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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납치된 다음날 나는 개인실에서 눈을 떳다.


바로 앞 소파에는 내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헤드셋을 쓴 체 뉴스를 보고 있는 바닐라가 눈에 띄었다.


'어제는 진짜 장난 아니었지'


안그래도 피곤한 와중에 회장과의 대면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바닐라에게 한동안 잔소리를 바가지로 먹고 지쳐 잠들어서 그런지 옷은 어제 입었던 그대로이다.


"여어 바닐라"


그녀가 헤드셋을 벗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는 일어서서 인사했다


"주무셨습니까 주인님"


"뭐, 그럭저럭. 근데 뭐 보고 있는거야?"


"삼안측에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벌써?"


"네"


"앙헬 리오보로스가 전세계에 선언문을 발표하는것이 끝나는것과 동시에 군사작전이 실행되었습니다."


"거참 부지런한 양반들이군"


"다른 궁굼한 사항들이 있으십니까?"


"어차피 채널도 저거 하나인거 아니야?"


"네, 그렇습니다."


"그런 양반들 하는게 뻔하지 뭐, 정보 같은건 통제하는게 고분고분 따르게 하기도 쉽고말이야."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 정보를 통제하는것은 당연한 서순이다.


"아, 그리고 지금이 몇시지?"


"9시 45분입니다"


"어제 그쪽에서 출석 하라고 한 시간이 11시였지?"


"네, 보안팀에서 마중을 나올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아, 어제 회장이 말했던건가 보네"


"갈아입을 옷은 침대 옆 탁자 위에 있으니 그걸로 갈아입으시면 될겁니다."


"고마워, 늘 의지가 되네"


"과찬이십니다, 주인님"


이곳에 잡혀 들어오고 나서부터 바닐라는 눈에띄게 말과 행동거지가 부드러워졌다.


"긴장되냐?"


"ㄴ...넷?"


바닐라는 나의 질문에 살짝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ㅋㅋ 나라고 긴장이 안되겠냐, 애초에 가정방문부터 요란하게 저질러줬으니"


"그런거 치고는 담담하시던데요"


"그건 바로 이몸이 원래 위기 상황에 빛나는 사람이라 그렇지"


"하... 하기야 주인님은 원래 이모양이었죠..."


"그것도 다 믿음직한 우리 바닐라가 있어서 그런거지"


서로 농담이나 하고 있으니 바닐라도 긴장이 살짝 풀렸는지 실없이 웃는다.


"여튼 좀 씼는다."


나는 방 안에 구비된 샤워실로 들어갔다.


-10시 45분-


똑똑똑


"보안팀인가 봅니다."


"열어줘"


바닐라가 문을 열어주자 그 앞에는 블랙리리스와 페로 그리고 바닐라 셋으로 이루어진 무리가 서있었다.


"어젯밤은 평안하셨나요 이사님?"


리리스는 눈웃음을 지으며 내게 인사했다.


"당신은..."


"네, 어제 이사님을 모시고 온 삼안산업 보안팀 블랙리리스 104 랍니다."


바닐라가 말하려던 찰나 리리스가 선수를 치고는 말했다.


"그럼 너희들이 앞으로 내 경호를 맡는다는 소리인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들에게 다가가며 이야기했다.


"네, 한동안 그렇게 되었답니다."


"알았어, 그건 그렇고 시간 맞춰서 잘 왔네. 빨리 가자고"


"따라오시죠"


복도들을 지나 무장한 바이오로이드들이 지키고 있는 회의실의 문앞에 도착했다.


리리스는 손목에 있는 팔찌를 문 앞의 리더기에 댄 뒤 비프음이 울리자 내게 문을 열어주었다.


회의실 한쪽 벽면에는 지도와 AGS 통제센터들의 위치 현재 작전의 진행 상황 따위가 떠있었다.


다른 벽면에는 블랙리버사의 군사 고문관이 연결되어 있고 몇몇 콘솔들이 눈에 띄었다.


'뭐지 시발, 우리보고 지휘 하라는거야...?'


안내된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리자 뒤늦게 들어온 다른 이들도 자리를 잡았다.


나를 포함한 열몇명의 사람들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자 김지석이 모습을 비췄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어제부로 부임하게된 새로운 이사분들 입니다. 당신들을 이곳에 모은 이유는 첫째로 블랙리버와 AI의 서포트 하에 현장지휘를 할 수 있는 인물 양성을 위해 모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여기있는 사람들 모두입니까?"


"예, 물론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다른쪽으로 빠지겠지만 말이죠."


"들어나 봅시다."


"삼안은 블랙리버와 달리 군사용 바이오로이드와 AGS의 생산은 가능하지만 본격적인 군사 지휘관에 해당되는 인물들은 없습니다. 정부측에서 블랙리버측과의 통신수단을 무력화 하게된다면 AI를 제외하곤 관련 지식이 떨어지는 우리는 전투능력이 떨어지게 될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요"


맞는 말이다. 민간군사기업을 가진 리오보로스가문과는 다르게 삼안은 태생이 생명공학회사이다. 이렇게 갑자기 벌어진 전쟁에서 군을 지휘할 수 있으며 정부측에 포섭되지 않은 인물을 확보하는건 어려운 일일것이다.


"AI로 통제가 불가능하단 소립니까?"


"정부와 같이 지상 중계센터를 설립하든 혹은 위성제어를 통해 군 일대를 통합하여 운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둘 다 비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지상 중계센터는 임시로든 정규 기지로든 세우는데 드는 시간이 있다. 정부측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해도 정부에서 해당 시설의 좌표를 포함한 정보 일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손쉬운 타겟이 될 뿐이다.


"지상 중계센터는 지금같이 사방이 적진인 상황에서 새로 세우기는 힘들고 위성 통제를 하려고 해도 리오보로스 가문처럼 기존에 정지궤도에 올린 대형 군사위성에서나 효율적이지 일반 위성으로는 한계가 있을겁니다."


내가 나름 추측한 이유를 덧붙혀 말했다.


"설명 고맙군, 저기 라붕 이사가 말한대로 삼안은 전쟁준비가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니야, 펙스의 하청업체에서 정부를 습격하면서 갑작스럽게 벌어진 전쟁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당신들은 정부의 전자전에 의해 블랙리버 측의 원격 지휘체계가 마비되면 이곳에서 블랙리버와의 통신이 복구 될때까지 시간을 끌정도의 능력정도는 필요하니까 말이야"


"현장 지휘는 설마 저희들이 직접 나가는겁니까"


"물론 아니지, 이곳에서 지휘모듈이 장착되어있는 AGS를 원격 조종하면서 현장 지휘를 하게 될거야"


주변에서 작은 안도의 한숨들이 들려온다.


"근데 그럴바에는 블랙리버사에서 쌓여있는 전투기록이나 지휘 체계들을 데이터화 시킨다음 그걸 바이오로이드에 접목시켜 바이오로이드 현장 지휘관을 만들어 투입하는게 낫지 않습니까? 회장님."


내가 김지석에게 이런 말을 건내자 김지석은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블랙리버 군사고문단쪽 화면에서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바이오로이드 현장 지휘관이라..."


화면에서 중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꽤나 괜찮은 아이디어야, 지휘모듈을 장비한 AGS를 원격조작하는것보다 전자전이나 EMP등의 공격에서 더 안전할거고 양산해서 각 전선에 투입하면 대규모 야전부대도 손쉽게 움직일수 있겠지"


"AGS 통제권한도 지휘관 바이오로이드에게 위임하면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지상통제센터를 신설하거나 더이상 정지궤도상 대형 군사위성을 쓰지 않아도 AGS 운용이 가능하겠지"


저 화면 너머에서 토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지석 회장, 방금 이야기는 우리측 상부에 전달해서 논의해보겠네 이 안건이 통과되어 해당 개체가 완성된다면 그쪽에 지휘관 개체들을 보내도록 하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최대한 빠르게 완성되길 바라겠습니다."


김지석은 만족했다는듯 미소를 지었다.


"좋아, 계획보다 더 잘풀리는군"


나는 그의 일그러진 미소를 보곤 알수없는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