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화 2화 3화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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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거야 원. 이래가지고 살겠냐. 안 그래?"


"그렇습니다, 병장님."


"테러리스트 진압만 해도 골치아파 죽겠는데 이젠 공화국 국경선에서 경계까지 서라니, 너무하는 것 아니냐?"


"그렇긴 합니다만, 반란군이라고 해주십쇼. 누가 들으면 큰일 납니다."


"젠장, 이런 변방에 누가 오겠어? 아무도 안 듣는다. 걱정하지마."


"그리고 너도 알잖아. 솔직히 선제 폐하 돌아가시고 나서 지금 폐하께서 집권하시는 과정은 조금 이상했..."


탕!


"병장님... 그래서 제가 항상 조심하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어디에나 듣는 귀가 있다는 충고를 귀담아 들으셨다면 이런 일은 없으셨을 텐데..."


삑, 삑, 삑.


레프리콘은 그녀의 머리처럼 새빨갛게 물든 외투를 벗어던지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띠리릭, 달칵.


"197-2, 33, 통나무 하나, 권총. 처리 부탁합니다."


"......"


달칵.


그녀는 밖으로 나와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때는 아직 가을,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들이 스러져간 동료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기나긴 전쟁의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피를 이 손에 뭍혀 왔던가.

마리 대장님 휘하의 병사로서 PECS의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한 피에는 죄책감 따위 없었다.

"인류를 위해서", 사라져야만 할 바이오로이드들이었으니.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 살해당한 이프리트 역시 사라져야만 했는가?


레프리콘 소령은 어두운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대장님, 이것이 정말 인류를 위한 일입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는 그날 이후로 자신의 모든 것을 마리를 위해 쓰기로 다짐했다.

그것이 옳은 일이든, 옳지 않은 일이든, 이제 와서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피어오르는 연기에 죄책감과 회의를 실어올리고, 그녀는 자리에서 떠났다.


...


"이번에 우리 소대에 편입된 레프리콘 일병이다, 다들 잘 대해주도록."


...


똑똑똑.


"대장님 레드후드입니다."


"들어오도록."


끼익, 탁.

레드후드는 문을 열고 마리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마리는 피곤해 보였지만, 그것을 티내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을 지적하고 조금 쉬는 것이 어떠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아 그만두었다.


"레프리콘 소령의 재배치를 완료했습니다. '처분'을 완료했다고 합니다."


"그래... 잘 됐군. 일 하나는 아주 잘 처리하는 녀석이야."


"...마리 대장님, 감히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뭐지? 말해보도록."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프리트라면 기껏해야 말단 병사입니다."


"고위 장교가 그런 말을 했다면 모를까, 말단까지 처분하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습니다."


"담당자들에게 너무 많은 일이 돌아갈뿐더러, 이렇게까지 쥐잡듯 잡으면 반감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레프리콘 소령이 원래 병사 출신이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소령입니다."


"슬슬 그에 맞는 대우를 해 주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말을 마친 레드후드는 그 자리에 정자세로 서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고심하는 듯 하던 마리가 입을 열었다.


"지금 제국 내부가 말이 아니라는 사실은 자네도 알 것이라고 생각하네."


"반감을 사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군 내부 기강이 해이해질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위험의 불씨를 뒤에 남겨놓는 것은 그것을 통제할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네. 지금은 그럴 수 없는 때고."


"메이처럼 아예 제거할수조차 없는 위험이 있는 지금으로선 변수를 최대한 줄여놓지 않으면 안 되네."


"그리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인원은 많지 않아. 자네도 알지 않나?"


"레프리콘 소령은 이 일에 있어 최고의 적임자야."


"다만, 그에 대한 대우가 조금 모자랐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군."


"또한 담당자들에게 무리가 간다니, 담당자를 조금이라도 늘리도록 하지."


"그 일은 자네가 맡게. 믿을 수 있는 인원을 섭외해 보도록. 레프리콘 쪽은 내가 직접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가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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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입니다. 공화국 내부에서 모든 이가 레오나의 생각을 지지하지는 않는 것처럼, 제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이든 많은 인원이 모여 있다면 그 생각이 모두 같은 수는 없는 법이겠죠.

여담으로 마리와 레오나의 지휘관으로서의 군사적 재능은 거의 동등한 수준이지만,

전면전을 비롯해 강대강으로 맞붙는 대규모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결정적인 승기를 잡는 것은 마리가,

소규모 교전의 승리를 가져오거나 패하더라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이득을 챙기는 것은 레오나 쪽이 근소하게 더 뛰어납니다.

다음 화는 내일 연재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