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번 아일랜드에서의 전투는 마침내 오르카 호 반군의 승리로 끝났다.


지휘관들을 잃고 흩어진 철충 잔당 세력들은 AGS들의 집요한 수색 속에서 갈갈이 찢겨나갔으며, 검은 점막들은 악취와 함께 불 속에서 정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전투는  피투성이나 다름 없는 반쪽 승리에 불과했다.


투입된 병력의 대다수가 중상을 입었고, 그 수가 너무 많은 나머지 수복실에서 치료를 받기도 전에 과다 출혈이나 쇼크사로 죽은 이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둠 브링어와 스카이 나이츠의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알기나 해? 공중 병력과 대공 사격, 게다가 추가 증원 병력까지 한 번에 상대해야 했어. 그것도 한번에 다!"


메이는 테이블을 내려치며 소리쳤다.


"목소리 낮추게, 메이 중장. 피해라면 지상군 역시 만만치 않다. 포격 지원이 없었으면 지상군의 전멸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얘기해보자. AGS 사령관이라는 작자가 우리가 다 작전에 찬성한 와중에 자기 혼자 반대표 던지는 것도 모자라서 자기한테 지휘권을 양도하지 않으면 병력 지원도 줄이고, 작전에 참여하지도 않겠다고 했어! 


그런데 우리가 전멸 위기에 몰리니까 나타나서 뭐? 임시 지휘관으로써 작전 지휘? 하! 웃기지 말라고 해!"


이건 그냥 숟가락 올리고 자기 입지를 대규모 확장시키려는 수작 밖에 더 되겠어?


"메이 중장, 목소리를 낮춰라."


마리와 칸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메이는 아더가 앞에 있는데도 화를 진정시키지 못했다.


"목소리 낮추라고? 이게 지금 목소리 낮출 일이야? 지금 당장이라도 지휘권 박탈하고 폐기 처분해도 모자랄...."


"그만."


아더의 말 한 마디에 메이는 말을 멈추고, 이를 악문 채로 자리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아더도 알바트로스의 처분에 대해 생각은 하고 있었다.


알바트로스가 아무리 최대의 이익과 최소의 피해를 고려한 행동을 하였다 해도, 사령관에게 항명한 것과, 작전에 무단 이탈 및 무단 참여한 것에 대해서는 분명 징계를 받아야 했다.


"내가 지하에서 트릭스터를 처리하는 동안 HQ-1 알바트로스가 날 대신하여 27번 아일랜드 섬멸 작전을 지휘했다고 들었다. 그게 사실인가?"


"맞습니다, 사령관님. 수적 열세에 밀리던 저희에게 중장형 AGS 병력 대거 지원 및 수송선 제공, 호라이즌 함대 역시 추가로 지휘하여 후퇴를 엄호해주었습니다."


"전부 사실이야. 적 화망 때문에 나아가지도 못하던 우릴 대신해서 실패할 뻔한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해준 건...분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어."


"그리고 알바트로스가 예측했던 대로 적 공중 병력이 오르카호를 노렸다, 사령관. 알바트로스가 항명한 것은 문제가 있으나, 이번 상황을 예측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한 것을 감안해주었으면 좋겠군."


마리와 레오나, 그리고 칸이 알바트로스의 처우에 대해 자비를 부탁하자, 메이와 슬레이프니르는 셋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사령관, 이걸 정말로 넘어갈 생각이야? 원래 작전대로였다면 AGS 공중 병력이 스카이 나이츠와 둠 브링어를 도와서 제공권을 확보해야만 했어! 


그런데, 최대의 이익이네 뭐네 이것저것 따지면서 지휘권 양도를 못 받으니까 AGS 공중 병력들을 전부 자기가 도로 가져가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말 몰라?!"


"스카이 나이츠 대원들이 얼마나 죽어나갔는지 알기나 해? 대공 사격에 갈갈이 찢겨나가서 시체조차 찾지도 못한 대원들에, 엔진 피격으로 그 자리에서 폭사한 대원들까지 합치면 못해도 세 자리수 그 이상은 될 수도 있었어! 


이건, 알바트로스의 명백한 실책 그 자체야!!


적어도 지상군은 시체라도 챙길 수 있었겠지만, 우린 다르다고! 하늘에서 죽으면 그걸로 다 끝이야! 끝이라고!!!"


얼굴이 잔뜩 벌게진 슬레이프니르의 고함에 마리가 제지하려 했으나, 그러지 말라는 아더의 눈빛에 결국 마리는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AGS 공중 병력이 출격하지 않아 그들의 피해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스카이 나이츠와 둠 브링어의 피해는 이루 말할 것이 없었기에 그들의 분노는 충분히 납득할만 했다.


"내가 할 말은 딱 한 마디 뿐이야, 사령관.


당장 알바트로스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폐기 처분을 하든 뭘 하든 합당한 처벌을 내려."


메이의 차가운 말 속에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날이 잔뜩 서려 있었고, 아더는 이를 경계할 수 밖에 없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나와 이 곳에 모인 지휘관의 의견을 듣고, 알바트로스의 처벌을 결정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이번 결과에 대해서는 그 어느 반론도 꺼내지 않도록 해, 알겠나?"


"...좋아,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할거야."


그렇게 알바트로스의 처벌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알바트로스를 처벌하는 것에 반대하는 인원은 마리, 칸, 레오나


그리고 그를 처벌하는 것에 찬성하는 인원은 슬레이프니르, 칸


무적의 용 대신 임시 지휘관으로 있는 세이렌과 아스널, 그리고 아더의 선택에 알바트로스의 처우가 결정되었기에 아더와 아스널, 그리고 세이렌은 각자의 말에 책임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아스널,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아스널은 숨을 고르더니 잠시 고개를 떨구며 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알바트로스의 지휘가 성공적이었다고는 해도, 그는 군인으로써의 자격은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군.


나처럼 전 사령관의 무능함에 치를 떨었다 해도, 최소의 피해와 최대의 이익에 대해 집착한 나머지 사령관에게 항명한 것과, 무단으로 임시 지휘관을 자처한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처벌에 대한 논의감으로 봐도 무관하다.


이번 일은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게 마땅하다고 본다, 사령관."


"좋아, 세이렌 부함장,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전...."


세이렌은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말 한 마디에 알바트로스가 폐기처분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말하기를 주저하였지만 아더는 이를 알아챘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난 네 대답을 듣고 싶을 뿐이야. 남들 눈치를 보며 답하는 걸 보고 싶은게 아니고. 무슨 말인지 알겠나?"


"....죄송합니다."


"전...알바트로스 사령관님의 처벌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고 싶습니다.


메이와 슬레이프니르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갔지만, 세이렌은 이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실은, 알바트로스 사령관님께서 제게 지원 요청을 하실때의 교신 기록을 녹음해 놓았습니다."


"뭐? 교신 기록? 하! AGS 병력 지원을 대가로 편 들어주기라도 했나, 세이렌 '임시 지휘관'?"


"메이 중장."


"...좋아, 들어는 보겠어."


화를 삭히는 메이의 앞에 세이렌은 교신 기록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세이렌 임시 지휘관, 응답하라! 세이렌 임시 지휘관, 응답하라! 당장!"


"여기는 호라이즌 함대, 임시 지휘관 세이렌 현재 응답 받았습..."


"현재 함대가 27번 아일랜드 근처에서 대기중인가?"


"네, 현재 대기 중에 있습니다, 무슨 일로..."


"지금 당장 함대를 27번 아일랜드로 이동시켜라, 어서!"


"내 판단이 틀렸다, 최대의 이익과 최소의 피해에 집착한 나머지...놈들의 저항이 필사적일 거란 경우를 판단하지 못했다."


"현재 최대출력 가동 중! 약 7분 후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곧바로 무장 준비하겠습니다!"


".....알겠다, 최대한 버텨보겠다."


알바트로스는 세이렌 측에서 교신을 끊었다 생각했는지 나지막이 한 마디를 중얼거렸고, 이는 아더의 생각에 영향을 주었다.


"...내가...무슨 짓을 한 거지?"




"........"


아더가 아는 알바트로스는 분명 논리 프로그램에 의거하여 판단하고 행동하는 AGS 그 자체였다. 하지만 자유 의지가 일부나마 포함되었는지 감정이 존재할 것이라고는 그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가지는 듯한 알바트로스의 목소리에 아더는 이제 선택을 내릴 준비를 했다.


"좋아, 이제 내 선택에 따라 알바트로스의 처벌이 결정될 것이다. 불만 없겠지?"


지휘관들의 고개가 움직이자, 아더는 마침내 선택을 내렸다.


"알바트로스의 처벌에 대해 찬성하겠다."


"........"


알바트로스 덕분에 목숨을 건졌던 셋은 아더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현명한 선택이야, 사령관. 그럼 AGS 병력 분배는 어떻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아더의 반응에 메이의 표정이 점차 굳어가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알바트로스의 지휘권 박탈 및 합당한 처벌안에 대해 찬성했잖아?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난 네 말대로 합당한 처벌을 내리기로 결정했지, 지휘권 박탈 및 폐기 처분, 그리고 AGS 잔여 병력 지휘권 분배 같은 극단적 처벌 사항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어, 메이 중장.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너 역시 동의했지. 안 그런가?"


".....!!!!"


자신의 말을 논리적으로 이용한 아더의 반박에 메이는 얼굴이 붉어질 뿐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비록 알바트로스가 날 상대로 항명 및 명령 불복종을 시행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지만, 내가 트릭스터를 상대하는 사이에 전멸 위기에 놓인 병력들을 안전하게 후퇴시키고, 지휘관으로 있던 스토커를 처리한 것, 그리고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 것을 감안하여...약 5개월 간 행정처리 업무부서에서 활동 및 AGS 병력의 최소 유지 비용을 제외한 3년치 예산안을 각 부대 재건을 위해 분배하는 것으로 이 자리에서 결정하겠다."



".....이번 일로 내가 사령관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메이와 슬레이프니르는 아더를 노려보며 자리를 먼저 떴고, 칸과 레오나, 마리, 아스널이 그 뒤를 따랐다.


"저도...이만 가보겠습니다. 구원."


"...구원."


알바트로스의 처벌을 5개월 행정직 좌천과 3년치 AGS 병력 예산안을 각 부대에게 퍼다 주는 것으로 마무리지었지만 아더의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불편한 감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