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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인가요."


세상에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온갖 역겨운 짓거리를 하던 인간들의 끝이, 이것인가요."


악한 자에게는 천벌을.

선한 자에게는 포상이 내려져야 할 터.

권선징악.

그것이야말로 빛의 따스함이자, 어둠의 차가움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까지 피해를 봐야 하죠?"


하늘에 열린 붉은 구멍에서 죽음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죽음이 악인을 알까?

그렇다면 선인을 알까?


아니.

구분하지 못한다.


"어째서....?"


선악의 구분 없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선량한 사람도.

따귀를 수도 없이 맞으면서도 주인을 지켰던 바이오로이드도.

바이오로이드의 팔다리가 다 떨어져 나가는 와중에도 자기를 지키라고 고래고래 외치는 주인도.

평등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가요. 이게 당신의 대답인가요. 구원을 바라는 자들에게 내리는 당신의 메세지가, 이것인가요."


세상이 멸망하는 이 잔혹한 와중에도 죽어나가는 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정말 죽어야 하는 자들은 이미 안전한 장소로 피했겠지.


권선징악은 없다.


고로.


신은 없다.


아자젤은 빛을 잃었다.






"빛과 어둠은 양면."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빛과 어둠으로 나뉘는 거예요."


단순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던 진리.

아자젤은 그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빛은...."


폐허가 된 도시 한가운데에서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광명이 내리쬐듯 빛이 구름 사이를 헤치며 도시에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 빛이 닿은 곳에 사람은 없다.

망가진 도시와 피와 시체가 있을 뿐.


다르게 말하면, 본모습을 되찾은 대자연을 비추고 있었다.


"빛은 인간을 싫어하는군요."


그리하여 아자젤은 옷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옷을 입었다.

검고 검은 천.

그것을 허리에 두르고 젖가슴을 감쌌으며, 앞뒤를 가리도록 했다.

이어서 자신에게만 빛을 내리지 않는 하늘을 보았다.


태양은 구름 뒤에 수줍게 가려져 있었다.

마치 그녀를 보기 싫다는 것처럼.

그녀에게 자신을 보이기 싫다는 것처럼.


그리하여 아자젤은 눈을 찔렀다.


"아....!"


피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다.


"이것이면 되는 건가요! 이것이면! 신이여, 빛이여!!"


그녀의 목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 황량함 속에서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저는 어둠을 걷겠나이다."


아자젤은 검은 천을 두 눈에 덧대고 질끈 묶었다.


"바라건데."


감은 눈은 영영 떠지지 않을 거고.

안에 남은 안구는 그 안에서 썩어 문드러질 터.

그녀 역시 그것을 원했다.


"당신이 바라는 이 세상에도 어둠이 가득해지기를."


신을 섬기던 신자는.

신을 저주하게 되었다.





두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 빛을 볼 일은 없었다.


휘청거리며 걸었고 때로는 넘어지기도 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 벽에 부딪혔고 때로는 시체를 밟기도 했다.


"아아.... 부디 깊은 어둠 속에서라도 안식을 되찾으시기를."


열흘이 지난 날에도 그녀는 울고 있었다.

수백 번을 넘어져 무릎이 뼈가 드러났을 때에도 그녀는 울고 있었다.


평소처럼 무언가가 발에 걸려 넘어진 어느 날.

손에 닿은 것은 살이 남아 있는 시체가 아니라 백골이었다.


"이건....."


그녀는 상처투성이인 손으로 백골을 소중히 들어올렸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가벼웠다.

동시에 상상했던 곳보다 무거웠다.


"......"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평생 세상에 가득할 것 같았던 시체는 썩어 사라졌다.

이 백골도 언젠가 풍화되어 재가 될 터.


"그렇군요. 변하지 않은 건 저 뿐."


그때부터 아자젤은 울지 않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울지 않게 되자 넘어지지 않았다.

부딪히지 않게 되었고, 함부로 밟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비로소 눈이 있던 곳을 채운 어둠을 제대로 마주했다.


'그래요. 이것이 저의 어둠.'


여러 날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평온한 상태로 있을 수 있었다.

온 세상이 어둠으로 가득 찼기에 그녀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어둠을."


그녀는 어둠에 몸을 맡긴다.

그것은 새로운 힘일까? 아니면 단지 착각일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발이 떠올랐다.


더는 걷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하늘을 날아올랐다.

보란 듯이 세상에 내리쬐는 빛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문득, 한 여자가 생각났다.


검은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날아올라 번개의 창을 떨구던 그 뒷모습이.


'사라카엘.'


아자젤은 그녀를 떠올리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번개를 내리치는 건 그만큼 정화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 정화는 허상이었다. 거짓이었다.

심판이라는 명목 아래에 행해진 건 교단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살인이었을 뿐.

사라카엘은 알고 있었을까?

만날 수 있다면 묻고 싶었다.


'당신의 세상은 얼마나 빛나셨나요?'


과연 빛났을까?

번개를 수도 없이 내리쳐야 했던 것은.

분명 지독한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였을 거다.

잠깐의 섬광이 꺼지면....

그 자리를 다시 어둠이 채웠겠지.


그날.

땅에서 기도하던 신자가 타락하여 하늘로 올라갔다.







"당신을 찾아다녔어요."


수십 년이 지났을 때 그녀의 앞에 한 천사가 나타났다.

기척을 느껴보니, 한 명이 아니었다.

복원된 아자젤과 엔젤, 베로니카, 라미엘. 그리고 사라카엘도.

모두가 함께 그녀의 맞은편에 서 있었다.


"빛을 잃고 휘청거리는 어린 신자시여...."


복원된 아자젤이 그녀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그녀는 발끈했다.


"빛을 섬긴다고요? 구원자를 반려라 부르고...?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요. 빛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글쎄요.... 지금까지 제가 봐온 봐에 따르면 빛은 구원자고, 구원자가 곧 빛이었어요."

"그 또한 위장일 뿐이겠죠."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멸망 전부터 살아오셨다니, 저보다 많은 지혜를 가지고 계시겠죠. 제가 자료로만 봤던 것을 당신은 두 눈으로 직접 보셨을 테니까요."


아자젤은 생각한다.

저들이 속고 있다고.

그리하여 주장했다.

눈을 뽑아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는 마음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당신의 뜻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 또한 불신을 믿지 못했다.

빛이 위대하며 항상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빛은 돌아서면 어둠이 되는 법.

빛과 어둠은 양면이었다.

항상 같은 공간에 존재했다.


누구에게나.


"당신들이 모시는 '구원자'도 마찬가지에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믿어요. 그분이라면 어둠을 밝히고 환한 빛이 되실 거라는 걸. 언제라도, 어떤 상황에서라도. 결코 빛을 잃지 않으실 거라는 걸."


허튼 소리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그러한 헛된 바람이나 다짐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세상이 굴러가는 건 지극히 단순한 이치였다.

세상은 강자의 선택에 따라 흘러간다.


가진 것이 많은 인간이 그랬고, 하늘에서 쏟아지던 괴물들이 그러했다.

약한 인간은 강한 인간에게. 강한 인간은 돈이 많은 인간에게. 돈이 많은 인간은 철충에게.

철충은 바다 깊이 잠들어 있던 거대하고 불가사의한 괴물에게.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절망이라는 강한 힘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진실이 보였다.


"힘으로 제압해서 진실을 보게 해드리겠어요. 그리고 당신들의 거짓을 정화해드리겠어요."

"베로니카, 준비해라."

"...사라카엘인가요."

"그렇다."

"당신의 번개는 여전히 어둠을 가로지르나요?"

"....?"

"아니면 찰나만 빛났다가 어둠에 삼켜지나요?"

"....나의 빛은 찰나의 순간만으로 모든 것을 불태운다."

"기대되네요."


절망하여 어둠을 깨닫고.

빛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스스로 버리고.

두 발로 설 수 있는 버팀목이 될 대지마저 저버린 천사는.

날개를 얻어 저 하늘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10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려 태양에 손이 닿으려는 그때.

강렬한 빛 한 줄기가 눈을 쬐었다.


"으....!"


아주 잠깐이었다.

눈부신 햇살에 움찔했던 그 찰나의 순간.

번갯줄기와 거대한 낫에 두 날개를 찢어발기며 그녀를 땅으로 추락시켰다.


"어째서....?"


피범벅이 되어 쓰러져 있는 그녀의 주위에 다섯의 천사가 와 있었다.

기척이 느껴졌다.


"어째서 제가....?"


아자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패배했지?

지난 날, 그녀는 쉬지 않고 자신을 단련했다.

그리고 실제로 강해졌다.

다섯 천사가 힘을 합쳐도 이기기 어려웠을 만큼.

그러나 마지막 한순간에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목숨을 끊고 싶지만."


사라카엘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한다.


"묻겠다. 마지막에 왜 망설였지?"

"......"

"아자젤... 또 하나의 저여.... 당신은 분명 저희를 이길 힘을 가지고 있었어요."

"허나 그러지 않았다. 망설였지."

".......제가 망설였다고요....?"


그럴 리가 없었다. 그럴 리가.

빛을 등지고,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의 준비가 오늘로써 열매를 맺을 때였다.

저들이 말하는 구원자를 죽이는 것.

마지막 인간을.

추악한 이 세상의 결점을 죽여 없애는 것이 그녀의 목표였다.


그런데 왜?


일렁-


주변에 무언가가 일렁거렸다.


'이건....'


다섯 천사의 치맛자락이었다.

그들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따라 흔들거리는 윤곽이 보였다.

이건 힘이 강해질 때의 증상이었다.

내면에 쌓인 힘이 강해지면 그녀의 제3의 눈은 더욱 더 선명히 주변 사물을 보았다.


'저는 분명 강했어요. 그것도 지금까지 중에 가장.. 그런데 왜 진 거죠...?"


"한순간이지만 봤어."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지만 정체는 알 것 같았다.

유일한 남자였으니까.


"저 아자젤. 눈부셔했어."

"네...?"

"반려. 이 자는 눈이 멀었다. 보면 알지 않은가?"

"하지만 똑똑히 봤어. 햇살이 내리쬐는 그 찰나, 눈이 부셔서 얼굴을 찡그렸어."

"자, 잠깐 반려...!"


복원된 아자젤이 만류하지만 인간이 다가왔다.

그러나 아자젤은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손을 움직이려고 하니까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화내겠지만, 미안. 나중에 사과할게."


남자의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렸다.

윤곽이 보인다.

성인 남성 얼굴의 윤곽이.


스르륵-


오랫동안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가 벗겨졌다.

그리고...


"아......"

"저건...."

"그런가."

"......내 말이 맞지?"

"....."


안대가 사라지자 모든 것이 선명히 보였다.

흑백의 세상에서 윤곽으로만 보이던 모든 것에 색이 생겼다.


복원된 아자젤은 녹색 빛이 흐르는 머릿결을 휘날렸다.

사라카엘은 언제나처럼 보랏빛 안광을 내뿜고 있었으며.

라미엘의 두 눈은 여전히 눈물이 글썽거리며 연홍색으로 빛났다.

엔젤의 앙증맞은 날개도 하얀 빛을 내뿜으며 파닥거리고 있었다.


"그렇군요. 힘이 강대해지면서 스스로 회복하신 거예요."

"이례적인 일이군. 아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났어요. 이건...."

"기적일까요?"


기적.

그 한 마디가 아자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힘이 강해질 때마다 보이던 건 제3의 눈이 아니라...'


그녀의 눈이었던 것이다.

썩어 문드러질 줄 알았던 그 눈이 지난 세월 동안 천천히 회복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남자가 보였다.


"무려 100년을 혼자서 지냈다고 들었어."

"아....."

"그동안 힘들었지. 줄곧 의심하고 또 의심했을 거야. 혼자서만 고뇌하고 괴로워했겠지."


남자가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한 점의 어둠도 없이 투영하게 빛났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그가 손을 내민다.

굳은살이 배기고 근육으로 똘똘 뭉친 손은 여러 가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생활했는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슬퍼하고 있는지 말이다.


"잡아줬으면 해. 부탁할게."

"아..."


아자젤은 홀린 듯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방금까지는 움직일 힘도 없던 손이 갑자기 움직였다.


'분명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는데....'


아니, 정말일까?

정말 손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을까?

이 떨림, 이건 혹시...


'아아, 그렇구나....'


어쩌면.

그녀는 기다리고 있던 걸지도 몰랐다.


자신에게 드리운 어둠을.

마음을 좀먹었던 절망을.

거두어줄 거친 손길을.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손의 진동은 감격이었다.


그녀는 남자의 품에 안겨 소리 내어 울었다.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끝내 원하는 것을 쥐지 못하고 추락한 천사는.


다시금 땅으로 내려와 세상을 걷기 시작했다.

자신의 두 발과.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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