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문학] 뱀과 꽃 / 브라우니는 오늘도 유능한가? / 리:제로


[댓글문학] 1+1 = 1 / 옛날 빙수는 언제나 옳다 / 헤픈 엔딩(매운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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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세상은 모든 충동의 연속이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충동’적으로 영화에 나온 주인공의 복장을 입고 가장 강한(또는 가장 검을 잘 다루는)이에게 ‘충동’적으로 대련을 신청하는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워울프는 그것을 해 냈다. 아주 당당하게. 그녀는 조로라 불리는 주인공처럼 검은 망토와 가면을 뒤집어 쓰고서는 총사대의 자랑인 샬럿을 찾아가 검은색 장갑을 던지며 말했다.


“샬럿! 결투다!”


그 뒤로는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샬럿은 검을 뽑아 모욕에 대한 징벌과 함께 모두에게 승리를 약속했고, 그곳의 모든 이들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두 사람을 찬양하며 참치를 걸었다. ‘싸움이 있는 곳에 어찌 갬블이 빠질 수 있느냐!’ 라는 샐러맨더의 말이 시발점이었다. 물론 결과는 뻔한 일이었다. 아직 레이피어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초심자와 멸망 전부터 살아 남아 검을 휘두른 역전의 총사. 내기가 성립 되지도 않을 정도로 거대한 차이였다.


사령관은 이 어지러운 상황을 두고볼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의 눈 앞에서 단체로 정신줄을 놓아버린 혹은 미쳐 날뛰는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기도 싫었다. 모두 미친 것이 분명해.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지를 선언하려 했지만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에 자그마한 체구를 바삐 움직이는 아르망이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잠시 멈춰섰다.


눈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면, 분명 그녀는 사각 대차(혹은 손수레라고 불리우는)안에 참치를 가득 싣고 있었다. 그러고는 힘겹게 끙끙대며 당겼던 수레를 멈췄다. 아르망은 조금 가빠 보이는 숨을 몇 번 몰아쉬다가 힘이 조금 빠진, 애매하게 당당한 선언을 내 뱉었다.


“워울프 경에게 전부.”


그제서야 성립된 내기에 나머지는 모두 환호했다. 단 한 명. 일 대 다. 멀리서 보았을 때에는 낭만이었지만 가까히에서 보았을 때에는 그저 한 숨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샬럿이 이긴다에 판돈을 걸었을 때, 아르망만이 워울프에게 투자했다. 사령관은 이때 사용하는 용어를 본 적이 있었다. 분명 멸망 전의 단어였으며 샐러맨더가 종종 입에 올렸던 단어였다.


“역배...?”


정답이었다.


어찌 되었든, 사령관은 이미 벌어진 판을 수습하기보다 빨리 끝내서 마무리 짓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럽게 이 결투의 중재자이자 심판이 되었다.


임시로 만든 경기장의 양 끝에서 워울프와 샬럿은 손을 든 사령관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연습용 레이피어를 겨누었다. 사실 그 때 부터 승리는 정해져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샬럿에게 판 돈을 건 이들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를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부터 자세를 잡지 못해 휘청거리는 워울프와 몇 시간이 지나도 올바를 것 같은 자세의 샬럿. 사령관은 이 상황을 굳이 지켜봐야 하나라고 생각하며 한 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한 발자국 물러나며 올렸던 손을 내렸다. 시작의 신호였다.


선공은 어설픈 레이피어의 찌르기였다. 워울프는 처음치고는 꽤 괜찮은 속도로 찔러 대었지만, 샬럿은 한 손을 허리춤에 붙히고는 다른 한 손으로 능숙하게 쳐 내고 있었다. 그 다음은 샬럿의 차례였다. 능숙하게 찔러지는 레이피어의 끝이 조금씩 내 질러졌다. 하지만 사령관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샬럿의 찌르기는 저렇게 느리지 않았다. 은빛 섬광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빠르고 강렬한 속도였어야 했다.

그는 천천히 뒷 걸음질 치다가 어느새 다가온 아르망을 힐끗 보고는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르망. 오늘 샬럿의 상태가 안 좋은거야?”


“아니요. 그녀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오늘도 감자를 다섯 개나 먹어치웠지요. 폐하. 의구심이 드시는군요? 그녀가 왜 저렇게 느린지. 그리고 왜 한 손만을 사용하는지.”


“대충 짐작은 가는데... 확신이 안서네.”


“아마 예상 하시는바가 맞으실 겁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총사이자 기사들의 귀감이니까요.”


순간적으로 쇠가 강렬하게 부딫히는 소리가 들렸다. 사령관과 아르망은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의구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손에서 레이피어를 놓친 것은 샬럿의 쪽이었다. 그녀의 자랑과도 같은 검과 모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목에 칼을 겨누었어도 자신이 한 행동을 의심이라도 하는 듯 두 눈이 동그래진 쪽은 워울프였다. 샬럿은 자연스럽게 한 발자국 물러서며 두 손을 올렸다. 항복의 표시였다.


응당 들려야 할 환호성은 없었다. 대신, 워울프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그녀는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에 취해 배역도 잊고서는 칼을 위로 붕붕 휘두르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샬럿은 그런 워울프를 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고서는 모자에 붙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사령관에게 다가갔다.


“어머. 폐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네요.”


“일부러 진거야?”


샬럿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미소를 띄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최근 루가루 공이 저렇게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나 싶어요. 저는 그저 친우의 꿈을 지키기 위해서 약간의 연기를 했을 뿐. 이래보여도 훌륭한 배우니까요. 게다가 정식 결투도 아니었으니, 노 카운트에요.”


“그래. 훌륭하네. 총사 대장.”


“그런데 말이에요... 폐하. 잠시 비켜주시겠어요? 추기경과 할 이야기가 있어요.”


사령관은 의아함을 표하면서 옆으로 한 발자국 움직였다. 샬럿도 한 발자국 앞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아르망은 세 발자국 움직여 사령관의 뒤에 숨으며 말했다.


“총사 대장. 오해는 아니지만,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그래요. 추기경. 제 친우인 루가루 공이 결투의 시작 전에 그러더군요. 추기경이 추천해준 영화가 참으로 인상 깊었다고.”


“그녀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추천해 준 것 뿐입니다.”


가운데 낀 사령관은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정보를 조금씩 긁어 모았다. 워울프가 저렇게 빠진 영화를 아르망이 추천해주었고, 아르망은 그것으로 이득을 취했다. 결론은  하나였다.


“아르망. 참치가 목적이었어?”


“예. 폐하. 부끄럽게도, 지금 오르카호의 재정이 좋지 않아요. 그러니 묵혀둔 참치를 꺼낼 필요가 있었어요. 거부감 없이 수급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뿐이었지요.”


“그래서 샬럿을 이용한거구나. 내기를 통한 회수라면 모두가 납득할테니까.”


“잠깐의 여흥거리에 비해서 비싸긴 했지만... 결과는 모두가 해피엔딩이었어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갑자기 아르망의 몸이 사령관의 팔에 의해 그의 눈 높이까지 들렸다. 귀여운 비명소리와 함께 황급히 치마를 짓누르며 속옷을 가리는 아르망은 당황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폐... 폐하?”


“총사 대장.”


“예. 폐하. 말씀하세요.”


“우리 둘이 생각해보자고. 이 간악하고 악독한 공리주의자 추기경을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좀 쉬고 생각해보고 싶네요. 폐하. 고생한 총사를 위해 차 한 잔 대접해 주실 수 있나요?”


“물론.”


사령관은 여전히 아르망을 든 상태로 걸어가며 말했다.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아르망. 오늘은 안 도와 줄꺼야.”


아르망은 이 상황도 예상했다는 듯이 체념이 섞인 한 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마치, 혼날 것을 알고 있는 강아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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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은 지금 고민에 빠져있다. 분명 방금까지만해도 해맑게 웃던 세이렌이 심통이 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착한 천성은 어디 가지 않았는지 애써 티내려고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는 그녀의 마음을 풀어줄 의무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데이트를 망치는 것은 서로의 끝이 좋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저... 세이렌 아가씨?”


“네. 사령관님.”


자신을 보지도 않고 의자에 앉아 발만 휘적거리는 세이렌을 보며 사령관은 참담함을 금치 못했다. 귀여움과 곤란함이 동시에 몰려오는 이 배덕감 섞인 감정들이 꿈틀거렸다. 그는 무엇이 문제인지 천천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분명 과거의 행동이나 태도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하디 선한 세이렌이 저렇게까지 투정을 부리지는 않았을테니까.


사령관의 머리에서는 가장 먼저, 오는 길에 세이렌과 길을 걷던 도중에 하치코를 만나 이야기를 조금 하고 머리를 쓰다듬은 일이 생각났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빗어주는 것은 채 십초가 되지 않았다. 두 번째. 카페에서 천아와 장화의 복장을 바라본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힐끗 바라본 것이었다. 프릴이 구겨져 있다거나 단추를 잘 못 매었다 정도는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은가. 세 번째. 우연찮게 페레그리누스와 알프레드를 만나 조금의 담소. 남자들만의 대화였기에 세이렌을 끼워주기 애매한 감이 있었다. 그리고 네 번째. 샬럿과 앨리스가 때 아닌 수영복을 입고 달려드는 것을 그대로 받아준 것. 물론 거대한(어느쪽이던지) 그녀들이 달려드는 일은 불가항력이었다. 그는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가벼운 한 숨을 내 쉬며 세이렌의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 일단 미안해.”


“뭐가요? 전 괜찮아요.”


안 괜찮은거같은데. 라고 말할 뻔한 사령관은 그 말을 내 뱉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말하는 순간 이 일은 파국을 떠나 호라이즌 모두에게 경멸의 시선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 또한 이 작고 귀여운 생명체에게 미움 받는 일은 싫었다. 어찌되었든 그는 사령관으로써 그리고 남자로써 그녀를 책임질 의무가 있었다. 사랑의 감정이던지 애정의 감정이던지. 어느 쪽이라도 설명 될 만큼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 케이크 먹을래?”


좋아하잖아. 사령관의 말이었다. 그는 포크로 자그맣게 자른 조각을 찍어 세이렌에게 가져다 대었다. 그렇지만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려버린 그녀는 아예 팔짱까지 끼며 몸까지 돌려 버렸다. 이제는 벼랑 끝이었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관계의 진전은 커녕 파국을 향해 달려갈 것이 분명했다. 사령관은 선택해야만 했다. 극단적인 방법이냐, 아니면 유순한 방법이냐. 약간의 고민 끝에 그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포크가 접시 위에 놓아졌다. 그러고는 세이렌의 작은 체구가 들렸다. 작은 비명소리와 함께 세이렌은 자신의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밤마다 느꼈던 온기였다. 사령관은 그녀를 안아 얼굴을 파 묻었다. 그가 종종 하는 어리광이었다.


“세이렌. 내가 다 미안해.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될까?”


“매일 그런 식이었잖아요. 이번에는 안 돼요.”


하지만 사령관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조금 더 강하게 파고들면서 세이렌을 껴 안았다. 그녀의 작은 어깨에 그의 숨결이 조금씩 닿을 정도였다. 세이렌은 지금 그가 큰 강아지 처럼 느껴졌다. 사고를 쳤음에도 용서를 바라며 몸을 비벼댄다거나 슬픈 눈으로 자비를 구하는 모습들이 나름 귀엽기도 했다. 그녀는 이제 조금 용서해 줄 생각으로 손을 뻗어 사령관의 머리르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그러면 저 진짜 삐질거에요.”


“네. 네. 세이렌 아가씨.”


“근데... 좀 더워요.”


“난 좋은데.”


세이렌은 놔줄 생각이 없는 사령관을 보며 다시 가벼운 한 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말려드는 쪽은 이쪽이라는 생각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도 떨어질 생각은 없었다. 그 나름의 애정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쓰다듬던 손으로 그의 목을 감싸며 말했다.


“저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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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빠서 두 개 써봄.


지금까지 앞에 링크 거는거 까먹어서 올려둠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