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피보호자의 바이오로이드 - 목록



  "누군가를 무엇 때문에 좋아한다면, 그건 정말로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맞는 걸까요?

그 무엇이 사라진다면, 여전히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요?"



 그녀가 돌봐주는 거의 모든 바이오로이드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난 지 며칠 뒤, 메이플라워는 집단 거주지에도 목욕 시설들을 지어주었다.


 메이플라워와 함께 지내는 바이오로이드들이 그랬던 것처럼 집단 거주지에 사는 바이오로이드들도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을 꺼렸고, 이번에도 별 수 없이 메이플라워가 그나마 목욕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덜한 이들, 반대로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을 특히 무서워하는 이들과 함께 먼저 목욕탕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불안감을 덜어주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마구니는 메이플라워의 하반신에 빙의했고, 집단 거주지의 바이오로이드들은 그녀가 '남자의 특정 신체 부위가 달린 여성'임을 알게 되었다.


 집단 거주지의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 금란이나 블랙 웜, 캐노니어들과 앵거 오브 호드 바이오로이드들처럼 메이플라워에게 호의적인 성향이 강한 이들은 그녀를 이전보다 더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얼굴을 붉히거나, 몸을 배배 꼬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반대로 메이플라워에 대해서 이전부터 시선이 곱지 않았던 컴패니언 바이오로이드들 같은 경우에는 이전보다 더욱 그녀를 경멸, 혐오하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심각한 탈수 증상을 일으켜 단체로 뻗어버린 탈론 페더들과 로열 아스널들, 어떻게 손을 대기도 그냥 보고 있기에도 심히 민망한 모습을 보여주는 블랙 웜들과 금란들에게 어찌어찌 응급처치를 하고 일어서는 메이플라워의 얼굴은 마치 생각하기를 그만둔 사람의 것처럼 보였다. 나머지는 자신들에게 맡기라고 말하는 칸들과 비스트 헌터들의 시선은 메이플라워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지 않았고, 그녀들의 얼굴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컴패니언 바이오로이드들이 그 모습을 보고 헛구역질을 하거나 혐오스러워하는 반응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탈론페더 저 정신병자 x도, 아스널 저 색정광도 변한 게 하나도 없네요."


 ".......그러는 너희도 한결같군."


 대놓고 큰 소리로 조롱하는 리리스에게 칸도 적의를 감추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자신들이 컴패니언보다 먼저 첫 번째 사령관에게 등을 돌렸다는 자각이 있었고, 어차피 모두 다 메이플라워가 베풀어주는 은혜로 편하게 먹고 사는 처지인데 서로 목소리 높일 자격도, 높여봐야 아무 의미 없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가만히 있었지만 더 이상은 참아줄 수 없었다. 메이플라워가 준 지팡이에 의지해서 걸어가는 칸의 뒤를 다른 호드 바이오로이드들이 뒤따라가자 컴패니언 바이오로이드들이 그녀들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메이플라워가 베풀어주는 은혜를 받아먹고 사는 주제에 무슨 말이 그렇게 많고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지?"


 "하! 지 어미가-"


 "그러는 넌 라비아타와 비교해서 뭘 잘했지? 오히려 제일 끝까지 첫 번째 사령관 곁에 남아있었던 건 라비아타와 배틀 메이드들 아니었나? 삼안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 제일 먼저 첫 번째 사령관에게 등 돌린 게 너희였지 않나?"


 "......닥쳐."


 "닥쳐야 할 건 너희다, 리리스."


 리리스가 칸에게 주먹을 휘두르려 하자 메이플라워가 세워놓은 예의 그 괴상한 대검에 달린 눈이 빛을 뿌렸고, 싸울 자세를 취하고 있던 바이오로이드들이 그 자리에서 심하게 비틀거렸다. 


 "-저 빌어먹을 흉물이 진짜!"


 "너와 네 자매x들의 빌어먹을 주둥아리가 진짜!!"   


 매번 그녀들을 '방해하는' 메이플라워의 대검을 향해 리리스가 욕설을 퍼부어대자 칸이 눈을 부릅뜨고 리리스와 컴패니언 바이오로이드들을 욕했다. 분노한 컴패니언 바이오로이드들이 칸에게 달려들려 하고, 앵거 오브 호드 바이오로이드들과 캐노니어 바이오로이드들이 마주 달려가려 하자 다시 한 번 대검이 발산한 힘이 이들을 제압했다.


 "애초에 메이플라워의 어머니가 우리가 아는 라비아타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지?! 그리고 메이플라워가 우리에게 뭔가를 해줄 의무가 있다는 발상은 또 어디에서 나온 거지!? 너희 같이 은혜를 베풀어주면 그게 권리인 줄 아는 x들 아가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개소리를 들어줄 의무는 또 어디에 있는 거고!? 동네 똥개도 도둑 고양이도 그 따위 생각은 안 할 거다, 이 x같은 x들아!"


  "그러면 라비아타가 우리가 아는 라비아타 말고 또 뭐가 있는데!?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계 같은 거라도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거기서 온 우리가 모르는 그 돼지x이라도 있대? 상상력 대장이셨네, x발! 그걸 우리보고 믿으라고?!"


 "말 잘 했다! 그러면 온갖 마법과 초능력을 부리는 생명체가 우리 세계에 존재하던가?! 우리가 모르는 라비아타가 있다 해도 이상할 게 없지 않나?!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우린 메이플라워에게 무슨 개 민폐를 끼치고 있는 건가?! 아니,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이게 대체 무슨 지들 주인을 갖다버린 x발x들의 개 민폐인가?! 이런저런 개소리 집어치우고, 우리가 메이플라워 근처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민폐 아닌가!?"


 감정이 격해진 리리스와 칸이 반쯤 이성을 잃고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그대로 서로를 향해 쏟아냈다. 


 나중에는 말싸움도 아니고 아무렇게나 소리를 질러대는 것에 가까워지자,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가만히 듣고 있던 메이플라워가 끼어들어 이들을 말렸다. 마지못해 물러나면서도 칸들을 비롯한 앵거 오브 호드 바이오로이드들과 캐노니어 바이오로이드들은 컴패니언 바이오로이드들을 노려보았고 비스트 헌터들과 퀵 카멜들은 리리스를 향해 대놓고 가운뎃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렇게 열심히 저 괴물딱지에게 엉덩이 흔들고 빨통이나 흔들면서 유혹해 봐! 어디 얼마나 잘 되나 우리가 두고 볼 테니까!"


 "지x한다, 이거나 처먹어!"


 펜리르의 조롱에 대해 파니와 레이븐이 팔을 교차시키는 제스쳐를 취해보이는 것으로 응수했다. 


 컴패니언 바이오로이드들에게서 멀어지던 두 그룹의 바이오로이드들은 메이플라워가 컴패니언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다가가자 다시 그녀의 곁으로 돌아가야 할지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다. 방금 전까지 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금란들과 블랙 웜들도 칸과 리리스가 말싸움을 벌이는 것을 듣고는 정신을 차리고 컴패니언이 메이플라워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그리고 이에 대해 메이플라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리리스들과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은 아예 메이플라워와 얼굴도 맞대기 싫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페로들 중 하나가 신경질적으로 그녀의 존재에 반응했다.


 ".......뭔가요? 할 말 있어요?"


 설득한다면 들을 생각은 있는지에 대해서 메이플라워가 묻자 페로가 경멸과 반감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듣기 싫어요. 얼굴도 보기 싫으니 꺼져요."


 거친 페로의 대답에 다음에 오겠다는 메시지를 돌려준 메이플라워가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그녀로서도 컴패니언들을 비롯해서 자신에게, 혹은 라비아타라는 바이오로이드에게 적대적인 이들을 마주하는 것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이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고, 이들보고 야생생물들의 먹이가 되라고, 혹은 저 바깥에서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바이오로이드들보고 도로 잡아가라고 바깥에다 던져버릴 수도 없다.  


 결국 포기하더라도 설득은 해야 했지만,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당신 태도를 보니 꼭 못 먹는 감 찔러나 보겠다는 것 같은데, 우릴 설득할 마음이 있긴 한 건가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 가려던 메이플라워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페로가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우리가 왜 당신 어머니를- 아니, 라비아타 프로토타입이라는 바이오로이드를 미워하고 있는지 이해는 하는 건가요? 물론 알고는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왜 그렇게 그 돼지를 미워하는지 이해해요? 이해할 생각은 있고요? 당신은 그저 당신이 옳고, 우리 심정 같은 건 틀리고 알 바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우리를 '설득하려는' 것 아닌가요? 그나마도 우리를 정말로 설득시키려는 게 아니라 포기하기 전에 난 할 만큼 했다, 라고 자위할 생각으로 이러는 것 뿐인 거 아니냐고요?"


 "저 겉만 희고 속은 시꺼멓게 썩은 고양이x이.......!"


 레이븐들과 퀵 카멜들이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지만 메이플라워는 페로가 하는 말을 가만히 귀담아 들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그녀 스스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실제 자신의 진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하기 전에 뭔가를 해보려는 게 아니라, 포기하기 위해서 뭔가를 하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몸을 돌린 메이플라워가 페로에게 몇 발자국 다가서자 바이오로이드들이 모두 움찔거렸고, 페로도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번에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모습으로 변할 만큼 분노했을 때에도 위해를 끼치지 않았던 메이플라워가 아무런 예고 없이 자신을 해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녀의 예상대로 메이플라워는 어떤 해코지도 가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의 앞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다.


  페로가 불쾌함과 황당함, 당혹감이 그다지 절묘하지 못하게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입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말이 나오려는 것을 알아차린 메이플라워가 먼저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지금 몇 분의 불쾌함을 참는다면 미래에 있을 불쾌할 만남을 안 견뎌도 될 거라고.


 메이플라워의 메시지를 받은 페로가 고민했다. 


 메이플라워의 말로는 몇 분이라지만 실제로는 몇십 분, 어쩌면 몇 시간이 될 수도 있는 불쾌한 순간을 과연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을지, 괜히 오늘도 메이플라워에게 한참을 붙잡혀 있다가 내일도 모레도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붙잡히는 꼴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마구마구 떠올랐다. 


 그렇다고 거절해 버리자니 메이플라워가 진짜로 며칠동안 찾아와서 귀찮게 굴 것 같았다. 


 짜증 가득한 한숨을 쉰 페로가 싸늘한 시선을 쏘아보냈다.


 괜히 질질 끌지 말라는 의미가 담긴 시선이지만 그 시선을 쏘아보내는 당사자도, 시선을 받는 이도, 이들을 지켜보는 이들도 이야기가 빨리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요?"


 페로의 말에 메이플라워가 들려준 대답은 부정이었다.


 그녀는 말을 하러 온 게 아니라 페로의 말을 들으러 온 것이다. 


 당신의 눈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헛웃음 소리를 낸 페로가 메이플라워를 노려보는 눈빛이 더욱 가늘어졌다.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죠?"


 메이플라워의 대답은 간결했다.


 -당신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흥!"


 페로가 코웃음치는 소리를 들은 캐노니어와 앵거 오브 호드 바이오로이드들이 큰 소리로 욕을 하고 싶은 것을 참았다. 지니야들은 메이들과 나이트 앤젤, 스트라토 엔젤들을 데리고 페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한 곳으로 뒤뚱거리며 걸어갔고, 금란들은 무리해서 벌떡 일어났다가 온몸에서 몰려오는 고통에 몸을 감싸안으며 다시 드러눕거나 주저앉았다. 몇몇 금란들은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댔지만 그녀들에게는 아무런 무기도 없다는 사실과 그녀들의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빈 주먹을 쥐면서 페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에 귀를 기울였다.


 "위선이란 단어 말고 다른 무슨 말이 듣고 싶나요?"


 메이플라워가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만일 메이플라워가 하는 행동을 보고 위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 대한 이유는 있을 것이다. 사적 감정이든, 라비아타에 대한 반감이든, 다른 무엇이든 간에.


 당신이 알아서 생각해보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것이 페로의 마음이었지만 눈 앞의 해괴망측하게 생긴 괴물은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듣기 전까지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몇 분만 참으면 된다고 하더니만, 역시나 몇 분으로 끝나지 않게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메이플라워를 마음 속으로 욕한 페로가 생각을 정리했다.


 "당신, 누구를 최우선적으로 챙기고 있죠? 그 돼지x들하고, 그  x들하고 제일 닮은 x들하고, 제일 욕 먹어도 싼 x들이죠? 당신이 진짜로 생각이란 게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챙겨야 하는 건 그 x들이 아니라 그 x들 때문에 이 꼴이 난 다른 사람들이에요. 내 말 틀렸나요? 그리고 지난 번에 당신이 당신 부모 욕 좀 들었다고 눈이 뒤집혔을 때, 당신이 앞뒤 생각 안 하고 당신 마음에 드는 x들만 데려가 놓고 우리는 내버려두다시피 했었던 거 기억해요? 그 때 여기엔 그 x들 때문에 자신이 왜 그 지옥에 끌려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로 지옥에 끌려간 아이들도 있었는데 당신은 모른 척 했죠. 그리고 지금 당신, 우리나 스틸라인, 그리고 입에 걸레 문 xx들, 그 이외의 기타 등등에 대해서 고마워할 줄도 모르는데 챙겨주기 귀찮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일부러 우리 안 챙겨주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닌가요? 안 챙겨줄 구실 찾으려고, 내다버릴 구실 찾으려고 이러는 거 맞죠?"


 듣다 못한 레이븐이 뭐라고 소리를 지르려 하자 메이플라워가 한 손을 들어올려서 제지했다. 주먹을 쥐고 페로를 노려보는 레이븐의 곁에 있는 워울프들과 파니들, 퀵 카멜들이 이를 갈면서 욕설을 내뱉었고 비스트 헌터들과 칸들도 폭발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메이플라워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뒈졌을 x들이......"


 "똥개들 눈깔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아, 자기들 뱃속만 든든하게 해 준다면 당신에게 후장과 보x, 주둥아리를 바치는 것은 물론 스카톨로지 플레이도 해줄 수 있다는 표정을 지은 저 x들은 당신이 하는 짓을 찬양하겠죠. 당신 덕분에 먹어야 할 욕을 안 먹어도 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그 돼지x이나 그 외의  다수는 말할 것도 없고요. 설마 저 x들이나, 당신이 끌어안고 있는 x들이 당신이란 괴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착각하지 마세요, 그 x들은 당신이 제공해주는 맛있는 식사와 보호막 그리고 온갖 초능력 때문에 당신을 숭배하는 것 뿐이니까. 만일 당신이 저것들하고 똑같은 꼴이 난다면 저것들이 지금처럼 당신을 숭배할 것 같나요? 좋아하는 척이라도 해줄 것 같아요? 내다 버리지나 않으면 다행일걸요?"


 칸들과 비스트 헌터들이 움찔거렸다. 


 얼굴 가득 노기를 띄운 금란들도, 지금까지 지은 적이 없는 굉장한 표정을 지은 블랙 웜들도, 페로의 말을 들은 다른 모든 바이오로이드들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이 페로에게 달려들려고 발광했지만 굳은 표정을 지은 근처의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 금방 제압당했다.


 "이것 말고 더 듣고 싶은 말 있어요?"


 어디 죽일 테면 죽여보라고 도발하는 듯한 눈빛을 한 페로의 질문에 메이플라워가 자신에게 딱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를 반문했다. 페로의 입장에서는 딱히 메이플라워에게 하고 싶은 말도 없었고 그녀와의 불쾌한 대화를 더 이어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대답을 듣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당신이 한 번 말해 보시죠?"


 페로가 그렇게 말하자 메이플라워는 무엇을 물을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를 가지고 몇 분을 고민했고, 몇 분간 그녀에게 꼼짝없이 붙잡힌 꼴이 된 페로는 괜한 소리를 했다며 후회했다. 마침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메이플라워가 첫 번째 질문을 그녀에게 전달했다.


 -제가 하는 행동이 위선이라면 당신은 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의 위선을 받아먹고 사는 주제에 고상떨지 말란 소리인가요?"


 대답은 없었다. 마치 네가 그렇다면 그런 셈 치겠다고 말하는 듯한 메이플라워의 표정을 본 페로가 그 얼굴을 후려갈기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페로가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자 메이플라워가 두 번째 질문을 꺼냈다. 이는 페로뿐만이 아니라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도 물어야 할 질문이었고, 동시에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서 대답을 들어야 할 질문이기도 했다.


 -제가 N.E.W.O의 바이오로이드들과 수장을 죽여버리겠다고 한다면 막으시겠습니까?


 페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메이플라워를 노려보고만 있는 모습을 본 컴패니언 바이오로이드들이 메이플라워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 그리 해 봤자 메이플라워나 그녀가 세워놓은 흉물스러운 칼이 뿜어내는 초능력에 제압당하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만일 저 괴물이 그녀들의 자매를 핍박하려 하는 것이라면 가만히 앉아만 있지 않을 것이다.


 "당신......." 힘겹게 입을 연 페로가 비웃는 것인지, 일그러진 것인지 분간하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당신 혼자서 무슨 재주로?"


 -어차피 당신에게는 어느 쪽이든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지 않나요? 내가 죽어서 사라지든지, 아니면 당신을 이렇게 만든 작자들이 사라지든지 간에.


 실제로는 메이플라워가 사라지면 여기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은 전부 굶어죽든지 괴물의 먹이가 되든지 아니면 N.E.W.O의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끌려가서 다시 이전의 꼴로 되돌아가든지 셋 중 하나다. 메이플라워도 자신의 말에 어폐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눈 앞의 이 바이오로이드가 어떤 대답을 들려줄지, 혹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페로는 어떤 답변도 줄 수 없었다.


 그녀가 위선자라고 비난한 메이플라워가 N.E.W.O의 손에 죽는다면 그녀와 그녀의 자매들에게 남겨진 운명은 파멸뿐이다.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만일 메이플라워가 N.E.W.O의 수장과 바이오로이드들을 쳐 죽일 힘이 있고, 그녀가 이들을 쳐죽이러 가는 것을 방치한다면 이들은 섬겨야 할 주인을 두 번 버린- 그것도 이번에는 아예 그녀들이 섬겼어야 하는 이가 죽는 것을 방치한 천하의 개xx들이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메이플라워가 N.E.W.O의 바이오로이드들과 수장을 죽이러 가는 것을 말린다면, 컴패니언 바이오로이드들은 메이플라워의 위선을 받아먹고 사는 주제에 고상을 떠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빌어먹을 괴물 새x!"


 결국 메이플라워를 노려보던 페로가 선택한 것은 욕을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었다.


 메이플라워가 뭐라고 하는지 듣지 못했던 컴패니언 바이오로이드들이 메이플라워를 노려보고는 그녀와 대화했던 페로에게 몰려갔다. 그 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메이플라워도 몸을 일으키자 구경하고 있던 바이오로이드들 일부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괜찮나?"


 자신을 걱정해주는 칸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인 메이플라워가 오히려 그녀를 걱정하는 눈빛을 보냈다. 메이플라워는 생각할 거리가 조금 더 생겼을 뿐 아무렇지 않았지만 칸의 눈빛과 표정에는 혼란과 두려움이 떠올라 있었다.


 메이플라워가 본 대로 칸은, 그리고 그녀와 함께 페로가 한 말을 들은 바이오로이드들은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이 근처에 있는 것이 번민하는 이들에게 별로 좋지 않으리라 생각한 메이플라워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자신의 거처로 되돌아갔다. 


 거주지로 돌아간 메이플라워가 그녀를 반겨주는 바이오로이드들의 얼굴을 보고는 멈칫했다.


 라비아타들, 콘스탄챠들, 레아들, 레오나들, 포티아들, 아우로라들, 세레스티아들. 자신과 같은 곳에 사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전부 캐노니어와 앵거 오브 호드 바이오로이드들이 짓고 있던 것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려움과 혼란, 자기혐오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표정들을.


 그녀와 이야기했던 페로의 목소리가 멀리 떨어진 여기까지 들렸을 리 없다. 


 거주지의 바이오로이드들이 페로의 말을 듣고 흔들린 것과는 달리, 이들은 메이플라워가 없는 동안에 자기들끼리 뭔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러다가 페로가 말했던 것과 동일한 생각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서 있는 것은 혼란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바이오로이드들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다가간 메이플라워가 그녀들을 한 번씩 안아주었다. 잠시 당황한 듯 했던 바이오로이드들은 곧 그녀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고, 메이플라워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을 안아주기 위해서 그녀들을 안았던 팔을 풀었을 때에도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이 메이플라워에게서 떨어지는 것이 그녀를 버리는 것이나, 그녀에게서 버림받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현생이 바빠요. 시간이 부족해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요. 글이 안 써져요. 그런데 이 난리가 났어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