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헬기에서 눈을 뜬 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런 것 마저 잊게 만드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져있었다.

붉게 물들어버린 하늘과 거세게 불어오는 모래바람 속에는

아무것도 없이 자신만이 서있었으며 저 멀리에는 그녀의 목표인 사령부 타워만이 서있을 뿐이었다.


"이게..대체.."

그녀는 상황을 정리할 힘도 잃은 채 일어서는 것이 고작인 몸상태로

쓰러져있던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일어나 앞으로 걸어나갔다.

떨어진 동료들을 찾기 위해..


하지만 그 앞에는 괴로운 사실만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으며

어디서부터 들리는 지도 모를 마리의 목소리와

모래바람 소리만이 그녀의 귓가를 울렸다.

"자네가 저지른 일을..반드시 목도해야 한다네. 자네가 저지른 일을 말이야..

두바이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어야 했어..

다른 부대는 우리더러 두바이를 버리고 떠날 것을 제안했었지..

하지만 우리는 두바이에 남는 것을 선택했지. 지옥을 선택한 걸세.."


"우리 모두는 아니었지.."

그 순간 또다른 목소리가 모래바람 속에서 들려왔다.

"뭐..? 거기 누구냐..?"

목소리를 향해 다가가자 목소리는 모래바람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온갖 상처와 감염으로 온몸이 훼손 되어버렸지만 그녀의 얼굴은 매우 익숙한 얼굴이었다.



"네 희생자들중 하나..단지 명령을 따르고 있었을 뿐이었어.."

자신의 앞까지 걸어오는 실키..소굴에서 봤던 그녀의 모습과 완벽히 똑같았다.

칸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어보았지만 그 손길이 닿을 겨를도 없이

실키는 몸의 형태가 무너지더니 이윽고 바람에 휩쓸리는 모래와 같이

거센 모래바람 속으로 흩날려 사라져버렸다.


"너흰 우리에게 다른 방도를 주지 않았어..어쩔 수 없었다고.."

쪼개질 듯이 아픈 머리와 축적된 전투의 피로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몸을 이끌고

타워를 향해 칸은 멈추지 않고 발을 끌면서라도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그녀 앞에는 또다른 바이오로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나 다른 방도는 있었어. 당신들이 그걸 모조리 망쳐버린 거지."

모습을 드러낸 목소리는 니키 트레이시였다. 실키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만난 적이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니키는 칸을 향한 비난을 쏟아내며 다가왔으나

그녀와 닿을 새도 없이 또다시 바람 속으로 흩날려 사라져버렸다.


"나..우리는 그저 당신들을..모두를 구하려 했을 뿐이라고.."

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목소리를 쥐어짜내며 대답했다.



"네 마음속 깊이서부터..우리 모두가 죽어 마땅하다는 걸 알잖아..?"

모래바람 속에서 상처를 부여잡으며 걸어나온 에이미도

칸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자 칸은 그녀를 향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을 스쳐지나가 모래바람 속으로 흩날려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만을 바라볼 뿐이었고

결국 심신이 완전히 지쳐버린 칸은 모래바람 속에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버렸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대장?"

그 때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워울프?"



"살려줘..."

쓰러져있던 몸을 다시 일으키자 그녀의 앞에는

모래 속에 물 한방울없이 말라 죽은 수많은 시체가 묻혀 있었고

그 한복판에는 또다른 희생자가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칸은 워울프를 향해 힘을 짜내어 땅을 기어가다시피 다가갔으나

워울프도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 마찬가지로 모래바람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워울프까지 사라져버리자 칸은 다시 고개를 떨궈버렸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는 마리의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이 두바이에는 5,000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지..

자네들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었어..

오늘은 얼마나 살아남았을까? 궁금하군..

내일은 얼마나 살아남을까?

나는 내 임무가 이 도시를 폭풍으로부터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틀렸더군..나는 이 도시를 폭풍이 아니라 자네로부터 지켜야 했던 거였어.."



그녀를 비난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마리의 거처인 타워가 거센 불길 속에서 불타오르는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불길은 마치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듯했으며 열기는 자신을 태워죽일 듯이 뿜어져나왔다.

자신을 벌하려는 듯한 불길에 목숨을 맡기려는 순간

그녀의 정신을 일깨우는 목소리가 그녀를 다시 현실로 이끌어주었다.



지옥과도 같았던 모래바람 속에서 일어나자

모래의 바다에 허우적대다 생명을 잃은 선박들과

타워의 풍경이 그녀의 눈 앞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는 그녀를 애타게 찾아 헤매는 목소리가 울렸다.

"대장님! 들려요?!

씨발 들리면 대답 좀 해줘요!!"

"..마리.."

"씹..아뇨! 저 탈론페더예요!!

대체 어디있는 거예요?!"

"잘 모르겠어. 단서도 없다..워울프는 어떤가? 같이 있나?"

"아뇨, 추락한 뒤로 워울프 씨도 연락이 전혀 안 되고 있어요."



"씨발..그럼 네 위치는 어디지? 합류하겠다."

"연기가 강하게 피어오르는 곳. 헬기가 추락한 장소예요.

거기로 오시면 됩니다.

33대대 새끼들도 오고 있으니 조심하십쇼.."

"알겠다. 부디 살아있길 바라지."

행방불명된 워울프를 뒤로하고 최우선 목표인

탈론페더와의 합류를 위해 칸은 자신의 곁에 떨어진 무기를 집어들어

그녀가 있는 추락 지점을 향해 달려갔다.




그녀보다 한발 먼저 도착한 33대대의 추격자들은

탈론페더와 칸을 보자마자 온갖 비난과 욕설을 퍼부으며 총탄을 퍼부었고

그녀들 또한 악에 받힌 의지로 추격자들을 몰아내어

마침내 합류하는데에 성공했다.


"좀 괜찮나?"

"네, 괜찮아요."

"좋아, 이제 워울프와 합류하도록 한다.

그리고 다음엔 마리를 처리하도록 하지.

아직 사람들을 구할 방법은 있을 거다.

절대로 놈들이 방해하게 두지 않아.."

장비 점검을 마친 칸과 탈론페더는 어디로 사라진 지도 알 수 없는

워울프를 찾기 위해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워울프의 구조 요청 통신이 들어왔다.



"대장..페더..대체 어딨는 거야?

현재 위치..마리의 사령탑 근처의 요트무덤..

완전히 고립됐어, 무기도 없고 씨발놈의 팔까지 부러졌어..!"

"울프! 울프!! 씨발, 신호가 끊겼다."

"적어도 위치는 알아냈네요.

요트무덤이랬으니 이 근처이고 방향은 북쪽입니다."

"대신 시간이 얼마없다는 것까지 알아냈지.

빨리 가지 않으면 그녀가 위험할 거다. 어서 가자!"

그녀들은 속도를 내어 북쪽을 향해 진격했다.


고작 둘 뿐인 전력이었지만 이미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닌 그녀들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전차와 같이 계속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대장, 페더, 들려? 제발 좀.."

"들린다 울프! 지금 어디지?"

"세상에 씨발 감사합니다..

요트무덤에 반쯤 묻힌 대형 요트에 숨어있어.

대장이랑 페더가 온 걸 알아차렸는지

33대대 새끼들도 계속해서 돌아다니고 있어. 조심 해."

"알겠다."

하지만 요트까지 가는 길에는 여전히 33대대의 병사들이 곳곳에 있었으며

마치 이 사막의 요트무덤 전체가 33대대로 도배된 듯이

사방에서 적군이 쏟아져나왔다.


"씨발 대체 무슨 일이야?! 33대대 새끼들 완전 미쳐서 돌아다녀!"

"진정해라. 우리가 그쪽으로 가면 포위망도 점점 좁아질 거고

너도 곧 발각당할 거다. 위치를 이탈해 안전한 곳으로 숨어.

근처에 안전한 곳이 있나?"

"근처에 난민캠프가 하나 있어. 상황 해제될 때까지 거기에 숨어있을게."

"좋아. 거기면 충분해. 안전을 확보한 후 재집결한다.

알겠나 페더?"

"알겠습니다."

양측은 이미 끝없이 이어진 싸움 속에서 분노와 광기로 가득했으며

워울프는 포위망을 벗어나 난민캠프로 빠져나가기로 결정하고

칸과 탈론페더 또한 난민캠프로 경로를 수정해 다시 박차를 가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파된 선박에 들어와 잠시 적들의 눈을 피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갖자 발걸음의 속도를 늦춘 탈론페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워울프 씨..잘 견뎌낼 수 있을까요?"

"그저 좆같은 팔이 부러졌을 뿐이잖아.

우리들 호드는 그것보다 더한 부상과 상황도 수없이 겪어왔으니 괜찮을 거다."

"제가 그런 얘길 하는건 알잖아요?"

"그래? 불만이 있는 듯한 목소리군. 이런 때에 털어놓지 그래?

잡념이 없어야 임무에 집중할 수 있잖아."

"임무요? 임무 자체가 완전 좆됐잖아요.

방금 전에도 도시 전역에 방송을 내보낼 수 있는 방송탑을 박살내서

거기있던 병사들을 몰살했고."

"놈들이 다른 선택권을 주지 않았잖아."

그 순간 탈론페더는 갑자기 칸을 향해 몸을 돌려

손가락을 뻗어 그녀를 가리키며 외쳤다.



"대장님이 선택권을 주지 않은 거겠죠!

씨발 우리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어. 우린 그저 염병할 군인이다.

군인은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새에

누군가를 죽이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죽는거야..씨발.."

"그래요? 제가 잘못했네요 빌어먹을.."

칸을 향해 숨김없이 불만과 원망을 쏟아낸 탈론페더는

더는 토해낼 불만도 없다는 듯 입을 닫고 칸의 뒤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워울프가 이전에 있었던 위치인 모래에 묻힌 요트에 도달하자

그녀의 흔적을 수색하던 33대대를 발견한 칸과 탈론페더는

수색대를 모조리 사살해 요트무덤의 마지막 적군까지 사살해 상황을 종결시켰다.

"이제 좀 기분 나아졌나, 페더?"

"아직 멀었어요, 워울프 씨를 찾기나 하죠."

"그래. 상황 해제되었으니 통신을 걸어. 당장 재집결한다."


"워울프 씨! 들려요?"

"페더?! 페더! ㅆ, 씨발!!"

"뭐야? 왜 그러는 거냐 워울프! 무슨 일이야!"



"씨발, 어서 좀 도와줘! 놈들이 다가오고 있어!!

꺼지- 나한테서 꺼지라고!! 꺼지라니까!!"

"울프! 울프!! 이런 씨발 진짜!!"

통신을 걸자마자 들려온 다급한 워울프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다시 끊겨버렸고

칸과 탈론페더는 필사적으로 달려 난민캠프의 출입문을 돌파해

캠프의 내부까지 뛰어들었다.




난민들의 아우성으로 시끄러운 곳을 향해

칸과 탈론페더는 사력을 다해 달려가

캠프의 광장에 도달하자 거기에는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밧줄에 목을 매달린 채 교수형을 당하고 있는 워울프와

그 모습을 보며 통쾌하다는 듯이 웃고 떠들며 환호하는

난민들이 광장에 우글대고 있었다.

"밧줄! 밧줄을 쏴!!"

칸과 탈론페더가 밧줄을 향해 난사하자

총알이 명중한 밧줄이 끊어져 워울프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총성에 놀란 난민들은 혼비백산해 흩어져 델타 포스를 에워싼 채 물러났다.

"다들 물러나!! 당장!!"

그녀들은 난민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고성을 지르며 경고해

땅바닥에 쓰러진 워울프에게 다가갔다.



"일어나 울프!! 당장 쳐 일어나라고!!"

칸은 필사적으로 워울프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응급조치를 했으나

그녀의 몸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자신의 등뒤로 온갖 저주와 악담이 들려왔지만 그딴 소리는 그녀들에게 전혀 들리지 않고

그녀들의 정신은 오직 난민들의 통제와 워울프를 살리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물러나라고!! 씨발 물러나!!"

이미 분노에 차있던 난민들은 델타 포스가 나타나자

쌓여있던 분노가 폭발해 전혀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제자리에 선 채 그녀들을 향해 비난과 원망을 쏟아냈다.

"대장님 빨리요! 이 새끼들 전혀 물러나질 않아요!!"



"씨발 숨 쉬어 제발!!"

혼신의 힘을 다해 심폐소생술을 반복했지만

여전히 워울프의 몸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난민들의 분노 역시 사그라들지 않았다.




"당장 꺼져! 안 그러면 쏘겠어!!

대장님! 상황은 좀 어때요?!

개새끼들 전혀 멈추질 않아요!

우릴 완전히 에워싸고 있어요!"


난민들의 분노는 멈추지 않은 채 나머지 두 군인까지

처형대에 올릴 기세로 점점 둘을 에워싸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눈 앞의 총따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듯한 분노어린 표정이었다.




칸은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을 거듭하던 움직임을 멈추고

워울프의 눈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손을 천천히 쓸어내려 그녀의 눈을 감겨주었다.

앵거 오브 호드, 델타 포스의 한 바이오로이드가 세상을 뜨는 순간이었다.



"개씨발..칸 대장님!! 당장 발포 허가 요청합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쇼!!"

"빌어먹을.."

칸은 워울프의 시체의 자세를 고쳐잡아 편안한 자세를 만들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워울프의 시체를 뒤로 하고 난민들을 바라보자

이미 완전히 델타 포스를 에워싼 채

당장이라도 단체로 달려들어 그녀들을

워울프와 똑같은 신세로 만들 기세로 아우성이었다.


"대장!! 당장 발포 허가를 내려주세요!!"

"..."

어떤 선택이든 선택하지 않으면

난민들이 그녀들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

===


13챕터까지 왔네

엔딩 분기들을 제외하면 이제 14,15 챕터만 남음

픽시브


챕터1[구조요청]

챕터2[사구]

챕터3[아래로]

챕터4[피난민]

챕터5[끝자락]

챕터6[구덩이]

챕터7[전투]

챕터8[관문]

챕터9[길]

챕터10[에이미]

챕터11[낙오]

챕터12[옥상]

챕터13[늑대]

챕터14[다리]

챕터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