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후드 112 대령은 그날에만 스무번 넘게 삑삑거리는 스피커를 두들겨서 고쳤다. 연대는 잠깐의 휴식도 없이 아흐레 동안 계속 이동해야 했다. 어쩌면 오늘은 좀 쉴 수 있을까? 제발 좀 그러길 바랬다. 병사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초췌하게 지쳐있었고 군화 속 발은 퉁퉁 불어 좀 편해지자고 군화에 칼집을 내버린 병사들도 있었다. 오늘 정도에는 꼭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 순간 멀리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다리 밑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떡 일어서선 주변을 살폈다. 작은 지진은 갑자기 멈췄다.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펴보자 연대의 다른 병사들 몇몇이 참호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자기처럼 주변을 살펴보는게 보였다. 저 멀리 여러 개의 포신을 지닌 스트롱홀드가 2킬로미터 밖에 멈춰서있었다. 아군이었다.


"빌어먹을 고물 같으니,"라고 레드후드는 투덜거렸다. 그리곤 고장난 스피커를 들어 연대의 병사들에게 외쳤다. "아군이다! 참호로 돌아가 눈이나 좀 붙여둬라!" 그 후 무전기를 켜서 상급제대와 통신을 시도해보았지만 쥐 죽은 듯 조용할 뿐이었다. 십중팔구 마리 소장도 죽어버렸을거다. 레드후드는 왜 스트롱홀드가 여기에 와있는건지 추측해보려 했다. 하급 병사들은 그 강력함을 보고 안심하곤 했지만, 저 전차가 위치해있다면 언제나 격전지였고 상황은 나빠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갑자기 대지가 다시 흔들렸다. 방금같지는 않았다. 쌍안경을 들어 바라보자, 남쪽 멀리에서 흙먼지가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그게 뭔지는 뻔했다. 저만한 먼지구름을 일으킬 수 있는건 스토롱홀드같은 괴물 탱크 뿐이었다. 남쪽이라면 아군이 통제 중이었다. 아마도 아군 스트롱홀드가 다가오는 것이리라. 레드후드는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겠다는 사실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끔찍하게도, 먼지 구름 속에서 두 다리로 걷는 괴수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타이런트였다.


레드후드는 욕설을 내뱉었다. 오른편에서 아군 스트롱홀드가 타이런트를 향해 포탑을 돌렸다. 경보를 울리기도 전에 두 로봇은 서로를 향해 공격을 개시했다. 참호 밑바닥에 몸을 날려 엎드리자 뱃가죽 밑에서 대지가 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제발 이걸로 둘 중 하나가 파괴되었기를 바랬다. 파괴된게 스트롱홀드라 해도 상관 없었다. 저 두 괴물의 전투에서 보병이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레드후드는 무너져내린 참호에서 겨우 몸을 추스리며 대대장들에게 무전을 보냈다. 둘은 죽었다. 임펫 상사와 이프리트 하사가 보고해왔다. 다른 하나는 살아있긴 했지만 지휘를 할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두 AGS는 모든 무기를 쏟아내며 서로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타이런트는 그 파괴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사방에 불을 뿜어대었고 연대는 불길에 휩싸여 타올랐다. 먼지 속에서 두 기계가 서로를 향해 파괴의 빗발을 쏟아붓는 광경이 희미하게 보였다. 수많은 폭발을 견디면서 타이런트가 달려들었다. 이빨로 물어뜯을 요량인 듯 했다. 스트롱홀드 역시 후퇴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둘이 충돌하면서 폭발했다. 타이런트가 자폭한건지 반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도 두 AGS가 멈추기엔 충분했다.


몇시간 뒤, 폭발로 생긴 크레이터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다가갈 수 있을 정도로는 식었다. 크레이터의 바닥에는 장갑이 마구 뒤틀려버린 두 AGS의 잔해가 남아있었다. 그 정도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레드후드는 연대의 재편성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2,000에 가깝던 병사들 중 900을 넘는 수가 죽었다. B 대대는 문자 그대로 사라졌다. 남은 두 대대로 어떻게든 해나가야 할 것이다. "씨발 좆같은 고철덩이들." 레드후드는 남몰래 욕지거리를 삼켰다. 내일에는 다른 대대와 교대할 수 있을거라 헛된 희망을 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