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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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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 이봐? 이봐!“


기절한 남자의 귓등으로 

누군가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사령관이 일어나니 저번에 그 양복쟁이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근무중에 잠이 오나? 코헤이의 수치같으니...”


“죄송합니다. 긴장한 탓에 그만.”


남자는 전번과는 달리 능숙한 태도로 

양복쟁이에게 대답했다.


“쯧쯧쯧, 정신차리게, 정신!

곧 그녀를 만날 시간인데 그렇게 멍청하게 있을건가?

빨리 따라오게!”


양복쟁이가 말을 마치고 복도를 걸어가자

사령관은 주저없이 그를 따라갔다.

창문 하나 없는 복도를 지나 

덩치가 열어주는 녹슨 문을 넘어서 

좁고 어두운 방에 이르니

레이시는 전과 같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번엔 다른 사람의 기억이 들어있는지

조금은 까칠해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었다.

양복쟁이는 그녀의 맞은편 자리에 앉더니 

전번과 같은 말을 중얼거리면서 녹음을 시작했다.


“이제... 시작하죠. 

신께선 당신을 어떤 모양으로 빚으셨나요?”












*딸깍*




「...」


“어디... 이번 분은...

한국 분이시네요? 반갑군요.

성함이...?”


「선미.」


“네, 선미양. 여기 자료대로라면

영등포구쪽에 사셨다고...?”


「네.」


“그렇군요. 가족분들하고 같이 사셨죠?

부모님이랑 아래로 남동생 한 명과 함께.”


「...」


“맞나요?”


「... 잘 아시네요.」


“흠... 좋습니다.”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어... 네. 하세요.”


「제 호구조사를 언제 그렇게 하신거죠?

그 두꺼운 자료들은 또 뭐고요?

진짜 여쭤보고싶은게 뭐에요, 도대체?」


“흠... 질문이 참 많으세요, 선미양.”


「대답이나 하시죠. 제게서 뭘 캐가려는거냐고요?」


“누구한테 뭘 캐간다는건가요? 

당신은 이미 죽었잖아요?”


「도대체 뭔 헛소리...를?」


(능글맞게 웃으며)

“기억 하시죠?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나, 난... 죽었다고...? 아냐... 

난, 난 이렇게 살아있는데...

어떻게... 어떻게...?」


(품 속에서 꺼낸 빨간 버튼을 누르며)

“이러면 어떨까요?”


(머리를 붙잡으며)

「꺄아아아아악!!!」


“당신 주절거리는 소리 들어줄 시간 없으니까

그냥 조용히 말로 할 때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병1신같은년아. 알았나?”


「아... 으윽... 알았... 다고요...」


(빨간 버튼을 옆에 놓으며)

“좋아요...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당신의 과거 얘기 좀 하시겠어요?”


「...」


(빨간 버튼을 만지작 거리며)

“하시겠어요?!”


「예... 알았다고요...」


“좋아요. 그럼... 가정환경부터 시작할까요? 

가족간에 분위기는 어땠죠?”


「... 후우... 어, 어떻고 자시고간에

전부 남동생한테 달려있었어요.

그 애가 기분이 좋으면 집안 분위기도 좋았고

기분이 나빴다하면 집안 분위기도 개판났죠.」


“어째서죠?”


「그 자식이... 부모님의 전부였으니까요.」


“전부?”


「아들이기도 하고 늦둥이였거든요.

부모님이 오십이 다 되셔서 낳았으니...」


“그렇군요... 자료상에도 그렇게 적혀있네요.”


「항상 그 녀석이 먼저였어요.

밥 먹을 때도 그녀석이 먼저 수저를 들어야 다들 먹었고

TV도 그 자식이 보고싶은 채널만 봤고.

뭐... 덕분에 저는 완전 나가리 신세였지만요.」


“나가리요?”


「부모님이 틈만나면 얘기하셨어요.

우리 없는동안 니 동생 잘 돌보라고.

두 분다 맞벌이셨거든요.

그래서 동생 돌볼 사람이 저 밖에 없었어요.」


“맞벌이 집안에 그런거 흔하잖아요?”


「내 얘기 아직 안 끝났거든요?」


(피식 웃으며)

“그럼 마저 하시지요?”


「첫째로 살아간다는게 얼마나 

엿같은 일인지나 아세요?!

뭐 만하면 니 동생 챙겨라, 동생 챙겨라!

우리 없으면 네가 맏이라고

얼마나 닥달들을 하시는지 

정말 진절머리가 났다고요!」


(낄낄거리면서)

“하, 그래요?”


「그렇다니까요?! 

어릴 때는 밥먹이고 똥싸는거까지 

다 하나하나 챙겨주고

나이 쳐먹어선 그 새끼 뒷바라지 해주며

입학식, 생일, 운동회 다 내가 챙겨줬어요,

나도 내 앞가림 하기 바쁜 나이에!

하... 근데 웃긴게 뭔 줄 알아요?」


“아뇨.”


「그 새낀 고마운줄을 몰라요.」


“그래요?”


「그렇게나 업어 길러줬더니 

뭐 좀 시키면 말 끝마다 내가 왜? 내가 왜?

이 지랄하는데 진짜...

엄마한테 하소연을 해도

‘니 동생이잖아. 누나인 니가 참아야지’

이딴 소리나 하시고...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어서

나 혼자 속이 썩어들어갔다고요, 내 속이!

오죽했으면 제가 술을 쳐먹었겠어요?

성인도 안 됐는데 술을?! 예?」


“예, 고생하셨네요.”


「맨날 나만 희생해요, 나만!

그 새낀 하는 것도 없는데 나만!

난... 난 자식도 아니에요?

그 새끼만 자식이에요? 예?!」


“저야 모르죠. 

부모님께 물어보시지 그랬어요?”


(기운이 빠진듯 이마에 손등을 짚으며)

「하아... 이미 늦었어요. 다 늦었다고요.」


“무슨 소리죠?”


「... 나이를 먹어도 그 새끼는 만족을 못했어요.

피아노가 배우고싶데서 

비싼 돈 주고 피아노 학원에 보냈더니

한 달만에 때려치우고 와서는

‘엄마, 나 테니스 배우고 싶어.’같은 소리나 하는데

엄마 아빠는 또 허리띠 졸라매고 

걔 테니스 학원 보내줬더니

이번엔 또 2주만에 때려치웠어요.

애 때쓰는걸 하나하나 다 들어주니까

아주 끝이 없어요, 끝이.」


“허허. 그렇군요.”


「가지고 싶은건 또 뭐 그렇게 많은지,

‘엄마, 나 자전거 가지고 싶어’하면 

제일 비싼거 하나 마련해주고

‘엄마, 나 아이폰 갖고싶어’ 하면

사주고... 또 사주고... 계속 사주고...

이러니 집안이 안 망해요?

니미, 자전거는 탈 줄도 모르는 새끼가...」


“동생분의 욕심에 집안이 망했다고요?”


「... 애가 대학교를 들어가니 이젠 차가 필요하데요.

지 애인이랑 여행을 가야한다고.」


“이런 이런...”


「그 새끼 눈엔 지 엄마 아빠 얼굴도 안 보이나봐요.

두 분 얼굴에 주름살 깊게 패인거,

그거 다 그 새끼 때쓰는거 들어주느라 생긴건데...

내가 그걸보고 얼마나 속이 터졌겠냐고요, 

그 모습 보고...」


“그렇군요.”


「근데 그 새낀 신경도 안 쓰는지

아빠가 집안이 어려워서 차는 안 된다고 달래니까

애처럼 징징대면서 차 사달라고 지랄 지랄을... 

부모님은 그거 보고 또 안절부절 못하고...

그거보고 제가 참다 못해 터졌어요.」


“화를 내셨다는 건가요?”


「예. 너무 답답해서 소리를 질렀죠.

그렇게 필요하면 니가 알바를 해서 돈을 모으라고,

안 그래도 부모님 나이드시고 몸 약해지셔서

은퇴하실때 다 됐는데 너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신다고,

니 이기심 하나로 사람 몇이 고통받는지 아냐고.」


“말을 듣던가요?”


「아뇨...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왔죠.」


“뭐라고 하던가요?”


「누나가 뭘 안다고 큰소리냐고...

누나가 뭐라고 명령질이냐고...

그러면서 절 툭툭 치길레 하지말라고 탁 쳤더니

절 온 힘을 다해 넘어뜨린거 있죠?」


“어이구.”


(울먹이며)

「그러니까 엄마랑 아빠가 동생을 막 막는데...

저한테 괜찮냐고 묻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어요.」


“흠...”


「저는 여기 넘어져있고 

세 사람은 저기 서있는데

막... 소외감 같은게... 생기는거 있죠?」


“흠...”


「왜... 왜 항상 동생만 챙기는거지?

엄마 아빠 없을 때 쟤 항상 챙겨준것도 나고,

두 분 다 힘들다 힘들다 하소연 하는 것도

다 들어준 사람도 나고,

누가 안 돌봐줘도 스스로 다 하고

동생까지 챙겨준 사람이 난데...

왜... 왜 나는 사랑해주지 않는거냐고요...?」


“...”


「그 길로 뛰쳐나왔어요.

막... 막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그 날... 그 날 달도 안 떴거든요?

그냥 까만 하늘보고 막 울었어요...

너무 속상해서... 너무... 너무 외로워서...」


“...”


「그냥... 제가 많은걸 바란것도 아니에요.

그냥... 그냥 동생 사랑한 만큼 반이라도

날... 날 좀 사랑해주시면 안되나...? 하고.」


“그래요...”


「그렇게 한참을 우니까

속이 텅 빈 것처럼 온 몸에 힘이 다 빠졌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죠.

‘그래, 이래봐야 변하는 것도 없겠지. 돌아가자.’ 하고.」


(씨익 웃으며)

“음...”


「그래서 돌아갔죠.

‘어차피 동생 재우느라 나같은거 

신경도 안 쓸테니까, 그냥 들어가서 자자’  

라는 생각과 함께 현관문을 열었는데... 

근데...」


(즐거운듯이)

“근데...?”


「그... 그 뒤에...」


“빨리요, 선미양! 아님 제가 말 할까요?”


「그, 그 뒤... 뒤에...」


“쯧쯧쯧, 정신머리하곤.

당신 어머니의 시체가 누워 있었잖아요?”


「...!」


(현장 사진을 보여주며)

“이 분이 당신 어머니 맞죠?”


(사진을 보고 놀라며)

「꺄아아아악!!!」


(뒷목을 가리키며)

“목 뒤에 자상이 있었어요.

누군가에게 식칼로 찍힌 상처였죠.

여기선 잘 안 보이시죠?”


(덜덜 떨며)

「아.. 아냐... 아냐....」


“그걸로 끝이 아니었죠.

당신은 거실에 대자로 누워있는 아버지도 발견했잖아요.

가슴이 식칼로 난도질 당한 아버지의 시신을.”


「아니야아아...」


“범인은 당신 동생이었죠.

흠... 살인이 일어났던 순간에 자리를 비우셔서

범행 동기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가 없군요.

이거 가격이 좀 깎이겠는걸...”


(머리를 쥐어 싸며)

「아니야... 아니야...」


“끝까지 모르는 척 하시기에요?

그 다음엔 동생분이 양에게 다가가더니...”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아니야아아아아!!!」


“나 원, 소리하고는.”


「아빠... 엄마아...」


“하아... 이거 나 원.

오늘은 실적이 반푼이로구만.

됐어! 이걸로 종료하지!”


(양복쟁이가 짐을 싸다가

주머니속에서 울리는 휴대전화를 받는다)


“어, 여보! ... 아니, 일 하는 중이라 매너모드로 해놨지.

애들은? 자고있어?”


*딸깍*







“사령관님! 지금이 기회에요!”


스카디가 사령관에게 외쳤다.


“저 남자가 통화를 하고 있을 때에 

레이시 양에게 다가가서 설득을... 사령관님?”


사령관은 말 없이 레이시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아직도 울부짖고 있었다.

사령관이 한 쪽 무릎을 꿇은뒤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질문을 했다.


“레이시... 양? 이게 당신 이름이 맞나요?”


레이시는 말이 없었다.

여전히 울고 있었다.


“당신의 정신은... 당신이 가지고 있나요?”


“사령관님?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스카디의 말에도 남자는 레이시를 바라보고있었다.


“레이시, 당신의 정신을 

당신이 조종하고 있지 않다면

설사 여기서 나간다 해도 다를건 없을 거에요.”


남자가 최대한 레이시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당신은 선미양이 아니에요, 

그녀는 살해당했다고 

본인 입으로 직접 말씀하셨잖아요!

그녀의 기억이 어쩌다보니 당신 속으로 들어왔을 뿐

진짜 당신은 이 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고요! 

타인의 기억에 매몰되지 말고 

어서 정신을 차려봐요! 

당신 스스로가 깨어나지 못하면

누구도 당신을 도와줄 수 없단 말이에요!”


사령관의 간곡한 외침에도 

레이시는 말이 없었다, 여전히 울고 있었다.

사령관이 다시 뭐라 하려던 찰나 

스카디가 급하게 외쳤다.


“사령관님! 양복쟁이의 통화가 곧 끝날 기색입니다!

서두르세요!”


남자는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을 감더니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양복쟁이가 전화 속 

부인에게 작별인사를 보낼 때 쯤

그는 다시 눈을 뜨면서 레이시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스카디?”


남자가 스카디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연결을 해제해줘.

이대론 안돼. 무슨 수를 써야겠어.”


“진심이십니까...?”


스카디의 되물음에도 사령관은 묵묵부답이었다.

스카디는 하는수 없이 연결을 해제했다.

사령관의 몸이 공중으로 뜨자

남자는 마지막으로 레이시를 돌아봤다.

그녀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사령관의 연결이 해제될 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공간은 곧 이전처럼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공간의 파편들 사이로

한 빛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뒤쳐졌던 사령관의 잡념 하나가 

간신히 이 곳까지 쫒아온 것이었다.

허나 사령관은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잡념은 공간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42.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사, 사령관님! 괜찮으십니까?”


“잠깐만, 나중에!”


사령관이 헬멧을 벗으며 말했다.


“mp3 아직 가지고 있지?”


“네?”


“mp3! 처음에 나한테 줬던거 있잖아!”


“아, 아 예! 여기요!”


스카디가 책상위에 올려놨던 mp3를

사령관에게 건네 주자 그는 황급히

mp3를 조작해 2번 파일을 재생했다.

그러자 노이즈음이 낀 

사령관의 목소리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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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

유감이야. 처음부터 이런 소릴 해서 미안해.

나도 막혔어. 

레이시는 지금 번백 현상을 너무 많이 경험한 나머지

무언가를 인지하는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야.

머리가 그냥... 텅 비었단 말이지.

거기다 죽은 사람의 기억이 자리잡은 상황에선?

설득이고 나발이고 말 자체가 

안 통하는 상황이란 말이지.

후우... 

어쩌면 좋지? 솔직히 가망이 없어보이는데...

스카디 말로는 지금의 난 26번의 번백을 경험했다는데...

앞으로 몇 번의 경험을 더 반복해야 될까...

그 때까지 내 정신이 버텨줄까...?

......

스카디가 알려준 방법은... 

절대로 쓰고싶지 않은데...

해야하나...? 모르겠다...

......

만약 아직도 듣고있다면 

너에게 최후의 수단을 알려줄게.

다음 녹음파일에 그 방법을 녹음 해둘거야.

최대한 고민한 다음에 듣는게 좋아.

.......

그리고 혹시라도, 

정말 모든 수단을 다 써봤는데도

상황이 절망적이기만 하다면...

거기서 탈출하는 방법을 알려줄...

*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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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은 정지버튼을 누른 후 

서둘러 다음 파일을 찾아 재생하려고 했다.

헌데 뭔가 이상했다.

녹음 파일이 처음것과 두 번째 것 외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폴더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나오지 않았다.

사령관이 고개를 들곤 스카디에게 외쳤다.


“스카디, 세 번째 파일 어딨어?”


“...”


스카디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사령관이 다시 외쳤다.


“스카디! 여기 이거 파일 어딨냐니까?

세번째 녹음 파일 어딨어?!”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카디의 모르쇠에 사령관은 

답답했는지 소리를 질렀다.


“파일말이야, 파일! 

내가 기억을 잃기 전에 녹음한 파일!

그거 어딨냐는 말이 그렇게 어렵...”


사령관은 뭔가 어색한 기운을 감지했다.

스카디는 최선을 다해 사령관의 시선을 피했다.

왜지? 왜 이쪽을 쳐다보질 않는거지?

... 쳐다볼 수 없는건가? 파일 때문에? 

사령관은 설마하는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니가 삭제했냐?”


“...”


스카디의 표정이 참 볼 만했다.

침묵은 언제나 답이 되어주었다.

사령관이 배신감에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시는... 정말 답이 없는 상태야...

자의식도 없고 기억도 없는... 껍데기같은 상황이라고...”


스카디가 죄책감에 얼굴을 찌푸렸다.

사령관은 좌절감에 두 손으로 얼굴을 싸맸다.


“그런 그녀를 구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네가... 

니 손으로 날려버렸어...”


“그건 방법이 아니에요, 사령관님.”


스카디가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그건 자살행위에요!

그 방법만큼은 절대로 전해드릴수 없어요.

너무 위험하다고요!”


“그걸 판단하는건 내 재량이지 네 몫이 아니야!

난 레이시를 구하러 왔어, 

넌 그런 날 도우려는 사람이고!

지금 행동은 나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어!”


“배신이라고요? 배신?!”


스카디가 기가찬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전 사령관님을 보호하려고...!”


“보호따윈 필요없어! 내가 애처럼 보여?”


“예, 억지 때나 쓰시는 덩치 큰 어린애로만 보이십니다!”


“이...!”


사령관이 울컥한 마음에 스카디에게 달려들려 했으나

그는 마지막 인내심으로 간신히 참아냈다.

지금은 싸울 시간이 아니다,

레이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있다,

차라리 한 번이라도 더 구출시도를 하는것이

그녀를 위한 일이다, 라고 생각 했다.

사령관은 몇 차례의 심호흡으로 자제심을 되찾은 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스카디에게 말을 걸었다.


“... 좋아, 내가 졌다. 네 말대로 하자.

헬멧 쓸테니까 전원 좀 올려줘.

다시 시작해보는거야.”


사령관이 VR헬멧을 쓰려고하자

스카디가 단호하게 말했다.


“싫어요.”


“... 뭐?”


사령관의 인내심이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너 지금 나랑 장난...”


“그게 아니라 더는... 더는 못하겠어요!”


스카디의 외침에 사령관이 기가 찬다는듯 소리쳤다.


“야, 내가 안 들어간다고 했을 땐 

목을 졸라가며 억지로 시키더니

이제 내가 자발적으로 하겠다니까

네가 못하겠다고 훼방놓는거냐?

뭔데, 이번엔 내가 네 목을 졸라야 되냐?”


“그게 아니라... 사령관님...?”


스카디는 어렵게 어렵게 한 마디를 꺼냈다.


“이제 그만... 포기하시면 안될까요?”


잠깐동안 시간이 멈춘것처럼 주변이 조용해졌다.

사령관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자

스카디가 간신히 간언했다.


“사령관님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셨어요.

수 백번을 기계속에 들어가셨다가

번백 현상만 서른 번을 넘게 겪으셨고요.

사령관님, 

전 곁에서 사령관님께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일일히 다 지켜봐야만 했어요.”


스카디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이었다.


“머리를 붙잡고 두통을 호소하시다가

구토를 하시더니 갑자기 헛소리를 하시질 않나,

온 몸이 찢어질것 같다면서 저 기계에 몸을 부딪히면서

고통을 잊으려고 하시는 모습들까지...

거기에 번백 현상으로 모든 기억을 잃고 

쓰러지신 사령관님을 품에 안을 땐 정말...

저는... 저는 도저히 못하겠어요.” 


스카디가 약한 모습을 보이자 

사령관도 더는 다그치지 못했다.


“사령관님, 사령관님께선 할 만큼 하셨잖아요.”


스카디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할 말은 했다.


“세상 어느 누가 자신의 정신을 담보로

전혀 모르는 타인을 구하려 들겠어요,

그것도 서른 번이 넘도록!

무슨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 레이시를 책임져야 할 

권리가 있는것도 아니잖아요?

사령관님께선 할 만큼 하셨어요.

이제 돌아가요, 예?”


스카디는 진심인 것 같았다.


“... 우는거야?”


사령관이 스카디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네 눈물...

...

그래... 더 이상 강행 못하겠다.”


“사령관님...!”


스카디가 미소를 지으며 외치자 

사령관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스카디? 저 노트북 조작하는 법 좀 알려줘.”


“... 예?”


“더이상 네가 고통받을 필요는 없잖아.

여기서부턴 나 혼자 해결할게.”


스카디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거지?

그에 대한 답변일까, 사령관이 말했다.


“길 가다 물에 빠진 사람을 발견했다고 쳐봐.

분명 모르는 사람이고 

나까지 물에 빠질 위험성도 있기야 하다만,

그렇다고 모르는 척 하면 안 되는거잖아?”


“...”


“사람이 물에 빠진걸 본 이상 

목격자는 그를 도울 책임이 생기는거야.”


“그렇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리 복잡한 문제도 아니지.”


스카디의 말을 듣고 사령관은 고개를 저으며 단정지었다.


“내가 그녀를 구하는데 왜 이유가 필요하다는 거야?

난 아직 멀쩡하고 그녀는 아직 저 안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잖아, 그치?”


“...”


“그거면 된거야. 내가 그녀를 구할 이유는.

난 그걸로 족해.”


“... 맙소사...”


스카디가 두 손으로 얼굴을 싸매자

사령관이 그녀 곁으로 다가가 살며시 안아주었다.


“그 동안 미안했어. 

널 믿지도 못하고 수상한 사람처럼 취급한 것도, 

네 마음도 모르고 버럭버럭 소리만 지른 것도,

네가 겪었을 고통도 모르고 함부로 말 한 것도

전부 다 미안해.

하지만 난 아직도 레이시를 포기 못하겠어.

난 괜찮으니까... 너 혼자서라도 돌아가면 안될까?

그냥 노트북 조작 방법이랑 나가는 길만 알려주면 그...”


“집어치워요.”


스카디가 사령관을 옆으로 밀치고

레이시가 들어있는 포드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사령관이 놀라 소리쳤다.


“스카디? 스카디!”


포드 앞에서 스카디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주먹을 쥐었다.


“이 짓거리도 이제 신물이 나요.

이 여자를 그렇게 구하고 싶나요?

좋아요! 구해주죠.

고통받고 있을 저 대가리를 부숴서 구원 해 준 다음

우린 오르카 호로 돌아가는거에요.”


“안돼!”


사령관이 말리기도 전에

스카디는 두 손을 깍지낀 다음

있는 힘껏 들어올려 포드를 향해 세게 내리쳤다.

쇠가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포드에서 거슬리는 경고음이 울려퍼졌다.

다시 한 번 또 스카디가 내려치려 하자

사령관이 포드에 급히 달라 붙으며 소리쳤다


“안돼, 안돼 스카디! 멈춰!”


“비켜요, 사령관님!”


“이거 부술거면 날 먼저 죽여!

날 죽이고 부수라고!”


“비키라고요!!”


스카디가 사령관을 옆으로 밀친 후

주먹에 온 힘을 담아 레이시의 머리 쪽을 노렸다.


“스카디! 멈춰! 멈추라고!”


허나 스카디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포드 앞에서 주먹을 최대한 뒤로 뻗은다음

레이시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내지를 자세를 취했다.

곧 그녀의 주먹이 움직이더니

레이시의 포드를 부수려 하자...


“사령관으로서 명령한다, 스카디! 당장 멈춰!!”


사령관의 명령에 스카디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는 시간이 멈춘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질 못했다.

스카디가 당황한 얼굴로 사령관에게 물었다.


“어떻게... 사령관으로서 명령을...?”


“... ‘사령관’이라며.”


남자가 주섬주섬 일어나더니 

먼지를 툭툭 털면서 말했다.


“날 사령관이라고 부르는 넌 내 부하니까

혹시라도 명령으로 하면 들을까 생각이 들더라고.

정말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먹혀서 다행이구만.”


스카디가 착잡하다는 표정으로 그대로 서있자

사령관이 몇 가지 명령을 내렸다.


“좋아... 그럼! 사령관으로서 명령한다!

먼저 절대 레이시를 해치지 않을 것과 

두 번째 녹음 파일이 말하는 

최후의 수단이 무엇인지 알려줄 것,

그리고 날 두고 너 혼자 오르카 호로

안전하게 복귀할 것.

이상이다.

...

움직여도 좋아.”


레이시는 천천히 쥐고있던 주먹에 힘을 풀었다.

그녀는 패배자의 표정으로 사령관에게 이실직고했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 빌어먹을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이 뭔지 알려드리지요.

...

여기 제가 반쯤 부숴놓은 포드는

사실 레이시 양의 기억에만 접속할 수 있는건 아니에요.

그보다도 더, 더 깊은 영역으로까지 들어갈 수 있어요.”


“예를 들면?”


“... 번백 현상으로도 지울 수 없는 

레이시 양 본연의 무의식의 영역까지요.”


스카디의 진지한 말에도 사령관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레이시양의 정신 중 가장 깊숙한 곳이라는 뜻이에요.”


“오오, 알겠어.”


스카디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어떤 경험을 한 뒤, 

그 경험과 관련된 사물, 사건, 사람, 동기와 같은것이

본능적으로 각인 되는 장소라 할 수 있어요.

무의식, 무자각, 잠재의식 등으로도 불리우죠.

만약 사령관님이 그녀의 무의식속에 들어가

탈출에 대한 설득을 각인시킨다면

그녀가 우리의 설득을 듣고 우리의 생각대로 

움직여줄 확률이 올라갈지도 몰라요.”


“뭐야, 쉽고 간편하네? 

왜 여태까지 이 방법을 안 쓴거야?”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스카디가 손을 주무르며 조심스레 말했다.


“첫 번째로, 이건 설득으로 끝나는게 아니에요.

그녀의 정신을 조작하는 단계까지 가는거지.”


조작이라는 말에 사령관의 표정이 급 어두워졌다.


“당연히, 그녀의 정신에 어떤 영향이 갈지도 몰라요.

정신을 영혼과 동일시하는 사령관님이시라면

이 방법이 왜 꺼려지는지는 잘 아시겠죠?”


“... 두 번째 이유는?”


사령관이 묻자 스카디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 너무 위험해요. 자살행위나 다름없죠.

거기서 기다리는게 무엇일지,

그 곳에 들어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들어간 후 다시 나올 수는 있는지...

그 곳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어요.”


“아무도 모른다는거야?”


“네...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정보는 있어요.”


스카디가 초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약 무의식 속에서 번백 현상을 경험했다간

기억만 날아가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거에요.

사령관님의 잠재의식속에 있는 

정보, 버릇, 본능, 의식, 기억, 지능, 사고까지 전부 다

0이 아니라 null이 된다는 소리죠.

그러면 운이 좋아야 식물인간에 심하면 죽음까지...

... 

설명은 이걸로 끝이에요, 사령관님.

어쩌시겠어요? 그런데도... 그럼에도 하실건가요?”


사령관은 말없이 천장을 바라봤다.

없어진다... 그건 무슨 기분일까? 

정신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

그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두렵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일것이다.

죽는 것... 어쩌면 그보다 더한 일일수도 있다.

선택하고나면 후회할 시간도 없을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할 수 도 없이 스스로,

혼자서 지옥으로 떨어져야 하는 꼴이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 

내 모든것을 걸만한 가치가?

...

사령관은 슬쩍 레이시가 담긴 포드를 바라봤다.

반쯤 찌그러진 채, 아직도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포드에 달린 강화 플라스틱 창 속으로 레이시가 보였다.

고통스러운,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가.

사령관은 결정지었다.


“스카디?”


그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 좀 도와줘.” 


“도와... 달라고요?”


스카디가 슬픈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다 포기한것 같다.


“가실거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령관은 대답대신 씨익 웃어보였다.

그녀도 따라 웃었다.

그는 앞면이 나오든 뒷면이 나오든 상관없이

동전이 있다면 무조건 던지고 보는 사나이였으니까.








43.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이 곳은 레이시의 잠재의식,

사령관은 마지막으로 노이즈음이 낀 

스카디의 당부를 들었다.


“사령관 님! 부디 조심... 하... 요.

거기서... 부터 저는 개입할... 없어...

레이시... 무의식... 조심... 길

사령... 제발... 하... 를...

*치직*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스카디의 무전이 끊겼다.

남자는 순간 가지말라고 외치고 싶었다.

무서웠다. 본인 의지로 들어왔지만 그래도 무서웠다.

그래도 이미 들어온거, 그는 마음을 다 잡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의 눈 앞엔 어느 작은 방이 보였다.

붉은 낙엽들이 방 바닥에 소용돌이 모양으로 

수북히 깔려있었고

방의 중심에는 레이시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레이시 주위로 두 마리의 큰 뱀이 

빙글빙글 기어다니며 레이시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사령관이 그 근처로 다가가자 

두 뱀이 고개를 돌려 사령관을 쳐다보았다.

두 뱀 중 왼쪽의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으니.”


익숙한 목소리였다. 

바로 양복쟁이의 목소리였다.

오른쪽 뱀은 사령관을 마치 맛난 먹이 보듯 쳐다봤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그러더니 사령관을 무시하곤 다시 레이시 주변을

빙글빙글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남자는 천천히 심호흡을 한 후 

최대한 뱀에게 닿지 않을 만큼 그녀에게 접근했다.

마침내 그녀에게 닿을 만한 거리가 되자

사령관이 조심스레 레이시를 불렀다.


“저... 레이시양?”


남자의 부름에도 레이시는 말이 없었다.

창백한 얼굴로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뱀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남자는 계속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레이시양? 레이시양? 레, 레이시양?!”


레이시의 이름을 여러번 외쳤으나

그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저 뱀들이 읋는 성경구절에만 관심을 보였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덥지도 아니하고 차갑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남자는 골치를 썩히며 그 광경을 보고만 있다가

문득 한 가지 꾀를 생각해내었다.

사령관은 두 손을 입으로 갔다 대

뱀들을 넘어 레이시의 귀까지 닿을만큼 크게 외쳤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레이시 그대는 

고개를 들어 성령의 말을 들을지어다!!”


그러자 정말 효과가 있었는지

레이시가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사령관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성경구절에만 관심을 보였다.

정말 성경일 필요는 없었다.

비슷하기만 하면 된다.

뱀들의 따가운 눈빛도 무시한 채

남자는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그녀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들은 언제나 내게 구원을 바라거늘,

너희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원할 생각조차 못한다!!”


그러자 두 뱀 역시 남자에게 질세라 

레이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이 책과 그 일곱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남자 역시 지지않고 목청껏 소리쳤다.


“레이시!! 장차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내세우며 나타나서 

'내가 그리스도다' 하고 떠들어대면서 

너를 속일 것이다!!! 

또 여러 번 난리가 일어나고 

모진 고문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당황하지 마라!!! 

그런 일이 꼭 일어나고야 말 터이지만 

그것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남자는 이제 숨이 끊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제발!!!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니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만일 누구든지 뱀의 간언을 제하여 버리면 

그 현명한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네가 진실로 속히 구원받으리라 하시거늘!!! 

아멘!!!!

레이시여 오십시오 제발!!!!”


남자는 목이 터져라 그녀를 불렀다.

그러다 진이 빠졌는지 무릎을 부여잡고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소리를 지르기위해 고개를 드는 그 때,

레이시가 사령관을 똑바로 쳐다보고있었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을 건네 길

낯설지 않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스마엘?」


레이시가 사령관을 보며 말했다.


「당신인가요?」


남자가 놀라움과 의아함이 섞인 눈으로

레이시를 쳐다보았다.


“이스... 마엘? 그, 그게 내 이름이에요...?”


레이시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어떻게... 나... 날 알아요...?”


레이시가 웃음을 터뜨리며 사령관에게 말했다.


「알고말고요, 기억 속에 뚜렷히 남아있는데.

그 양복쟁이랑 함께 찾아와선 

저한테 막 나가야된다 뭐 해야된다 

얘기해주셨던 분이시잖아요?

그 때 이름도 알려주셨는데,

너무 인상깊어서 무의식중에 기억에 남더라고요.

... 뭐에요, 기억 안 나세요?」


“아뇨... 아뇨, 맞아요...”


남자가 한 줄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내 이름은 이스마엘... 당신은...?”


「저는... 제 이름은...」


레이시가 머리를 붙잡아가며 떠올리려 했다.

그럼에도 기억나지 않았는지 사령관에게 되물었다.


「혹시... 저를 아시나요?

이상하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이름도, 가족도, 과거도 전부 모르겠어요...」


“당신은... 당신은 누구도 아니에요.

당신 그 자체일 뿐이지.”


사령관이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당신에겐 과거가 없어요.

가족도 인연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죠.

탐욕스런 인간들이 당신을 

사람으로서 만들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사령관이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만약 괜찮다면... 

당신에게 이름을 선물해 드려도 될까요?” 


레이시가 그를 쳐다보다가 곧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페쉬. 깨끗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여.”


「네페쉬... 네페쉬...」


”그만.”


뒤에 있던 두 뱀이 심상찮은 눈빛으로 말을 끊었다.

사령관이 그녀를 등 뒤로 두고 서자

왼쪽의 뱀이 쉿쉿거리며 경고했다.


“그녀는 코헤이 교단에 은혜를 입은 몸이다. 

떨어져라.”


사령관은 코웃음을 치며 당당히 말했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안되지.”


그러자 오른쪽의 뱀이 말했다.


“옳아... 그렇게 쉬운 방법이 있었지.”


그러더니 두 뱀이 입으로 기묘한 휘파람소리를 불자

갑자기 거센 돌풍이 좁은 방 안으로 들이닥쳐와

사령관을 그대로 날려버렸다.

사령관은 벽에 머리를 부딪히더니

강한 충격과 함께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바람소리가 들린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바람소리는 참 크게 들려왔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사람의 정신속에서도 바람이 불 줄은 몰랐다.

허나 기분 좋은 바람은 아니었다.

차갑고, 날카롭고, 성난듯한 바람이었다.


“그의 얼굴을 볼테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그런데... 왜 바람을 쐬고 있었더라?

...

네페쉬!!!


사령관이 황급히 일어서자 머리가 미친듯이 쑤셨다.

그가 머리를 붙잡고 주변을 돌아보자

두 뱀이 네페쉬의 몸을 휘감고 그녀의 귀에 

독과 같은 성경구절을 흘려놓고 있었다.

주변의 빛이 일그러져 네페쉬의 주위로 빨려들어가고 있었고

네페쉬는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남자가 황급히 그녀를 향해 달려들자 

우뢰와 같은 목소리가 방 안을 뒤흔들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려 거기를 떠나시니 앞서 10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쫒아내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칠 수 있는 권능을 주셨으메, 이 여자는 코헤이 교단의 산물이자 증인이요 세례이니, 어찌 그 더러운 블랙 리버 놈들에게 넘길 수 있느냔 말이다. 그녀가 본 기억들은 신이 우리를 창조하듯 그녀가 우리에게 선물한 기적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길이나 사마리아 고을로 가지 말고, 이스라엘 집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시니, 이렇게 제자들에게 사역과 대상을 정해주셨다.


남자가 귀를 막고 인상을 쓰고있는 동안

네페쉬를 휘감고 있는 뱀의 몸뚱아리가 

더욱 조여들어가고 있었다.

남자가 황급히 달려가 두 뱀을 떼어 놓으려 했으나

뱀들의 몸이 마치 강철과도 같아 떼어놓을수 없었다.

네페쉬가 고통에 비명과 눈물을 흘리자

남자는 무력감과 죄책감에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두 뱀의 독설은 계속 이어졌다.


신이시여, 구원자여, 가여운 어린양을 돌보는 모든 지배자시여 우릴 굽어살피소서. 신의 말씀이 내가 걸어야 할 길이요 그분의 질타는 곳 우리가 이고갈 십자가를 묶을 매듭이니, 보라 어리석은 여인이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은 귀신을 쫒고 병을 고치며 약한 것을 고치는, 실제 삶을 섬기는 사역을 감당했다면, 그대는 코헤이 교단에 협력하여 세상에 존재할 수많은 눈 먼 죄인들을 인도할 선지자가 되어야 마땅함이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 신께서 내릴 유황비로부터, 갈라지는 대지의 복음다윗을 실설캐함을 위해 그대는 더욱 정진해야하리라.


남자는 최대한 머리를 쥐어짜며 

그녀를 구할 방도를 생각했다.

바로 눈 앞에, 뱀들의 또아리에 묶여

독과 같은 설교를 강제로 듣고 있는 그녀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그의 눈 앞을 일렁였다.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기도하고 찬양하라, 어린양이어! 그대는 더욱 정진해야 함이라.

기도하고 찬양하라, 어린양이어! 그대에게 주어진 짐의 무게는 결코 작지않다.

기도하고 찬양하라, 어린양이어! 그대의 희생이 우리를 살릴지니.

기도하고 찬양하라, 어린양이어! 그대를 더욱더 정진케해야 함에 우리의 몫도 큼이라!!!
신께 기도하고 죄를 사하사 그 분께서 내려오심에 직접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맡으셨다.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맡기신 섬김의 자리가 있을것이니,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섬김의 자리에 세우기만 하신 분이 아니니라!!! 주님은 우리에게도 주님을 위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제자들에게 주셨던 권능을 주시리라!! 그리고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셨던 것처럼, 사역의 자리에 항상 함께 하실 것이다!!! 때로는 섬기는 일이 힘들고, 지치며, 때로는 마음 같이 잘 안될지라도, 모든 사역의 순간마다 주님께서 감당할 수 있는 힘과 권능을 주시고 또 함께 계심을 믿어야만 하리라!!!


사령관은 그녀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네페쉬! 당신은 네페쉬야! 

선지자도 뭣도 아닌 네페쉬 그 자체라고!

저것들의 말을 듣지마!!  

당신 머릿속에 들어있는 타인의 기억들은 당신이 아니야!!

당신을 괴롭히는 죽은자들의 고통스런 기억들은

전부 탐욕스런 개자식들이 만들어낸 늪이라고!! 

그 늪 속에 오래있어선 안돼!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지고 말거야!!

당신밖에 없어!! 

당신을 구할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란말이야!!

기억해줘!!!

당신의 이름을!! 존재를!! 지금을!!

당신을 구하려는 나 이스마엘을!!

제발 기억해줘!!!”


처절하게 외치는 사령관을 향해

왼쪽에 있는 뱀이 이빨을 드러내더니 

그의 목덜미를 강하게 물어 뜯었다.

목을 붙잡으며 서서히 뒷걸음질 치는 사령관,

결국 쓰러지고마는 그에게 네페쉬가 소리쳤다.


「이스마엘!!!」


갈 수록 강해지는 바람은 마침내 주변 공간까지 빨아들이더니 

네페쉬와 두 뱀을 중심으로 모든것이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빛도, 공간도, 시간도, 사령관도, 끝내는 네페쉬마저도

강력한 바람 속으로 모든것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공간은... 아니, 공간마저 사라진 공허 속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 처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

그리고... 빛이 있었다.

한 빛이 어둠속으로 진입했다.

빛은 무언가를 찾는 듯 주변을 서성이다가

곧 어둠의 중심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모든것이 사라졌던 중심에서 빛은

곧 자기 자신을 폭발시켜 큰 섬광을 뿜어냈다.

빛이 뿜어내는 따뜻한 기운들 사이로

이곳 저곳으로 울려퍼지는 목소리가 

공허 속을 오고갔다.


‘그럼 나는 누구지? 

기억을 잃은 나는 내가 맞는건가?

기억을 잃은 나는 나라는 존재가 아닌걸까?

... 도대체 내 이름이 뭐지?

도대체 내 이름이 뭐지...?

도대체 내 이름이 뭐지?’


‘이스마엘...’


어디선가 존재하지 않는 여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스마엘...’


목소리가 부르는 이름이 공허 속을 울려퍼지자

곧 퍼져나갔던 빛들이 목소리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뭉쳐진 빛들은 곧 선과 형태가 되어

점차 한 남자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귀와 손 까지, 뺨과 다리까지 구현된 모습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그의 모습이였다.

그는 입을 열어 공허 속에 질문을 던졌다.


“내 이름이 뭐지?”


“이스마엘...!”



마지막 빛까지 그와 합쳐지자 남자는 사령관으로서,

이스마엘로서 완성되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을 애처롭게 부르는 

한 여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44. 화평케 하는 자에겐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열 하나, 열 둘, 열 셋...

제발... 제발...”


스카디가 사령관의 가슴을 

두 손으로 꾹 꾹 누르면서 중얼거렸다.


"... 스물 여덟, 스물 아홉, 서른!"


그리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령관의 입에 

인공호흡을 한 후 다시 반복했다.

허나 사령관의 의식은 도저히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스카디는 최대한 힘을 주며

사령관의 가슴에 압박을 가했으나 헛수고였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제발... 제발... 왜 안 일어나는거야...”


스카디가 울상을 짓더니

주먹을 쥐곤 사령관의 가슴을 퍽퍽 내리쳤다.


“제발! 제발 죽지말아요!

내가 하지말라고 그렇게 말렸는데...

그걸 기어이 들어가서 무책임하게 죽으면

오르카 호에 있는 다른 병사들은 어쩔거에요?

다 죽으라고요?

어서 일어나요... 빨리 일어나!!!”


“커헉!!”


“앗...!“


스카디의 필사적인 외침 때문인지 

아니면 강력한 주먹질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사령관이 가슴을 붙잡고 고통스런 

기침을 내뱉으며 정신을 차렸다.


“사령관님... 사령관님!!!”


스카디가 사령관을 꼭 끌어안자

사령관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필사적으로 밀어냈다.

그가 숨을 돌리는 사이 스카디가 무릎베개를 

해주며 이런저런 말들을 막 꺼내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사령관님께서 정말 돌아가시는 줄 알고...

여기서 노트북으로 보고있는 동안에

갑자기 모니터로 치명적인 오류라는 문구가 

띄워지더니 갑자기 공장 초기화를 시작하지뭐에요?

어떻게든 사령관님을 로그오프 시키려 했지만

실패하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강제로 연결을 끊어버렸어요.

만약 이번에도 번백 현상이 발생했다면

사령관님께서 정말 어떻게 되셨을지는...”


“... 아냐.”


“네?”


사령관이 힘없이 누운채로 말했다.


“내 이름... 그게 아냐...”


“...예?”


“이스마엘...

나를... 이스마엘이라 부르라... 했잖아...

난... 만나는 사람마다... 통성명부터 하는데...

기억 안 나...?”


“기억이... 설마...?”


사령관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카디가 비명을 지르며 사령관을 껴안으려들자

사령관이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했다.

스카디가 가만히 있질 못하고 기뻐했다.


“됐어요! 이걸로 됐다고요!  이제 됐어요!

세상에... 설마 이런 식으로 

기억을 되찾으실줄은 꿈에도...!”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사령관의 물음에 스카디가 얼른 대답했다.


“사령관님께서 의식을 잃으신 후 

겨우 세 시간 밖에 안 지났어요.”


“세 시간... 그동안 너도 마음 고생 많이 했겠네... 미안하다...”


그의 말을 듣자 스카디는 사령관의 볼을

가볍게 꼬집으며 말했다.


“알면 됐어요. 이런 일이 한 두 번 있었나?

이제 됐어요 이제...”


“있지...”


사령관이 지친 얼굴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몇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네페쉬가 포드에 갇힌 이유가 뭐야?

그리고 포드에서 나가는 방법이 

스스로 나가겠다 명령어를 넣는 방법인건 어째서고?

코헤이 입장에선 네페쉬가 

계속 갇혀있어야 이득 아닌가?”


“네페쉬가 누구에요?”


“레이시의 진짜 이름이야.”


“아하.”


스카디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녀가 포드에 갇힌 이유는 뭐...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지구에 

철충이라는 생물이 나타나서

인간들을 다 죽이고 다녔거든요.

그 혼란스런 상황중에 레이... 아, 아니.

네페쉬양이 풀려나면 안되니까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임시로 포드에 가둬놨는데 

뭐, 인간이 멸종해서 이 지경이 된거죠.”


“왜 하필 저 포드야?”


“저게 그녀의 침대이자, 기억 소거장치이자, 

감옥으로서 사용되어왔기 때문이죠.

다음 질문이 뭐였죠?”


“감옥이면서 왜 네페쉬 스스로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거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들 입장에서도 굳이 번거롭게시리...

... 이건 추측이긴 한데

그녀의 개만도 못한 처후에 불만을 가진 누군가가

그녀를 포드에 가둬놓을 때,

그녀가 빠져나갈수 있도록

일말의 탈출구를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요?”


“그럴거면 그냥 풀어주지...”


“어디까지나 추측이라는거죠.

우린 영영 알 수 없을거에요.

질문 또 있나요?”


“내가 일어나고 얼마 안 있어

너한테 내 이름이 뭔지 물어봤잖아?

그 때 왜 얼버무리고 대답 안 해줬어?”


스카디는 잠시 망설이더니 대답했다.


“이름을 듣고 기억을 되찾는다면 정말 좋겠는데...

네페쉬양을 구하겠다는 그 똥고집까지 

기억하는건 원치 않았거든요.

생각같아선 기억을 잃은 사령관님을

당장 끌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안 그래도 기억을 잃어서 혼란스러우실텐데

막 어떻게 하기도 곤란하기도 하고...

사령관님이 기억을 잃기 전 명령도 거역할 수 없어서...”


그 말에 사령관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무슨 명령이었는지 알겠다.

‘네페쉬를 구하도록 만들어.

말 안 들으면 줘 패서라도.’

맞지?”


스카디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그런 분이셨죠, 사령관님은.

또 질문 할 거 있나요?”


“... 만약 내가... 저기 또 들어가겠다고 하면...

나 때릴거야?”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스카디가 입을 열었다.


“아뇨, 반 죽여놓을 참이었는데.”


“으흐흐...”


스카디의 오싹한 농담에 사령관은 조심스레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스카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제가 누굴 막겠어요.

이 황소 고집에 무식하고 선한 사마리아인을...”


그리곤 사령관의 입에 찐한 키스를 한 다음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저도 남아서 사령관님을 돕게 해줘요.

이제 약한 소리 안 할 테니까, 

제발 곁에 있게 해줘요. 네?”


“...”


사령관은 잠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단호한 눈빛을 보며 직감했다.


“안 된다고 해도 남을거지?”


“물론이죠. 제가 누구 부하인데요?”


두 남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상하게도 참 오랫만에 느껴보는 안도감이었다.

가능하면 이 상태 그대로 있고 싶었다.

허나 그는 네페쉬가 갇힌 포드를 바라본 후

행동에 나섰다.

VR헬멧을 뒤집어 쓰고 스카디에게 신호를 보내자

그녀는 재빨리 노트북의 버튼을 눌렀다.

그의 의식이 포드속으로 빨려들어가면서

이스마엘은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너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면,

네가 무의식의 혼돈 속에 갇힌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도 없었겠지. 

내가 너를 만들어주었듯이

너는 나를 만들어주었어.

...

네페쉬, 조금만 기다려.

수 십 번을 도전해서라도,

내 모든 기억을 날려버려서라도

반드시 널 구하러 갈게. 

절대로 널 잊지 않을게.

그러니까... 또 보자, 네페쉬!’



이야기 끝...?










“그럼... 시작하죠.

신께선 당신을 어떤 모양으로 빚으셨나요?”


쾅!


한 남자가 양복쟁이의 머리를 의자로 내려찍었다.

그리곤 옆에 있는 덩치의 머리에도 똑같이 내려찍어줬다.

그 후 의자를 바닥에 내던지더니

눈 앞의 여인에게 조심히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냈다.


“어... 안녕?”


여인은 멍하니 앞만을 바라보았다.


“아닌가... 어떻게 해야하지? 어, 안녕하신가요?“


여전히 앞만을 바라보았다.


“이것도 안 먹히네...에이, 저기... 혹시 절... 기억하세요...?”


못하는것 같다.


“미친소리 같겠지만 당신을 구하러왔어요.

그러니까... 하아... 말이 정리가 안 되잖아!”


남자가 머리를 미친듯이 긁으려하자

남자의 팔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포드의 백신이 그를 바이러스라 인식한것 같다.

남자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몇 마디 내뱉었다.


“구하러 왔는데... 나까지 이 모양이네...네페쉬, 왜... 왜 기억을 못하는거야...”


“네”


남자의 움직임이 순간 멈추었다.

가 여인을 바라보자 그녀도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말했다.


“네페쉬?”


“네”


여인이 조용히 말했다.


“네페쉬?”


“네?”


남자의 두 팔이 사라졌음에도 남자는 여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가 없어진 팔로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은... 네페쉬?”


“네”


그리고 이번엔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면... 나는...?”


“...”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스마엘!”




진짜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