔 타주려나 봅니다.


너무 긴장감이 없는데. 편해도 너무 편하게 대해줬던 걸까요.


"유미."


"네?"


"이리와요."


곁눈질로 제 손짓을 확인하더니 터덜터덜 걸어옵니다. 언제고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다크서클에, 께느른한 시선. 업무가 지긋지긋하다는 얼굴입니다. 완전 편한 업무일 텐데. 그 자리에 앉혀준게 나인데.


암사자를 어머니로 착각한 새끼 가젤같은 년을, 어떻게 구워삶아야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니, 없어졌다는게 맞습니다. 그만 손이 먼저 나가버렸거든요.


"켁… 케헥…!"


유미의 얼굴을 책상에 처박은 손이 이런저런 체액으로 젖어갔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두 가지."


"아그아아… 차, 참모 님… 모, 목 찢어져…"


의외로 발음엔 문제가 없네.


"하나. 폐하와 관련된 내외부 통신 전부를 감청해. 폐하의 폐 자만 나와도 귀를 세워."


"끅… 끄흑…"


"둘. 그 모든 걸 빠짐없이 보고 해. 내가 없거나 바쁠 땐 서면. 패널에 송신해도 좋고. 그 외엔 전부 직접 보고할 것."


유미의 입에서 새어나온 침은 책상 가장자리까지 번졌습니다. 더러워. 그냥 죽여버릴까요? 여기서 좀만 더 조르면 되는데.


"목이 반들반들하네. 경추가 예뻐. 톡치면 부서질 것 같은 걸."


목 아래로 싹 다 마비시켜줄까? 유미에게 물었습니다. 목을 졸려서 눈이 반쯤 넘어갔는데도 힘차게 고개를 젓습니다. 거의 온 몸을 뒤틀어서요.


…충동을 억누르고 유미를 놓아줬습니다.


"켁… 켁켁… 하악… 흑…"


"내 귀가 되어주렴?"


몸을 추스르고 일어난 유미를 벽까지 밀었습니다.

쳤습니다. 뺨을. 계속.

손바닥과 손등 전부 이용해서 목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제대로 발음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똑바로 대답할 때까지.


"말해두겠는데, 폐하께 찔러만 봐. 하루하루 심심할 일 없게 만들어줄게. 나, 한다면 하는 년이다?"


염라대왕의 실루엣을 봤을 테니 잘 알 겁니다. 이년은 진짜 죽일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유미의 얼굴을 가려 손수 수복실까지 데려갔습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것들에게 인자한 반응을 보이면서요. 전 일단 사려깊고 성격 좋은 유능한 상관으로 통하거든요.


수복실에서 간단히 치료해주고 유미를 돌려보냈습니다. 물론 치료 직전에 뺨을 몇 번 더 갈궜습니다. 눈물이랑 피가 섞였고, 벌건 뺨은 먹이주머니가 가득 찬 쥐새끼 마냥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가벼운' 외상이라, 수복이 금방 들어 내일이면 멀쩡해질 겁니다.


다음날, 일과가 끝나자 패널에 알람이 울렸습니다. 유미로부터 온 보고였습니다. 정말로 폐하의 폐자만 들어가도 모두 수집해놨습니다. 기특하죠.


이걸로 귀는 확보.


슬슬 물밑작업을 해둘까 싶었거든요. 절대로 마리 때문에 화가 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리는 그냥 계기였을 뿐이죠. 처음부터 구상해두었던 거에요.


"부르셨나요."


철로에서 레이더를 퇴치하고 내근을 이어가던 날이었습니다. 일단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콘스탄챠에게 동생을 구해냈다는 소식을 들었었습니다. 한, 3일 전에요.


"바닐라, 맞나요?"


"네."


무뚝뚝한 어조와 그에 어울리는 얼굴을 한 이것이 바닐라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150년도 더 전에.


저항군에 무사히 합류해서 다행이에요, 라는 마음에도 없는 인사나 하려고 부른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 걸 하려면 합류한 첫날에 했겠죠.


"폐하와의 첫인상이 최악이었다죠?"


"최악…? 아뇨. 별로."


"ㅋ…ㅋㅋ… 별로?"


"참모님…?"


"아니에요. 아무것도. 뭐 어쨌든, 대공포 설치는 잘 되어가는거죠? 마리 대장님이 바닐라 씨가 참 열심이라고 듣기 좋은 소릴 자주 하세요."


"아… 네. 뭐."

"나가봐요."

"네…?"

"나가라고."

"…네, 네. 실례했습니다."

"바닐라?"


뒤돌아 나가던 바닐라를 불러세웠습니다. 저는 바닐라의 눈을 살살 응시하다가 조금 뜸을 들인 뒤에, 말했습니다.


"지켜볼게요?"


언더와쳐가 지키는 지하를 돌파하기 하루 전, 갑판으로 나갔습니다. 범고래는 해면에 부상 중이었고,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습니다.


불침번 인원들의 경례에 답해주며 나선 갑판은 신선한 검보라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새카만 바다는 넘실대고 있었습니다. 맑게 갠 하늘도 새카매서, 먼 곳을 보면 그것은 바다와 동체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갑판중앙의 난간 앞에 서서 담배를 꺼냈습니다. 귀에는 이어폰, 품에는 cd플레이어가 들어있었습니다. 


종종 이렇게 밤에 나와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단비같은 시간입니다. 최근 업무량이 늘었어서요. 더욱이 오르카가 부상하는 일은 많지 않아서 갑판에 나올 수 있는 날은 적습니다. 작전 중엔 잠항이 기본이고, 바다는 기상이 좋지 않은 날이 더 많은 장소입니다. 푸른 바다에 따사로운 햇살? 미화된 겁니다. 바다는 대부분이 잿빛인 영역입니다.


"아르망? 이런 시간에 갑판에서 뭐해?"


이제 막 첫 연기를 뿜었을 때였습니다.


"폐하?"


담배를 숨기기도 전에 폐하는 옆에 다가와 계셨습니다. 그제서야 숨겨봐도 소용없었고, 괜히 내숭이나 떠는 걸로 보일 테니 그대로 입에 물고 있었습니다.


"설마했는데… 의… 의외야. 아르망이 담배라니."


내 아르망이 이럴 리 없다는 표정이셨습니다.


"폐하께서 절 힘들게 하시잖아요. 제 업무 좀 가져가세요."

"엑…"

"장난이에요. 폐하야말로 왜 이런 시간에?"

"나? 가끔 나오는데?"


그랬나요. 몰랐습니다.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마주친 게 이 날이었을 뿐. 언제 마주칠까 기다리느라 힘들었습니다.


"부상하는 일이 적으니까요."  "고개 내미는 일이 적잖아."


…기분 좋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침묵을 깬 건 폐하셨습니다.


"들고 있는 건 뭐야?"


"이거요?" 왼손의 이어폰을 들어올렸습니다. "이어폰이에요."


"그렇구나. 처음보는 디자인이네. 왠지 낡아보이는 걸."


"엄청 옛날에 만들어졌으니까요."


"언제?"


"백년 전이요. 이거랑 세트거든요."


품에 있는 cd플레이어를 꺼내 폐하께 보여드렸습니다.


"제조년도… 2089년이네요. 디자인은 좀 더 오래 전 감성이지만요."


"그런 거야?"


"네. 당시엔 이런 디자인도 레트로로 통했거든요."


"재밌다."


계속 cd플레이어를 신기하단 듯이 쳐다보시길래, 권유 해봤습니다.


"폐하. 귀 내밀어보세요."


"응?"


고개가 채 가까이 기울기도 전에, 폐하의 귀에 손을 뻗었습니다.


처음엔 당황하셨지만, 이내 제 의중을 알아주셨습니다. 이어폰이 짧다는 구실로 저는 폐하와 거리를 좁혔습니다. 어깨를 폐하의 팔뚝에 기댄 채 그대로 몇 십분이 흘렀습니다. 담배는 진즉에 입에서 사라져 있었고, 저희는 cd플레이어를 반씩 나눠든 채 바다의 먼 곳을 응시했습니다. 


어둠색 하늘과 바다가 일체되어있는 듯한, 그곳을.


"노래 좋다." 이어폰을 빼고 폐하가 말씀하셨습니다. "멸망 전 음악이야?"


"네."


"으음… 그래? 기록에선 이런 느낌의 음악은 들어본 적 없는데."


"바이오로이드가 존재하기 전에 존재했던 음악이에요."


"그런 음악이면 꽤 있지않아? 그 왜, 베토벤이라던가. 쇼팽이라던가."


"그렇게 유명하진 않았거든요. 그냥, 한 시대에만 머물렀던, 그런."


"그렇구나."


다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슬쩍 확인한 폐하의 입꼬리는 완만히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르망은 항상 신선하네."


"네?"


"아아, 오해하지 마. 그 뭐랄까, 볼 때마다 뭔가 배우는 것 같아서."


"…아하. 오늘같이요?"


"응. 전에는 요리였지? 맛있어. 아르망이 해주는 요리. 나도 이제 스크램블 정도는 만들 수 있다?"


"그건 제일 처음 알려드린 거잖아요. 이제야 그거면 어쩌세요."


"노, 노력하곤 있는데…"


"장난이에요."


폐하로부터 이어폰을 받아서 품에 넣었습니다.


"아르망. 나도 한 번 피워봐도 돼?"


"뭘요? 담배?"


"응."


안…될 건 없었습니다. 오르카에서 저만 흡연하는 것도 아니고, 흡연자가 흡연을 바라는 이를 만류하는 건 주제넘은 짓이니까요. 다만 150년 전의 제가 떠올라서, 담배와 라이터를 선뜻 건네기가 어려웠습니다.


결국은 한 개비 드렸습니다. 입에 물려드리고, 불을 붙였습니다.


"입으로 들이키시면 돼요. 워울프가 피우는 거랑은 다른 종류라 깊이 들이키면 되는데 일단 폐하는 처음이…"


"켁! 켁켁!"


…아.


이후로 폐하는 한참이나 기침을 하셨습니다. 혀에선 침이 발작하듯 흘렀습니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피우시려 들어서, 저는 두 손 놓고 바라만 봤습니다. 꼭 제가 처음 흡연했던 때 같기도 해서 귀엽기도 했습니다.


"이걸로 또 하나 배웠네!" 


꽁초를 제 휴대용재떨이에 넣으시고 폐하가 말씀하셨습니다.


"무리하시긴…"


"난 아르망이 좋아."


"네!?"


침 묻은 입술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온 그 말에, 저는 처음 흡연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어떨 땐 누나같고, 어떨 땐 귀여운 동생같아서 좋아. 업무를 볼 땐 가차없는 상관같아서 좋고, 새로운 걸 가르쳐 줄 땐 다정한 엄마같아서 좋아."


하나같이 밝은 아르망입니다. 그러나 폐하는 아실까요.

그런 수수하기 그지 없는 이면에는, 카디 비의 'WAP'을 아무렇지도 않게 듣는 아르망도 있다는 걸, 폐하는 아실까요. 


재밌습니다.


"폐, 폐하... 잠깐..."


반은 내숭이었습니다.


"아르망하고 있으면, 안정이 돼. 불안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꼭 체온으로 덥혀진 담요를 덮고있는 것 같아."


폐하가 제게로 몸을 돌리셨습니다.


"정말 고마워. 꼭 말하고 싶었어. 아르망이 없었다면 전혀 순탄하지 못했을 거야. 앞으로도 잘 부탁 해. 내일 작전도 힘내자!?"


"…오늘이지만요."


"아하하. 그렇지." 


달은 폐하와 마주치기 전보다 많이 기울어 있었습니다.


"그럼, 먼저 들어갈게."


"폐하!"


그냥 눈으로만 배웅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억눌러온 것이 터져나올 것만 같아서, 폐하가 출입구로 들어서시기 전에, 뒤에서 끌어안았습니다.


"부탁이 있어요. 아, 움직이지 마세요."

"부탁?"

"언더와쳐를 돌파하면, 제 몫의 공간을 좀 더 마련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왜?"

"신선한 거… 더 있거든요."


저만이 가진 것이거든요.

모두 당신께 드릴, 제 모든 것이거든요.

150년 동안, 쌓여온.

 

"AGS몇 대 기동시켜서, 제 입맛대로 설비 좀 해도 될까요?"

"안 될 거 없지. 로봇친구들이 싫증만 안낸다면…"

"감사해요. 아, 그래요. 폐하."

"응? 또 왜?"

"신선했어요. …신선하단 표현."

"아하하… 쑥스럽네. 미안해. 어휘력이 비루해서."


폐하의 가슴에 두른 팔을 올려서, 입에 가져갔습니다.


"쉿…"

"…"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세요. 뭣하면, 더 좋은 표현 알려드려요?"


폐하가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물들인다."

"…"

"그럴 땐, 물들었다. 라고 하는 거에요."

"…"

"아르망으로, 물…들었다. 어때요?"


거의 고백에 가까웠습니다. 아니, 고백과 다름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기세를 더해 밀어붙여서 좋아한다, 사랑한다… 아예 내질러버리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아닙니다. 

이것은 충동. 더 나아가면 안 됩니다. 억눌러야만 합니다.

폐하가 폐하임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손을 뗐습니다.

천천히 제게로 몸을 돌리신 폐하의 눈은 바다와 저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아르망 얼굴 오랜만에 보는 거였네."


"그렇네요.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잖아요."


"아르망이 만들어주는 식사도 못먹은지 좀 된 것 같아."


"그렇네요. 제가 그렇게 사소한 곳에서라도 빼놓지 마시라고 화냈었는데."


"아르망한테선 어떤 향이 나는지도 가물가물했고."


"그러세요?"


"응. 근데 오늘 알았으니까 됐어."


"저한테선 어떤 향이 나요?"


"음… 좋은 향. 그리고 담배 냄새."


"윽…"


"왜? 난 좋던데. 아르망 냄새. 좋은 거랑 나쁜 거랑 잘 어우러진 향이야."


폐하도 참. 부끄러운 소릴 면전에서 아무렇게나 던져댑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폐하를 봐서라도 담배 좀 줄일까 생각했는데, 앞으로는 담배를 참지 않아도 될 것 같았고요.


"신선한 거. 기대할게."


폐하는 돌아가시다가 다시 제게로 오셔서 cd플레이어를 빌려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단박에 거절했습니다. 실은 제 것이 아니기도 하고, 이것에 담긴 음악이 제 마음을 웅변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음악의 가사들에서 제 심리를 유추하여 제 마음을 알아채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던 겁니다. 폐하께선 그 정도의 눈치는 갖고 있으리라 판단 됩니다.


알 리가 없다고요? 아뇨. 인간의 언어라는 것은 인간의 생각보다 섬세하고 현명합니다. 대화에서 사용되는 직접적인 언어는 성조만으로도 의미를 바꿀 수 있고, 문학의 꽃이라는 비유는 핵심을 가리키는 가장 수려한 방식으로 통합니다. 그 두가지를 적절하게 혼합한 것이 음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을 몇 번이고 듣는다면, 모를 리가 없겠죠.

 

우연적이든 필연적이든 이 아르망의 핵에 발을 들이시게 될 겁니다.


그래서 거절했습니다. 폐하께는 아직 알려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알려드리더라도 아주 천천히, 조금씩 알려드릴 생각입니다. 


저는 일방적으로 치사한 사랑을 하고 싶거든요. 왜, 그런 말도 있잖아요? 여자의 마음은 비밀로 채워진 바다와도 같다는. 


제가 가진 음악을 듣고싶으시면, 밤에 갑판으로 오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날짜와 시간은 알려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까지 특정해드리면 아무 재미도 없으니까요.    


언더와쳐를 돌파하고 에바의 머리통을 몰래 발로 차버린 그날 이후, 오르카에는 영화관과 노래방, 바가 생겼습니다. 영화관이라고 하기엔 적당히 큰 TV에 셋톱박스만 설치했을 뿐이었고, 노래방은 넓직한 공간에 비해 기기는 초라했지요. 바는 그런대로 봐줄만 했습니다. 저택의 지하 2층에서 쓸어담다시피 가져 온 술로 도배된 선반은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았습니다. 한동안은 그 넓직한 바를 저 혼자만 이용했지만, 머지않아서 술을 즐길 줄 아는 개체들이 여럿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함께 즐기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런 곳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함께 하자고 하는 것도 모두 거절했습니다.


바에 비해 노래방은 그다지 인기가 없었습니다. 거의 제 전용 공간이라고 해도 좋았습니다. 왜냐구요?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자신의 노래 실력에 확신이 없었거든요. 실제로도 실력이 형편 없었고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없는 사이에 비번이었던 인원들이 이용했던 때가 있었는데, 정말로 못들어줄 수준이었습니다. 하기야 뭐, 라비아타, 라비아타, 에바, 에바 노래를 부르던 것들이 진짜 노래를 잘 부를 리 없죠. 150년 동안 실력을 갈고 닦아온 저와 동석할 엄두를 못냈겠죠.


그리고 영화관, 물론 이곳도 제가 제일 먼저 이용했지만… 혼자는 아니었습니다.


"진짜 재밌고 슬펐어…"


붉어진 폐하의 눈시울에 검지를 가져다 대고 말했습니다.


"하나만 하세요."


"어떻게 하나만 해!"


감수성이 풍부하십니다. 타이타닉 같은 영화면 감수성의 정도와 상관없이 그런 감정이 끓어오르는게 당연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우시는게 너무 귀여워서, 저는 이번에도 손 놓고 바라만 봤습니다. 그나저나 갑판 이후로 이렇게나 절 빨리 찾아오실 줄 몰랐습니다. 함께 영화관에 가달라는 폐하의 모습은 마치 그것이었습니다. 나를 잡아 먹어 달라고 제 발로 찾아온 새끼 소동물. 


분명 물드는 거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렇게나 아르망으로 물들고 싶으셨던 걸까요? 


아하하. 

저야 좋았지요.

갑판에선 폐하의 혀를, 미각을 텁텁하게 물들였다면,

폐하의 귀를, 청각을 소곤소곤 물들였다면, 


이번엔 눈을, 시각을 물들일 수 있었으니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2인용 소파에 함께 앉으셨던 폐하를 당장이고 덮쳐서 구석구석 핥고 싶었습니다. 억누르기 정말 어려웠습니다. 때문에 수 백 번은 봤던 타이타닉에는 조금도 집중 할 수 없었습니다.


잭 도슨은 로즈를 구하겠다고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갔지만, 여기선 그럴 일 없습니다.


폐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이입하셔서 눈물을 흘리셨던 것 같지만, 실은 제가 잭 도슨이니까. 폐하가 로즈니까.

역이 바뀌는 건 폐하가 새로운 육체를 갖게 되시는 때. 주변의 칼리든 같은 승냥이 년들은 그때가서 정리할 겁니다.


폐하는 저만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운명을 한 장 한 장 펼치고 있으니까. 


그러니, 머지않은 훗날. 폐하께선 제 목에 대양의 심장을 걸어주시겠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항군의 규모는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고, 그만큼 성가신 것들 또한 늘었습니다. 저는 좋은 상관으로 통하니 아랫것들은 신경쓰지 않아도 됐지만, 문제는 대가리 좀 크다는 년들이었죠. 메이, 알렉산드라, 레오나, 블랙 리리스, 레아 등등… 성가신 년들. 말을 안듣습니다. 저는 폐하의 오른팔입니다. 가장 큰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모든 작전안은 절 거쳐야 하는데 단독으로 밀어붙이질 않나, 멋대로 아무 용건도 없이 폐하께 찾아가질 않나. 슬슬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폐하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모두 쳐죽였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요. 폐하만 아니었다면 정말로. 그런 년들이 있어도 다음엔 폐하를 어떻게 물들일지만 생각하면 없는 인내심도 솟아났기에 다행이었습니다. ―이 즈음부터 제가 직접 작전에 나서는 일은 꽤 줄었습니다.


언더와쳐를 돌파한 폐하가 전쟁지식 각인 프로그램에 다다르시기 전까지 호위해드렸을 때는, 조마조마 했습니다. 그 전부터도 조마조마 했습니다. 이제 정말 폐하께서 새로운 육체를 얻으시기까지 얼마 남지 않으셨고, 그렇게나 기다리던 날이 오면 막상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던 겁니다. 요 근래엔 대화도 많이 나누지 못했습니다. 자주 잠에 드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더욱 저를 조마조마하게 만들었습니다.


점검해볼 때였습니다. 나는 잘해왔던 걸까? 폐하와 함께 한 이제까지의 여정에서 나는 충분할 만큼 폐하와 시간을 보냈을까? 모든 면에서 뛰어났던 팔방미인 아르망은, 과연 운명이라 부를 만큼 뛰어났을까? 


나의 계획된 운명은, 폐하의 마음에 뿌리를 내렸을까.


"이 괴물!"


어디 감히 폐하를 괴물이라고 부르는 거니? 이 덤프트럭 같은 년아. 폐하께서 그런 몸을 가지고 계신 것도, 폐하를 찾아 온 라비아타가 이런 반응일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외칠 뻔 했습니다. 옆구리엔 리리스를, 목덜미엔 팬텀을 들이대고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제 옆엔 콘스탄챠가 윈체스터를 조준하고 있었고요.


폐하가 쓰러지시고, 검사를 통해 폐하가 인간임이 확실히 판별되자 제가 말했습니다.


"…그만 하죠? 폐하는 괴물이 아니에요. 휩노스에서 무사하시기 위한 방편이 적용된 것일 뿐이죠. 검사결과도 인간이라잖아요?"


이 대목에서는 포츈과 마리가 상황을 정리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접니다.


포츈이 거들었습니다.


"참모님의 말씀은 일리 있거든? 에바의 기억 중에 휩노스 병 예방 시술에 대해서 있었던 것 기억나지? 아무래도 사령관님이 그 시술을 받으신 것 같거든? 신경을 성장형 전자 신경계로 대체하는 수술 말이야. 이것 덕분에 휩노스 병에서 안전해졌던 거거든?" 

     

직전에 포츈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된다니 뭐니 헛소리를 했지만, 일단은 무시했습니다.


통신음이 들리고 함교의 패널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보나마나 에바였습니다.


그때 죽은 에바는 누구냐면서 라비아타는 호들갑을 떨고, 신비주의가 컨셉인지 통신할 때마다 예나 지금이나 알아들을 수 없는 개소리를 지껄이던 에바는 그곳의 좌표를 말하겠죠.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좌표를 패널 너머의 에바가 읊자마자 통신을 끊어버렸습니다.


철충의 염병할 비밀이나 아미나의 유산이나 그때 뒈진 에바가 왜 연락을 할 수 있는지 같은 게 대수입니까? 드디어 폐하가 폐하로 태어나신단 말입니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그 때가 다가왔단 말입니다.


쓰러진 익스큐셔너 위에서 아이처럼 한 발씩 폴짝대며 걸었습니다. 그러는 저를 라비아타가 수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봤지만, 이 기분을 흐트러뜨리기엔 모자랐습니다.


'삼안 산업 생체 재건 설비를 이용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본 설비는 VIP의 새로운 육체의…'


"시끄러워."


유전자는 설비에 이미 제공해놨으니 막 다가온 폐하를 설비에 쑤셔넣었습니다. 그런 다음 곧바로 청년과 건장함을 선택…


"참모님!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아. 죄송해요. 폐하, 다시 꺼내드릴게요."


폐하는 얼떨떨하셨는지 별말 없이 설비 옆에 걸터 앉으셨습니다.

  

"…"


"라비아타? 왜요? 무슨 할 말 있나요?"


라비아타는 아까부터 저를 수상하단 듯이 봅니다. 

그렇게 보면 지가 어쩔까요. 저에 대해선 절대 모를 텐데.


"…아뇨. 아무것도."


"주인님이 쓰실 몸이니 주인님께서 설정하셔야 할 거에요. 그러셔야 하고요. 자, 주인님? 육체 연령은 어떻게 설정할까요?"


폐하는 긴 시간 고민하시지 않고, 제가 처음 설정하려했던 그대로를 설정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좋아요. 이제 정말… 폐하께서 설비에 들어가셨다가 나오시기만 하면… 


아아, 어쩌죠? 얼마나 걸릴까요? 여기서 기다릴까요? 아뇨아뇨. 돌아가야겠어요. 저는 먼저 돌아가서 샤워하고, 간단한 메이크업이라도 한 다음에 향수를 좀 뿌려 놓아야…  


"어흠. 그래도 발달되기 전의 몸이… 더 좋지 않나? 훈련도 그렇고…"


뭐?


지금 저년이 뭐라고 한 거지?


이런 기록은 없었던 것 같은데?


"…뭐?"


"아르망?"


라비아타가 절 부른 것 같았습니다만, 저는 이미 마리 앞에 다가서 있었습니다.


머리가, 지끈거려서, 손이 덜덜 떨리고 숨을 쉬기가 어려워서,


이…


"아르망? 자네 왜그러나?"


이 개같은 년이… 지금…


"……마리 대장님. 잠깐 저 좀 볼까요?"


겨우겨우 심호흡으로 진정하고 마리의 손을 잡아 익스큐셔너가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거의 끌고오다시피해서.


"갑자기 무슨 일인가?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시잖나."


"대장님. 지금부터 딱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주세요?"


후우…


"씨발대장님제정신이세요?뭐요?발달되기전의육체?설마2차성징이오기도전의아이를말씀하시는건가요?그런건가요?10살전후의파릇파릇신선한풋내나는아이를상상하시고그따위헛소리를하신건가요?네?좆물한방울안나오는귀엽고품에안기좋은사이즈의아이를상상하셨냔말이에요씨발진짜대장님그러지마세요아무리이씨발네가인간이아니라도그렇죠어린몸을가지는게어떠냐고넌지시라도그따위로말하는게말이냔말이에요애를성욕의대상으로보는게말이냐구요니가그러고도대장이세요?한부대의지휘관이세요?씨발씨발씨발역겨워토나와더러워멸망전엔그따위눈으로아이들을봤을거라고생각하니진짜토나올것같네요왜사세요?왜태어났어요?왜숨쉬죠?공기아까워그렇게애가좋으면멸망전쟁때애끌어안고뒈지는게낫지않았을까요?대장님진짜저항군에합류하기전의저랑마주치지않은걸천운으로아세요아셨어요?운을시험하고싶으시면앞으로도틈날때그렇게네뒤틀린성욕드러내보시던가요전먼저돌아갈거니까그렇게전해주세요."


단숨에 쏟아내고 마리를 밀쳐 지나갔습니다.


역겨운 년!

   

"하…하아… 하…"


간곡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제 안의 그녀들 중 한명이 보낸 요청이었습니다. 저는 그 요청에 십분 공감했기에 바로 들어준 것이었습니다.


담배를 펴도 진정이 안됐습니다. 아, 이거 위험한데. 머리가 저릿한 건 발작의 전조거든요. 


이럴 땐 빨리 밝고 맑은 공기가 있는 곳으로 가서 노래라도 불러야 합니다. 머리를 노래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영화로 채워야 합니다.


다행히도 오르카로 복귀할 때까지 발작은 터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억누르느라 진이 빠져서 온 몸이 식은땀 범벅이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샤워할 일이 생겼으니 일단 샤워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샤워를 끝내고 옅은 메이크업을 하고서, 장갑을 꺼내 향수를 책상에 늘어놨습니다. 


뭐가 좋을까. 고심한 끝에 돌체 앤 가바나 라이트블루를 살짝만 뿌렸습니다. 보통은 남성용으로 여겨지는 향수인데, 남자향수라고 여자가 뿌리지 말란 법 없습니다. 여자향수를 사용하는 남자도 많았고요. 이 향은 과거의 제가 사용한 향수 중, 특히나 제 아이가 좋아하던 향이었습니다. 그래서 골랐습니다. 달콤한 우유냄새 같다나요. 실제론 사과에 가깝지만요. 아마도 제 아이는 몇 번 발라줬던 베이비파우더와 가장 비슷한 향에 끌렸는지도요.


어쨌든, 이젠 기다리면 됩니다.        


나의 폐하는, 정말로 나의 폐하일지.


이제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미 전부터 모든 신경이 나의 폐하가 맞다고 신호를 쏘아댔지만, 확실히 알 수 있게 됩니다.


제법 시간이 흘렀습니다.

귀 밑에서 흘러나오는 향이 조금 변했고, 그 향에 코는 진즉에 마비되고도 남은 시간이었습니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들어오라는 말 대신, 문으로 다가가 반대편에서 노크했습니다.


"아르망."


저는,


"왜 먼저 돌아갔어?"


알았습니다.


눈.


"걱정했잖아."


소산하는 유성을 보고 알았습니다.


눈앞에 계신 분은 폐하셨습니다.


저의 운명이었습니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화장이 다 번져버릴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시야는 가려져 있었습니다. 


폐하의 품으로.


"아르망. 무슨 일 있었어? 엄청 서럽게 운다."


아뇨.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르망?"


아르망…… 아르망……


좋은 울림이었습니다. 

제 이름이 이렇게나 예뻤던 가요.

남성인명인데.

그렇군요.

예쁜 이름을 갖는다고 예쁜게 아닌 거군요.

불려져야만 예쁜 거군요.

불러주는 사람에 따라 예뻐지는 거군요.


"폐하…?"


"응?"


"이름 더 불러 줘."


"아르망?"

"더."

"아르망."

"아하하… 한 번 더 불러 줘…?"

"아르망, 아르망, 아르망."


기분 좋아.


어깨의 들썩거림이 서서히 멈추고, 폐하의 앞섶을 쥔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습니다.


저는 고개를 들기 전에, 오늘을 바라보며 준비해둔 비장의 미소를 만들고, 폐하를 올려다보았습니다.


"폐하."


아아, 안 돼. 목소리가 떨리면 미소지은 의미가 없는데.


"부탁하나만 해도 돼…?"


"응."


폐하의 손이 어깨에서 떠나가려고 해서, 더욱 품에 파고들고 말했습니다.


"어서 와. 라고, 말해줄 수 있어…?"


폐하는 제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시기만 하더니, 이윽고 무언가 마음먹으신 듯이 입을 여셨습니다.


"어서 와. 아르망."


그리고 뭐… 저는 좀 더 울었습니다.

번진 화장과 눈물로 폐하의 셔츠가 엉망이 되어버릴 때까지, 계속해서 울었습니다.


그런 제 등을 폐하는 토닥여 주시면서 "역시 무슨 일이 있었구나." 라고 혼잣말 하듯 중얼거리셨습니다.


아뇨.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요.


저는 오르카의 작전참모.


폐하의 오른팔.


폐하의 아르망.


제가 당신을 만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불경을 저질렀는지,

제가 당신을 기다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타락을 뒤집어썼는지,


폐하는 모르실 테니까요.


절대 말씀드리지 않을 거니까요.


그러니까 아무 일도 없었던 거에요.


저는 폐하께 두 가지 부탁을 더 드렸습니다. 


부탁의 내용을 들으신 폐하는 흔쾌히 수락하시고 제 손을 잡아 사령관실로 데려가셨습니다.


"내 방은 왜?"


"쉿…"


검지를 입술 앞에 세우고 천천히 폐하의 방을 돌았습니다. 


여벌 옷이 걸린 작은 스탠드 옷걸이,

책상, 

책장, 

테이블, 

소파, 

침대, 

침대시트, 

갖가지 인테리어 소품으로 들어찬 선반,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위스키 병.


어느 것이나 전부 제가 마련해 드린 것이었습니다. 장갑에서 꺼낸 것도 있었고, 탐색 중에 찾았던 것도 있었습니다.


제가 드린 그것들 모두는 사령관실을 매개로 폐하의 체온과 연결되어 제게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 세포 하나하나는 그것들 모두와 공명하며 어찌할 도리 없는 환희에 전율하고 있었습니다. 그 전율에 몸도 정신도 완전히 이완되어버려 저는 다시 폐하께 안겼습니다. 


또 울었습니다. 폐하도 또 등을 토닥여주셨습니다.


"폐하…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얼마나 걸어왔는지 몰라요…"


아아, 이런. 의미심장한 말은 하지 말자고 정했는데. 

결국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상관없겠죠. 

폐하는 모르시니까.


폐하의 방을 둘러본 다음은 갑판이었습니다. 폐하의 손을 꼭 잡고 갑판으로 나갔을 때는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지요. 

            

갑판은 신선한 검보라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새카만 바다는 넘실대고 있었습니다.

맑게 갠 하늘도 새카매서, 먼 곳을 보면 그것은 바다와 동체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폐하. 한 대 피우실래요?"


폐하는 미소짓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폐하의 입에 담배를 달아드리고 불을 붙여드리는 사이, 먼저 전달해드린 이어폰을 폐하는 귀에 가져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폐하는 기침을 터뜨리셨습니다. 아무래도 기존의 육체에 배어있던 관성을 새로운 육체에 그대로 적용하신 것 같았습니다. 


저도 깜빡하고 있었습니다. 알았다면 미리 주의를 드렸을 텐데.


어깨를 가까이하고, 음악을 들었습니다. 나눠 낀 이어폰에선 장범준의 '잠이 오질 않네요'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폐하는 누구의 음악이냐고 물으셨지만, 저는 폐하와 맞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고 묵묵히 음악에 집중하고만 있었습니다.


그날은 달이 반만 차올라 있었습니다. 폐하의 눈같은 강렬하고도 미약한 유성의 소산이 달 곁에 맴돌았고, 바로 옆에는 하늘의 강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바깥으로는 크고 작은 알갱이들이 흩뿌려져 있었고요. 폐하는 그것을 올려다보시며 너무나 맑고 깨끗하다며 탄성을 흘리셨습니다. 저런게 순수하다는 게 아닐까라는 감상과 함께.


"아뇨, 폐하. 맑고 깨끗하다해서 순수한 건 아니에요."


"으응? 그러면? 뭐가 순수한 건데?"


저는 폐하와 맞잡은 손을 잠깐 놓고 폐하께 기대어 팔짱을 꼈습니다. 이러는 게 당연하다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기에, 폐하는 가만히 받아주셨습니다.


"아무 의미 없이, 그저 그곳에 있는 것. 그게 순수에요."


"그래?"


"…아마도. 순수와 가장 가깝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폐하. 저 위에 있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가만히 두세요. 아무 감상도 갖지 마세요. 그냥 눈에만 담으세요. 순수는 순수인 채로 두세요. 밑에 있는 바다도. 이 시간도."


"…음. 그래. 그럴게."


알아주세요. 폐하.


저는 순수하고 싶지 않아요.  


폐하께 순수하고 싶지 않아요.


제게서 순수를 앗아가주세요.


제게 의미를 부여해주세요.


기다릴게요.


그렇게 저희는 계속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항상 빠르게만 흘러가길 바랐던 시간이 지금만큼은 아주 느리게 흘러가길 바라면서요. 정말로 순수하지 못한 밤이었습니다. 


몇마디 아무런 말도 꺼냈습니다. 다음엔 노래방에 함께 가자고 권해보기도 하고, 기회가 되면 함께 휴가를 내서 육지로 놀러가자고도 권해봤습니다. 대놓고 데이트 제의를 하고 있었음을 깨달은 건 이미 입밖으로 내뱉은 후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머릿 속에 데이트 코스를 그리는 중이었으므로 쑥스러움을 느낄 계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차로 드라이브를 하면서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고, 중간중간 차에서 내려 총천연색의 향연을 만끽하고, 야생동물들과 친구가 되고, 아직도 대대로 살아오고 있을 제 고양이 친구들도 소개해드리고…


위 같은 코스가 아니더라도 어쨌든 마지막엔 코스모스의 바다에 누워 석양을 맞는, 그런 데이트.


몇 번이고 데이트 코스를 수정하는 과정 중에 폐하가 외마디 소리를 내셨습니다. 뭔가 싶어 확인해보니 하늘에는 유성우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이처럼 입을 반쯤 벌리고 눈을 유성보다도 빛내고 계시길래, 저는 유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살짝 풀어봤습니다.


여름에 내리는 유성군은 페르세우스 자리가 유명하고, 가을에는 오리온자리, 겨울에는 사분의자리와 쌍둥이자리가 유명해요. 쌍둥이들의 이름이 뭐냐구요? 카스토르와 폴룩스에요. 스파르타의 왕비인 레다와 제우스의 자식들이죠. 제우스는 참 나쁜 놈이에요. 아, 어쨌든, 유성들은 혜성이 흘리는 잔해같은 거거든요? 페르세우스의 모혜성은 스위프트 터틀, 오리온 자리의 모혜성은 그 유명한 핼리혜성이고, 그 잔해가 지구의 대기를 향해 초속 10~70km속도로 떨어지면……   


도중에 말을 끊어도 폐하는 계속해서 위를 올려다보고만 계셨습니다. 그날은 어지간히도 유성이 많이 쏟아졌기에 처음 유성을 보시는 거라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한때는 저도, 그저 몇 날 몇 일이고 풀밭에 누워 유성의 숫자만 세면서 시간을 보낼 정도였으니까요. 언제봐도 유성은 아름다우니까요.


그러나 저는 그날, 유성이 얼마나 떨어지든 밤하늘에 시선을 많이 할애하지 못했습니다.


유성보다 아름다운 것이,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 * *







저는 충분히 폐하께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고작 몇달일 뿐이었지만 그런 시간을 함께 해왔습니다. 


그 시간 동안 150년의 조각을 차근차근 하나씩, 비록 다는 아니어도 폐하께 끼워넣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폐하라는 면적 대부분을 아르망으로 채색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폐하와 마주하면 생기는 짧은 거리 마저도 아르망으로 채색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계획된 운명이라고 부를 만큼 거창한 시간은 아니었다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어필했다고 생각합니다. 눈치가 정말 티끌만큼도 없지 않은 이상은 모를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기다리는 것만 남았습니다.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달려가 폐하께 사랑을 속삭이고 싶었지만, 폐하의 남자다운 부분에 기대어보고 싶었습니다. 


여자라면 누구라도 한번 쯤 생각해봅니다. 청혼받는 상상. 정말 행복한 상상이지요. 그 상상 속의 남자가 특정지어진 남자이고, 특별한 관계로 맺어져 있는 남자라면 더더욱 행복하고요. 상상만으로도 공주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지요.


솔직히 말해서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신감도 있었어서 기다려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서.


다가와 주세요.


폐하.








* * *       







타이타닉의 케이트 윈슬렛과 같은 심정으로 기다려봐도, 폐하는 오지 않으십니다.


무슨 일일까요.


쑥스러우신 걸까요.


저도 쑥스러운데.


그냥 제가 먼저 다가가 볼까요?


아뇨. 아니에요.


좀 더 기다려 보도록 하죠.







* * *







폐하는 오지 않으십니다.


기미도 없습니다.


뭔가, 잘못 됐습니다.








* * *






그날은 일과를 마치면 바로 폐하를 뵈러 갈 생각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바로 함께 가서 저질러버릴 계획이었습니다.


그 한 쌍을, 갑판에서 보기 전까지는.







* * *





"콘스탄챠."


이건 뭐죠?


"주인님…"


왜 폐하가 콘스탄챠한테 무릎을 굽히고 계시는 걸까요?


"내가 너의 처음이 되어도 될까?"


손바닥에 곱게 올려둔 건 또 뭔가요?

연애를 글로 배운 것 같은 놈이 할 법한 멘트는 또 뭐냔 말이에요.


"…주인님. 저의 마지막이 되어주시겠어요?"


넌 또 뭐라는 거니?


지금 손가락에 뭘 끼우고 있는 거야?


뭐야.


이게, 뭐야.










* * *






어쩌면 저는, 너무 낙관적이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르망이 차지한 자리를 뺀다면, 150년 전과 동일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게 힌트였나 봅니다.


폐하는 150년 전과 똑같이,


처음과 똑같이,


콘스탄챠를 선택하실 거라는, 힌트.


아아, 그렇습니다.


제가 폐하를 운명이라 여겼다고 해서, 폐하도 저를 운명이라 여길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는데.


그건 그렇고, 참 우습지 않나요?


콘스탄챠라니. 

이번에도.


아니 뭐, 폐하는 하늘에서 떨어지실 때부터 손가락에 붉은 실이라도 달아두셨던 건가요?

그 실은 콘스탄챠와 이어져 있었단 건가요? 






* * *





"어이, 참모님. 야. 참모!"



가각- 가가각- 가가가가각-


머릿속에서 뭔가 단단한 부품이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가 지나가면 이명으로 머리가 가득 찼습니다.


"듣고 있어!? 야!"


"…넌 또 뭐야?"


"너? 정신 나갔어?"


진짜 뭐냐 너.

이렇게 땅딸막한 년들 중에 반말하는 년이 누구였더라.  


모르겠고, 물어나 봅시다.


"지금 몇 시야? 아니, 몇 일이야?"


"…얘 왜이래? 네가 부대별로 보고서 제출하라고 했던 날이잖아. 반드시 라고 강조했던 그. 날."


아하.


모르겠고, 거슬립니다.


"두고 나가요."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뭐야 도대체?"


집무실 문이 거세게 닫혔습니다.


땅딸막한 년 다음으로 또 누군가가 찾아왔습니다.

실체 없는 존재들.

그녀들.


야.


계속 참을 거냐?


슬슬 힘들지 않아?


너 그러다 병 나.


우리처럼 된다?


도와줘?


"…그러게. 진짜 병나겠다."


딱 말해. 도와줘? 말아?


"도와줘."


좋아.

그 동안 너무 참았어. 

너무 봐줬어.

너답지 않게.


"나답지 않게."


맡겨.


"맡길게."


바톤 터치. 


"바톤 터치."







* * * 








반갑습니다. 글싸개입니다. 이전 화의 수많은 오탈자에 대해 사과부터 박겠습니다.


또 많이 늦었습니다. 업로드 주기가 갈수록 길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너도나도 코로나를 걸려서 현생 업무량이 너무 많아진 탓입니다. 

한 글자라도 빨리 쓰고 싶었는데 그럴 겨를이 없었…던 것만이 이유는 아닙니다.


지금 쓰는 중인 이 글에서 이번 화는 아주 중요한 화로 여기고 있었어서 몇 번이고 쓰고 지웠던 탓이 제일 컸습니다.

이 글의 분수령이 되는 화이기 때문에, 단 한 줄의 문장이나 그 배열마저도 고심하고 또 고심해서 적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삽입할 음악도 여러 후보군을 두고 아주 고민했습니다. 어떤 곡은 음율이 마음에 드는데 가사가 아닌 것 같고, 또 어떤 곡은 분위기가 마음에 안들고… 


그러나 정말 중요했던 것은 역시나 심리였습니다. 늘상 이 글을 쓸때마다 작중의 아르망에게 빙의하려고는 하지만, 꼬추새끼이기 때문에 특히나 이번 화는 어려웠습니다. 여기저기서 참고하느라 시간이 참 오래도 걸렸지요.


몇일 동안은 한 문장도 못적고 있었네요. 아르망과 같은 상황에 처한 여자가 사랑해 마지않는 남자와 재회하면 과연 어떤 마음일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연애경험이 없는 건 아닌데 이런 상황의 심리를 알게 될 경험은 못했고, 경험했다더라도 알 리가 없었으니 참.


그래서 이 부분은 동생의 의견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의견을 잘 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못살린거라면 돈만 날린 꼴이 되겠네요. 진짜 세상 모든 여동생은 세상 모든 오빠와 전생에 원수였을 겁니다. 


그건 그렇고, 그냥 팬픽 쓰는 건데 뭐이리 피곤하게 구느냐고 궁금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게만 말하겠습니다. 


저는 아르망에게 진심입니다. 철저히 아르망 하나만을 위해서 쓰고 있습니다.


금발을 가진 캐릭터는 많고 많지만, 아르망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는 저는 모릅니다.


연습을 겸하고 있는 글이라 너절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아르망에게 실례가 안되도록 더 노력해야겠죠.


누가 그러더랍니다. 독자는 정성없이 읽어도 되지만, 필자가 정성없이 써선 안된다고.


앞으로도 아르망과 읽어주시는 분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쓰겠습니다.


이번에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10화 안엔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혹시 괜찮으시면 여러 의견 내주셨으면 하고 조심스럽게 바라봅니다. 


또 봅시다.


죄송하지만 오탈자는 천천히 수정해 나가겠습니다…

꼭 다 쓰고 좀 지나야 오탈자가 보입니다. 눈에 문제가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