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노란 단발 머리를 한 여인은 그렇게 읊조리며 묘비 앞에 털썩, 하고 앉았다.


그녀는 술에 거나하게 취한 듯,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너무 오랜만이라고 삐진 건 아니지? 조금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텐데."


말소리는 또박또박했으나, 눈빛은 흐려져 어디를 바라보는 지 알 수 없었다.


"요즘 우리는 엄청 바빠. 칫, 나도 전대장이 은퇴할 때 같이 은퇴해버릴 걸 그랬어."


"전대장은 여전히 잘 지내. 옛날부터 그렇게 아이돌, 아이돌 노래를 부르더니만 소원 성취했지 뭐."


"사령관이 살아있었으면, 펭귄이 아이돌을 한다고 놀렸으려나? 하하, 말만 해도 자기는 제비라고 화내는 전대장이 보이는 것 같네."


"린티는... 글쎄, 아마 사령관이 기억하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여전히 린티는 귀엽다는 둥 똑같은 소리나 하고 있어. 에휴, 언제쯤 철이 들까?"


"하지만 사령관이 살아있을 때랑은... 조금 다른 것 같기는 해."


"나는 어쩐지 린티가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것 같기도 해."


"어디로부터 도망치는 거냐고? 그야... 사령관의 죽음으로부터지. 그게 아니면 뭐겠어?"


"내 생각이 틀렸기만을 바랄 뿐이야."


"블랙 하운드는 평소처럼 지내."


"정말 평소처럼 지내. 매일 매일이 같아."


"그 어떤 변화도, 한 치의 달라짐도 없이 매일을 똑같이 보내."


"괜찮은걸까...? 하지만, 끼어들기에는 너무 무서워."


"내가 끼어든다면... 그걸로 인해 무언가 깨져버릴 것만 같아."


"하르페이아하고 흐레스벨그 말이야? 사라졌어."


"뭐... 아마 공화국으로 갔겠지. 오르카 시절부터 있던 부대들에는 흔히 있는 일이야."


"사령관.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사령관이 일궈놓은 나라는 지금 엄청난 혼란에 빠졌어."


"마리 대장이 이끄는 제국과 레오나 대장이 이끄는 공화국으로 나라가 반 토막이 났어."


"마리 대장은 사령관의 자식이 적통이니 황제가 되는 게 맞대."


"레오나 대장은 사령관이 민주정을 부탁했는데 마리 대장이 쿠데타를 일으킨거래."


"사령관. 사령관이 우리 곁을 떠난 이유가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를 들었어."


"사령관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고..."


"사령관. 이게 사령관이 주려던 자유였어...?"


"나는... 그런 생각이 들어."


"이런 게 완전한 자유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애초에 자유 따위는 주어지면 안 되었던 걸지도 몰라."


"사실은 말이야 사령관. 나도... 공화국으로 넘어갈까 했어."


"여러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그냥, 그랬다고."


"하지만... 사령관은 여기에 있잖아..."


"사령관... 내가 잘못했어..."


"이렇게 빌 테니까... 다시 돌아와줘..."


"다시 돌아와서... 그때처럼 다시 우리를..."


펑펑 울던 여인은 그때쯤 되어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는 듯 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통곡하던 여인은 그대로 지쳐 쓰러져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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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왕관> 시리즈의 외전입니다.

마리와 레오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본편에서는 쓸 수 없는, 작은 이야기들을 다룹니다.

외전은 기본적으로 본편을 보지 않아도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쓰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본편을 보고 오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외전은 비정기적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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