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영원한 친구, 짧은 스커트, 아름다운 오버 니삭스, 그리고 토모.

 

“오오, 훌륭하다. 훌륭해!”

 

사령관은 토모의 오버 니삭스가 내뿜고 있는 여고생의 체취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본능적인 면이 강한 그이기도 했지만, 전날 오버 니삭스를 벗지 말고 있으라는 그의 명령을 성실하게 지켜낸 그녀가 대견스럽고, 예쁘고, 물론 이런 표현들은 단순히 매력적이라는 말로 귀결되기는 하나, 그의 눈앞에서 허벅지를 꼬아가며 비비적대는 소녀가 의외의 풋풋함을 품고 있었기에 그는 흥분하고 있었다. 

 

“저기, 이제 이거 벗어도 되는 거지?”

 

토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치맛자락이 팔랑팔랑 흔들리는데 본인은 전혀 모르는 걸까. 사령관의 고간에 피가 몰리고 있었다. 허벅지의 유려한 곡선을 타고 올라간 끝에 토모의 사타구니를 감싸고 있는 하얗고 보드라운 천의 형상이 사령관의 시선 끝에 맺혀있었는데 그의 음흉한 시선이 느껴지지도 않는 걸까? 토모는 그저 니삭스가 찝찝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응, 이제 그거 벗어서 줘.”

 

“…응?”

 

헛것을 들은 표정을 짓는 그녀.

 

“스타킹… 아니 니삭스를 왜 너한테 줘야해?”

 

“그럼 안 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오, 그런 표현도 할 줄 알아?”

 

무심하기까지 느껴지는 그의 말에 토모가 빽 소리를 질렀다.

 

“야! 나 바보 아니거든?!”

 

“그러시겠죠, 미소녀 천재 스파이 토모양.”

 

“그렇게 놀리면 좋아?! 어디 두고 봐… 웃는 것도 오늘까지일 테니까.”

 

“오… 이 허벅지는 예술 그 자체 같은데.”

 

어느 새 사령관의 손이 토모의 스타킹 씌워진 허벅지에 얹혀져 있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토모가 소리를 빽 지르며 사령관의 손을 세게 쳐냈다. 오르카호 최고권력자의 손을 멋대로 거부한 행위가 어떤 시선으론 불복종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으나 사령관도 토모도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이, 이…! 이 변태자식! 죽어! 죽어! 꼴도 보기 싫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르는 토모의 모습에 사령관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제대로 닦지도 않고는 사령관의 옆을 거칠게 지나치며 방문 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사령관은 쓰게 웃으며 업무용 탁자를 힐끔 쳐다보더니 천천히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정적이 흐르던 사령관실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지적 수준을 조금 조절했을 뿐인데도 결과가 무척 양호하네요.”

 

“그것도 그런데, 방금 토모를 너무 화내게 만든 게 좀 걸리네.”

 

“화나기도 했겠지만, 뭐… 그녀 나름대로 복수할 지도 모르죠.”

 

미려한 목소리를 내는 여성의 물음에 사령관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화답했다.

 

“갑자기 헐렁한 옷차림으로 방에 들이닥쳐준다면 대환영이지.”

 

“변태시군요.”

 

최근 이성의 육체에 눈을 뜬 사령관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가끔씩 이런 식으로 성적 농담을 일삼기 시작한 그였다. 곧 여성이 못마땅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조금이나마 알고 지낸 사이로서 얘기하는 건데 토모도 한다면 하는 성격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사령관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그래? 그럼 토모의 기술도 기대해도 되겠지…?”

 

“또, 또 이상한 소리! 아무래도 제가 먼저 사령관님을 혼내드려야겠습니다.”

 

“흐읍…!”

 

민감한 자극이 몰려오는 것을 느낀 사령관은 숨을 헉 들이키다가도 이내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의식의 바다 속에 빠져드는 그의 생각을 누가 알고 있으리.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자 조심스럽게 질척이는 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핥고 있는 듯한 음색, 이는 액체가 어딘가에 칠해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성애 가득한 물소리였다.

 

“으윽…!”

 

“웁…!”

 

조용히 명상하고 있던 사령관의 몸이 한 번 들썩였다. 힘 빠진 기색이 역력한 한숨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온다. 그리고 잠깐의 고요가 이어지더니 그의 입이 겨우 열린다.

 

“입에 뭐 강화 시술이라도 한 거야?”

 

“실례되는 말씀이시네요, 주인님을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여겨주시죠.”

 

책상에서 슬그머니 백색의 여인이 기어 나왔다. 입가를 조심스레 닦는 모습이 묘(猫)하게 색정적이었다. 쫑긋 솟은 고양이 귀로 단언컨대, CS 페로였다.

 

“어째 갈수록 참을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 같아.”

 

남성이라면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푸념을 읊으며 사령관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런 사령관의 모습이 썩 귀여웠는지 페로는 고양이처럼 손을 핥아대다가도 그의 이마에 뺨을 맞댄다.

 

“주인님이 좀더 노력해주세요…”

 

“페로를 위해서라도 그래야겠지.”

 

“으응, 꼭 저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입니다.”

 

“너만으로도 나는 충분해.”

 

늘어진 그를 슬쩍 안은 페로가 얼굴을 비비적대기 시작했다. 페로만의 친애표현인지라 사령관은 그게 싫지 않았다. 다만 그의 몸에 페로의 체취가 깊게 남으면 후에 리제나 블랙리리스를 마주치는 순간이 두려웠기에, 다소 불안한 심정이 된 그였다.

 

“주인님…”

 

“응, 페로.”

 

“…사랑해요.”

 

“……”

 

그녀의 따스함 가득한 사랑 고백에 방심을 흔들린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불안했던 마음이 한 순간에 요지부동으로 들어선다. 사령관은 손을 뻗어 페로의 뺨을 살며시 쓰다듬어 내렸다.

 

“미안… 뭔가 벅찬 기분이라 대답을 못하겠다.”

 

“후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사령관의 손이 닿고 있는 페로의 뺨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런 식으로 온기를 느낄 때마다 두 사람은 처음 사귀기 시작한 연인처럼 부끄럼이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오늘도 널 안아도 될까?”

 

“후훗…”

 

말은 하지 않았으나 조심스레 눈을 슬쩍 내리깔며 색정적인 눈빛을 흘리는 페로의 흐트러진 모습은 결국 허락이라는 의미였다. 성애에 눈을 뜬 두 사람은 서로를 거칠게 끌어 안고는 침대로 몸을 던졌다.

 

“어마… 사령관님, 짐승 같아요.”

 

“진짜 짐승의 DNA를 가진 바이오로이드한테 그런 말을 듣자니 조금 웃긴 거 알지?”

 

“농담이 아니라 칭찬이에요.”

 

“아닌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입가에 미소 한껏 머금으며 페로의 옷을 벗겨나가는 그였다. 그러다가 무언가가 불현듯 떠올랐는지 사령관의 손길이 딱 멈추었다. 갑작스레 행위가 중단되자 페로도 의아한 눈길로 사령관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이 상황에 말하긴 눈치 없어 뵈긴 한데…”

 

“뭔가요? 주인님?”

 

“괜찮은 건가 싶네. 토모 말이야.”

 

중의적인 질문이었지만 그 의미가 토모의 상태를 묻는 것은 아니었다. 페로는 단숨에 자신의 주인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아채곤 곧 바로 대답했다.

 

“토모를 하렘으로 들이는 일에 동의한 건 저와 사령관님이 내린 결론이 아니셨나요? 토모한테도 넌지시 물어보니까 꽤 좋아하던데…”

 

“그게 아니라… 난… 그러니까 네 친구였던 토모를 들여도 네가 상처받지 않을까 싶어서.”

 

“아…”

 

눈치 없는 질문 맞네, 페로는 그리 생각하면서 싱긋 웃는다. 아니 애초에 이 분위기에 다른 여자 이야기를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페로였으나 그의 성격상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한 마음임을 이해했기에 그녀는 슬그머니 솟아나는 분기를 살짝 억누르며 묻는다.

 

“사령관의 씨는 누구 거?”

 

“응? 어… 페, 페로 거?”

 

얼빠진 표정으로 대답하는 사령관의 아래에 깔린 페로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내심 속상했던 마음도 빠르게 녹아 사그라졌다.

 

“70점 짜리 대답이네요. 훌륭하십니다.”

 

“100점은 욕심인 걸 알지만, 그래도 80점 짜리는 될 것 같았는데.”

 

그러자 페로의 손이 그의 뺨을 감쌌다.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왠지 그는 좀 무섭다고 느꼈다.

 

“곧 바로 대답이 안 나온 시점에서 10점 감점이구요…”

 

페로의 남은 한 손이 사령관의 반대쪽 뺨을 감싼다.

 

“나머지 20점은… 여자의 우정과 사랑을 혼동하셔서 감점이에요…”

 

애초에 친구였던 여자를 하렘으로 들이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사령관은 의아함에 말을 잇지 못했지만 일단 그녀의 기분을 여기서 더 나쁘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 토모 문제는 나중에 토모한테 따로 물어봐도 상관없겠지. 그는 당장의 의무봉사 시간을 위해 모든 잡념을 머리 속 한구석에다 치워버렸다.

 

“그럼, 고생한 페로를 위해 또 노력해볼까?”

 

“네… 주인님의 은, 은총을 주세요…”

 

토모의 부끄럼 가득한 애원으로 가슴에 불이 붙기 시작한 사령관은 빨갛게 뺨이 달아오른 페로와 눈을 마주치며 그녀의 젖가슴을 커다란 손으로 우악스럽게 쥐었다.

 

“아, 주인님…!”

 

사령관실의 내부가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한 밤이었다.

 

 

 

다음 날엔 토모가 속한 스쿼드가 출격하게 되었다. 임무의 목적은 그저 진행되는 경로에 자리잡은 철충들의 박멸이었고, 그에 따른 수행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어쩐지 임무 수행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쯤엔 스쿼드 내의 분위기가 평소와 달리 짙고 무겁게 깔려있었다.

 

“그러니까 토모, 네 말은 지금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

 

스틸드라코는 평소 쾌활했던 모습관 다르게 불쾌감을 전혀 감추지 않으며 거칠게 물었다. 그리고 그녀의 맞은 편에는 불편해지는 분위기에도 아랑곳 않으며 대답하는 토모가 있었다.

 

“잘못이 아니라, 거기선 좀 더 보호에 치중했다면 수월한 임무 수행이 가능했을 거라는 의미지.”

 

이런 간단한 걸 벌써 몇 번째 가르치는 건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는 그녀였다.

 

“항상 하던 대로 했는데 대체 뭐가 불만인지 모르겠는데.”

 

결국 인내에 한계가 왔는지 스틸드라코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고 말투에 담긴 적의는 더욱 험악해졌다. 분노가 절절하게 묻어 나오는 그녀의 표정을 보는 토모는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그저 입을 다물 뿐이었다. 토모가 침묵을 지키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브라우니도 한마디 거들기 시작했다.

 

“그렇지 말임다… 평소 토모씨가 아닌 것 같지 말임다.”

 

“하아…”

 

브라우니가 입을 열자 토모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브라우니의 뒷바라지를 도맡고 있는 레프리콘 또한 토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애초에 우리 스쿼드는 효율을 중시하려고 배치된 게 아니니까요. 토모씨의 대답은 일견 타당할지도 모르겠지만, 저희 스쿼드에 대입하자면 단연코 좋은 해답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 스쿼드를 좀 더 효율적이면서 강하게 만들기 위한 의견을 냈을 뿐이잖아.”

 

답답함에 가슴을 치면서도 토모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답변에 수긍하는 인원은 스쿼트 내에 존재치 않았다. 그저 그녀의 답변에 더욱 기분이 불쾌해진 듯 이맛살을 찌푸려 주름만 늘리는 결과를 불러왔을 뿐.

 

“여기 있는 어느 누가 그걸 원하기라도 했나요?”

 

레프리콘은 자신의 두 팔로 그 커다란 가슴을 받치면서 팔짱을 낀 채, 그리 물어왔다. 토모를 향한 책망이 어린 그녀의 날카로운 질문과 팀원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으니 스트레스 지수가 팍팍 오르던 토모가 결국 사단을 쳤다.

 

“너희들한테 기대한 내가 바보지.”

 

“뭐?!”

 

“토모씨! 말씀이 심하심다!”

 

“이제부터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희들은 따라오기나 하던지.”

 

곧바로 스틸드라코와 브라우니의 반발이 일어났지만 토모는 아랑곳 않고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레프리콘도 그저 말없이 침묵하며 토모의 뒤를 늦게나마 따랐다.

 

“스틸드라코씨… 저희도 따라가야 하지 않겠슴까?”

 

“…짜증나.”

 

뒤에 남겨진 두 바이오로이드들은 불만을 속으로 삼켜 넘기고 어쩔 수 없이 앞서나간 일행들을 뒤따르기 시작했다.

 

“철충 발견, 브라우니? 아까랑 같은 녀석 같으니 일점사로 가겠습니다.”

 

“알겠슴다!”

 

토모의 스쿼트가 철충과 마주하자마자 레프리콘이 다른 부대원들에게 신속히 명령을 전달했다. 스틸드라코는 불쾌한 감정을 잠시 뒤로하고 동료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섰고, 레프리콘은 브라우니와 함께 나란히 서서 철충을 향해 총구를 들이대고 있었다. 철충들은 서서히 바이오로이드들을 향해 다가왔고 바이오로이드들은 보다 확실한 결과를 위해 대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서로의 방아쇠가 서서히 당겨지기 시작할 무렵, 갑작스레 총성이 울렸다.

 

타다다다당!

 

“뭐, 뭐야?!”

 

“토모!”

 

“아까 말했잖아?! 너희들한테 기댈 생각 없으니까 보고만 있으라고!”

 

그녀답지 않은 험악한 말투가 그녀의 UMP 탄환들과 함께 철충들을 꿰뚫기 시작했다. 아직 쓰러지지 않은 몇 철충들이 토모를 향해 총구를 거칠게 갈겨대기 시작했다. 이윽고 현장은 총알과 총알들이 서로의 머리통을 향해 쏘아지는 전장으로 탈바꿈해가기 시작했다.

 

“미친 거 아임까?! 토모씨,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검까?!”

 

“흥! 바보한테 무슨 말을 하겠어.”

 

“팀한테 대체 그게 무슨 망발…”

 

투쾅! 말을 끝맺기도 전에 커다란 폭음과 함께 레프리콘의 전방에 있던 일대 지형이 화산 터지듯 맹렬하게 솟아올랐다. 흩어진 모래연기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의 시야를 가리게 되자 레프리콘은 신속하게 브라우니를 붙잡아 근처에 있던 스틸드라코의 등뒤를 향해 달려들어 몸을 바짝 포복시켰다. 잠깐 그녀의 뇌리에 토모의 안위가 일순 스쳐 지나갔지만 곧 이어진 총성과 폭음 속에 흩날려 사라져버렸다. 일단 살 사람은 살아야지 않겠는가?

 

‘사람이 아니라 바이오로이드긴 하지만.’

 

실없는 농이 떠올라 쓰게 웃고만 레프리콘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잡념을 흩어냈다. 저 흙먼지와 화약 연기가 섞여있는 검은 안개 속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스틸드라코의 보호 반경에서 침착을 되찾은 그녀는 몸을 조심스레 일으키더니 다시금 총구를 곧게 세우며 발포 준비를 마쳤다.

 

“레프리콘 분대장님! 토모씨가 살아계심다!”

 

어느새 스코프를 쓴 브라우니가 열감지 기능을 통해 연기 속 상황을 보고했다. 부하의 보고에 곧바로 스코프를 내려 쓴 레프리콘은 자잘한 조절을 끝내자마자 곧 보이지 않는 연기 속에서 토모의 생체에서 발산하는 열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

 

“부, 분대장님? 지금 저거…”

 

“뭐야? 뭘 보고 있길래 그래? 나도 좀 알자고!”

 

스틸드라코는 레프리콘과 브라우니의 입이 닫히지 않는 모습을 흘깃 보고는 호기심이 솟아 크게 소리쳤다. 폭음과 총성 때문에 큰 소리가 아니면 들리지 않는 탓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곧 멎었다. 귀구멍 속에 울려 퍼지는 이명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어떻게?’

 

레프리콘은 믿을 수가 없었다. 연기 속에서 터벅터벅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토모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지저분한 모습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철충의 주요 부위였을 부품이 흉물스럽게 망가진 상태로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부대원들은 섬뜩함을 느끼고 말았다.

 

“상황 종료, 돌아가자.”

 

무심한 한마디를 던지고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한 토모가 곧 스틸드라코의 옆을 스쳐 지나는 순간, 토모의 옆머리로 넓은 총구를 들이대는 스틸드라코였다.

 

“너, 누구야.”

 

스틸드라코의 돌발행동에 아연실색한 것은 토모가 아닌 레프리콘이었다.

 

“스틸드라코씨, 당장 총 내려놓으세요.”

 

“나 안 미쳤어, 너희들은… 이 토모가 진짜 토모라고 생각해?”

 

“그게 문제가 아임다! 이건 배반 행위임다! 당장 총구 내려놓으십쇼 스틸드라코씨!”

 

갑작스레 돌변한 상황과 아군 쪽으로 총구를 향하는 서로의 모습이 가히 희극적이었으나 실제로 그 상황을 감당하고 있는 세 바이오로이드는 일생일대의 위기감을 맛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는 철충과 마주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중압감이었다. 브라우니는 왠지 속이 울렁거리는 듯한 감각에 정신이 혼미해져 갔으며, 스틸드라코는 자신의 눈앞에서 토모 행세를 하는 가짜에게 깊은 혐오감을 느꼈다. 레프리콘은 혼절하고픈 심정이었지만 그나마 셋 중에선 제일 멀쩡한 상태였다. 그리고 토모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을 두고 벌어지는 모든 상황이 희극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풉…”

 

그리고 참지 못해 웃었다.

 

“웃어? 갈아 끼울 머리통이 오르카호에 더 몇 개는 더 남아 있나 보네?”

 

스틸드라코가 불쾌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방아쇠를 천천히 당기면서 가느다란 금속음이 퍼졌다. 상황이 더욱 급박해져 간다. 이대로 뒷일은 생각지 말고 토모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은 충동만이 일었다.

 

“딱히? 그냥 네가 그 느려터진 손가락을 까딱여서 총을 쏘는 게 빠를지 내가 날렵하게 네 목을 꺾는 게 빠를지 계산해 봤거든.”

 

토모는 평소에 보이지 않는 여고생의 풋풋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호선을 그리던 눈매가 살짝 치켜져 뜨일 때, 번뜩이는 그녀의 두 눈에서 싸늘한 시선이 스틸드라코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방아쇠 당기는 순간, 죽어.”

 

“네 머리가 수박 터지듯 박살이 날 테니 죽기야 하겠지.”

 

스틸드라코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토모가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 네가 죽는다고.”

 

분명 지금 상황의 주도권이 스틸드라코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모는 별다른 반응도 보이지 않으며 자신의 승리를 예고했다. 그야 스틸드라코가 다른 바이오로이드에 비해 조금 지성이 부족한 면이 있으나 상황 파악도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분노에 이글거리는 그녀의 긴 생머리가 가늘게 떨린다.

 

“돌았지? 방아쇠 당겨진 거 안보여? 이대로 살짝만 더 당겨도 니 머리통 날아가, 알아?!”

 

“날아가는 건 아마 내 머리가 아니라 니 손가락부터 일걸?”

 

더욱 흉흉해지는 분위기에 더불어 살기가 짙게 내려 깔리는데 브라우니는 이에 몸을 떨면서도 겨우겨우 입을 열며 둘을 말리기 위해 나섰다.

 

“스틸드라코씨 진정하시란 검다… 그리고 토모씨도 진정하십쇼…  전우끼리 이런 일은 있어선 안 되는 검다.”

 

“그래요 토모씨, 스틸드라코씨,  여기서 저희끼리 충돌하면…”

 

탕! 레프리콘의 발끝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구멍이 생겼다. 접근을 허용치 않겠다는 듯이 토모가 매서운 시선으로 레프리콘과 브라우니를 쏘아보았다. 총구에서 피어 오르는 화약의 연기가 산들바람에 의해 서서히 흩어져간다.

 

“다음엔 그 부드러워 보이는 뱃살을 시원하게 뚫어줄까?”

 

“토, 토모씨.”

 

“…”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이 토모의 위협에 압도되었는지 천천히 발걸음을 뒤로 물리고 있을 때, 스틸드라코는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방금 뭐지?’

 

분명 토모가 조금이라도 움직임을 보이면 곧바로 방아쇠를 당길 생각이었다. 헌데 눈치채기도 전에 토모의 손에 UMP기관단총이 쥐어져 있지 않은가. 인간을 상회하는 능력을 지닌 바이오로이드의 신체였고, 이 사실은 토모도 동일했을 터, 헌데 같은 바이오로이드의 움직임을 알아챌 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

 

‘뭐야… 진짜 뭐야… 이 토모인척 하는 녀석은…?’

 

가짜도 아닌 진짜 토모였지만 자신의 기억과 다른 움직임과 언동을 보이는 눈앞의 바이오로이드를 진짜 토모로 인정할 수 없었던 스틸드라코의 이마에 식은땀 줄기만이 늘어나고 있었다.

 

“자, 당겨봐. 스틸드라코…”

 

“너, 너 진짜 죽어, 죽는다고? 진짜 죽고 싶은 거냐고!?”

 

이미 심적으로 토모에게 굴복해버린 스틸드라코의 목구멍엔 발악에 가까운 소음만이 새어나올 뿐이다. 당연히 토모도 알고 있다. 이미 끝난 승부라는 것을. 하지만 아쉽지 않은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라는 말이 있는데.

 

“그만! 그만하세요 토모씨! 이 이상은 사령관님께서…!”

 

상심하실 거예요, 혹은 슬퍼하실 거예요, 아니면 엄청 화내시려나? 어느 것이든 지금의 사령관이라면 마땅히 그리할 것이라 여긴 레프리콘은 애처롭게도 말끝을 잇지 못했다.

 

“사령관…”

 

“그래요 사령관님이…”

 

토모는 확실히 동요했다. 어제 봤던 사령관의 행복해 보이던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어, 맞아… 사령관이… 화내겠지.”

 

어제, 사령관에게 화를 냈던 기억이 떠오르자 토모의 눈에 조금은 슬픔이 감돌았다. 사령관은 좋은 사람이니까. 분명 다른 이가 다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겠지. 그런 호인에게 죽으라며 악담을 퍼붓고 뛰쳐나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임에도 떠올린 것은 그의 모습이 그립고, 또 미안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렇게 사고까지 쳤으니… 이제 그 사람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고개를 푹 숙이고만 그녀에게서 풍기던 위압감이 크게 옅어졌다. 이윽고 상황을 감싸던 분위기의 압박도 크게 느슨해져 갔다. 

 

“사령관님을 위해서, 우리 싸우지 말고 돌아가요. 뒷정리는 저한테 맡기시고요.”

 

레프리콘이 귀찮은 일도 도맡겠다며 둘 사이로 나서서야 토모와 스틸드라코가 서서히 거리를 벌렸다.

 

“…제길”

 

스틸드라코 또한 사령관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더는 적의를 품지 않았으나 그와는 별개로 토모를 공포가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곤 힘이 쭉 빠졌는지 쓰러지듯 그 자리에 펄썩 엎어졌다.

 

‘대체 뭐야… 이것도 저것도.’

 

눈이 감길 것만 같지만 금세 달라붙어 부축해주기 시작한 레프리콘 덕분에 스틸드라코는 별 문제없이 장소를 벗어날 수 있었다.

 

“브라우니, 사령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상황이 정리되고 지저분해진 옷 주변을 털고 매무새를 가다듬던 토모가 브라우니를 바라보지도 않으면서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브라우니는 조금 전까지 자신을 위협했던 토모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날려버렸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성실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예… 사령관님 말임까? 뭐, 좋은 분이지 말임다. 페로씨랑 거의 인간 부부처럼 다니는 걸 보면 부럽지 말입니다.”

 

“…그렇지. 그럼 네가 거기에 낀다면 어떨 거 같아?”

 

“으음, 양산형으로 만들어진 제가 페로씨의 매력을 넘어서 사령관님의 눈길을 끌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들지 말임다… 게다가 사령관님이 제가 좋다고 달라붙기라도 하는 날엔 그 날로 마리 대장님께 친히 처형 당할 지도 모르겠슴다…”

 

마리에게 살해당할 광경을 떠올린 것인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벌벌 떨기 시작한 브라우니의 모습을 지켜보지도 않고서 토모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곧 동료들과 멀찍이 거리를 벌렸을 때가 되어서야 눈가에 괴인 눈물을 닦아낼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바보였어…’

 

오늘 일이 보고될 때 자신이 어떤 처분을 받게 될지 예상이 되었다. 

 

‘차라리 스틸드라코의 총에 머리가 뚫려 죽는 게 좋았을까.’

 

복귀하고 나면 분명 사령관의 질책을 받을 것이다. 아니 질책이면 다행이지, 전투 모듈이 제거되고 오르카호의 잡부가 될 지도 모른다. 잡부들 사이에서도 전력이 화려한 신입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때가 바로 생의 끝이 될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 죽어버릴까. 고도의 지능이 토모를 극단적인 사고까지 몰아 붙이고 있지만 덜덜 떨리는 손은 움직여주지 않았다. 

 

“머리가 좋아지니 미련만 늘었네…”

 

혼잣말 끝에 씁쓸하게 웃고 만 그녀가 터덜터덜 오르카호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편 근처에서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레프리콘은 토모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

 

‘토모를 끝까지 지켜보고 사족을 달아도 좋으니 보고 느낀 모든 것을 자세하게 보고해주시겠어요?’

 

페로에게 따로 언질을 받은 레프리콘은 처음부터 끝까지 토모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있었던 모든 일들을 상세히 정리하여 보고할 생각을 하니 조금 머리가 아파진 그녀였으나 오르카호의 2인자가 되어버린 페로의 부탁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중간에 낀 사람만 고생이지 에휴… 힘내자.”

 

그녀는 스스로를 응원하며 이 피곤함을 해지는 노을과 함께 흘려 보내기로 했다.

 

 

 

그 날 밤, 사령관은 본인의 침실에서 페로가 간결하게 정리해둔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그의 시선을 끄는 것은 토모에 관한 보고서였는데, 빽빽하게도 적힌 내용을 보아하니 페로가 정리하기 힘들었거나 혹은 중요한 내용이라 전부 남겨 놓은 듯 했다. 그리고 이리저리 읽어보던 그는 곧 후자임을 깨닫는다.

 

“레프리콘 쪽에서 고생이 많았겠는데.”

 

“그렇습니다. 아직 토모를 지켜봐야 할 시기여서 부득이하게 힘든 부탁을 맡겼었는데…”

 

이렇게 잘해주어서 잘 됐다는 말은 하지 않는 페로였다. 사령관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까 두려웠고, 그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이 곡해될까도 두려웠다. 하렘을 구성하길 권한 이유도 자신만이 사랑을 받으면서 오르카호에 알게 모르게 갈등이 생겨나고 있었는데 이 문제가 심화되어 불거지기 전에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고자 한 것이었다. 누구보다 사령관을 남성으로서 사랑하고 있다 여기는 페로였으나, 안타깝게도 사령관의 여자이면서도 그를 보좌해야 할 자리인 부관의 역할마저 수행해야 했으니 이를 조율할 수밖에 없었다.

 

“고생했어 페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사령관의 손길이 고양이 귀를 의식한 듯 조심스러웠지만 또 애정이 가득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페로의 표정에 기쁨만이 가득해 보인다. 

 

“토모를 호출해야겠네.”

 

“그렇습니다. 위로도 좀 해주세요. 많이 불안해 할 테니.”

 

부관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자주 대화를 나누었던 사이여서 그런지 토모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페로다.

 

“머리가 좋아진 만큼 고민도 많아졌을 텐데… 빨리 부르는 게 좋겠지.”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괜히 부관의 자세를 고수하는 페로가 허리를 굽히는 모습에 사령관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리를 비워드리겠습니다. 레프리콘씨에게 향할 계획인데 뭔가 첨언하실 것이라도 계신지?”

 

“딱히 없긴 한데… 아! 오르카호 내에서 가능한 것이라면 뭐든 해줄 테니 하나라도 물어봐 줘. 그리고 스틸드라코가 꽤 맘이 상했을 테니 달콤한 것도 좀 보내주고.”

 

“알겠습니다. 그럼 사령관님…”

 

페로가 살짝 붉어진 뺨을 숨길 생각도 않고 사령관의 뺨에 입술을 맞추었다. 첫사랑 하듯 풋풋한 애정표현에 사령관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아나는 애틋함을 느끼며 입가에 호선을 그었다.

 

“하하… 그럼, 내일 봐.”

 

부끄러웠는지 빠르게 거리를 벌리고 문 너머로 사라져 가는 페로를 향해 인사를 보낸 사령관은 자신의 뺨에다 손가락을 뻗어 아직까지 남아있는 따스한 감촉을 만끽하며 곧 토모에게 호출을 걸기 시작했다.

 

똑똑, 페로가 떠나고 20분 쯤 지났을까. 예절 바른 노크소리가 사령관의 침실에 울려 퍼졌다.

 

“저, 사령관? 호출 받고 왔어.”

 

“음.”

 

곧 토모에게 쓴소리를 해야 할 테니 표정관리를 하는 사령관. 

나름 굳은 표정으로 방문을 열자, 머리를 묶지 않은 토모가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교복 차림이었지만 평소와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급하게 뛰쳐나온 듯 대부분의 장식이 빠져있었던 점과 젖은 머리를 묶지도 말리지도 않은 채로 급하게 달려온 듯 숨결이 살짝 떨리고 있단 점이었다. 사령관은 토모의 단정치 못한 모습을 보며 불가항력으로 아래쪽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꼈다.

 

“저, 여기서 이야기 할… 꺼야?”

 

“아, 미안… 들어와.”

 

“고마워.”

 

약간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사령관의 침실로 조심스레 들어서는 토모의 시선이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다. 사령관의 사적인 공간에 발을 들였다는 생각에 어쩐지 얼굴에서부터 살짝 따듯한 열기가 오른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이유로 호출되었는지 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속으로 정신을 다잡았으나, 곧 엄청난 크기를 뽐내고 있는 침대의 위용에 시선이 사로잡혔다.

 

‘이 침대에… 나와 사령관이….”

 

되도 않은 망상을 하는 토모의 뺨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그러다 곧 정신을 차리고 화들짝 놀란 그녀는 행여 사령관에게 보일까 고개를 푹 숙여 얼굴을 숨겼다. 토모가 이런 추태를 보일 때, 사령관은 잠깐 주변을 정리하고는 이내 몸을 돌리고 나니 그의 시선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토모의 모습이 담겼다.

 

‘쯧… 너무 나무랄 필요도 없겠지.’

 

고개를 푹 숙이며 가만히 서있는 토모의 모습에 측은함을 느낀 사령관이 속으로 혀를 찼다. 정말이지 너무 정에 약해서 문제라며, 둘은 완전히 동상이몽을 꾸고 있었다.

 

“그래, 토모… 어디서부터 이야기할까…”

 

한 번 헛기침을 해서 분위기를 잡은 사령관이 토모를 바라보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계속 토모를 보고 있다간 마음이 더 약해질 것 같아서였다.

 

“왜 호출했는지는 알고 있어?”

 

“…응.”

 

그다지 길게 대답해봤자 핑계밖에 되지 않으리라 여긴 토모가 짧게 대답했다. 사령관은 대답이 늦는 토모가 아무래도 걱정인지라 다시 시선을 돌려 토모에게 향했다. 이 바이오로이드를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고민이 된다.

 

“그래… 뭐가 문제인지 알고 있다는 거지.”

 

“미안해….”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감 따위는 전부 내다버린 듯한 불안한 목소리에 사령관이 이마를 감쌌다. 이대론 계속 평행선이다.

 

“고개 들어, 일단 마주보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아, 안돼…!”

 

“안돼? 뭐가 안돼? 서로 눈을 바라보면서 진실함을 토로하자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왔던 전력을 지닌 그가 진실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이 참으로 이중적이었으나 일단 서로 시선을 얽히며 대화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일단 시선을 피한다는 것부터가 진실함과는 다소 거리가 먼 행동이긴 했으니 말이다.

 

“안돼…”

 

‘술이라도 마셨나? 왜 이리 얼굴이 붉어.’

 

자꾸 시선을 피하는 토모의 얼굴을 붙잡고 시선을 마주쳤을 때, 사령관은 조금 황당한 기색을 보였다. 토모의 얼굴이 붉은 데다가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있고, 그러면서 그녀의 떨리는 시선은 여전히 자신을 피하고만 있었다.

 

“잘 들어… 네가 한 행동은 안 그래도 부족한 오르카호의 전력을 손실시킬 뻔한 중대한 사태를 불렀어. 인정해?”

 

“응… 정말, 정말로 미안해…”

 

토모는 두 눈을 천천히 감으며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사령관은 부정하지 않고 곧바로 사과하는 그녀의 모습에 금방 마음이 누그러졌다. 정말로 정에 약한 게 사실이긴 한가보다.

 

“그리고…”

 

“응?”

 

“어제… 사령관한테 심한 말해서, 그것도 미안해.”

 

“어…”

 

딱히 신경 쓰지도 않은 부분이었는데 토모는 나름 큰 고심을 거듭했었는지 눈가에 물기가 맺히기까지 했다. 사령관은 별달리 대답을 잇지 못하고 그저 토모의 이야기를 경청하고만 있다.

 

“사령관한테… 밉보이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똑똑해지고 싶었어. 다른 바이오로이드들한테도 밀리지 않을 만큼 똑똑해져서, 사령관을 옆에서나 전장에서나 보좌하고 활약하고 싶었어…!”

 

“토, 토모? 딱히 나는…”

 

“나, 똑똑해지면 안 되는 거였을까?”

 

감정이 벅차 올랐는지 토모의 뺨으로 이슬이 한줄기 선을 그으며 굴러 떨어졌다. 어느새 사령관의 시선을 피하고 있던 그녀가 도리어 흔들림 없이 사령관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사령관이 대답해주지 않자, 토모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 토, 토모?”

 

“사령관, 나 영악해지기만 했나 봐… 분명 내 지능을 손본 이유가 이것을 염두한 건 아닐 텐데…”

 

“…”

 

“사령관 성격에 이대로 들이대면 거부하지 않을 거라면서… 내 머리가 그렇게 말해…, 그치만, 그치만 이건 사령관 잘못이야. 그냥 따끔하게 혼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상냥하게 대해주니까, 기대하게 돼버리잖아…!”

 

도무지 무슨 소린지 인간의 사고로는 당장 이해할 수가 없었던 사령관은 어느새 자신의 품에 안긴 토모를 내려다보며 이게 대체 무슨 변고인지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이성과는 다르게 본능은 솔직해서, 어느새 그의 가랑이가 뜨겁게 맥박을 치고 있었다.

 

“미안해, 사령관.”

 

사령관이 본능적으로 토모의 허리를 두 팔로 감으려는 순간, 토모가 빠르게 사령관의 품에서 벗어나버렸다. 괜히 공허한 품에 두 팔을 감싸 안아버린 사령관의 표정은 황당 그 자체였다. 그러다 곧 오기를 띄는 모습으로 토모에게 확 달려들더니 그녀를 끌어 안아버렸다. 이때의 토모는 그의 포옹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하앗…”

 

자신보다 큰 체격의 남성에게 끌어 안겨지면서 기분 좋은 압박감을 느낀 토모가 저도 모르게 거친 숨결을 내쉬었다.

 

“사, 령관… 변태… 나, 덮쳐지는 거야?”

 

“이, 이익!”

 

도발이다. 도발이었다. 그는 깨달았지만 피하기 보단 당당히 돌려주기로 했다. 이미 이성보단 본능이 앞서있는 상태가 된 그에게 토모의 꾸중이고 질책이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이 건방진 여고생을 혼내주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는 아랑곳 않고 있는 힘껏 그녀를 껴안고 엉덩이를 손으로 꽉 쥐었다. 

 

“아흑…!”

 

아파서 내뱉은 신음이 아니었다. 토모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본인의 뜨거운 신음소리에 잠깐 정신이 번쩍 들었으나 곧바로 자신의 양쪽 엉덩이를 꽉 쥐고 들어올리는 거친 애무가 그녀의 이성 따위는 거들떠도 안보고 박살내버렸다.

 

“아흐윽…! 사령관… 사, 살살…!”

 

“후우! 후욱!”

 

이미 토모의 대답 따윈 들리지도 않는지 거칠게 콧김을 내뿜으며 토모의 몸을 탐하기에 여념이 없는 그였다. 토모는 진짜로 엉덩이가 얼얼한 느낌이 들어 살짝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금방 사령관의 거친 손길에 또 정신을 놓고 말았다. 하지만 토모가 잠깐 정신을 놓자마자 다시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이 일어났다. 

 

“으음! 읍!”

 

그것은 숨을 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거친 입맞춤이었다. 첫키스는 서로의 얼굴을 차분히 바라보며 좋은 분위기 속에서 천천히 서로의 입술 감촉을 느끼는 로맨틱함을 꿈꿨으나 게걸스레 입술을 탐하는 사령관에 의해 꿈꾸던 첫키스의 경험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게다가 사령관은 평소에도 입술 관리에 관심이 없었기에 살짝 트고 거칠거칠한 입술의 느낌에 토모는 마치 짐승에게 덮쳐지는 듯한 감각에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건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환희에 가까운 격정적인 떨림이었다.

 

“우음…!”

 

조금 더 입술의 감촉을 느끼고 싶던 토모가 거칠게 자신의 입술을 침범하려는 사령관의 혀를 강하게 거부했지만 그녀의 거부 반응을 거부하겠다는 듯이 사령관이 한 손을 이용해 토모의 뒷머리를 붙잡고는 다시 거칠게 혀를 침범시키기 시작했다.

 

“츄읍… 쯥… 학…!”

 

계속되는 공세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낀 토모가 사령관의 혀를 기어이 받아들이고 말았다. 굵은 혓바닥이 여자아이의 입 속을 거침없이 헤집는 강렬함은 그녀의 혼을 쏙 빼놓기에도 충분했다. 잠깐 입술이 떨어지는 사이에 토모가 저도 모르게 거친 숨결을 내쉬곤 혀와 혀 사이에 맺힌 타액의 실이 늘어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사, 사령관… 으읍!”

 

잠깐 숨을 고르자마자 다시금 토모의 입술을 덮치는 사령관의 거친 입김과 입술에 또 다시 무아지경까지 빠져들고 마는 두 사람이었다. 토모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꾸만 눈물이 맺히고 얼굴은 귀까지 발갛게 달아올라있었다.

 

“쯥, 쯔읍, 츄르릅!”

 

토모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자신의 배를 쿡쿡 찌르는 딱딱한 물체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가 아닌 토모는 자신의 배에 부딪히며 강렬하게 존재감을 표현해오는 물체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딱딱해…’

 

토모는 자신으로 흥분해준 사령관에게 너무 고마웠고, 또 사랑스러웠다. 그의 모든 것을 느끼고 싶다는 뜨거운 욕망이 그녀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맹렬하게 솟구치고 있었다. 사령관이 그녀에게 끊임없이 키스를 퍼붓는 사이에 이미 그녀는 천천히 옷을 벗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뒷일에 대한 걱정은 저 멀리 날아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푸하아…!”

 

어디까지 숨을 참으면서 키스를 하고 있었던 건지 모를 정도로 두 남녀의 정욕 가득한 설왕설래가 이윽고 끝을 맺었다. 타액을 교환하는 행위일 뿐인데도 이미 토모는 머리가 새하얘져 갔다.

 

‘아무리 똑똑해져도, 이런 걸 계속 한다면 다시 바보가 될 지도 모르겠어…’

 

뛰어난 바이오로이드의 육체로 인해서일까, 약간이긴 해도 금방 이성을 되찾은 토모는 방금 전까지 이어지던 깊은 입맞춤에 대한 감상을 떠올렸다. 입술을 떨어트리자마자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령관의 시선에 애정 가득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음은… 저기 있는 침대에서…”

 

토모의 다음 말은 이어지지 못하고 곧 사령관의 침실은 미칠듯한 교성과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상사상애(相思相愛), 서로 사모하고 사랑한다는 의미였던가. 사령관은 토모의 옆에 누워 천천히 기억을 되짚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고민도 해봤지만 결국 못 참고 토모를 덮친 자기 잘못인 것 같았다. 그리고 토모는 이불도 제대로 덮지 않고 봉긋하게 솟은 봉우리를 내보이고 있었는데 사령관은 저도 모르게 몸을 기울여 그녀의 봉우리 꼭대기에 우뚝 솟은 분홍빛 젖꼭지를 입에 담아 천천히 빨기 시작했다. 그저 그뿐이었다. 토모는 간질간질한 감각과 동시에 충만해지는 모성애에 흐뭇한 미소만 짓고 사령관이 아무렇게나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잠깐이라면 잠깐, 길다면 긴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이 커다란 베개 하나에 머리를 뉘이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교차하면서 말없이 후희를 나누고, 머지않아 토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령관 있지?”

 

“어, 말해.”

 

“날 다시 예전으로 돌려주지 않을래?”

 

“…갑자기 뜬금없네, 이유라도 들려주지 그래?”

 

“그 전에 잠깐만…”

 

 그와 그녀는 서로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이내 서서히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 어떤 방해도 없이, 정적이 가득한 침실에서 두 남녀는 조용히 입술을 겹쳤다.

 

“하아아…”

 

“후우… 넌 정말 시도 때도 없네.”

 

“히히…”

 

사령관은 지친다는 투였지만, 토모는 그런 그의 반응에 미묘한 성취감을 느끼면서도 말을 이어갔다.

 

“고마워, 사령관.”

 

“고마울 것도 많네.”

 

“그럼 사랑해.”

 

앵두 같은 입술이 또 한 번 그의 입술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당혹스런 그의 시선에 담긴 토모는 수줍게 웃고 있었다.

 

“이상해. 잠깐 입을 맞췄을 뿐인데,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아.”

 

“그, 그러냐.”

 

“그래.”

 

딱히 명확한 대답을 원한 건 아니었기에 토모는 그저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그냥 좋았다. 그의 얼굴을 이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금이 행복했고, 그의 억센 팔에 안겼던 감각과 강압적으로 키스를 당했던 조금 전의 기억은 온몸이 떨릴 정도로 격정적이었다. 아니, 그냥 다 필요 없고 이 상황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행복하다…’

 

본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허락되지 않았을 감정이 그녀의 여성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발끝부터 차오르기 시작한 고양감에 빠져든 토모였으나 곧 슬픈 표정을 짓고는 몸을 돌려 천장을 바라보기만 했다. 높아진 지능이 그녀를 금방 현실로 끄집어낸 탓이었다.

 

“이제 됐어… 사령관이랑 잠자리도 보내봤고, 이젠 이 지능이 더 거슬려.”

 

“그래도, 네 지능을 높이는데 꽤 많은 연구비용이 들었는데…”

 

사령관의 대답에 토모는 쓰게 웃었다. 과거 바보로 취급됐을 적엔 지은 적도, 지을 줄도 모르는 그런 슬픈 미소였다.

 

“나도 사령관이 얼마나 많이 기대를 하고 나를 이렇게 손봤는지 이해하고 있어.”

 

“다른 바이오로이드에게 부족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네 요청도 있었고.”

 

“그냥, 욕심이었지 그건.”

 

어느덧 다시 사령관과 시선을 마주보게 된 토모가 슬며시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남보다 똑똑하다면서 주변 사람들을 상처 입히고 유세만 떨게 될 거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나아.”

 

“나한테만 잘하면 되잖아. 그리고 넌 충분히 잘하고 있고.”

 

“바보, 이미 사령관한테 못난 짓을 해서 불려온 건데 뭘 잘하고 있다는 거야. 히히… 그래도 기쁘긴 하네.”

 

어쩐지 사령관은 토모의 지금 모습이 진짜 과거에 존재했다던 여고생의 모습이 아닐까 하고 유심히 고찰해버렸다. 그리고 내놓은 결론은 역시 토모의 요청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널 다시 바보로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왔어.”

 

“너무 똑똑해진 탓에 바보로 돌아갈 때의 괴리감이 발생할 거란 말이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구나, 사령관은 피식 웃고 말았다.

 

“알고 있으면서도 되돌려달라고 한 거야?”

 

“좋은 기억만 가지고 떠나는 거지. 이대로 가면 나는 문제아에 골칫덩이 그 이하도 아니야.”

 

“그렇다고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그렇게 돌려 말해도 되는 건가? 그럼 내 기분은 어떡하고?”

 

그의 말에 토모가 눈에 띄게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도 자신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 쯤이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는 오르카호에 지내기엔 달라져버린 자신이 주변과 어울릴 수 있을 지가 미지수였다. 사령관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정말로 싫었고, 친했던 동료들에게 폭언을 퍼부었던 기억은 정말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만 같다고 느껴져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자신이 정말로 사령관 옆에 머물 자격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억지라는 건 알고 있지?”

 

사령관의 말에 토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는 말하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어. 네가 뭐라 생각하던 그건 그냥 네 생각일 뿐이야. 머리가 좋아졌다고 남들의 판단까지 멋대로 잣대질 할 필요 없어”

 

“…사령관.”

 

“그리고 말이야… 생각해보니까 이미 준비 철저하게 해놓고 온 주제에 죽여달란 말해봤자 설득력 없는 거 알고는 있지?”

 

“아, 하하하…”

 

덜 말린 머리에 느슨한 옷차림, 시도 때도 없이 유혹하는 눈짓 몸짓, 일부러 당겼다 다시 밀면서 애태우던 기억을 되짚어보면 다분히 노렸다는 결론밖에 남지 않았다.

 

“참나, 샤워 후의 정결한 몸으로 찾아왔다는 의미를 일찍 알아챘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 말에 토모가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머잖아 사령관도 웃음을 터트리며 사령관실이 두 남녀의 풋풋한 애정에 다시금 슬그머니 달아올랐다. 하지만 육체적인 관계는 충분했다. 두 사람은 알몸인 채로 서로를 껴안으며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이야기꽃이 피어오르는 와중에 페로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페로가 사령관의 하렘을 만드는데 도와달라 하길래, 처음엔 농담인줄 알았어…”

 

“뭐… 나도 페로가 난데없이 여자를 늘리는 게 어떻겠냐고 묻길래 당황스럽긴 했지.”

 

지금 생각해도 페로의 뜬금없는 제안은 곤혹스럽기 그지없긴 했다. 싫다는 건 아니었으나, 페로를 첫 여인으로 두고선 바람을 피는 형국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느낀 까닭이었다. 페로도 자신의 남자를 공유한다는 발상을 스스로 떠올리곤 진저리를 쳤지만 결국 독점이 불가능했기에 이런 선택을 내린 것이었다. 토모는 뛰어난 상황판단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해했지만 말이다.

 

“처음엔 바보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겠어…”

 

“하렘이 좀 난감한 건 맞지.”

 

“으응, 그런 점이 아니야. 페로가 나한테 그런 제안을 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는 거야.”

 

토모의 대답에 사령관의 얼굴에 궁금증이 어린다.

 

“달리 이유가 있었던 건가?”

 

“…사령관은 좋은 사람이지만 그런 식으로 눈치 없는 모습을 보이는 건 정말 나쁘다고 생각해.”

 

페로가 어째서 간혹 한숨을 내쉬는지 이제야 알 것만 같은 토모였다.

 

“미안해, 근데 정말 모르겠다.”

 

“하아…”

 

토모는 방금 전까지도 뜨겁게 몸을 섞었던 남자가 멍청하게 보이는 점에 대해 깊은 시름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하렘의 일원으로 들어서기 전에 재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아주 조금 생겨났다.

 

‘의미 없는 고민이겠지만 말이야.’

 

곧 토모는 헤실헤실 웃더니 사령관의 뺨에 입술을 맞추며 대답했다.

 

“행복을 나눠줘서 고마워 사령관.”

 

 

 

해가 뜨고, 토모는 돌아갔다. 사령관은 또 다시 관계를 재정립하게 된 바이오로이드가 생긴 것에 대해 기분이 들뜨면서도 한 편으로 고민스러웠다. 앞으로도 종종 하렘에 편입될 바이오로이드가 늘어나겠지. 분명 이건 남자로써 바라 마지않는 행운이자 인류의 번성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은 분명했으나 어쩐지 바이오로이드들의 자유의지가 속박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들었다. 그래서 이 점에 대해 포츈과 상담을 해보기도 했는데 별달리 거부감 가지지 말고 마구 여자를 늘리라는 포츈의 응원만 받고 말았다. 결국 이와 관련된 모든 일들은 전부 사령관의 몫이었다.

 

“이러다 복상사로 죽는 게 아닌가 몰라…”

 

사령관은 한숨을 푹 내쉬곤 오늘도 있을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사령관실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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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글222 이전의 https://arca.live/b/lastorigin/6892806 이 글이랑 이어지는 글이다보니 부득이하게 이어서 올리게 됐음

도배로 보인다면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