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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 음.....



금란: ......................





정적. 얼어붙은 분위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방도가 떠오르지 않을 때 느끼는 극한의 무거운 기분.


실시간으로 피가 마르는 상황.







???: 언제부터니?




나+금란: !!!!!!.............




우리를 벌벌 떨게 만드는 어떤 존재의 질문에 그저 고개만 숙일 뿐....





???: 사실대로 말해. 언제부터였어....?




나: 저 그게.......




엄마: 아니 다 큰 애가 동거를 시작했으면 엄마에게 먼저 말하는게 도리 아니니?! 엄마가 무슨 드라마 시어머니마냥 싸대기를 날리기를 하니 물컵을 뿌리기를 하니?!






그렇다. 우리 엄마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우리 둘을 마주보며 어머니로서의 훈계를 하고 계셨다.


금란은 당장이라도 사죄를 할 요량으로 손을 파르를 떨고 있었다.





엄마가 우리집에 온건 순전 우연이었다.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간, 땅거미가 지려는 때쯤이었나... 나와 금란은 여느때와 같이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왔다. 


차 트렁크에서 장을 본것들을 내리고 있을 때 때마침 반찬거리를 줄겸 아들이 뭐하고 있나 보러 오신 우리 엄마와 딱 마주친 것이 아닌가.


금란은 처음에 웬 아주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니 당황하다 이내 내 엄마인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초긴장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나도 엄마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외간여자를 집에 들였으니 사고도 이런 대형사고를 친거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우리 두사람을 보는 엄마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깨물어 혼을 내려는 어미 호랑이와 같았다.






엄마: 아가씨 이름이 뭐라고?



금란: 그...금란이라고 합니다....



엄마: 그래요 금란양. 보통이라면 통성명을 반갑게 나눴을 텐데... 금란양도 이해하죠? 지금 이 분위기.



금란: 네... 잘 이해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나: 엄마. 금란 잘못이 아니야. 그냥 내가 같이 살자고 한거야.



엄마: 너는 조용히 해.



나+금란: !!!!!!!!............



엄마: 그래... 둘이 어쩌다가 같이 살게 되었는지 들어나 보자. 아들. 어떻게 만난거니??



나: 어..!! 어... 그게....



엄마: 그게 뭐.



나: 아니 그게... 금란이가 사실은.....



금란: 정말 죄송합니다 어머니! 제가 멋대로 세환씨의 신세를 졌습니다. 주제도 모르고 아드님께 이런 생활을 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바로 짐을 싸고 나가겠습니다.




금란은 내가 해명하려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엄마에게 연신 90도 인사를 하며 사죄를 한 후 곧바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 어어어어 금란, 왜그래??!!!




금란: 세환씨. 그동안 감사했어요. 아무것도 없던 저를 어떻게든 온전한 사람으로 살게 해주려 고생하셔서. 앞으로는 제가 어떻게든 살아볼 테니까....





말은 덤덤하게 하는 금란이지만 나는 보았다. 절망의 감정이 비쳐보이는 눈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해하는 표정. 그리고 자신이 또 버려진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고통스러워 하는 몸.


나는 금란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금란은 나를 뿌리치며 서둘러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란의 행동을 본 우리 엄마의 말은 조금 뜻밖이었다.





엄마: 금란양. 멈춰요.



금란: 아닙니다 어머님. 제 잘못이기 때문에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엄마: 무슨 책임을 진다는 거죠? 그리고 나는 두 사람이 어쩌다 같이 살게 되었는지를 묻는거지 금란양더러 나가라는 말은 한 적이 없는데요?



금란: 네? 그게 무슨....




엄마는 금란에게 부드럽지만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금란양. 이리와 앉아요. 저는 금란양과 대화를 하고 싶어요. 금란양의 얘기를 듣지 않고 쫒아내는 그런 나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금란: .....................





금란은 엄마의 단호한 명령같은 요청에 아무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도로 자리에 앉았다.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나에게 물었다.





엄마: 자, 아들. 너가 직접 찬찬히 말해보렴. 어쩌다 만나게 되었고, 어쩌다 같이 살게 된거니?



나: 으..... 후........ 조금 긴데 들어줄 수 있어?



엄마: 아들의 이야기인데 안들어줄 엄마가 어딨겠니. 말해봐. 괜찮으니까.



나: 으..... 알았어 그럼....



금란: ................................




나는 금란이 게임속에서 나온 사실을 제외한 나머지 이야기를 풀어냈다. 금란을 정식 주민으로 등록시키기 위해 계속 써먹어왔던 그 스토리 말이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출생신고도 안되어 보육기관을 전전하다 나를 만난 이야기. 그 후 어떻게든 한사람 분의 몫을 다 하기 위해 학원도 다니고 공부도 하는 이야기.


그러한 스토리를 들은 엄마는 감동과 슬픔의 표정을 지으실.......줄 알았는데 엄마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엄근진한 표정을 지으시며 우리를 바라봤다.




나: '어....이게 아닌데.... 뭔가 잘못됐나...'



금란: ?!...................




엄마는 그렇게 한동안 그 표정을 유지한 채 우리, 특히 금란을 바라보셨다.


금란은 그럴 수록 엄마의 포스에 짓눌리는지 금방이라도 울것같은 표정이었다. 식탁 밑에  손은 이전보다 더 격렬히 떨고 있었다.


나는 슬쩍 내손을 식탁 밑을 스치며 금란에게 가져간 후 떨리는 손을 잡아줬다.


물론 눈치백단인 우리엄마는 그것마저 캐치하셨다.





엄마: 아들. 정말로 금란양을 좋아하니?



나: 어...응?



엄마: 금란양을 진심으로 좋아하냐고.





뜻밖의 질문에 나는 잠시 당황하다 곧 생각을 정리하곤 엄마에게 말했다.





나: 응. 좋아해. 아니 그걸 넘어서 사랑해.



엄마: ......................금란양.



금란: 네...네! 어머님.



엄마: 우리 아들을 많이 좋아해요?



금란: ........좋아.....합니다.....



엄마: 우리 아들을 사랑해요?



금란: ......네.......



엄마: 진심으로 사랑하나요?



금란: ...네. 사랑합니다.



엄마: 장난으로 말하는거 아니에요. 우리 아들이 금란양을 사랑하는 것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사랑 할 수 있나요?



금란: 네. 세환씨의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엄마: 어느정도까지 사랑할 수 있는데요?



금란: 제 모든 것을 줄 수 있어요. 아직 가진건 없지만 그런 것들을 만들기 위해 공부도 하고 학력도 얻어서 일도 하겠습니다.



엄마: 그런가요?......................아들.



나: 어, 어...엄마...



엄마: 금란양이 저정도로 필사적인데 너는 금란양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니?



나: 그냥.... 원하고자 하는걸 이룰 수 있게 방법을 알려주는 것 정도지 뭐...



엄마: 물고기를 주지 않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걸 말하는거니?



나: 일부러 그럴려고 한다기 보다는 애초에 도와줄 방법이 그렇게밖에 안되더라고... 학원비 내주는 것 정도야 그냥 내가 내주면 그만인데 결국 공부를 해서 원하는 것을 이루는건 금란 자신이잖아. 그래서 그렇게 말한거야. 물질적으로 덥석 지원해준 거는 처음에 옷이라던가 생필품 같은거밖에 없었어.



엄마: 금란양 들었죠? 이게 우리 아들이 사는 방식이에요. 우리 아들은 답을 주지 않아요. 답을 찾는 방법을 알려줄 뿐이죠. 이런 불친절한 사람인데 그래도 좋아요?



금란: 그래서 더욱 좋아합니다. 세환씨는 제가 앞으로도 스스로 삶을 개척하도록 그러는거라 생각합니다. 평생 답만 알아서는 앞으로의 삶의 역경을 해칠 수 없을테니까요.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거라고 봅니다.




금란은 아까보단 떨림이 잦아든 느낌이었다. 마치 자신이 갖고 있던 확신을 엄마에게 내보이며 엄마 앞에서 증명하려 애쓰는 모습으로 보였다.






엄마: 부모없이 홀로 살아온 사람 치고는 굉장히 인성이 잘 갖춰졌네.



나: 응? 엄마?



엄마: 얼굴도 참하게 생겼고.



나+금란: 응? / 네 어머님?






갑자기 금란을 칭찬하는 엄마. 무슨 일인 거지?







엄마: 에휴.... 진짜 피는 못 속인다니까....



나: 엄마.... 무슨 소리하는 거야?



엄마: 너희 아버지 말이야.



나: 어??.......아......아!!!!!!!



엄마: 뭔 소린지 알겠지?



나: 아 내가 왜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지?!



금란: 세환씨. 뭔데요. 아버님이 왜요..?





금란은 영문을 모른 채 당황하며 나와 엄마를 살피기 바빴다.





나: 엄마가 말할래, 내가 말할까?



엄마: 금란양 입장에서는 아들이 말하는게 더 부드럽겠지?



나: 그럴까? 음... 금란. 잘 들어봐.



금란: ....네?....네....



나: 우리 엄마도 사실 고아였어.



금란: 네?! 어머님께서요?



나: 응. 물론 태어날 때부터 고아셨던건 아니고,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가 열여덟살이었나, 연탄가스 사고로 돌아가셨다 하더라고. 엄마는 그때 공장에서 야간 일을 하시느라 화를 면하셨고.



금란: 그...그런.....



엄마: 그 후 미친듯이 일만 하다가 영업사원으로 공장에 자주 오는 어느 잘생긴 남자와 눈이 맞았지요. 세환이 아빠에요.



금란: 아...아.....



나: 아버지도 나처럼 물심양면으로 엄마를 도와줬다고 해. 중졸이었던 엄마를 고졸로 만들어주시고 좀 더 좋은 직장에서 일하게 해주시고. 



엄마: 그래서였을까요. 그냥 이사람이다 라는 생각으로 바로 결혼했죠. 그런데 우리 아들이 하는 짓이 어쩜 아버지랑 판박이라니 후훗.



나: 그게 참 나도 신기하네.



엄마: 금란양.



금란: 네 어머님.



엄마: 우리 착하고 올곧은 아들 눈에 맞은 거라면 필시 금란양도 올바르게 살려는 사람이겠죠. 아까부터 금란양의 말을 잘 들어봤는데...



나+금란: .................



엄마: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야 할꺼에요. 나는 착하고 싹싹한 며느리가 좋거든.



금란: 네 명심하겠습........네?!



엄마: 아들. 언제 한번 금란양 데리고 집으로 오렴. 아버지한테도 인사시켜야지.



나: 어 어?....어...어!!!!!!!! 알겠어! 다음주 주말에 갈께!!



금란: 어...어머님?!



엄마: 금란양이 착해서 그러는 거에요.



금란: ....감...감사합니다.....



엄마: 아들. 엄마는 이제 갈께. 얘기는 아버지 만나서 그때 더 하자꾸나. 밖에까지 따라나오지 말고. 



나: 아, 아니야. 1층까지 배웅해줄께.



엄마: 예비 며느리나 더 챙기세요 아들. 지금 주저앉은거 봐.



나: 어? 어! 금란! 괜찮아.



금란: 아.......흑흑.....



엄마: 다음주에 봐 아들. 금란양도 또 봐요.





엄마는 그렇게 쿨한 모습으로 현관문을 나섰고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까지만 엄마를 배웅한 뒤 곧바로 금란에게 달려갔다.


금란은 긴장이 풀려 이내 주저앉았고 거기에 더해 엄마의 1차합격까지 받아버리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내 감정이 북받쳐 울음을 터뜨린 금란에게 나는 연신 안아주며 이성을 되찾게끔(?) 도와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금란이 진정됐을 때 쯤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 어 엄마. 잘 도착했어?



엄마: 그려~ 잘 도착했다 이눔아~



나: 뭐야 왜 이리 기분이 좋아보이는 목소리야?



엄마: 우리 아들이 며느리감을 데려왔으니까 기분이 좋지~



나: 아까 금란 앞에서는 그렇게 엄근진했으면서 이제와서 기분이 좋다고? 하이고야.



엄마: 으음~ 내가 시어머니라니~



나: 아 그만좀 해. 아직 결혼도 안했어.



엄마: 뭐야. 결혼 안할꺼야? 금란양이 불쌍한데.



나: 아니 지금 당장은 아니라는 거지. 빠른 시일 내에.



엄마: 빠른 시일 언제? 



나: ......금란 검정고시 최종합격 하면...



엄마: 검정고시 합격 하기 전에 엄마 손주부터 보면 안될까?



나: 아 진짜!



엄마: 밤일은 잘하는 거지?



나: 아 엄마!!!





마지막으로 까르르하고 웃는 엄마의 웃음소리와 함께 통화가 종료되었다.


급 피곤이 몰려왔다.


진지하게 시작해서 우당탕탕으로 끝난 토요일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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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부모님 만나는게 제일 긴장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