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오기 전 1월의 마지막 주에 우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철수했던 울산 앞까지 도착했다. 중간중간 우리를 노린 철충의 습격이 있긴 했지만, 홍련과 아스널의 지휘 앞에 그들의 습격은 아무 소용 없었다. 


 

목표지점까지 도달한 우리는 레이븐의 정찰을 할 동안 진형을 짜고 무기를 적재적소에 배치시켰다. 적재적소에 캐노니어를 배치시키고선 고지에 서서 전장이 될 울산 시내를 둘러보는 아스널 뒤에는 거대한 컨테이너가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무기는 저격총 하나만 있는 줄 알았는데 공중에 떠다니는 컨테이너도 있었구나. 


 

트럭에 탈 때서부터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는 컨테이너를 빤히 바라보던 나는 어느새 전선에서 시선을 돌려 내게 고개를 돌린 아스널을 바라보았다. 


 

“내 플로팅 아머리가 놀라운가 보군.”


“그 컨테이너 이름이 플로팅 아머리인가 보네. 용도가 뭐야? 거기서 미사일이라도 나가나?”


“여기 안에는 수많은 탄약과 특수탄이 탑재되어 있다. 덕분에 전장에서도 신속하게 탄환을 보급할 수 있지.”


 

지휘관뿐만이 아니라 보급관 역할까지 하는구나. 아스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그녀와 함께 울산 시내를 바라보았다. 부서진 잔해가 미로처럼 얽혀있는 시내 너머로 희미하지만 조선소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 왔을 때는 인원수가 없어서 진입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AA캐노니어라는 걸출한 포병들도 데리고 왔는데다가 포츈과 그렘린이 특별히 개조해 준 특수 장갑차가 있으니까. 


 

아스널과 대화를 나눈 나는 트럭 사이에 섞여 있는 반궤도 장갑차를 바라보았다. 원래대로라면 레이더 장비와 위성 접시가 달려있어야 할 반궤도 장갑차 위에는 거대한 다연장 로켓 발사대가 얹어져 있었다. 만성 화력 부족에 시달리는 우리를 위해 그렘린과 포츈은 공단에 남아도는 ‘세라피아스 앨리스’라는 바이오로이드의 무기에 고개를 돌렸고, 그것을 활용할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몇 주간 이것저것 시도한 둘이 내놓은 대답은 앨리스라는 바이오로이드의 로켓을 발사하는 다연장로켓포였다. 


 

몇 번 시험 결과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었으니 이제 남은 건 실전을 통해 데이터를 쌓는 일이지. 써보고 좋으면 오르카측에게 설계도와 함께 한 대 정도 보내줘야겠다. 어차피 기지에 4대 정도 더 있는데다가 철충이 땅을 덮고 별의 아이라는 외계 괴물까지 설치는 이 시기에 동맹끼리 좋은 건 나눠 써야 하니까. 


 

“아스널. 저 다연장로켓포의 조작도 네가 할 수 있대. 어때? 할 수 있겠어? 아니면 내가 할까?”


“흠. 저것까지 조작하는 건 상관없다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군. 거기 병사, 레프리콘이라고 했나? 저걸 내가 지시하는 위치에 배치시키도록.”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다연장로켓을 바라보던 아스널은 지나가던 레프리콘을 시켜 장비를 재배치시켰다. 장갑차가 향하는 위치를 보아하니 본진에서 꽤나 떨어진 곳에 배치하려는 모양인데. 저렇게 멀리 떨어뜨려 놓는 이유가 있나? 원래 포는 일정 거리를 두고 배치해 일제 사격을 해야하는 거 아닌가? 


 

“아스널. 핀잔주기는 싫은데 저거 너무 멀리 배치하는 거 아냐? 나름 저것도 로켓포인데. 포는 포진지에 두고 동시에 발사하는 게 좋지 않아?”


“확실히 단번에 수많은 로켓을 뿜어내는 저 무기는 화력 하나만큼은 뛰어나겠지. 하지만 발사 시 특유의 연기 때문에 적 포병에 발각되기도 쉽다. 저걸 가까이 놓으면 우리가 어디 있다는 걸 적에게 알려주는 셈이지.” 


 

아..그렇구나. 그런데 철충에도 포병이 있었나? 난 한번도 못봤는데. 만약 철충측에도 포병이 있다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엄청 끔찍한데. 

 


아스널의 합당한 판단에 고개를 끄덕이며 있을지 없을지 모를 적의 포병을 경계하는 동안, 지상 지휘를 맡은 홍련이 단말기를 들고 와 레이븐의 정찰 결과를 보고해주었다. 생각 외로 도시내 철충의 숫자는 적었지만 맨 처음 홍련의 예상대로 건물 곳곳에 철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역시 그때 얌전히 퇴각한 건 옳은 선택이었어. 캐노니어 없이 저기로 들어가 건물 안에 숨어있는 철충들과 시가전을 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해. 

 


“레이븐 양 보고대로라면 다행히 철충이 조선소까지는 손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생존자는?”


“안타깝게도 없습니다. 작전을 개시할까요?” 


 

홍련의 질문에 난 말 없이 모인 모두를 바라보았다. 홍련이 지휘하는 블러디 팬서는 브라우니와 레프리콘과 함께 이쪽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고, 호위로 따라온 블랙 리리스는 두 자루 권총을 잡고 금방이라도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스널이 지휘하는 캐노니어는 비스트헌터를 필두로 이미 자리를 잡아 금방이라도 포격을 개시하겠다는 듯 포를 굳게 잡고 있었다. 

 


준비는 다 되었다. 계획도 다 짜놨고. 이제 남은 건 실행 시키는 일뿐이다. 생존자가 없으면 맘 편히 포격으로 찜질을 해 줘야겠지.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내 명령만을 기다리는 지휘관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시작하자. 조선소 탈환작전.”


“그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AA캐노니어! 사격 개시! 건물안에 숨어있는 벌레놈들에게 우리가 왔다는 걸 알려줘라!!” 


 

아스널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연기와 함께 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로켓들의 불꽃을 필두로 캐노니어의 맹렬한 포격이 고요한 도시를 강타했다.


 

아무렇게나 날아가 도심 곳곳을 불바다로 만드는 로켓들과는 달리, 캐노니어의 포격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목표만을 노렸다. 


 

“파니, 파니니. 제 사격을 따라 사격하세요.”


“알았어! 다 날려버릴게!”


“최우선 목표 확인! 포격 개시!” 

 


공기를 찢는 포성이 귀를 때리고 매캐한 연기가 도심에서 피어오른다. 점점 무너지기 시작하는 도심을 바라보던 찰나, 굉음과 함께 도심 쪽에서 포탄 하나가 날아오더니 연기를 뿜으며 로켓을 뿜어내는 다연장 로켓포가 배치된 곳을 향해 날아갔다. 포격 뒤에 들리는 거대한 폭발음을 들었을 때 다연장 로켓포가 무사할 확률은 거의 없겠지. 귀를 막은 내가 박살난 장갑차가 있는 곳을 노려보는 동안에도  아스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포격이 날아온 곳을 차분히 노려보았다. 

 


“적 포병이다. 레이븐, 적 포병의 위치는?”


“적 포병 위치 확인 완료했어! 지금 전송할게!”


“잘했다, 레이븐. 캐노니어! 대포병사격 실시!” 

 


플로팅 컨테이너에서부터 탄을 보급받은 파니들과 비스트헌터의 포가 일제히 불을 뿜자 도심 한복판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적 포병을 제압했다는 레이븐의 보고를 듣자 난 아스널에게 뒤를 맡긴 다음, 리리스와 함께 앞에서 몰려오는 철충을 막으며 천천히 도심으로 진격하는 홍련 쪽으로 향했다. 

 


“리리스, 부탁할게. 그녀들을 도와줘.”


“알았어요. 금방 처리하고 주인님 곁으로 돌아올테니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살풋 미소지은 리리스는 두 자루의 권총을 들고 홍련 쪽으로 달려가 그녀들을 지원해주기 시작했다. 속도는 느리지만 차근차근 안전하게 철충의 공세를 무너뜨리며 도심으로 향하는 길을 뚫는 블러디 팬서 일행에 리리스까지 더해지자 진격에 속도가 붙었다. 게다가 도심을 제압한 캐노니어의 지원포격이 더해지니 마치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것만 같았다. 

 


“상황 종료. 정찰 데이터에 따른 전장 분석 결과 구역내의 적 제압을 완료했습니다. 남아있는 철충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군요.” 

 


홍련의 보고를 받은 나는 열심히 지원사격을 해 준 캐노니어를 앞으로 불러 도심으로 진입했다. 캐노니어의 포격 때문인지, 아니면 철충 측 포병에게 당한 로켓포 때문인지 모르지만 조선소 앞 울산 시내는 멀쩡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폐허가 된 건물들은 실시간으로 무너지고 있었고, 군데군데에는 붉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으아..이래서는 뭐 건지기도 힘들 것 같슴다. 멀쩡한게 없지 말임다.”

 

“그러게. 좀 자제해서 때릴 걸 그랬나?”

 


로켓이 꽂힌 채 불에 타고 있는 편의점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브라우니의 어깨를 토닥이며 달래는 사이, 망토를 펄럭이며 당당하게 걸어온 아스널은 어깨에 걸친 대물저격총으로 편의점 옥상에 박혀있는 불발탄을 일부러 쏴  폭발시키고선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캐노니어의 지휘관으로서 저 다연장로켓은 필요 없었다고 말해야겠다. 화력은 좋지만 탄착군을 보니 정작 중요한 목표는 대부분 맞추지도 못했군. 그런 주제에 위치를 노출 시키기까지 했다. 도시를 전부 초토화시키고 싶지 않은 이상 저 병기의 사용은 자제하는 게 좋겠군.” 

 


아스널이 보여주는 탄착군은 정말...눈 감고 날렸다고 볼 정도로 처참했다. 100발 중 목표에 맞은 게 5발이라니. 백발백중을 자랑하는 캐노니어와는 정말 크게 차이가 났다. 

 


그래도 버리는 건 좀..그래. 포츈과 그렘린이 잠도 줄여가며 만들어준 병기인데. 공격시에는 별로지만 방어 시에 좋을지 누가 알겠어? 게다가 언젠가 초토화 전술 같은 걸 할 수도 있잖아? 도시에 남아있는 물자를 써야 하는 입장이니 사용은 자제하겠지만 혹시라도 모르니 버리지는 말자. 그리고 오르카와도 공유하고. 


 

안 그래도 폐허가 된 거리에 로켓과 캐노니어의 포격까지 끼얹어지자 조선소 앞은 말 그대로 폐허로 변해있었다. 셀주크였던 걸로 보이는 AGS의 잔해를 지나 조선소 안으로 진입하자 앞서가던 리리스가 내 옆으로 와 팔을 감싸왔다. 


 

“주인님, 제 곁에 꼭 붙어 계세요. 혹시 모를 적이 나타날 수도 있잖아요?”


“그녀 말이 옳다. 그대여. 그대는 지휘관으로써 몸을 좀 사릴 필요가 있다.”


“저도 보호해 드리겠슴다!!”


“브라우니. 우리는 진입조에요. 그리고 민님, 이번에는 절대로 앞서 나가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제멋대로 앞서가다가 총을 맞은 전적이 있는 탓인지 그녀들은 날 필사적으로 보호하기 시작했다. 제멋대로 옆에 붙으려고 하는 브라우니를 데려간 레프리콘의 당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얌전히 뒤로 물러나 대테러지휘관인 홍련의 지휘를 지켜보았다. 


 

“일전에 했던 훈련대로 진입하겠습니다. 모두들 위치로. 진입 개시!”


“진입 개시!!” 

 

테러리스트의 진압과 인질 구출이 주가 되는 대테러부대의 지휘관답게 홍련이 지휘하는 진입조는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각 구역을 확보해나갔다. 홍련의 분석 결과에 따라 중장갑병인 블러디 팬서가 외골격을 방패 삼아 선두로 진입하고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이 뒤를 따라 구역 구석구석을 살폈다.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을 보이며 각 구역의 안전을 확보하는 그녀들의 움직임은 전 구역을 확보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내게서 삼안의 고위 임원이었던 종손자의 카드를 받은 홍련이 항만 관리시설로 가 혹시라도 남아있을 데이터를 살펴보고 현 상황을 분석하는 동안, 타고 온 트럭과 장비들을 끌고 조선소 한가운데 모인 우리는 전투 후에 짧은 휴식을 가졌다. 


 

“야. 너 누가 벌써 전투식량 까랬냐. 지금 기지에 있는 너네 원래 상관한테 한번 찔러줘?”


“그, 그건 안 됨다!! 한 번만 용서해주시지 말임다!! 다시는 안 그러겠슴다!”


“어쭈? 걔 말하니까 바로 말 듣는 거 봐라? 여태까지 내 말은 말 같지 않았다 이거지?” 


 

멋대로 전투식량을 까먹다가 팬서에게 걸린 브라우니가 짓궂게 웃는 팬서의 다리를 잡고 애걸복걸하는 동안, 리리스를 대동한 나는 캐노니어 인원들을 챙기는 아스널까지 도착한 걸 확인하고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선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단순한 조선소라기보단 마치 군항 같은 분위기였다. 포항에 있는 군수공단처럼 제멋대로 쌓여있는 컨테이너 박스들도 그렇고, 거대한 행거에 걸려있는 채 공중에 매달려 있는 포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단순히 선박을 건조하기만 하는 조선소는 아닌 것 같았다. 

 


“리리스. 여기 어딘 것 같아? 저 포를 봤을 때 아무리 봐도 단순한 조선소는 아닌 것 같은데.”


“글쎄요..자세한 건 홍련씨가 와봐야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대로 자세한 대답은 홍련이 와 봐야겠지. 그녀가 데이터를 전부 뽑아와야지 정확하게 알 수 있을 테니까.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포신의 이곳저곳을 바라보던 나는 그녀와 함께 우리가 모여 있는 조선소 한 가운데로 돌아갔다. 

 


리리스를 대동하고 다시 돌아오자 그 새 데이터를 다 뽑아왔는지 모든 인원이 모여 홍련이 들고 있는 단말기만 바라보았다. 돌아온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목례를 한 그녀는 몇 차례 목을 가다듬더니 그녀가 분석한 데이터를 토대로 시설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이곳은 단순한 조선소는 아닙니다. 민님 말씀대로 150년 전에는 컨테이너선을 주로 만드는 조선소였지만 삼안이 인수한 이후로 군함을 주로 만드는 군항으로 바뀌었다는군요. 최근 기록은 블랙리버와의 해상전을 위해 전함과 삼안 소속의 ‘머메이드’부대원들을 생산한 기록입니다.”


“그래? 그러면 우리가 가져갈 만한 것들은 있어? 군수 물자라던가..아니면 포항처럼 숨겨진 벙커라던가..”


“물자라면 항구에 하역중인 군수물자들이 있습니다. 벙커는..없다는 군요. 그리고 기록에 따라 수송지원용 바지운반선 한 척을 발견했습니다만..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남은 배가 있다고? 그럼 절하면서 챙겨가야지! 행운에 행운이 겹친다는 게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배가 있으면 당장 챙겨야지! 통통배라도 감지덕진데 바지선이라면 절하면서 가져가야하는 거 아냐?”


“그건 맞습니다만..저희중에 혹시 배를 몰 줄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홍련의 마지막 말에 순간 좌중에 침묵이 감돌았다. 고개를 들어 아스널을 바라보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대여 난 포병지휘관이지, 해군지휘관이 아니다. 나에 대한 과한 기대는 침대 위에서 부탁하지. 그거라면 얼마든지 기대에 부응해 줄 수 있으니.”


“당신! 주인님께 그게 무슨 망언이죠?!”


“참아 리리스. 그냥 농담일 뿐이잖아. 팬서, 너는?”


“전 중장갑병이지 해군이 아니지 말입니다.”


“그렇구나. 그럼 홍련은?”


“죄송합니다. 배에 대한 운영은 저도 잘...포츈씨라면 모를까..” 

 


배가 있는데 배를 운용할 줄 아는 인원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해군도 보충해달라고 할걸. 뒤늦게 후회하던 나는 상륙한 오르카 호에 들어갔을 당시를 떠올렸다. 스쳐 지나가던 와중 짧게 보긴 했지만 해군 특유의 하늘색과 흰색이 섞인 세일러복을 입고 있는 인원이 있었다. 

 


설령 그녀들이 해군이 아니더라도 해저로 다니는 잠수함이라면 배를 몰 줄 아는 인원 하나 정도는 있겠지. 주머니에서 단말기를 꺼낸 나는 오르카호에 통신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배를 몰 줄 모르면 아는 사람에게서 배우면 된다. 

 

 

*

 

 

“좋아요. 그대로 방향키를 왼쪽으로 조금만 돌리세요.”


-이렇게?-


“아뇨! 너무 돌리셨어요! 다시 오른쪽으로 3cm가량 더 돌려주세요. 좌측에 있는 레버를 서서히 당기셔서 속도를 줄이시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레버? 이거?-


“그거 건드리시면 큰일나요! 거기서 손 떼시고 속도 줄여주세요!”

 


화면 너머로 외줄타기 곡예 하듯이 아슬아슬 좌우로 출렁이는 배를 보자마자 세이렌의 입에서 새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세이렌의 지시를 하나하나 받아 가며 힘겹게 배를 조종하는 군수사령관을 바라보는 오르카호의 사령관은 쓴웃음을 지었다. 


 

갑작스레 연락을 보낸 그는 다짜고짜 바지선을 조종해야 하니 배 조종을 가르쳐줄 인원을 요구했다. 마침 오르카호에는 호라이즌의 부함장인 세이렌이 있었기에 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문제는 그대로 따라하는 군수사령관이었다. 아무리 세이렌의 훌륭한 지시가 있다 한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지 않은 그가 하루아침에 배 조종을 능숙하게 해내는 건 무리였다. 좌우로 흔들리는 키의 움직임에 따라 좌우로 흔들리는 커다란 배는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뒤집어지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하나.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구명조끼를 챙겨입은 인원들의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쉰 세이렌은 계속해서 지시를 이어나갔다. 항해거리가 짧은 덕에 다행히 망망대해에서 가라앉는 일은 면했다. 이제 남은 건 도크에 배를 대는 일 뿐이다. 도크에 무사히 입항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지만. 


 

크게 심호흡을 한 세이렌은 부함장다운 차분한 모습을 유지한 채 로봇에게 지시하듯이 화면 너머 군수사령관에게 차근차근 지시를 내렸다. 

 


“지금까지는 정말 잘해주셨어요, 군수사령관님. 옆에 보시면 스크류를 제어하는 패널이 있을 거에요. 레버를 천천히 아래로 내리면서 스크류 회전 속도를 천천히 줄이시면서..”


-스크류가 뭐야?-


“배의 추진장치에요..제 지시에 따라 천천히 내려주세요. 너무 빨라요. 더 천천히 내려주세요..” 

 


금방이라도 배가 가라앉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세이렌은 항상 차분하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규격에 맞지않는 작은 도크에 배가 쑤셔박히듯이 굉음을 내며 항구에 정박을 마치자마자 세이렌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최선의 정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라앉지 않은 게 어딘가. 처음 키를 잡은 초보를 데리고서 최선의 결과를 뽑아낸 세이렌은 식은땀을 훔치며 자연스레 사령관의 무릎 위에 앉았다. 


 

“정말 힘들었어요, 사령관님.”


“알고 있어. 정말 고생 많았어, 세이렌.”


 

옆에서 그녀가 고생을 지켜본 사령관 또한 미소 지으며 말없이 무릎 위에 앉은 세이렌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다소곳이 무릎 위로 모은 세이렌의 손가락에 끼워진 서약 반지가 사령관실의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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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과 신혼중 졸지에 고스트 바둑왕 찍은 세이렌. 배도 가져왔으니 이제 포츈이 할 일이 늘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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