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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내는 격납고에는 다양한 손님이 찾아온다. 포츈과 그렘린처럼 내 몸을 정비해주는 사람들이 오기도 하고 LRL과 알비스처럼 놀러 오는 애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연애 관련해서 온 사람은 없었다.




"실례합니다. 타이런트, 자리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왜?"


"대장님의 데이트 대비 작전을 세워야 합니다."




이제 생겼네




이 무슨 황당한 전개란 말인가. 하지만 나이트앤젤과 메이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 메이의 데이트니까 진지하게 작전을 세우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놀란 건 다른 이유 때문이다.




"왜 여기서 작전회의를 하는 거지? 둠 브링어 숙소에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번 데이트 때문에 오르카 곳곳에 감시 카메라와 녹음기가 배치되었습니다. 이 격납고가 탈론패더씨의 감시 카메라가 없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데이트하는 장면도 아니고 준비하는 과정 보겠다고 애들이 카메라를 배치했다고?"




그렇게 말한 순간 어이없다는 표정이 두 개 만들어졌다. 10초 정도의 침묵이 지나고서야 나이트앤젤이 무언가 떠올린 듯 표정을 풀더니 입을 열었다.




"아, 타이런트는 잘 모르겠군요. 이번 데이트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사령관님의 첫 데이트니까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는 내가 답답했는지 이번에는 메이가 나섰다.




"바닐라의 일은 알고 있지? 그런 일이 있었는데 누가 사령관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까? 아무도 사령관과 사적으로 깊이 엮이려 하지 않았어."




메이의 말투는 여전히 당당했지만, 표정은 조금 어두워졌다. 스스로 불러일으킨 그날의 기억을 몰아내고 싶었는지 메이는 조금 빠르게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게 사령관에게 좋을 리가 없잖아. 사령관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우리가 거리를 두려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 교착상태를 무너뜨리기 위해 준비한 게 이번 데이트 권이었나?"


"맞아. 한 사람이 나서면 그 다음 사람들은 비교적 나서기 편해지니까. 질투라는 명분이 생긴다고."




메이가 설명을 끝마쳤다. 지금 보니 그녀의 눈에는 기대와 긴장 같은 사소한 감정과 더불어 사명감으로도 물들어 있었다.





"들어와. 편히 앉을 자리는 없지만 "





내 허락이 떨어지자 두 사람은 잽싸게 격납고 안으로 들어왔다. 격납고에 들어오자마자 정비하는 대원들 용으로 마련된 의자에 앉은 둘은 열띤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차마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한 분위기, 이 정도로 진지하게 준비한다면 그 메이라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치만…"




취소. 사명감 넘치는 눈을 보고 무언가 다를 줄 알았건만 성격은 못 바꾸는 건가. 내가 아르망은 아니지만, 손도 못 잡고 일주일이 흘러갈 메이의 미래가 보인다. 누군가의 조언이 절실하다. 




머리 속에 담긴 연락처를 빠르게 흩어보자 적임자의 이름이 하나 보였다. 필요한 내용만 눌러 담아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는 동안에도 나이트앤젤의 혈압이 올라가는게 느껴진다. 이 메시지의 내용을 전해주면… 조금은 발전이 있겠지.





"메이..대장? 흠 뭐라고 부르면 될까."


"자기 계급도 모르는 거야? 됐어. 그냥 메이라고 불러. 칸은 잘만 부르더니"


"그럼 메이, 연애의 기본에 대한 이론을 들어보겠나?"


"하아?"




메이는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전쟁 병기가 연애를 가르쳐준다고 하면 누구나 그러겠지. 반면에 나이트앤젤은 호의적이었다.




"누가 조언하든 대장님보다는 좋은 방법을 낼 수 있을 겁니다."




나이트앤젤의 신랄한 비꼬기에 메이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 반박을 못 하는 게 더 안쓰럽다.




결국 메이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내 조언을 허락해줬다. 하지만 그 표정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에이미가 보내준 정보는 양적인 면에서도 질적인 면에서도 완벽에 가까웠다. 돌발상황 대응법부터 시작해서 사령관의 개인적 취향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유용한 정보들이었다. 그 방대한 정보의 홍수에 휘말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은 이미 밤이 되어 있었다. 




"좋아, 난 먼저 돌아가 볼게. 내일 데이트 준비를 확실히 해야겠어."




메이가 떠나자 격납고에는 나와 나이트앤젤만 남았다. 3명 중 1명이 먼저 가버리면 나머지 2명은 떠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법칙은 여기서도 적용된다.




"메이가 성공할 수 있을까?"


"이론만 잘 따라간다면요. 하…그걸 못해서 이렇게 된건데."




나이트앤젤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굴곡 없는 그녀의 몸에 생겨난 유일한 굴곡… 이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기라도 했다가는 아무리 나라도 살해당하겠지?.






***






데이트권을 사용한지 3일, 격납고에서의 회의로부터는 2일이 지났다. 그동안 찾아오지 않기에 일이 잘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보다. 다시 만난 메이의 눈에는 눈물 자국이 나 있었다.




"나이트앤젤, 메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키스하기 직전에 도망치셨습니다."


"...중간 과정도 설명해줘"




한숨을 내쉬며 나이트앤젤은 간략하게 지금까지 있던 일을 설명해줬다. 놀랍게도 메이는 빠르게 진도를 나갔다. 직접 데이트 코스를 짜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령관의 손을 먼저 잡는 용기도 보였다.




허나 그게 한계였다. 연애 경험이라곤 없던 메이가 에이미의 방식대로 접근한 부작용이었을까. 분위기가 무르익고 사령관이 키스하려는 순간 메이의 감정은 폭발하고 말았다.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한 메이는 도망쳤고 데이트는 당연히 거기서 종료되었다. 그리고선 사령관에 대한 걱정 반 자신의 한심함에 대한 자책 반으로 엉엉 울다가 지금 나를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대장님도 이제 그만 훌쩍이시죠. 타이런트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으신 겁니까?"


"안 울었거든!"




보아하니 메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용기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의외로 빨리 찾을 수 있었다.




"메이 술의 힘을 빌려보는 건 어때?"


"그런건 싫어. 아무것도 기억 못할 거 아니야."




나이트앤젤의 혈압이 오르는 게 또다시 느껴졌다. 이러다간 폭발할 것 같으니 아무 말이라도 던져야겠다.




"칵테일은 어때? 그거라면 도수 조절도 할 수 있으니까 기억을 잃을 정도로 마실 일이 없게 할 수 있어."




내 말을 들은 메이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어두워졌다. 




"칵테일은 누가 만들어. 나도 대령도 할 줄 모르는데"


"내가 만들면 되는데?"




두 사람 모두 세상에 존재하면 안될 것을 본 표정이 되었다. 왜 그러는걸까? 인간이던 시절 즐기던 몇 안되는 취미였는데.




"그 몸으로 술병은 들 수 있나요?"


"그건… 포츈이랑 그렘린이 해답을 찾아내겠지."




예로부터 공돌이를 굴리는 건 모든 문제에 대해서 훌룡한 해결 방법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기에 이 세계관에서도 그럴 것이다. 절대 아무 말이나 꺼내다가 말실수한 걸 덮으려는 게 아니다.






***





공돌이에게 원격 조종이 가능한 로봇팔을 받는 데 성공했다. 그 대가로 내 몸 해부권을 바치게 되었지만, 그 정도 리스크는 감수해야 겠지.




로봇팔은 나이트앤젤이 빌린 요정마을의 작은 바에 배치해뒀다. 준비한 계획도 완벽하다. 이제 남은 건 메이가 사령관과 함께 바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뿐.




약속한 시간이 되자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 남녀가 바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온 손님은 당연하게도 사령관과 메이였다. 그녀의 작은 몸이 긴장과 흥분 때문에 조금 떨리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다.




"바텐더는 어디 있는거지?"




칵테일 바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바텐더를 찾는 사령관의 귀에 기계음이 들려왔다.




[환영합니다. 손님 주문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바의 벽에 달린 4개의 로봇 팔에서 들려오는 기계음. 당연하지만 그 기계음은 내가 만들어내고 있다. 목소리 변조는 되어있으니 들킬 일은 없을 거다. 아마도




로봇 팔이 칵테일 만들 준비를 하는 신기한 광경에 놀라기도 잠시 사령관은 다시 메이에게 집중해줬다.




"메이 추천하는 거 있어? 칵테일은 잘 모르거든."


"그럼 바텐더? 늘 마시던 거랑 스크루드라이버로"


[알겠습니다.]




계획대로 들어온 주문을 받고 로봇 팔로 능숙하게 술을 섞었다. 오른쪽의 두 손은 오렌지 주스와 보드카를 섞고 반대쪽 두 개의 손으로는 화이트 럼과 체리브랜디를 들었다. 이날을 위한 밤샘 연습이 헛되지 않았는지 실수는 없었다.




사령관에게 주는 칵테일은 독한 것으로 메이에게는 보다 약한 것이 가게끔 도수를 조절했다. 에이미가 보내준 정보에 따르면 사령관의 주량은 메이의 3배, 이런 식으로 페이스 조절을 하지 않으면 오늘의 거사는 불가능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손은 착실히 칵테일을 만들고 있었다. 전쟁 병기에 빙의했어도 몸은 여전히 맛있는 칵테일 제조법을 기억하고 있는 건가. 완성된 칵테일을 내놓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잔을 기울였다. 잔이 비워지는 건 금방이었다.




"좋은 곳을 알고 있네. 어떻게 찾은 거야? 요정마을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오늘 데이트도 있고 해서 찾아봤어."




다소 어색하던 분위기도 취기가 조금씩 풀어주기 시작했다. 몇 번 더 잔이 기울어지며 서서히 퍼져가는 술기운이 용기를 줬는지 메이의 손이 조금씩 올라갔다.




"메이…?"


"가만히 있어 사령관, 가만히…"




어느새 메이는 사령관의 얼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앉은키도 작은 편이라 밑에서 올려다보고 있음에도 분위기 때문인지 성숙함마저 느껴진다.




그런 겉모습과는 반대로 메이의 속마음은 대혼돈 그 자체였다. 술기운이 없었다면 이미 무너져내렸을 정도로. 허나 여기까지 와서 도망칠 메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부끄럼쟁이지만 실수에서 배울 줄 아는 소녀다.




칵테일을 한 번 더 마셔서 술기운을 보충한 메이는 다시 한번 사령관을 똑바로 바라봤다. 자신의 조마조마한 속마음은 옅은 미소로 가리며 완벽을 연기했다.




그녀의 시선이 사령관의 시선과 겹친 순간 마침내 무형의 불길이 치솟았다. 술기운과 사랑을 연료 삼아 타오른 불길과 함께 메이가 사령관의 목을 끌어안았다.




힘은 사령관이 더 강하지만 그런 차이는 반항할 때나 유효한 것. 지금 사령관도 메이도 반항할 생각은 없었다. 오직 서로를 끌어당길 뿐이다. 둘의 간격이 계속해서 줄어들더니 마침내 둘의 입술 사이에 있던 빈 공간이 사라졌다.




서로가 서로를 탐하는 소리가 퍼진다. 탐욕을 숨기지 않고 놓치지 않겠다는 듯 서로 껴안는다. 한참을 그러다가 마침내 깨닫는다. 갈구하면 갈구할수록 욕망이 커져가는 것을, 키스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것을




"숙소로 돌아가서 할까…?"


"여기 옆 방에 침대있으니까… 거기서… 하자"




사령관이 메이를 안아 들었다. 메이도 사령관에게 안겼다. 서로를 안은 연인이 자리를 옮겼다. 이 순간만을 위해 준비한 침실, 그 안으로 마침내 두 사람이 들어갔다.




야릇한 신음이 문 사이로 새어 나옴과 동시에 로봇 팔과 연결을 끊었다. 프라이버시는 지켜줘야겠지. 물론 그것과 소식을 알리는 건 별개로 하겠지만




"나이트앤젤! 메이가 들어갔어! 침실로 들어갔다고!"




옆에서 긴장하며 기다리던 나이트앤젤이 미소 지었다. 그 미소와 함께 몸은 서서히 흐려졌고 마침내 빛이 되어 한없이 사라져간다…?




"나이트앤젤! 정신 차려! 성불해버리면 안 된다!"


"썩 괜찮은 삶이었습니다…"


"이름값 하지 마! 어디로 올려가려는 거야!!"




그날은 별빛이 밝은 밤이었다. 한 쌍의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고 성불하려는 천사와 그것을 막으려는 폭군의 한바탕 소란이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






그날의 일이 끝난 후 어느 날 격납고에 이온 배터리 한 박스가 들어왔다. 글자가 쓰여진 메모지도 있었는데 글자가 메이 사이즈라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붙어있는 위치가 너무 아래쪽이라서 볼 수 있는 시야각이 나오지 않는다.




고개도 돌려보고 위치를 이리저리 움직여도 보면서 한참을 낑낑댔지만 결국 메모지를 읽을 수는 없었다. 격납고 안에는 나 혼자 있지만 왠지 부끄러워졌다.




"나중에 에이미한테 읽어달라고 해야겠다."




배터리 옆에는 메이의 칵테일의 재료로 썼던 화이트 럼과 체리 리큐르도 있었다. 이런 세세한 것도 기억하는 걸 보니 그날 밤의 기억은 잘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술을 보니 호드대원들이 떠오른다. 자원탐색을 나갔다가 같이 간 호드 대원들이 술에 취하는 바람에 내 머리에는 페인트 탱크가 떨어졌었지.




"어차피 나는 마시지도 못하니까… 녀석들 선물로 보내줄까."




그래도 한 병 정도는 에이미를 위해 빼둬야겠지. 




호드대원들 생각을 하자 문득 잊고있던 의문이 떠올랐다. 내 격납고에는 왜 탈론패더의 카메라가 없었을까. 이왕 선물 보내는 김에 한번 만나서 물어봐야겠다. 








***





오래간만에 만난 호드대원들은 예전 그대로였다. 아니 조금 달랐다. 새로운 대원, 케시크가 함께 있었으니까. 내가 부르기 전부터 1차를 하고 있어서 다들 얼굴이 붉은 것은 덤이었다.




2차는 내 격납고에서 하기로 정했는지 술병과 안주거리를 잔뜩 들고 오는 게 호드답다면 호드다웠다. 물론 여기에 내 동의는 없었다. 칸이 메시지로 귀띔해주기는 했지만, 그것도 애들이 가는데 막을 수는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라 정도의 뉘앙스였다.




그래도 한번 호드 대원들과 엮이며 성격을 경험해봐서 그런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격납고에서 벽에 박힌 나사가 몇 개인지 세는 것보다야 애들하고 수다 떠는게 훨씬 낫지. 그동안 못 만나서 쌓인 이야깃거리도 많다. 예를 들면 케시크와 첫 만남 같은 거?




"그 순간 내가 몸을 던져서 케시크를 구해줬지. 그랬는데 내 머리에 유탄을 쏘더라고."


"그..그때는 세뇌당하고 있어서… 죄송해요오오…!"




부리나케 고개를 숙이는 케시크의 모습에 호드대원들이 격하게 웃기 시작했다. 하이에나는 웃다 사레가 들렸는지 샐러맨더가 등을 두들겨주기 시작했다. 근데 저거 등 두들겨주는 거냐 아니면 이때다 싶어서 그냥 때리는 거냐.




"아주 당돌한데, 케시크? 타이런트 얼굴에 유탄도 쏘고"


"타이런트 머리에 페인트 탱크를 떨어트렸던 니가 할 말이야?"


"카멜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난 그저 실수였고 케시크는 고의적인 거고. 이야.. 이 정도 깡따구는 있어야 대장님으로 진화할 수 있는 건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케시크도 호드대원들과 잘 어울리고 있는 것 같다. 성격은 조금 붕 뜨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잘 녹아든 것 같다.




케시크도 만나봤고 선물로 준비한 술은 이미 대원들 배로 들어갔으니 남은 건 의문을 해결하는 것뿐이다. 마침 탈론페더도 술잔을 내려놨다.




"탈론패더, 내 격납고에는 너의 감시 카메라가 없다고 들었는데.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거야?"




취기에 녹아내렸던 탈론페더의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해졌다. 그 안에 담긴 것은 긴장 아니면 당황스러움. 경직되어 아무 말도 못 하는 페더에게 칸이 다가갔다.




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줬을 뿐. 그것이 전부였지만 페더에게는 충분한듯하다. 굳었던 페더의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이런트…"


"왜?"


"미안해요. "




그래 사과 하는구나. 사과를 해…



어째서? 내가 사과 받을 일이 있었나? 페더랑 얼굴 못 본지도 꽤 지난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봤던게 별의 아이랑 싸우고서 사령관을 만나러 가기 전에… 아 맞다. 잊고 있었네




"그날 LRL을 인질로 써서 나를 끌어들인게 마음에 걸려서 그래?"




탈론페더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녀의 표정은 키스 직전에 도망쳤던 메이만큼 어두웠다. 여기선 확실히 감정의 골을 풀어줘야겠지.




"뭘 그것가지고 그러냐."


"네?"




탈론페더의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나왔다. 그날 탈론페더가 나를 돌아오게 할 목적으로 LRL의 영상을 보여준건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지난 일이고 이미 끝난 일이다. 나는 끝난 일을 질질 끄는 게 정말 싫다.




"탈론페더, 그때는 좀 화가 나긴 했지만… LRL이 날 기다리고 있던 건 사실이었고 그 영상을 본 덕분에 돌아와서 사령관하고 화해도 하고 잘 지내고 있잖아?"


"네…"


"난 그때 일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도 없으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아무튼 그렇다고. 난 화 안났어."




탈론페더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는게 보였다. 그와 함께 잠시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다시 타오르고 취객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타이런트 때문에 분위기 다운 됐으니까 책임지고 한 병 원샷해!"


"하이에나? 내가 AGS인거 잊었… 우와악?!!"




하이에나가 맥주 두 병을 내 입에 쏟아부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내가 뒤늦게 머리를 빼자 입안에 고여있던 맥주는 사방으로 튀어 호드 대원들을 적셨다.




"으엑… 살다보니 맥주로 샤워하는 날도 오네"


"오늘은 잘 넘어가나 했는데… 하이에나 너 빨리 들어가서 자"


"응? 자라고? 자면 되는거야? 어.. 자야하나?"


"대장! 하이에나 완전 맛이 가버렸어."




타이런트는 입에서 맥주가 줄줄 흐르고 만취한 하이에나는 칸에게 업혀 숙소로 돌아간다. 다른 대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웃고 떠든다. 그런 장면을 보던 탈론페더는 조용히 카메라를 들었다.




바보같지만 행복한 장면이 필름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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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에피소드, 단체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