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전편 모음 https://arca.live/b/lastorigin/59461966







"치사하네요 정말, 기대는 다 시켜 놓고는..."


마키나는 혼자서 패널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복원된 직후 사령관과의 간단한 면담을 끝낸 그녀는 곧바로 오르카호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작업에 들어갔었다.


허나 그 가상현실을 만든 그녀라 할지라도 곧바로 일에 진척이 생기지는 않았었다.


"서버측에서 보조 연산장치로 사용하면서 내부 데이터가 서버 전체로 흩뿌려진 모양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감마한테 밀려서 후퇴했고"


"나머지 30% 정도는 비스마르크 본사 지하에 잠들어 있는거겠네"


"돌아갈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지.."


"저대로는 방법이 없네요, 바이오로이드처럼 뭔가 기반이 되는 인격이 있다면 기반이 되는 인격에 회수한 데이터를 넣은 뒤 안정화를 시킨다면 불완전하게 나마 가능할 것 같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닥터는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가져올게, 기다려줘"


"...네? 정말 그런 게 있다고요?"


"그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긴 한데, 이젠 진짜 방법이 없으니까, 그게 제일 나은 방법인 것 같아"


"...아저씨가 날 기억 할까?"


"컴퓨터 안에서는 의미가 없는 데이터 뿐이니까, 깨어나 봐야 알겠지..."


"...준비해 두죠"


닥터가 하는 이야기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달은 마키나의 대답 뒤로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나며 닥터가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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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


무언가 말을 해 보려 하지만 목에 무언가가 들어가 있다.


조용히 시선을 옮겨 주위를 살펴보니, 병실로 보이는 풍경이 눈 주위에 펼쳐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조용히 생각을 되짚어 보았지만, 마치 꿈을 꾼 것처럼 기억이 드문드문 끊겨 생각이 이어지지 않는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수액을 잠시 멍하니 보다 다시 눈꺼풀이 무거워져 왔다.




두 번째로 눈을 떴을 때에는 목에 이물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으어..."


몸을 뒤척이며 일으키려 해 보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채 쉰 목소리로 신음 소리만 났다.


그렇게 뒤척이는 순간 누군가 나의 손을 잡았다.


길게 자란 초록빛 머리카락을 묶어 올린 익숙한 얼굴


눈이 마주치고 눈물이 그렁거리기 시작한 그녀를 보며 쉬어버린 목소리로 나는 말한다.


"안녕"


이내 참지 못하고 볼을 타고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그녀는 미소 짓는다.


"네..."


손과 얼굴을 쓰다듬고는 나도 웃는다.


"몸 상태는 어때요?"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야, 기억도 드문드문 나고... 여기 내가 이렇게 있다는 건, 잘 되었다는 거지?"


"네, 잘 해주셨어요... 고마워요 당신..."


"울지말고, 이쁜 얼굴 다 망가진다."


"미안해요"


그렇게 이야기 하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어정쩡한 자세가 되었다.


"저기 니아"


"네?"


"침대좀 세워줄래?"


"아, 알았어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리모콘을 눌러 침대 윗부분을 천천히 세워 앉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으으... 온몸이 두들겨 맞은 거 같은 느낌이야"


"잠깐 기다려요, 바로 다른 분들을 데려올테니까"


"응, 갔다와"


니아가 바깥으로 나가고 다시 내 손을 바라본다.


"진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최근 있었던 일을 되새기려 노력하지만, 단편적인 기억만이 떠오른다


"...나는... 뭐였지..."


분명 옛날 기억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인 것 마냥 떠오르기도 하고 최근의 기억이 옛날에 있었던 일처럼 애매하다


그렇게 혼란스러워 하는 와중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일어났어?"


"아저씨 괜찮아?"


"괜찮으신가요"


여러 사람들이 갑자기 나의 안부를 묻는것에 내가 멋쩍게 웃고 있으려니 한 남자... 아니, 사령관이 내 앞에 와서 앉았다


"기억은 어때?"


"응? 뭐, 그럭저럭. 좀 뒤죽박죽이긴 한데 괜찮아"


"나는 잘 알고?"


"여기 오르카호 사령관이잖아"


그렇게 말하자 사령관은 뒤에 있는 사람들을 한번 보고 다시 나를 바라본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어때?"


"...전부 내 지인들이야?"


"응"


"...전부는 기억 못하는 것 같은데, 미안해 다들"


"아니야, 다 나 때문이니까... 그럴 필요는 없어"


"나랑 했던 약속은 기억하나?"


"......칸, 미안해 잘 모르겠어"


"괜찮네, 뭐 약속한 대로 퇴원하면 한잔 하세나"


"그래"


그렇게 칸과 이야기가 끝나자 한명한명 내게 다가와 나와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어나간다


닥터, 리앤, 워울프, 브라우니, 레프리콘, 샌드걸, 키르케, 마키나, 더치걸, 아스널, 레오나, 포츈, 그렘린...


몇몇 사람들이 중간중간 방에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며 여러번 드나드는 병실은 마치 시장통이 된 것 마냥 소란스러워 졌었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이야기, 모르는 이야기, 아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경청해서 듣고 또 들으며 한동안 시간을 보내고 나니


방 안에는 사령관과 나, 니아 그리고 마키나라고 하는 이들만이 남았다.


"사령관, 근데 저쪽은 누구야? 여기 처음 왔을 때부터 있던 것 같은데"


"저쪽은... 마키나야, 마지막에 너랑 싸웠던"


"...싸워?"


나는 놀란 표정으로 마키나를 바라봤다


"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려서요"


"기억 때문에 그러는 거지?"


"네, 정말 죄송합니다"


"뭐, 괜찮겠지... 옛 기억들도 소중한 건 마찬가지긴 해도, 앞으로 생길 일들도 소중한 건 마찬가지잖아"


어줍짢게 말도 안되는 소리로 얼버무리며 괜찮다는 말을 하자 마키나는 작은 미소를 터트린다.


"뭐야, 왜 웃는건데"


"아뇨... 그냥... 직접 이야기 하는 걸 듣자니 신기해서요"


그렇게 마키나와 이야기가 끝나자 사령관이 다시 눈에 띄었다.


"안 돌아가? 바쁠 거 아니야"


"괜찮아, 내 결제가 필요한 일이 아니면 오늘 하루는 배틀메이드에서 대신 처리해 준다고 그랬으니까"


"음... 그렇구만"


"라붕씨, 내가 왜 지금까지 여기 남아있었냐면...."


"응 계속 해"


"이제 은퇴하는 게 어떨까 싶어서 그런 거야"


"은퇴?"


"응, 이제는 옛날처럼 수리할 수 있는 몸도 아니고, 그냥 인간 남자일 뿐이잖아 "


"응... 그렇지..."


"앞으로 이렇게 무리하면 이번처럼 요행을 바랄 수 없는 상황도 마주하게 될 지도 몰라"


"..."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들 다 더 이상 친구를 잃고 싶지 않으니까"


"뭐야, 그럼 나 이제 백수야?"


"앞으로는 가끔 그냥 가상 지휘 훈련 보조만 해줘"


"...그래 뭐 우리 대빵 생각이라면야"


"고마워"


"그럼... 이제 뭐하지"


"일단 몸 회복부터 해 둬, 내가 전에 해봐서 아는데 며칠동안은 계속 아플걸"


"...허허 계속 이런다고?"


"그래, 몸에 항체가 없어서 여러 종합백신을 맞았으니까, 앞으로 몇 번 더 맞아야 하기도 하고"


"...아... 한동안 이 몸살 기운을 그대로 가져가야 한다니..."


"금방 괜찮아질 거야, 한 달만 참아"


"그래, 뭐 은퇴도 했으니까 남는 게 시간이니 뭐 요양 좀 한다고 생각하지 뭐"


"그럼 나랑 마키나는 같이 가 볼게, 푹 쉬고 있어"


들어들 가"


"니아씨, 형좀 잘 부탁할게요"


"네, 들어가세요 사령관님"


니아의 인사를 받으며 남은 두 사람도 방을 떠났다.


"...형?"


"후훗"


"쟤들 또 나 나이든 모습으로 해줬어?"


"아뇨, 괜찮은걸요"


"...뭐 이제 와서 무슨 상관 이겠다만"


그렇게 말하고는 나는 다시 등을 침대에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피곤해서 한숨만 더 잘게, 너도 쉬어둬"


"네"


그렇게 나는 다시 오르카호에 돌아올 수 있었다.


앞으로 이 작은 행복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며 잠에 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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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링크 https://arca.live/b/lastorigin/60703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