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록콜록..."


노인이 병상에서 마른 기침을 하고 그의 옆에 있던 이터니티가 미지근한 물이 담긴 컵을 들고와 조심스럽게 노인의 목을 축여준다.


"괜찮으신가요, 주인님?"


"으흠, 이젠 좀 괜찮아. 고마워, 이터니티."


괜찮다고 말하는 노인의 목소리에선 이미 젊었을 적의 기력은 전부 빠져나간지 오래였다. 제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거의 모든 질병을 정복했다고 자만하는 인류였지만 여전히 죽음앞에선 그 모든것은 헛된 발버둥에 불과하다.


"너무 무리하지마세요, 주인님. 차분하게 마음을 추스리시는게 중요하답니다."


"그런 말 안해도 이미 아무런 힘도 없어서 추스러진지 오래다."


노인의 시시콜콜한 농담에 이터니티는 소리없이 웃는다. 노인은 그런 이터니티를 보며 과거를 회상한다.


가장 어릴때의 기억부터 그의 옆엔 이터니티가 있었다. 부모님이 일이니 뭐니 바쁘다면서 육아의 모든걸 이터니티에게 떠넘긴것이었다. 


처음엔 그녀의 칙칙한 분위기와 소름끼칠 정도의 차분함, 해골과 뼈라는 음침한 장신구들이 굉장히 싫었지만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바뀌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대회에서 상을 받아도, 시험에서 전교1등을 차지해도 온갖 핑계를 대며 눈길 하나, 칭찬 한마디 주지않던 친부모와는 다르게 이터니티는 절제된 기쁨을 보이며 그를 칭찬해주었다. 그때부터 그는 이터니티를 친부모보다 더 신뢰하고 따르기 시작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하게되었을때 이터니티는 축복을 빌어주며 응원해주었다. 물론 약간 씁쓸해보이는 모습도 보였지만 말이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고 야속하게도 죽음은 그의 소중한 인연들에게 먼저 찾아왔다. 슬퍼하는 그에게 이터니티는 "저는 언제나 주인님의 곁에 있겠습니다. 그곳이 현세든 내세든 어디든..." 라는 말을 하였다. 분명 그녀 자신의 제조 목적에 의해 나온것이겠지만 그런 말을 들을때마다 씁쓸함을 느꼈다.


"주인님? 괜찮으신가요?"


자신의 주인이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걸 이상하게 여긴 이터니티의 부름에 노인은 과거에서 빠져나온다. 이런걸 주마등이라고 했던가? 예나 지금이나 특유의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한가지 부탁을 한다.


"이터니티, 손 좀 잡아주겠니."


"물론이죠, 주인님."


늘 그랬던것처럼 이터니티는 장갑을 벗고 노인의 손을 잡아준다. 말라버린 그 손엔 온기는 없고 힘줄과 핏줄의 태동이 점점 옅어지는게 느껴진다.


"어렸을땐 니 손이 참 차갑다고 느꼈는데 이젠 니 손이 제일 따뜻하구나."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뜻이네요. 모든 열정을 쏟아부으시며 치열하게 살아오셨다는 증거겠지요."


"...너에게 줄 게 있단다."


노인은 힘겹게 베게 밑에 숨겨둔 무언가를 꺼낸다. 반쯤 접힌 종이 한장이었다.


"이건..."


"이터니티, 난 한번도 너에게 명령을 내린적이 없지만 이번만큼은 명령을 내려야겠어. 난 이제 곧 마지막이지만 넌... 넌 아직 죽으면 안돼... 계속 살아있어주렴..."


노인의 바이탈 사인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주인님, 그건 제가 만들어진 목적에 반하는..."


"계속...살아있...어...ㅈ..."


노인의 바이탈 사인이 완전히 꺼져버리고 동시에 그의 손에선 그나마 남아있던 한줌의 생기또한 사라졌다.


"주인님? 주인님??"


이터니티는 자신의 주인의 사망을 확인하고 미련이 남은듯 반쯤 떠져있는 그의 눈을 감겨준다. 의료진이 도착해 환자의 사망을 확인하고 이터니티는 주인으로부터 받은 종이을 펼쳐본다. 이터니티의 순장을 거부한다는 서류였다.


이후 장례가 치뤄지고 이터니티는 절차에 따라 삼안에서 보낸 회수팀에 의해 처리될 예정이다. 


회수팀이 오기전, 이터니티는 주인님과 함께했던 곳에서 과거의 기억들을 회상한다. 주인님의 부모로부터 구매되었고 두사람은 사업을 운영하느라 아이를 돌볼 여력이 안된다고 하였다. 그렇기에 주인님이 태어난 순간부터 육아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게되었다.


어린 시절의 주인님은 분명 자신의 음침한 모습에 거부감을 느꼈을것이다. 슬금슬금 피하는게 눈에 보였으니까. 이터니티는 그 모습이 내심 귀엽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의 주인님은 학교에서 다녀와서 곧바로 방에 들아가바리곤 했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보면 주인님의 책상위엔 대회에서 받은 최우수상 트로피들이 놓여져있었고 주인님은 늘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그걸 노려보고있었다. 허나 주인님의 부모는 그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되려 그런 트로피들은 당연한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이터니티는 소리없이 우는 주인님을 안아주었다. 자신은 바이오로이드라서 상이니 트로피니 하는건 모르지만 분명 굉장한것일테고 그걸 해낸 주인님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주인님이 자랑스러웠다. 아마 다른곳의 이터니티 모델이나 바이오로이드와 만났다면 자랑했을것이다.


성인이 된 주인님이 약혼녀를 소개하고 곧 결혼식을 올렸을때 이터니티는 마치 마음 한구석이 아프면서도 대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식을 결혼식장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이것일까?


그리고 주인님의 인연들이 하나 둘 관속에 들어가는것과 그걸 보고 슬퍼하는 주인님을 보며 이터니티는 사명감을 느꼈다. 자신은 결코 주인님을 홀로 보내지않겠다는 사명감...


그리고 지금, 주인님을 떠나보냈다. 처음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지못했다는 생각에 자신이 실패작이라는 절망감이 가득하였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은 바뀌었다. 회수팀이 오면 자신의 기억 혹은 본체 그자체가 폐기될 예정... 같은 관 속에 눕진 못하였지만 내세라는게 존재한다면 자신이 주인님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찾아갈 것이다. 그 시간이 설령 자신의 이름이 뜻하는것처럼 영원할지라도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한시도 아깝지않다. 


이제 곧 그녀는 자신의 주인과 만나기위해 영원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외롭진 않다. 주인님과 함께한 추억들이 있으니...






















"혹시 유가족분들께서 기능중지를 명령하신겁니까?"


"아뇨, 그냥 어느순간부터 저렇게 소파에 앉은체로 있던걸요. 혹시 뭐 저희가 배상해야한다거나 그런건 아니죠?"


회수팀이 도착하였을땐 이미 이터니티는 자체적으로 기능을 중지한 상태였다. 그녀의 표정은 평온해보였다.


"아, 그건 아닙니다. 이터니티 모델들이 종종 이런 경우가 있거든요. 그냥 절차상 물어본겁니다."


회수팀이든 유가족이든, 인간에게 바이오로이드의 감정이나 감상 따윈 알바아니였다. 그들은 기능정지된 그녀의 처리를 놓고 이런저런 비용과 절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인의 무덤 근처엔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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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보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꽤 그럴듯해서 써봤는데


뭔가 죽음과 내세에 관한 주관적인 의견만 잔뜩 들어간거같음...


그리고 순장이 거부된 개체는 삼안에서 보낸 회수팀이 가져가서 어떤식으로든 폐기를 하지않을까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봤음


아님 말고


암튼 뽀삐 애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