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꿈을 꾼 것이다.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가 되어 여러 난관들을 해결해내는. 

그리고 누군가의 남편이 되는 그런, 

호접지몽의 꿈을.




당신은 전쟁터 한복판에서 이미 식어버린ㅡ기능이 끝난ㅡ용을 끌어안고 있었다. 빗발치는 총탄이 이따금 살갗을 찢었고, 굉음은 이미 고막을 짲은 것 같다. 과연 잔가지 상처들 때문이었을까? 엄호를 위해 호라이즌이 당신을 둘러쌌으나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폐안한 용의 눈을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호드가 도착하고 나서야 그녀들은 그에게서 용의 육신ㅡ기체ㅡ을 떼어낼 수 있었다. 당신은 울부짖는다. 어쩌다 사단이 여기까지 흘러간 걸까.




" ##, 일어나시오. " 


상기된 목소리로 당신을 깨우는 그녀. 용은 흔들의자에 앉아 비몽사몽한 당신을 바라본다.


 " 또 궂은 일을 저지른 것이오? ...나는 그대와 같은 무뢰배를 알고 있지... "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긁적일 뿐이다. 익숙함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마침내 당신은 용과 나눈 반지마저 잃어버린 참이다.

인류는 당신 하나뿐. 그런 불우한 당신을 위한 전술인형들. 한 가지에 핀 꽃에 만족할 위인이 누가 있을까. 당신이 위안삼아 겨우 생각해낸 변명은, 정실은 하나뿐이니 괜찮겠지ㅡ라는 헛소리였다. 그래, 귀중한 자료인 나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 무적의 용일지라도... 급기야는 어제 용과 온기를 나눈 침상에서 금일 다른 인형을 부른 것이다. 다만 용은 묵인하였다.









잠깐, 어째서 용이 전선에 투입된 거지?

사령관님이 아무나 보내라고 하셔서, 그만...

부관을 허수아비로 세워둔 내 잘못이었다.

전술도 제대로 갖추지 않다니.

당신은 장비도 없이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인간은 유약한 존재다. 소식을 들은 용의 입장으론 오히려 골치가 아팠다.

마침내 용은 당신을 대신하여 포격을 직격으로 맞았다.





" 부인을 최전선에 보내는 멍청이는 그대뿐이 없을 거요. 서바... 아니, 그대. " 


일어나, 용. 다급히 그녀의 몸을 일으키려 한다. 그러나 힘이 죄다 빠진 그녀의 몸은 차라리 액체에 가까웠다. 

무너져내린다. 몸도 마음도. 

아아, 단말마 가까운 신음소리.

그녀는 반지 둘을 건넨다. 

당신, 이것 잃어버리지 않았소?

그게 용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숨이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말이 안 된다. 그 무적이 용이 죽는다고?




그날 이후 '나'는 집무실에 틀어박혀 리부팅에 매진하였다.

용도 결국 0과 1로 이루어진 기계일 터였다. 망가진 부품을 바꾸어 끼운다면 될 일이 아닌가?

그러나, 아무리 모듈을 조작해도 '나의 용' 은 오지 않았다.

'그녀들'은 나를 볼 때마다 매번 새로운 상사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때마다 프로그램을 리셋시켜야만 했다. 사형이나 다름없는 말을 그녀들에게 던지며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용'들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송환하는 내게 위로와 안녕을 전할 뿐이었다.

점차 죄책감은 옅어졌으나 다행히도 전처럼 다른 바이오로이드에 눈을 돌리는 일은 없었다.

이걸로 너에게 지은 죄가 용서가 된다면 좋을텐데.




마침내 나는 99번째 용을 떠나보내고, 확신하였다.

용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나는 그녀와 반지를 함께 불태우자, 생각하였다.

아흔아홉 번 되살아나 내게 온 너...

우리 둘 다 잘 버틴 거지?




반지는 사파이어가 박혀 있었다. 네 머리만큼 푸르렀다.

햇빛에 반사된 보석이 유달리 반짝였다.

반짝. 뚫어져라 그 결정을 바라보던 당신이 탄성을 질렀다.

아아, 너는 여기 살아 았었구나.




그녀가 남긴 반지 두 개에 들어있었던 메모리 칩 둘.

백 번째 용.

천천히 눈을 뜬다. 


" 반갑소, 그대... 아니, 서방. 다시금 부를 수 있도록 허가해 주겠소? "


뒤에서 눈치만 보던 호라이즌의 멤버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웨딩 드레스를 건네준다.

부끄러워하면서도 기꺼이 입어보는 그녀.

두 번째로 입는 드레스인데, 추하지 않소? 고개를 저었다.

부수어버린 반지를 그녀의 약지에 끼우며 당신은 말한다.




내 생에 아내는 오직 너밖에 없었다, 라고.




당신은 그저 꿈을 꾼 것이다.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가 되어 '여러 난관' 들을 해결해내는. 

그리고 비로소 '누군가의 남편' 이 되는 그런, 

호접지몽의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