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49543871 - 시리즈 모음










오르카는 전례 없는 철충의 침공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령관 미사일이고 폭탄이고 남은 게 없어. 더 이상 공중 지원은 불가능해"


"스파르탄 보고드립니다. 철충의 증원군이 나타났습니다."


"여기는 발할라! 앞으로 30분 정도가 한계야. 대피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됐어?"




들려오는 소식은 모두 암울했다. 전선은 밀려나고 탄약이 떨어져 가고 보급로가 끊기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었지만 지상에는 대피하지 못한 비전투 인원이 다수 남아있었기 때문에 도망칠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철충들의 지휘체계는 엉망이었고 사용하는 전술이라고는 돌격하는 것뿐이었다.


바꿔말하면 그런 단순한 전술에도 고전을 면치 못할 정도로 힘의 차이가 명확하다는 것이었다.




사령관은 멍해질 것 같은 정신을 붙잡았다. 잠시도 쉬지 못하고 지휘하느라 몸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짝!



양쪽 뺨을 스스로 때리며 정신을 집중한 사령관은 다시 한번 지휘 패널을 조작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모든 대원의 무사 귀환이었다.






*






"부관, 현 위치에서 벗어나 오르카 호로 복귀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대장"




메이의 명령에 답한 바이오로이드, 나이트 앤젤은 방향을 바꿨다. 


그녀의 발아래에는 수많은 철충이 있었지만 투하할 폭탄도 다 떨어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칫 얼마나 더 몰려오는 건가요"




불평하며 날아가던 순간, 그녀는 적기의 공격이 날아오는 것을 눈치챘다.




"이런 젠장!"




스텔스조차 간파했는지 미사일과 전기 구체는 정확히 그녀를 노리고 날아왔다.



나이트 앤젤은 그 수많은 투사체의 틈을 찾아내어 포위망을 벗어났지만, 적들의 집요한 추격은 기어코 그녀의 왼쪽 엔진을 파괴했다.



"큿!"



직격은 피했지만, 엔진의 절반이 부서지며 그녀의 회피기동도 멈춰버렸다.



회피기동을 할 수 없는 전투기는 과녁이 될 뿐이다.


그런 사실은 그녀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곧 다가올 미래를 직감한 그녀는 눈을 감으려 했다.




눈을 감기 직전 그녀의 눈동자에 작은 반짝임이 비쳤다.




다음 순간 반짝임은 폭풍이 되어 하늘을 갈랐다.




콰가가가가각!!




폭풍이 휘몰아치자 철충은 그 풍압에 갈려 나갔다.


풍압에 갈려 나가지 않은 철충도 그 여파에 고도를 잃고 땅으로 추락해 터져나갔다.




압도적인 속도로 빚어내는 폭풍


그녀가 아는 한 그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한 명뿐이었다.




"슬레이프니르?"



"안녕! 일단 내 손 잡아!"




엔진이 완전히 꺼지기 직전에 나이트 앤젤은 간신히 그녀의 팔에 매달렸다. 나이트 앤젤이 자신의 팔을 붙잡은걸 확인한 슬레이프니르는 천천히 지상으로 착륙했다.




"여기는 철충들이 오지 않는 위치니까 여기서 얌전히 구조될 때까지 기다려"




나이트앤젤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슬레이프니르는 창공을 향해 다시 날아올랐다.




그녀를 쫒아 올라간 나이트앤젤의 시선에 와쳐가 호위하고 있는 거대한 수송기가 보였다.


그 수송기는 10m 정도 크기의 물체도 충분히 들어갈 정도로 거대했다.






*







사령관은 철충의 일부가 집결하여 진형을 갖추고 진격하기 시작했다는 흐레스벨그의 보고를 조용히 들었다.



지상을 뒤덮는 숫자에 더불어 군대를 이루는 개체 하나하나가 강력한 개체라서 병력의 질 또한 뛰어나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흐레스벨그의 보고가 끝이 났다.




"망할…"




그런 강력한 군세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인데 다른 부대들은 이미 전부 투입되어 싸우고 있었기에 동원할 수 있는 부대는 호드가 유일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들마저도 전투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태가 좋지 않았다.




"…"



"사령관 우리는 이미 각오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군인이 있을 것 같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호드가 나서지 않는다면 철충의 군세는 전선을 무너뜨려 다른 부대를 궤멸시키고 대피하던 비전투 인원까지 학살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사령관은 차마 명령을 할 수 없었다.


호드가 총동원된다면 철충의 군세를 쓰러트릴 수야 있었다. 하지만 사망자가 나올 각오를, 아니 부대의 절반 정도는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사령관은 차마 죽으러 가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칸은 그런 그의 상냥함을 알고 있었기에 이번만큼은 명령을 기다리지 않았다.


지금부터 생기는 일은 자신의 독단이라고 그가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도록




"앵거 오브 호드. 출격하겠다."




그 말과 함께 칸은 재빨리 빠져나왔다. 






*






호드는 해변을 질주했다.



그녀들의 앞에 죽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부대원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전투의 피로를 전부 씻어내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 사실은 더욱 명확했고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두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죽으러 가는 이들이라 보이지 않는 당당한 모습으로 그녀들은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




"샐러맨더"


"왜 불러?"


"내기 하나 할까?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을지 죽을지로

난 '내가 살아남는다' 에 전 재산을 걸겠어"




워울프의 말에 샐러맨더는 잠시 망설이더니 평소처럼 웃으며 말했다.



"좋아 나도 '내가 살아남는다' 에 전재산을 걸겠어."



슬픈 현실을 독한 술로 밀어내듯이 그녀들은 죽음의 공포를 악질적인 농담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 샐러맨더"


"왜 불러 대장?"


"나는 '모두 살아남는다' 에 걸겠다."


"후후 대장 욕심쟁이였네? 그런 점이 좋은 거지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수다를 떨다보니 철충의 군대가 호드의 시야에 들어왔다. 



호드가 철충을 볼 수 있듯이 철충도 호드를 볼 수 있었다. 


적을 감지한 군세가 몸을 뒤틀며 호드를 향해 움직였다.




"전 대원 돌격 준비!"




칸의 호령과 함께 호드의 대원들이 멈춰서 진형을 재정비했다.


이제 돌격할 순간이었고 명령을 내릴 순간이었다.


중압감에 미칠 것 같았으나 100년간 단련된 정신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칸이 입을 열려는 순간 탈론패더의 다급한 통신이 들려왔다.



"대장님! 거대 수송기와 와쳐 편대가 접근 중! 오르카 소속은 아닙니다!"


"?! 모두 뒤로 물러나라!"




당황한 칸이 하늘을 올려보자 탈론패더의 말대로 거대한 수송기가 칸과 호드 대원들의 우측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와쳐 편대가 호위하는 거대한 수송기의 모습은 구축함과 항공모함으로 이루어진 함대 같았다.




"대장 누가 공중 지원하러 온다고 했어?"


"아니 그런 말은 없었다. 무엇보다 저 수송기는 오르카 소속이 아니다."




정체불명의 존재의 등장에 호드도 철충도 멈춰선 순간 유일하게 움직이던 수송기에서 작은 점이 떨어져나왔다. 


작은 점은 원근법에 따라 점점 거대해지며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콰광!




거대한 충격이 대지를 뒤흔들고 솟아오르게 했다. 


충격의 여파에 휘말린 모래가 사방으로 휘몰아치며 폭풍을 만들어내었다. 


코앞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모래먼지 사이에서 이 소란의 원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거대한 강철 컨테이너였다.




쿵! 쿵!




컨테이너 안에 무언가 있었다.

그것은 부화하려는 새끼 새가 알을 깨부수듯이 강철 컨테이너를 부수려 하고 있었다.




쿵! 쿵! 쿵!



쾅!!




마침내 컨테이너가 부서지며 그 안에 잠들어있던 존재가 깨어나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아!!"





포효와 함께 폭군이 다시 한번 오르카의 전장으로 돌아왔다.








*







컨테이너에서 빠져나온 타이런트의 눈앞에 수많은 철충들이 보였다.




"작전 초반부는 대충 성공한 것 같네"




철충의 군단은 타이런트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 숫자는 땅을 뒤덮을 수 있었으며 개체 하나하나가 상위종인 정예 병력이었다.




그런 힘의 우열은 타이런트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힘만으로 타이런트의 방식만으로 싸워서는 안 됐다.


인간의 방식으로 싸워야 했다.






타이런트는 컨테이너에서 꺼낸 무언가를 철충을 향해 집어던졌다.




꽤 거대한 그것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올라 철충의 앞에 널브러졌다.


선두에 선 철충들이 그것이 무엇인지를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한 순간 철충들의 몸이 굳었다.






그것은 네스트의 갈기갈기 찢긴 잔해였다.






지적 생명체는 공포를 느낀다.



그것은 철충에게도 통용되는 말이다. 별의 아이를 두려워하기에 바다로 가는 것도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별의 아이와도 싸울 수 있는 강대한 동족인 네스트의 죽음은 진군을 멈추게 할 정도로 강한 공포를 느끼게 했다.




그러나 이내 진군은 다시 시작되었다.




"네스트가 죽은 건 무섭지만 설마 내가 네스트를 죽인 장본인이겠냐, 뭐 그런 생각 하고 있지?"



들리지도 않을 철충들을 향해 비아냥거린 타이런트는 몸속 회로를 움직였다.




[ 폭주 유도 시스템 가동 코어 출력 리미트 해제 ]




기계 음성이 울려 퍼지고 코어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리고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제한이 해제되었다.





"오답이다. 등신들아"





타이런트의 입에서 시작된 붉은 빛의 질주


빛의 기둥 앞에 철충의 군세는 모세를 앞에 둔 홍해처럼 반으로 갈라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폭군은 그것으로는 충분한 공포를 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폭군은 계속해서 불을 내뿜었다.


불을 내뿜으며 몸을 돌리자 빛의 기둥이 기울어졌다.




이에 따라 군세를 반으로 가른 기둥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며 군단의 오른쪽 몸통을 불태워버렸다.




왼쪽에 있던 철충들은 보고 말았다. 


자신의 동족이 불타오르는 모습을 


반항의 여지조차 없는 압도적인 힘 앞에 무너지는 모습을




수많은 죽음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빛의 기둥은 사그라들었다.




"끄으윽…"




타이런트는 고통에 신음했다. 


플라스마 포가 과열되는 것을 무시하고 발사한 대가였다.




몸과 목구멍, 입이 불타오르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플라스마 광선이 지나온 목의 일부는 열기에 녹아내려 입 밖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격통이 몸을 달려 서 있기도 힘들었으나 죽을 각오로 버텨내었다.


지금 쓰러지면 공포심이 사라진다. 그렇기에 고통을 참아가며 포효했다.




"꺼져라 이 새끼들아!!!"




모두가 침묵하는 사이 철충 한 마리가 대열을 벗어나 도망쳤다.


공포는 전염되어 두 마리가 대열을 벗어나 도망쳤다


곧이어 열 마리 수백 마리, 셀 수 없이 많은 철충이 도망쳤다. 조금이라도 공포의 존재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작전은 성공했다.

그러나 절반 짜리 성공이었다.




여전히 수백 마리의 철충이 자리에 남아있었다.




"이런… 망할"




공포를 이겨낸 철충들은 무너진 진형을 복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허나 공포를 이겨내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철충뿐이 아니었다.




저 멀리에서 엔진음이 들려왔다.

멀다고 생각했던 엔진음이 어느새 바로 뒤에서 들려오더니 바람 소리로 뒤바뀌었다.




타이런트의 옆으로 질풍이 휘몰아쳤다.




"칸..?"




그녀의 뒤를 이어 수많은 질풍이 타이런트를 지나쳐 철충을 향해 달려들었다.


질풍이 불을 내뿜고 총알을 뿜어대고 화약을 터트
리자 진형도 갖추지 못한 철충들은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질풍이 질주하며 철충을 집어삼키자 마침내 부족했던 공포심이 끝까지 채워졌다.




꽉 채워진 공포심은 칼날이 되었다. 그 칼날은 의지를 용기를 잘라내었고 마침내 이성을 잘라내었다.




이성을 잃은 철충들은 진형을 정비하지도 반격하지도 못했다.


그저 서로를 짓밟으며 규율 따위는 없이 겁먹은 야생동물처럼 도망쳤다.


겁먹고 도망치는 야생동물은 늑대의 사냥감이 되는 법


사냥감으로 전락한 철충들은 호드에게 사냥당했다.






*







그 누구도 죽지 않은 완벽한 승리



그 사실이 방금까지 긴장하고 있던 호드 대원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오게 했다.




"하하.. 내기는 대장이 이긴 것 같은데?"


"으엑? 대장 무승부로 해주면 안 돼? 나 또 탕진하면 진짜…"




그렇게 말하며 워울프가 칸을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는 말을 멈췄다.

타이런트와 칸이 서로의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나를 그리고 대원들을 구해줘서.. 고맙네"


"감사는 나중에. 더 끔찍한 녀석이 올거야. 너는 대원들을 데리고 후퇴해"


"자네는…?"



칸에게 대답하려는 순간 바다에서 거대한 존재가 접근하고 있는 것이 감지되었다.


헤엄치는 것만으로도 파도가 몰아치고 바다 위를 누비던 갈매기들이 떼지어 도망쳤다.




"왔군. 빨리 가는게 좋을거다."




그 순간 바다를 가르며 거대한 괴생명체가 부양했다.


내가 이곳에 와야만 했던 이유


별의 아이가 나타났다.




"저게… 무슨?"



"젠장..  몸이 이상한데?"




공포 경악 그런 감정이 호드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 ——!!!"




별의 아이가 기괴한 비명을 지르자 호드 대원들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호드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별의 아이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녀석이 나와 호드 대원들을 노리는 것은 확실했다.




"젠장 내가 이 녀석을 상대하는 건 계획에 없었는데"




알바트로스가 세운 작전이 어긋났다고 생각하며 반쯤 파괴된 플라스마 포에 에너지를 불어넣으려 한 순간




[ 도착했다 ]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포탄의 세례가 별의 아이에게 쏟아졌다.




"——!!!!!"




별의 아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이 검은색 비행체가  녀석의 머리를 향해 돌진했다.




쿵!



"크에에엑!!"




거대한 별의 아이의 몸이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녀석은 분노를 표출하며 감히 누가 자신을 공격했는지 찾아 해맸다.


별의 아이가 그 해답을 찾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자가 당당한 모습으로 코 앞에서 별의 아이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바트로스 작전 개시"


"키야아아아아악—!!!"





별의 아이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외계에서 온 재앙과 AGS 기술의 궁극적 표상, 두 존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