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 드레스란 여심을 흔들리게 하는 마성이 있음에 틀림 없다. 그의 앞에서 빙글 몸을 돌리며 드레스 자락을 펼쳐 보이고 있으면, 그저 옷을 바꿔 입었을 뿐이었지만 정말 결혼식을 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응... 정말 예쁘고 푸짐하다."

"하..."


그러나 웨딩 드레스를 입은 소녀의 순정을 짓밟는 그의 감탄사. 솔직하게 예쁘다고 말해주는 것은 기쁘기 그지없지만, 뒤에 저 푸짐하다는 소리는 가슴을 뚫어져라 보면서 했기에 그의 시커멓고 음흉한 속내가 물씬 풍겨져 나왔다.


"사령관... 또 이상한 생각하고 있지?"

"어? 그걸 어떻게.."

"얼굴에 다 티나거든?"


물론, 그의 저런 시선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다고 해야 할까? 좋아하는 이성의 관심이란 어떤 방식이든 원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들을 한번에 쏟아 부을 수 없는 노릇이다. 요컨대 남녀 관계란 적당한 밀고 당김이 중요하다는 구절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정말.. 그.. 가, 가슴이.."


움푹 파인 가슴의 디자인이 그의 시선을 확실하게 붙잡은 모양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반응을 예상하기는 했기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도 살며시 가슴을 가리며 그를 뚱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또, 또! 어휴~ 정말... 이런 때까지 그래야겠어?"

"윽.. 미안.."


바로 비에 홀딱 젖은 강아지와 같이 어깨를 움츠리고 낙담하는 그를 바라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덩치도 좋은 그가 저렇게 안쓰러운 모습을 보이며 살살 내 눈치를 보는 광경이란, 마치 아주 큰 강아지가 주인에게 길들여져 아양을 부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무릇 숙련된 조교란 이럴 때 당근과 채찍을 능숙하게 조절할 줄 알아야 하는 법. 지금이 바로 당근을 줄 차례겠지.


"지금은 그냥.... 에잇!"

"으앗!"

"이렇게 꼬~옥 안고 있자. 착하지~ 응?"


그를 가슴으로 잡아 당겨 안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자, 처음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하던 그의 표정이 헤벌쭉 풀리는 것이 보였다. 정말이지, 이렇게 조련하기 쉬운 남자를 어떻게 밖에 마음껏 풀어놓겠어?


"사령관은 괜찮아?"

"응? 어떤 걸 말하는 거야?"

"내가 이런 옷 입는 거..."


품에 안긴 그를 어루만지며 살며시 진짜 속내를 털어 놓는다. 과연 내가 이런 옷을 입은 것을 그는 마음에 들어할까. 혹시 너무 앞서나간다며 불안해 하지는 않을까. 온갖 불안감이 마음을 휩쓸었기에 차마 그의 눈을 마주 보고 묻지 못했던 것을 능숙하게 숨기며 말한다.


"그야 물론 최고지! 미호는 항상 예뻐! 사랑해!"

"아이~ 뭐야~ 너무 바로 대답하니까 진심이 안 느껴지는데? 좀 더 생각하고 말해줄래?"


아마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말했다면 바로 들켰을 거짓말을 그에게 속삭인다. 항상 예쁘다는 그의 말은 똑똑히 내 귓가에 감미로운 울림을 남겼다. 그럼에도, 또다시 그에게서 예쁘다는 말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웨딩 드레스를 입은 미호는 정말 예뻐! 정말 사랑해!"

"하핫! 역시 창피하네.. 이제 그만~ 안돼, 진짜 창피하니까... 그만!"


부끄러운 마음을 숨기며 그에게 대답한다. 물론, 그는 아직도 아쉽다는 얼굴로 입을 삐쭉이며 더욱 낯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려는 것처럼 보였기에 살며시 말을 돌리며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예쁜 웨딩 드레스에다가, 이렇게 사령관이 있고... 너~무 좋다."

"나도 이런 시간이 좋아. 무엇보다 미호가 기분 좋아 보여서 그게 정말 행복해."


품에서 살며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 얼굴이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이렇게 기분 좋은 말들만 해주면, 역시 상을 줘야겠지.


"역시 하나가 더 있어야 할지도..."

"하나가 더 있어야 한다니? 아! 혹시, 부케?"

"눈치 없기는~ 자~ 이제.. 뭔지 알겠어?"


그의 손을 잡아 이끌어 내 복부 언저리를 쓰다듬게 하며 귓가에 속삭이자 단번에 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여성의 복부 안에 하나가 더 있어야 한다면, 그게 웨딩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말한다면, 아무리 눈치 없는 이 바보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미호!"

"꺄앗! 진짜~ 바보..."


순식간에 눈빛을 다르게 빛내며 덮쳐오는 그의 모습에 앞으로의 열락을 기대하며 몸이 달아오른다. 그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우악스러운 손짓으로 드레스 너머의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안돼! 드레스 구겨져. 이건 진짜 '안돼!' 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 마?"

"미안해, 이번에는 정말 못 참겠어."


아무래도 이 이상 그를 밀어내는 것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 이상 그를 밀어내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녹아내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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