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럭 부스럭... 알비스의 발치에는 구겨진 포장지가 수북히 쌓여있었다.

며칠전 나갔던 작전에서 구 시대 보급창고를 발견, 물자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알비스는 제버릇 개 못주고 초코바 상자같은 무언가를 한상자 빼돌려 여태 숨겨두었던 것이다.

상자를 뜯고 내용물을 본 알비스는 살짝 실망한 얼굴을 했다. 초코바가 아니라 시리얼바였던 것이다.

'요즘은 안드바리가 경비도 꼼꼼하게 하구 LRL도 창고에 참치가지러 가자고 안하구... 힝.. 아쉽지만 이거로 참아야지.'

첫 맛은 살짝 이상했지만 한입 한입 먹을수록 구미를 당기는 맛에 정신없이 먹다보니 어느새 24개, 1상자를 몽땅 먹어치우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에 손가락을 쪽쪽 빨고는 쓰레기를 치워 증거인멸까지 하고는 청소라도 하는 양 부산을 떨며 돌아다녔다. 과자를 너무 많이 먹어서일까, 알비스는 배도 부르고 몸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알비스~ 저녁먹어야지!" "미안 언니들, 나 배불러서..." 님프와 베라에게 또 초코바 잔뜩 먹었냐는 핀잔을 듣고 방으로 돌아온 알비스는 왠지 갑작스레 몰려오는 졸음에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그날밤 알비스는 꿈을 꾸었다. 끝도 없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을. 한참을 뒤척이며 끙끙대다 새벽녘에 눈물을 글썽이며 깬 알비스는 팔다리가 쑤시고 아파 견딜수가 없었다. '과자 너무 먹어서 벌받나봐...' 알비스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끙끙 앓고 있었다. 묘하게 이불이 작은 기분이 들었지만 통증때문에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지 그저 이불을 끌어당기며 몸을 웅크리고 있을뿐이었다.

"알비스, 아침이...아악!!!!" 베라가 알비스를 깨우러 반쯤 졸린눈으로 방문을 열었을때, 베라의 눈에는 작고 통통한 햄스터 같은 동생이 아닌, 거대한 근육덩어리가 웅크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언니......나 아파...." 나지막한 중저음으로 언니라고 부르는 덩어리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다 천정을 들이받고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분명 알비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제 과자 숨겨놓은걸 먹었는데 밤새 앓고 나서 이렇게 됐다고?" 닥터는 얘기를 들으며 한달전 검사 결과와 현재를 비교하고 있었다. 혈당, 체지방은 눈에 띄게 낮아졌고 근육량과 골밀도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했다. 마치 오리진더스트를 한계까지 투여했던 라비아타 통령의 케이스와 유사했다.

"일단 당장 신체상으로 문제는 없지만 이런식으로 갑자기 체형이 변하는건 나중에 문제가 될수 있어. 옆에서 잘 지켜봐야해." 닥터는 걱정스러운 눈빛의 발할라 자매들에게 당부하고는 문제의 과자를 찾으러 쓰레기장으로 갔다.


며칠뒤, 작전에 투입된 알비스는 어딘가 언짢은 기분이었다. 몸이 커져 입던 옷은 들어가지도 않아 그나마 길이가 맞는 발키리 언니의 옷을 빌려 입었지만 그나마도 팔다리가 다 드러나는데다 팔뚝이며 종아리가 조여서 아팠던것이다.

게다가 칙 실더 하나가 중요한 진격로를 틀어막고 버티는 바람에 작전은 자꾸만 지연되고 있었다. 사격을 받아내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전면장갑을 흔들어대는 그 얄미운 모습에 알비스는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것을 느끼고 있었다.

" 너! 죽어!" 마침내 알비스의 분노와 바지 엉덩이골이 폭발했다. 바디벙커를 칙 실더에게 집어던지고 찢어진 코트 등짝을 휘날리며 달려나가는 알비스는 한 마리의 성난 황소같았다. 엉덩이에 햄스터가 그려진 황소가 있다면 말이다.

엉덩이가 무거운 레오나보다 앞서 달려간 님프가 맞닥뜨린 광경은 그녀의 이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바디벙커가 도낏날처럼 동체에 박혀 버둥거리는 철충, 그리고 그 갈라진 틈새로 손가락을 비집어넣고 수박을 쪼개듯 양쪽으로 찢으려 안간힘을 쓰는 알비스, 터진 등짝으로 드러난 성난 햄스터를 닮은 등근육...

마침내 두쪽으로 찢은 철충을 밟고 방패를 뽑아든 알비스는 포효를 내지르며 돌진했다. 방패 모서리를 쥐고 한방에 하나씩 철충을 납작하게 때려눕히는 모습을 챔피언 레나가 봤더라면 체어샷의 정석이라 평가했으리라.


한편, 오르카 호 연구시설에서는 닥터와 스카디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보충제 어디서 찾았어? 마침 부족했는데 잘됐네." "안타깝게도 알비스가 전부 먹어버렸어 언니."

"전부? 그거 1포가 1주일치인데 다 먹었다고?" "응, 그것도 1박스 몽땅."

스카디는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쉰 뒤, 구겨진 포장지 한켠에 작게 씌여진 주의사항을 가리켰다.

[용법: 7일간 1포, 1칸 당 미온수 500ml에 혼합하여 섭취]

[주의: 과용시 부작용, 교범을 참조할것]

"그래서 그 부작용이 뭐길래?" "자세히는 기억이 안나는데 체질인가가 변한다지 아마? 화도 많이 내고."




그 후로 우리의 성난 햄스터는 달아나는 익스큐셔너를 찢고, 별의 아이에게 방패맛을 보여주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지만 이는 인류가 철충과의 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