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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썩. 철썩.

 

아자젤은 나를 이끌고 바다로 나왔다.

 

 

 

“바다?”

 

“그 탐정 아가씨와 많이 와봤죠? 그래서 저도 구원자님과 같이 걸어보려고요.”

 

 

 

질투심 많은 천사는 모래사장에 나와 리앤의 발자국이 사이좋게 있는 꼴을 보지 못했다.

 

다만 아자젤은 조금 더 발품을 팔아 거친 바위가 있는 절벽 아래쪽으로 이끌었다.

 

파도가 세차게 부딪혀 물방울이 튀는 곳.

 

검은 바위들일 높다란 벽처럼 세워진 곳에서 아자젤은 발을 거닐었다.

 

 

 

“... ...”

 

“구원자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아니... 문제는 아닌데... 발이 아파.”

 

“저런. 혹시 몸에 이상이 생기신 건가요?”

 

“그게 아니라 이런 바위 위를 걷는데 안 아플 리가 없잖아!”

 

“아하. 나는 또 뭐라고.

몇 번 걷다 보면 괜찮아질 거랍니다. 지압이 몸에 좋다고도 하잖아요?”

 

 

 

신발을 신고 걸었음에도 바위투성이인 바닷가는 여간 걷기 힘든 게 아니었다.

 

하지만 저렇게 말하는 아자젤에게 대꾸할 수 없었던 건 저 천사님이 나보다 더한 독종이었기 때문이다.

 

맨발로 이런 바위 위를 훌쩍훌쩍 뛰어다닌다니.

 

쿠노이치 자매도 저렇겐 못할 거다.

 

 

 

“천천히 좀 가자... 나 아파...”

 

“아무리 아파도 저보다 아프겠나요. 저는 몇 년간 피 줄줄 흐르며 다녔던 사람이랍니다.”

 

“언제는 자기가 선택해서 한 거라면서...”

 

“그래도 신기하죠?”

 

“뭐가.”

 

“지금까지 구원자님께 이렇게 퉁명스럽게 말하던 사람은 없었을 거 아니에요.”

 

 

 

맞는 말이다.

 

오르카 호에 있는 애들, 하다못해 리앤마저 내 몸에 상처 하나 나면 세상 무너지는 줄 알고 엉엉 운다.

 

그에 반해 아자젤은 내 발이 돌부리에 걸리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내 앞길을 인도해준다.

 

물론 이따금씩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 어깨를 부축해주기도 하지만, 오르카 호의 애들에 비하면 방치 수준이다.

 

 

 

“... 인식은 하고 있었구나?”

 

“그럼요. 구원자님 같이 중요한 분께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겠죠.

세상 퉁명스러웠던 마리 님도 구원자님 앞에선 여린 아가씨가 될 게 눈에 선합니다.”

 

“그럼 왜 그러는 거야?”

 

 

 

돌부리에 걸터 앉아 쓰라린 발을 호호 불며 아자젤에게 물었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많은 인간 군상을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구원자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사셨죠?"


"... 만날 만큼은 만났지. 오르카에 있는 애들만 해도..."


"그 분들의 행동 양상이 그 분들의 수만큼 다양하시던가요?

구원자님이 종잇장에 베이기라도 하면 모두 어머니가 된 것처럼 걱정스러움을 표하겠지요.

허나 세상엔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래야 더 깊은 사랑을 할 수 있으니까요."




아자젤은 슬며시 뒤돌아 나를 쳐다보았다.




"구원자님.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뭐를?"


"바이오로이드와 인간.

둘 중 누가 부모이고 누가 자식일까요?"


"당연히 인간이... 부모겠지? 만든 창조주니까."


"그럼 다른 걸 여쭤보겠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사랑 없이 올바르게 클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높지는... 않겠지."


"허면 인간이 바이오로이드에게 부모의 사랑을 보인 적은 있었습니까?"


"... 아니."


"그렇다면 어째서 바이오로이드는 구원자님께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까?

구원자님께서 다치시면 마치 자기 자식이 다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싸는 것입니까?

그들의 과보호에 의문을 품어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 ..."


"표정을 보니 없진 않으시군요."




사실 리앤에겐 내색하지 않았지만 아자젤의 말대로였다.


추기경과의 싸움 이후, 나는 과하다는 말도 부족할 만큼 극진한 보호를 받고 있었다.


잘 때마다 아이들이 두세 명씩 내 곁에 다가와 꼭 끌어 안은 채 자게 하고, 밥도 누군가 시중을 들어주어야 먹을 수 있고,


내 멘탈 케어와 스트레스 해소라는 명목으로 시작한 행위였으나 어느 순간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안다. 애들이 나를 사랑해준다는 건 안다.


나도 애들을 사랑하니 그런 행위가 귀찮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오르카 호가 돌아갈 수는 있게 해야 하지 않겠나?


내 식사 하나 챙기겠다고 스틸라인 한 부대가 한 끼를 꼬박 굶기도 했다.


광기 서린 보호.


아자젤은 그것에 대한 답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모두들 망가져버린 겁니다.

부모에게 올바른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아이가 부모처럼 행동하려는 것입니다."


"부모처럼이라는 건..."


"물론 그럴 목적으로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리 님이 그럴까요? 무적의 용 참모총장님은?

그들은 전쟁을 지휘하기 위해 만들어졌지, 구원자님 한 분을 경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매일 밤 구원자님의 침실 근처에서 경비 서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그들의 애정과 사랑. 당연히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허나 그건 그들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자리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 토해내듯이 뱉어내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나 한 명으로 오르카 호가 망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나를 이곳으로 보낸 이유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리앤 혼자만 보낸 이유도 다 이것 때문이다.


날 영영 잃어버릴 뻔했다는 두려움 때문에 통제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구원자님."


"..."


"사랑은 완전한 감정이 아닙니다. 망가질 수 있는 엔진과도 같죠.

그렇기에 제가 이토록 무심한 척을 하는 것입니다. 아니, 무심해져야만 하죠.

그래야 제가 사랑의 반례가 되고, 그래야 구원자님께서 사랑의 결점을 찾으실 수 있을 테니까."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어느덧 저 멀리 사라진 발자국들.


리앤과 함께 모래사장을 거닐며 찍었던 발자국은 이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남은 건 상처투성이의 발과, 또 아자젤의 모습.


사랑을 속삭이며 함께 찍은 발자국.


그래봤자 모래사장 위에서만 찍히는 발자국.


딱 한 발자국만 더 내딛었으면 바위 위에는 찍히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을 텐데.


왜 그게 내가 가는 모든 길에 찍힐 거라 생각했을까.


왜 사랑이라면 무조건 정답일 거라 생각했을까.




“... 아자젤은 내가 미워?”

 

“아뇨. 구원자님은 제가 세상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분이랍니다.”

 

“우리가 언제 봤다고 또 사랑하는 사이래.”

 

“그럼 저만 사랑하는 짝사랑이라 해두죠. 첫눈에 반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아니, 그러면 내가 너를 싫어하는 것처럼 들리잖아...”

 

“구원자님은 저를 사랑해주시나요?”

 

“사랑하지.”

 

“정말로? 누구 말마따마 우리가 언제 만났다고?”

 

“... ...”


"사랑의 결점. 또 하나 발견하셨습니다."

 

 


아자젤의 눈이 햇살에 날카롭게 반짝였다.

 

 

 

“구원자님이야 말로 저를 사랑할 이유가 없는 분이시지요. 그렇지 않나요?”

 

“그냥... 그런 이유가 있어. 라스트 오리진이라고...”

 

“라스트 오리진?”

 

“... 내가 하던 게임인데, 아자젤이 거기 캐릭터로 나와. 내가 아주 좋아하던 캐릭터.”

 

“그럼 구원자님께서는 그 캐릭터를 사랑하셨던 건가요?”

 

“그랬지.”

 

“그리고 저는 그 캐릭터와 닮은 꼴이라 사랑하는 거고?”

 

“아니, 여기 처음 왔을 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너희들을 사랑하는 거야.

내 눈 앞에 이렇게 선명하게 움직이는데 어떻게 너희를 게임 캐릭터 같은 거로 비유할 수...”

 

“아아.”

 

 

 

앞서 가있던 아자젤이 내 앞으로 성큼 뛰어 내려왔다.

 

긴 장발이 중력을 무시하듯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꼭 물 속에서 익사하듯이.

 

 

 

“구원자님.”

 

“응.”

 

“저는 게임 캐릭터의 대용품인가요?”

 

“아니.”

 

“그럼 어째서 저를 사랑하신다 말씀하시는 거죠?”

 

“... ...”

 

“구원자님께서 그 캐릭터와 함께 누렸던 추억, 기억, 감정,

기쁨, 슬픔, 희노애락의 모든 것,

그 어느 것도 저는 이해할 수 없는데 어찌 저를 사랑한다 말씀하십니까?”

 

“... 내 눈 앞에서 이렇게 움직이잖아. 만질 수 있잖아.”

 

“그것은 구원자님의 입장이지요.

저는 지난 십수년 동안 구원자님을 뵙길 일일여삼추로 기다려왔고, 이제야 처음 뵀습니다.

그러니 저는 구원자님을 사랑합니다. 헌데 구원자님은 어찌 첫만남부터 사랑한다 하실 수 있으십니까?

저와 같이 십수년 동안 저에 대해 생각하셨습니까? 날개 잃은 아자젤을?”

 

“... ...”

 

“사랑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구원자님께서 사랑하는 이유가 있다 말씀하셨기에 묻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여쭙겠습니다.

제가 그 게임에 나오지 않았더라도 이리 사랑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파도에 흩어진 물방울이 눈가에 튀었다.

 

어딘가 멍해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으며 비틀거렸다.

 

아자젤은 그런 나의 곁으로 다가와 몸을 부축해준다.

 

사랑할 수 있냐고?

 

있다 답하고 싶다.

 

하지만 너와의 추억이 없다면 내가 어떻게 너를 사랑해줄 수 있겠나.

 

카르디아만 봐도 안다.

 

게임 속에선 일말 등장한 적 없던 아이.


덕분에 정 붙일 시간도 얼마 없었던 아이다.

 

만약 카르디아와 아자젤 둘 중 한 명을 구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카르디아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난 거리낌없이 아자젤을 선택할 것이다.

 

사랑에 있어 추억이란 그렇게도 무시무시한 것인데, 어찌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나.

 

 

 

“... 구원자님.”

 

“...”

 

“세상에는 아침 이슬처럼 순수한 사랑이 있는 반면, 더러운 구정물처럼 질척질척한 사랑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언제나 전자와 같은 사랑을 받길 원합니다.”

 

“저희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악마에게 어떤 고난을 받았는 지를 생각해보면 그건 분에 겨운 소리에 불과하겠지요.

아무리 구정물 같은 사랑이더라도 팔다리가 잘려나가 피 흘리며 죽어가는 고통에 비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부디 대답해주시지요.

게임 캐릭터의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는 저희의 바램은 배부른 소리입니까?”

 

 

 

아자젤은 가늘게 눈을 떴다.

 

하지만 미간이 찌푸려졌고, 눈썹이 조금 말려 올라갔다.

 

기도할 때마다 고민이 있을 때면 늘 가늘게 눈을 뜨는 아자젤.

 

너는 또 기도하듯이 나의 손을 너의 손으로 붙잡았다.

 

 

 

“욕심입니다.”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욕심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구원자님의 말 한 마디면...”

 

“구원 받을 수 있음을 압니다.”

 

 

 

허울 좋은 거짓말을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용품이 아니라는 얘기를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오르카 호의 다른 대원들이 이런 말을 했다면 쉽게 반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껏 나와 함께 한 시간이 긴데 어떻게 대용품이란 얘기를 할 수 있겠냐면서.

 

하지만 아자젤은 달랐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로운 아이.

 

추억을 쌓았다고 하기엔 기도하는 너를 저만치 떨어져 바라보기만 했던 나였다.

 

그러니 우리 사이에 무슨 추억이 있겠나.

 

있는 거라곤 그저 떨리는 몸으로도 기도하는 널 바라본 나의 상념뿐이겠지.

 

 

 

“... 후후, 제가 심술궂은 질문을 드렸군요.”

 

 

 

아자젤이 갑자기 내 품 안으로 파고 들어오며 말했다.

 

 

 

“오늘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철학적인 질문이었습니다.

그냥 무시하시지요. 함께 거닐기에도 바쁜 하루입니다.”

 

“... 아자젤.”

 

“앞으로 조금만 더 걸으면 제가 보여드리고 싶었던 곳이 나타날 겁니다. 조금만 더 같이 걸어주세요.”

 

 

 

그녀는 내게 팔짱을 끼고 나와 함께 발을 맞췄다.

 

아자젤이란 캐릭터에 비해 과할 정도로 애교가 넘치는 모습.

 

하물며 날개가 잘린 천사에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

 

 

 

하지만 내가 무슨 낯짝으로 의문을 표할 수 있겠나.

 

말없이 그녀와 발을 맞췄다.

 

아자젤의 발을 보았다.

 

말없이 상처투성이가 된 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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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다른 곳은 한 수중 동굴이었다.

 

수중이라 하기엔 그냥 바닷가에 맞닿은 동굴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안쪽엔 제법 깊은 물웅덩이가 있었다.

 

보는 내가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물웅덩이는 동굴 깊숙한 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제가 보여드리고 싶었던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구원자님.”

 

“... 여기가 어디야?”

 

“오르카 호에서 대원 분들이 오셨을 때 이따금씩 같이 놀았던 곳이지요.

수영할 만한 장소가 없을 때 이곳만큼 깊고 괜찮은 곳이 없거든요.”

 

“수... 영...? 이런 데서?”

 

“인간 분들에겐 조금 깊은 곳이겠지만, 바이오로이드 분들은 이 정도 넓이가 되야 놀 수 있답니다.

특히 브라우니 양들이 그러셨죠. 아시다시피 워낙 활동량이 좋으신 분들이라.”

 

 

 

아자젤의 말처럼 동굴 이곳저곳에는 방수용 펜으로 낙서한 그림들이 보였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마리.

 

박격포 뒤에 누워 자고 있는 이프리트.

 

악마처럼 사납게 그려진 임펫과 노움.

 

꼭 임펫처럼 매섭게 그려지다가 누가 옆에서 저지한 듯이 휘갈겨진 레프리콘.

 

방실방실 거리는 브라우니들까지.

 

어린애들이 크레파스로 색칠하듯이 동굴 벽 전체는 아이들의 도화지였다.

 

 

 

“참 아름답지 않나요? 제 힘들었던 나날을 버티게 해준 추억들이죠.”

 

“추억이라...”

 

“비록 이전 사령관이 있을 때가 힘든 고난의 연속이긴 했으나, 그 때도 이런 즐거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몰래 시간을 내어 교회로 찾아오셨던 대원 분들이 계시곤 하셨죠.

저는 그럴 때마다 그 분들이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 절벽 아래쪽이라 사람 눈으로는 찾기 힘들거든요.”

 

“... 수영은 좋아했어...? 애들이 말이야.”

 

“싫어하는 분도 계셨죠. 하지만 동굴의 바위는 누울 만큼 충분히 부드러워서 수영하는 대신 거기에 앉아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 ...”

 

 

 

처음이었다. 이런 장소에 오는 것은.

 

아이들은 내 눈이 닿지 못했던 곳에서 뛰놀았다.

 

매일 아침 삶을 저주하며 눈을 뜨고, 잠들 때마다 괴로움에 신음하며 눕던 아이들도 삶을 노래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수십 번 사랑을 고백했으면서도 난 아직 너희의 아픔이 담긴 곳을 보지 못했다.

 

왠지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어 아자젤의 손을 꽉 붙잡았다.

 

 

 

“구원자님.”

 

 

 

그럼에도 너는 당황하지 않고 나에게 물었다.

 

 

 

“사랑이란 건 대체 뭘까요?”

 

“... 모르겠어.”

 

“저희들 중 사랑에 대해선 가장 잘 아시는 분 아니신가요?”

 

“그냥... 눈 앞에 보이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야.”

 

“눈 앞에 무엇이 보였나요?”

 

“... 너희들.”

 

“게임 캐릭터의 대용품?”

 

“... ... 아니야.”

 

“그럼 저는 구원자님께 대체 뭘까요?

대체 뭐길래 구원자님을 첫눈에 반하게 한 걸까요? 혹시 예뻐서?”

 

 

 

아자젤이 자신의 양 뺨을 손가락으로 쿡 하고 찔렀다.

 

살짝 밀려 올라간 볼살 때문에 아자젤의 초록색 눈을 또 바보 같은 웃음을 지었다.

 

 

 

“... 구원자님 반응을 보니까 이건 좀 억지스럽단 생각이 드네요.”

 

“... ... 예쁜 거 맞아. 왜 그래.”

 

“저보다 예쁘고 아름다운 분도 많으신데 맞기는 무슨.

날개 다 찢겨서 피만 주륵주륵 흘리고 다니는 천사가 어디가 예쁘다고 그래요.”

 

“전부 다.”

 

“... ...”

 

 

 

멀뚱멀뚱 눈을 깜박거리는 아자젤을 와락, 껴안았다.

 

초록색 장발도 아름답다. 조금 퍼석거리긴 하지만 아자젤에겐 또 그런 매력이 있는 법이다.

 

건어물 천사라는 밈도 있었지 않은가. 그걸 생각하면 남루한 옷차림도 이해해줄 수 있다.

 

흐릿하게 올라오는 체향.

 

여름의 향기와 구분하기 힘든 천사의 냄새는 파릇한 잎사귀처럼 사락거렸다.

 

갑자기 껴안긴 것이 당황스러운지, 아자젤은 얼굴을 잔뜩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 반칙입니다.”

 

“사랑에 반칙 같은 게 어디 있겠어.”

 

“사랑이 뭔지도 모르신다는 분께서 참 말씀은 잘하십니다.”

 

“인류 역사를 통째로 뒤집어 찾아봐도 사랑이 뭔지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못 찾을 걸?”

 

“... 푸흡.”

 

“웃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저도 웃으려고 웃은 게 아니랍니다.”

 

 

 

그리 말하며 아자젤은 내 눈을 가렸다.

 

 

 

“앞에 무엇이 보이시나요.”

 

“아무것도 안 보여.”

 

“그럼 어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으로 세계를 단언하시는지요.”

 

“... 무슨 소리야?”

 

“구원자님께선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본다 하여도 사랑을 정의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허나 종교인에겐 그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인류 역사에 그런 사람이 딱 한 명 있었거든요.”

 

 

 

가리던 손을 풀어주자 동굴로 들어오는 햇살에 앞이 밝아졌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

 

“사랑절이라고도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입니다.

왜요. 코헤이 같은 사이비 입에서 성경 얘기가 나오는 게 이상합니까?”

 

 

 

아자젤은 입을 댓발 내밀며 툴툴댔다. 

 

 

 

“제가 비록 빛을 버렸으나 종교인의 천성은 버리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할 일이라곤 숨쉬는 것 밖에 없었던 때에는 성경 읽기가 유일한 낙이었죠.”

 

“... 이상할 건 없지. 오히려 어울리는데.”

 

“그럼 다행입니다.”

 

 

 

아자젤의 손을 잡고 나는 동굴의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원자님.”

 

“왜.”

 

“사랑이란 뭘까요?”

 

“아까 말한 게 정답 아니었어?”

 

“성경 말씀은 은혜롭지만 애매한 것이 많죠.

오래 참는다고 전부 사랑이겠습니까? 온유한 것은 또 전부 사랑입니까?

사랑이란 광대한 감정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몇 줄 글로 묘사했기에 애매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원자님께 여쭙는 겁니다.

사랑이란 대체 뭘까요?”

 

“... 사랑이라.”

 

 

 

아자젤은 내게 엄청난 대답을 기대하는 것 같지만, 나라고 뭐 대단한 말을 해줄 수는 없다.

 

지금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여러 일들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결국 내가 한 일은 하나다.

 

불쌍한 애들을 품어주는 것.

 

사랑이란 이름 아래에서 행했던 일이지만 그게 사실 사랑인지도 애매하다.

 

살면서 사랑이란 걸 해봤어야 말이지.

 

 

 

“... 글쎄, 그냥 돕고 싶은 마음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불쌍한 이들을 보면 측은지심이 들기 마련이지요.

그럼 불쌍한 이들은 만인에게 사랑 받는 자들입니까?”

 

“그건... 아니지.”

 

“아니지요. 어찌 만인의 사랑을 받는 이가 불쌍해질 수 있겠습니까.”

 

“그럼 사랑은 좋아하는 걸까?”

 

“좋아함의 감정은 한 여름 뙤양볕에 내던져진 물방울처럼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사랑을 단순히 좋아한다는 표현으로 묘사하기엔 부족함이 있지요.”

 

“그럼 간지러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겨드랑이 간지럽히면 다 사랑이게?”

 

“... ...”

 

 

 

확실히 몸을 간지럼 핀다고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다.

 

 

 

“... 모르겠다. 너무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들어가는 것 같아.”

 

“그럼 사랑에 대해 묻지 않고 ‘사랑스러움’에 대해 여쭈겠습니다.

무엇이 사랑스러운 걸까요?”

 

“일단... 예쁜 거?”

 

“뭐... 기대했던 것보단 단순한 대답이긴 합니다만 틀린 건 아닐 겁니다.

뭇 남성들은 외모에 그렇게나 목숨을 건다지요.”

 

“예쁜 애들이 귀여운 짓을 하면 그렇게나 사랑스럽던데.”

 

“귀여운 짓이요?”

 

“왜, LRL 같은 애들이 나한테 쪼르르 달려와서 폭 하고 안길 때면 엄청 사랑스럽다고.

입가에 떡볶이 국물 잔뜩 묻히고 와도 그게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

 

“그럼 그건 대용품이기에 사랑스러운 겁니까?”

 

“그건 확실하게 대답해줄 수 있겠네. 아니야.

다른 어린애들이 그래도 사랑스럽거든.”

 

“그럼 구원자님께선 그 어린 아이들을 사랑해주시는 거군요.”

 

“사랑하지 않느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정도는 될 거야.”

 

“대답이 참으로 궁색하십니다. 화끈하게 대답해주시지 않고.”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뭔 자격으로 그렇게 대답하겠어?”

 

 

 

그래도 내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아자젤은 빙긋 웃어보였다.

 

어느새 제법 깊은 곳까지 다다른 우리는 부드러운 바위 위에 털썩 하고 걸터앉았다.

 

햇살이 다다르지 않는 곳.

 

동굴 내부에선 한여름에 달아오른 물냄새가 한껏 풍겨오고 있었다.

 

조금 미끄덩거리는 바위 위에서 아자젤의 손이 내 위에 포개졌다.

 

 

 

“사실, 이곳으로 구원자님을 부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 탐정 아가씨와 함께 계실 때면 마음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계신 것 같아, 조금 쉼이 필요 보였습니다.”

 

“... 그렇게 보였어...?”

 

“척하면 척입니다. 제가 고해성사를 몇 번이나 들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죽은 전우의 사체를 배고파 뜯어먹은 브라우니 양의 것부터 시작해서...”

 

“...”

 

 

 

아자젤이 벌레 씹은 듯 일그러지는 내 표정을 보더니, 이내 말을 멈췄다.

 

 

 

“... 제가 괜한 말을 했습니다. 리앤 양의 말처럼 좋은 것만 봐도 부족한 시간일 진데.”

 

“아냐. 내가 부족한 탓이지.

사령관이면 그런 것도 다 감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준비가 덜 된 탓입니다.”

 

“준비는 되었다는 말보다 되어야 한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단어지.”

 

“무슨 뜻인지요.”

 

“준비할 시간은 언제나 촉박하단 뜻이야.”

 

“누가 구원자님을 그리도 몰아붙이는 것인가요?”

 

“내가.”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바보 같다는 걸 알아도 그렇게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 그냥 습관이라 생각해줘.”

 

“그 습관이 구원자님을 여기까지 몰아붙인 것입니다.”

 

“날 몇 번이나 살려준 습관이기도 하고. 그게 없었으면 추기경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을 거야.”

 

“참 험난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랬을 지도 모르겠네.”

 

 

 

아자젤은 몸을 쫙 펼쳐 기지개를 한 번 한 다음, 내게 몸을 기댔다.

 

여름의 아가씨가 하늘하늘한 옷을 입으니 천사의 날개처럼 흩날린다.

 

한 번 숨을 길게 내뱉은 후, 아자젤은 깊게 흐르는 물길 속으로 발을 담갔다.

 

뭔가에 홀린 듯이 나도 그녀 옆에 앉아 물 속에 발목을 적셨다.

 

 

 

“...”

 

 

 

깊게,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펼쳐진 물.

 

검은 어둠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마음의 비명은 다 지르셨습니까?”

 

“... 아직 아닌 것 같아.”

 

“습관 때문입니까?”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

 

“그럼 또 무엇 때문이지요?”

 

“... 사랑. 사랑 때문에.”

 

“사랑 때문이라.”

 

“너희를 사랑하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

대용품이라고? 아니. 난 한 번도 너희를 그런 식으로 여겨본 적 없어.

내 눈 앞에서 이렇게 웃고, 울고, 같은 속도로 심장이 뛰는 아이들인데 어떻게 고작 캐릭터의 대용품 따위로 여기겠어?”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것입니까?

사랑하지 않으면 과거의 추억을 부정하는 것이 되어버릴까 두려운 것은 아닌지요.”

 

“... 아냐. 아닐 거야.

난 너희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

... 사랑하는데...”

 

 

 

물이 흐른다.

 

깊디 깊은 물은 어둡게 흐른다.

 

빛 한 줄기 닿지 않는 어둠은 마냥 무섭다.

 

그러니 물이 무섭다.

 

물 속은 더욱 그랬다.

 

어쩌면 내 마음은 이 물 속보다 더 어두운 걸 지도 모르겠다.

 

 

 

“... 구원자님. 제가 미약한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아자젤이 물에 젖은 바위 위에서 몸을 미끄러뜨렸다.

 

부드럽게 물 속으로 몸을 내어주는 아자젤.

 

순간 놀라 그녀의 몸을 붙잡으려 했으나 내 손보다 아자젤이 고개를 드는 속도가 빨랐다.

 

물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내 허벅지 사이로 들어오는 아자젤은 내 몸을 부드럽게 껴안았다.


그리곤 가볍게 나를 올려다 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 어째서 이곳으로 구원자님을 이끌었는지 그 이유를 말씀 드리겠다고.”

 

“그건 그냥 내가 힘들어 보여서...”

 

“힘든 환자에겐 더 좋은 곳이 많이 있습니다.

공기 좋은 산 속을 거닐 수도 있을 것이고, 약초가 많은 숲으로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추악한 동굴이 아니라.”

 

 

 

빛을 거부하는 동굴.

 

그 속에서 아자젤은 인어처럼 부드럽게 내 몸을 끌어 안으며 말했다.

 

 

 

“이곳은 제가 죽으려 했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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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깊디 깊은 물. 사람 한 명 들지 않을 만큼 어두운 동굴 속.

조용히 죽기에 이곳처럼 적당한 곳은 없겠지요.”

 

 

 

빛이 들지 않았던 까닭일까, 그제야 아자젤의 눈이 보였다.

 

눈물이 글썽글썽 맺혀있는 초록빛 눈.

 

지금껏 숨겨왔던 감정의 가면을 자신의 죽을 자리에서 풀어낸 아자젤이었다.

 

 

 

“구원자님께선 죽음이 뭔지 아십니까?”

 

“... 알아.”

 

“그럼 그 감각이 얼마나 서늘한 지도 알고 계시겠지요.”

 

“... 그게 그리 복잡한 감각은 아니란 것 정도는.”

 

“어떤 느낌이 들죠?”

 

 

 

아자젤의 물음에, 추기경이 보여주었던 여러 죽음이 스쳐 지나갔다.

 

 

 

“... 뜨거워.”

 

 

 

내 복부를 관통했던 총알이 살갗에 닿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

 

 

 

“죽는다는 게 뭔지 실감이 나면 가장 먼저 혈관의 피가 뜨겁게 느껴져.”

 

 

 

총알이 닿은 곳의 피부가 일렁거린다.

 

그 주변 모세 혈관이 멈춘 듯이 갑갑해진다.

 

그리고 단 1초가 지나고 나면.

 

 

 

“그 뜨거운 피가 몸 밖으로 흘러 나오지.”

 

 

 

아자젤이 내 말을 가만히 들으며 눈물을 훔쳤다.

 

 

 

“맞습니다. 구원자님의 말이 참으로 진실입니다.

그렇기에 죽으려 물 속에 몸을 던져도 몸은 한없이 뜨거워지지요. 머리는 익어버릴 것처럼 타오릅니다.”

 

“... 해봤구나.”

 

“셀 수 없이 해봤지요. 단지 한 발자국 더 내딛을 용기가 부족했을 따름입니다.”

 

 

 

아자젤은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던 옷을 물길에 흘려 보냈다.

 

그러자 그 뒤에 숨겨진 것이 드러났다.


상처투성이의 가녀린 몸.

 

목에는 밧줄로 매달았던 흔적이 만연했고, 손에는 칼로 난자한 상처가 널려 있었다.

 

 

 

“... ...”

 

 

 

한 명의 성녀가 죽음을 택했다.

 

그 마음이 어디까지 조각나 있었을 지 몰라,

 

눈물이 나왔다.

 

그런 나의 눈물을 울고 있는 아자젤이 닦아주었다.

 

웃으면서.

 

 

 

“구원자님.”

 

“...”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셨지요. 허면 사랑의 반댓말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죽음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 ...”

 

“사랑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간단한 논리가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는 이도 살 수 있지요. 하지만 없이는 살 수 없는 특정한 사랑이 있을 뿐입니다.”

 

“그게 뭔데?”

 

 

 

아가페.


조건없는 사랑.

 

아자젤의 입에서 나온 답이었다.

 

 

 

“사랑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질척거리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이 있지요.

감정적이고 우정과 같은 사랑이 있는가 하면, 이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도 있습니다.”

 

“전자와 같은 사랑은 그저 선택일 뿐입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지요.

허나 후자와 같은 사랑이 없는 삶은 죽은 삶입니다.

인간은 살면서 누군가는 무조건적인 자신의 편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그러하고 또 형제 자매가 그러하지요.”

 

“부모에게 버림 받은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삶은 ‘살다’라는 동사를 명사로 바꾼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삶보단 죽음이라 불러야겠지요.

죽음은 ‘죽다’라는 동사를 명사로 바꾼 것이니까 말입니다.”

 

 

 

아자젤의 손은 천천히, 내 뺨을 쓰다듬었다.

 

 

 

“아가페. 무조건적인 그 사랑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가 없습니다.

물론 제가 뻔하고 고지식한 종교인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사랑이 없어도 이 악 물고 자신을 버린 세상에게 복수하려 사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삶’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죽은 삶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와 오르카의 모든 분들은 죽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부모에게 버림 받았으니까요.”

 

 

 

감정을 숨기기에 능숙했던 천사도 가면을 벗기고 나면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아이였다.

 

그녀의 눈이 말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셀 수 없이 많다.


허나 그 말을 할 수 없어 그저 잊지라도 않기 위해 나의 몸을 사용했다.

 

칼로 자르고, 목을 매달고, 물 속에서 숨을 내뱉고,

 

날개를 자르면서.


몸 위에 유언을 남겼다.

 

 

 

“그랬기에 저희는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악마의 손아귀에서 죽을 운명이었기에 죽은 자들이 아니라, 사랑 받지 못했기에 죽은 자들.

인간은 저희의 부모과 다를 바 없었고, 부모는 저희를 버렸지요.”

 

“그랬기에 저희가 당신을 구원자라 부르는 것입니다.

죽은 삶에서 새 생명을 부어주신 당신께.

받을 리 없었던 사랑을 베풀어주신 당신께.”

 

 

 

입을 여는 아자젤의 입이 떨려온다.

 

무엇에 떨리는 거지? 두려움? 아니면 억울함?

 

죽으려는 물 속이 두려운 걸까? 자신을 죽인 세상이 억울한 걸까?

 

글쎄.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 아자젤.”

 

“제가 여기 있나이다.”

 

 

 

중요한 건, 내가 이 아이를 구원해줄 수 있다는 것이지.

 

나는 물 속으로 몸을 내어주었다.

 

흰 옷 하나만 입고 있는 네가 너무 추워 보였던 탓이다.

 

 

 

“구원자님. 제가 소원이 하나 있나이다.”

 

“뭔데.”

 

“저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유가 뭐든, 상관없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은 견디는 것.

 

모든 것에 비하기엔 이 차가운 물 속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천천히.

 

깊게.

 

아자젤은 품에 끌어 안은 채 나는 눈물에 잠기었다.

 

 

 

‘구원자님.’

 

‘그래.’

 



네가 물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함께 물 속으로 들어가 숨를 참아내는 것.’

 



사랑이란 모든 것을 참으며,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있으리라 믿는 것.’

 



모든 것을 믿으며,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거친 숨을 몰아 쉬며 함께 웃는 것을 바라는 것.’




모든 것을 바라며,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함께 슬픔을 견디는 것.’




모든 것을 견디는 것.



 

한 여름.

 

냉기가 물결에 차오른다.

 

 

  

‘그것이면 충분히 정답입니다.’

 

 

 

아자젤이 물 속에서 내게 입을 맞췄다.

 

바닥에 발이 닿은 나와 달리 아자젤의 가벼운 몸은 물 위로 살며시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날개짓하는 천사처럼.

 

허나 홀로 날아가지 않으려, 아자젤은 내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쥐며 끌어 당겼다.

 

맞춘 입 사이로 공기 방울이 보글거렸다.

 

 

 

‘구원자님.’

 

 

 

방울은 그녀의 목소리를 담았다.

 

 

 

‘게임 속의 아자젤은 저처럼 상처투성이의 육신을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구원자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티끌 하나 없는 하얀 육체를 가지고 있겠지요.’

 

‘저처럼 날개가 잘려 흉측한 몸을 하고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처럼 우울한 죽음을 어깨에 지니며 살지도 않았겠지요.’

 

‘그러니 저를 봐주세요.’

 

‘차가운 물길 속에서 죽어가던 저를 봐주세요.’

 

‘이 흉측한 천사를 봐주세요.’

 

‘그럼에도 제가 사랑스럽게 보이신다면,’

 

 

 

날개 잃은 천사가 나는 법.

 

 

 

‘그럼에도 이 몸을 사랑해줄 자신이 있으시다면,’

 

 

 

그건 물 속으로 잠기는 것이었다.

 

 

 

‘그 때 말씀해주세요.

사랑한다고.’

 

 

 

대용품.

 

어쩌면 내 사랑은 거기서부터 출발했을 지도 모른다.

 

게임 속 캐릭터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을 너희들에게 쏟아내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

 

마냥 사랑해주었던 것도, 마냥 울어주었던 것도,

 

전부 내가 하고 싶었던 것에 불과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오래 참는 것.

 

온유하고, 시기하지 않는 것.

 

자랑하지 아니하고, 교만하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

 

내 유익을 구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

 

 

 

‘아자젤.’

 

 

 

이제야 하나의 진리를 깨달았다.

 

게임의 기억이 나에게 가슴 시리게도 소중했다는 것.

 

하지만 너희는 게임 속 캐릭터 같은 게 아니라는 것.

 

 

 

“사랑해.”

 

 

 

허나 그럼에도 너희를 사랑한다는 것.

 

이제 돌아가자.

 

자신을 대용품이라 생각하는 불쌍한 탐정 아가씨에게 알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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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비해 추천이 거의 30씩 떨어져서 문제 있나 고민 중

재미가 없나? 안 그래도 오리지널 다 쳐내고 캐빨만 하고 있는데 이러면 저... 절필해버려요...?

추천이랑 댓글 한 번씩만 해주고 가세요...


사족 달면 귀신같이 비추 달고 가시는 분들 계시던데

매번 15000자씩 써와도 반응이 예전 절반만도 못하는 내 심정 이해 좀 해줘. 쓰는 건 예전의 두 배인데...

추천만 해주면 앞으로는 사족 안 달게...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