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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의 거래 거절로 인해 천인대들 사이에서 불만이 돌았다. 스콧은 천인대의 대장이자 대표로서 천인대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한다. 천인대의 장비는 물론이고 몸 상태까지 너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는 건 그가 모를 리 없었다. 매튜 역시 이 거래를 걷어찬 것이 무척이나 멍청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콧은 천인대들의 사명을 그들에게 다시 말해주면서 천인대들을 다시 정신차리게 했다. 그러나 스콧의 거래 거절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거기에 앙심을 품은 자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자연스레 천인대 안에서 스콧의 위상은 점점 떨어졌고 스콧이 보지 않을 때에 민간 지역을 습격하거나 기업을 습격해서 그들의 자원과 장비를 훔쳐오는 일이 수없이 벌어졌고 스콧이 직접 경고를 줘도 그들은 듣지 않았다.


사실상 스콧은 천인대들에게 거부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사명을 다시 깨달은 천인대들도 있기에 스콧은 마냥 거부당하는 위치가 아니었다. 천인대들은 둘로 갈라진 거나 다름없었다. 에반을 필두로 반 스콧파와, 스콧을 피두로 모인 친 스콧파. 매튜와 코나도 친 스콧파였다. 에반과 반 스콧파의 일탈은 날이 갈 수록 심해졌고 스콧이 하는 말이 그들에게 더 이상 영향을 줄 수 없게 되었을 때 에반은 자신들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기갑대에 붙었고 기갑대가 제시한 거래 내용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기갑대와 배신자 457명은 무기대와 과학대를 일시에 타격하여 그들의 세력을 완전히 흡수하였고 스콧을 중심으로 543명의 천인대들을 고립시켰다. 그들은 자신들이 거점으로 삼은 건물에 갇혔으며 그렇게 갇혀서 밖으로 못 나가고 있는 상황에 식량과 물도 떨어지고 이제 더 이상 무기를 쓸 수도 없었으며 유전병의 사망률도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스콧은 이 심각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매튜, 그를 사용했다.


우선 당장 시급한 것은 유전병을 완화하는 것이므로 스콧은 병을 완화시키거나 혹은 둔화시킬 수 있는 약이 반드시 있을 거라며 그걸 접수해오라며 매튜를 보냈고 매튜는 죽을 위기 끝에 약을 확보한 뒤에 돌아갔다. 이미 죽은 자들도 있었지만 아직 살아있는 자들이 더 많았다는 것은 유일한 위안이었다. 약을 강탈해간 것에 대한 보복은 곧바로 이루어졌다. 정찰을 나갔던 코나가 납치되고, 코나의 목숨을 대가로 당장 매튜를 보내라는 것이었다. 스콧과 천인대들은 이 일을 두고 크게 고민했지만 매튜는 단독적으로 그들에게 찾아갔고 코나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녀를 다시 스콧에게 보내고 자신은 배신자 일당에게 생포당한다. 생포당한 그는 배신자들에게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였다. 그 고문은 정보를 얻어내기 위한 고문이 아니라 그저 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가학적인 고문이었고, 동시에 그의 치유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잡혀있는 동안에 물리적인 고문은 물론이고 여러 약품을 통한 고문 및 실험도 당했고 그럴 수록 치유력은 더더욱 강해졌다.


돌아온 코나는 자신이 잡히면서 봐둔 비밀 통로를 스콧에게 말했으며 스콧은 모든 천인대들을 동원하여 매튜를 구출하고자 비밀 통로로 아무도 모르게 들어갔고 고문당하고 있는 매튜의 현장을 습격해 배신자 천인대들을 7명 죽이고 매튜도 구출해냈다. 스콧은 매튜를 앞세워서 코나의 정보에 따라 무기를 비롯한 장비들이 배치되어있는 곳으로 향해 천인대들을 다시 무장시켰고 모두의 무장을 확인하자마자 배신자들에게 대가를 치루게 하고자 공격을 명령했다. 기갑대들이 대기시켜둔 기갑도 강탈하여 배신자 세력과 기갑대를 동시에 공격했고 기갑대와 배신자들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공격 주도권을 빼앗아오려고 애썼지만 매튜의 존재 하나만으로 그들이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은 힘들었다. 천인대와 천인대가 서로를 죽이고 있을 때, 새로운 적이 가세했다. 새로운 적은 철충이었다. 이미 여러 기업과 국가를 무너뜨린 동시에 인류를 저항군이라는 규모로 축소시킨 철충들은 조금 특별한 뇌파를 감지해서 그곳을 향했고 거기엔 서로 죽이고 죽이는 천인대들의 전투 장소였다. 철충들은 무차별적으로 그들을 습격했고 천인대들은 자신들끼리 싸우다가 새로운 적이 나타나자 암묵적으로 싸움을 중단하고 그들에게로 총구를 돌렸다.


스콧은 철충 군단을 보며 말했다.


『전쟁이 시작되었군.』


매튜는 스콧의 옆에 있었기에 스콧이 말했던 인류의 재앙, 거대한 전쟁은 저들과의 전쟁을 의미한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허나 스콧은 배신자들을 방패 삼고 모든 장비와 과학 기술, 유전 기술을 확보한 채 저들에게서 후퇴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매튜는 배신자라 할지라도 한때 형제이자 동료들인 저들을 버리고 간다는 말에 경악하여 스콧에게 항명했지만 스콧의 뜻은 확실했다.


『아직 우리들이 죽을 때도, 죽을 곳도 아니다.』


그 말을 똑똑히 들은 그는 맨 앞에서 싸우고 있는 배신자와 천인대를 보았다. 한때 동료였던 만큼 그들은 서로의 합을 보였고, 개개인의 뛰어난 무력이 팀워크로 더더욱 강력해졌다. 철충에게 감염된 AGS들은 천인대의 무기와 기갑에 여럿이 터지고 파괴되었으며 AGS로는 보이지 않은 철충 개체들도 여럿 파괴하였다. 그러나 이미 여러 AGS를 감염시켜서 전장에 활용하고 철충의 개체들도 무수히 많았기에 고작 1000명 밖에 되지 않는 수로 저들을 막을 순 없었다. 그러나 스콧의 후퇴 명령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에반이 S5 기간테스 5체에 의해 찢어죽을 위기에 쳐하자 매튜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여서 그를 잡고 있는 기간테스 3체를 단번에 처부섰고 나머지 2체의 기간테스는 풀려난 에반이 파괴했다. 그렇게 에반을 구한 매튜는 스콧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는 맹인이어서 시선이 항상 한 쪽으로 향했지만 그건 앞을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차갑다. 기계보다 더 기계같은 자. 그저 지금 이 상황만을 기다리고 준비한 자....매튜는 아버지처럼 여기는 그에게 여러 실망을 느꼈지만 이번 것이 가장 심하다고 생각했고 결국 그의 눈치 하나 보지 않은 채 모든 천인대 형제들을 고무했다.


『천인대! 우리들은 파이로에게 들었던 인류에게 닥칠 재앙 혹은 거대한 전쟁을 지금 눈 앞에 목격하고 있다.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우린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을 것이다. 어차피 그러지도 못 해!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기억해봐라! 우린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였다! 우리가 했던 그 모든 행동들이 정말로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한 행동일까? 너희들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였나!』


매튜는 같은 천인대의 형제들을 혐오한다. 하지만 저들 모두 자신이 처한 상황과 다름없는 상황이었을테고, 저들 역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천인대가 해야할 잔혹한 일을 정말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자신도 그러했다면 저들도 그럴 것 아닌가. 에반처럼 누굴 죽이는 데에 쾌감과 희열을 느끼는 싸이코도 있을 테지만 저들이라고 처음부터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천인대에게 혐오와 증오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혐오감과 증오 못지 않게 형제자매들을 향한 애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 대상이 연인 코나일지라도, 아버지와 같은 스콧일지라도, 싸이코 에반일지라도 매튜는 모두들 동등하고 혐오하고 사랑한다. 자신 역시 이들이 저지른 죄의 공범이고, 절대로 속죄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하나다.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생각하는 형제자매들이라면....죽는 것 만큼은, 우리가 정하자.』


난 여기서 죽을 것이다, 라고 말하자 모두 말 없이 다가오는 철충의 군단을 바라보았다. 이 때 만큼은 천인대도, 배신자들도 한 마음이 되었다. '여기서 죽는다'. 뒤에서 그를 보고 있던 스콧은 작게 한숨을 쉬더니 그 후 천인대들을 향해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을지는 의문이지만 그의 지휘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났으니까.


『저런 괴물들을 상대론 기존의 전략 전술은 무의미하다. 그러니까 아직 준비가 더 필요한 건데....다들 이젠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처듣는군. 할 수 없지....천인대, 이건 내가 내리는 명령이 아니라 매튜가 내리는 명령이다. 여태 동안 여러 훈련과 실전을 거친 경험으로 저들을 상대해라. 공격!』


매튜를 포함한 천인대가 돌진했다. 스콧도 거기에 합류했다. 매튜는 뒤늦게 출발했음에도 나중에는 천인대의 가장 앞에 섰고 그대로 도약한 뒤에 2개의 클럽을 합쳐서 기다란 봉을 만들고, 봉의 타격부에 역장을 발생시켜 철충 개체들과 감염체들을 파괴했다. 뒤에는 천인대가 사용하는 기갑들이 불꽃을 내뿜었고 파이로의 기술력으로 만든 무인 전투기, 무인 전차 등등의 병기들도 철충들을 파괴했다. 그러나 가면 갈 수록 천인대의 수는 줄어들었고 기갑마저 철충에게 오염되어 철충 개체들과 감염체들을 파괴했던 화력이 그대로 그들에게 돌아갔다. 그럼에도 천인대들은 무서워 하지도, 주눅이 들지도 않았다. 철충 개체에 의해 가슴과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자의 얼굴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한 얼굴이었다. 천인대의 숫자는 900, 800, 700, 600, 500, 400명으로 점차 줄어들었지만 그 누구도 후퇴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른팔이 어깨째로 날아갔아도 왼팔로 무기를 잡고 휘둘렀고, 쐈다. 하반신이 파괴되어도 기어다니면서 철충의 다리를 부러뜨려 무너뜨렸고 머리 반쪽이 날아갔어도 여전히 싸우는 자 역시 존재했다. 매튜는 그 누구의 생사도 확인할 수 없었다. 코나, 스콧, 에반 그 누구 하나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파악 못 한다.


그래도 매튜는 싸웠다. 철충이 포위망을 좁혀오지만 그는 그래도 싸웠다. 그러다가 겨우겨우 에반이 살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에반은 왼팔이 날아간 상태에서 오른팔로 검을 휘두르면서 분전 중이었지만 뒤에서 한 철충 개체가 에반의 뒤를 기다란 칼날 손으로 관통했다. 가슴을 통해 칼날이 나온 위치는 심장을 비롯한 여러 내장을 관통한 공격이었다. 매튜는 절규했다. 철충은 절규하며 돌진해오는 매튜에게 이렇게 말했다.


『키키, 울어? 화나? 하등한 살ㄷ』


철충이 하는 말을 듣지도 않은 채, 말을 한다는 사실에 놀라지도 않은 채 매튜는 봉으로 그 개체를 마구 강타했다. 그 개체는 그의 첫 공격에 의해 죽었지만 매튜는 그것이 죽었다는 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두번째 강타, 세번째 강타, 네번째 강타. 그것의 조각이 하늘 위로 날아오를 정도로 매튜는 분노를 담아 공격했다. 그리고 그것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가늠이 안 갈 정도가 되자 매튜는 대량의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는 에반의 품에 얼굴을 파묻어 슬피 울었다. 하지만 그가 우는 것도 단 3초 만이었다. 자신의 몸이 붕 떠오르자 그는 시선을 아래로 향했는데 자신의 상반신이 날카로운 검에 의해 절단된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피가 묻은 칼날을 가진 것은 날카로운 머리의 왼쪽에 7개의 붉은 눈이 있고 전신이 검처럼 날카로운 철충이었다. 그의 상반신이 곧 아래로 떨어지자 그는 우득하고 목이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고 자신 역시 죽어간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흐려지는 시야에서는 한 천인대의 인원이 보였다. CT66 램파트의 발이 그녀의 몸을 밟은 채 못 움직이게 하고 있었으며 오른손에 든 총으로 그녀의 머리를 날려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흐린 시야는 곧 다시 선명해졌다.


램파트가 밟아서 곧 죽이려고 하는 자는 코나였으니까. 코나 역시 비명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램파트가 자신의 복부를 강하게 밟고, 총구를 거의 코 앞 거리에서 겨누고 있었으니 이제 자신도 죽음을 피하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램파트느 단번에 파괴되었다. 천인대의 강화된 동체시력으로 코나는 똑똑히 목격했다. 자신을 향해 달려든 건 인간 형태였고 곧이어 끝에서 램파트를 부순 존재가 매튜였다는 것을. 매튜는 상반신이 절단된 상태라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였지만 서있었다. 곧이어 코나는 매튜의 정상적인 왼팔과 어깨, 왼쪽 가슴의 아래와 옆으로 커다란 안구와 입이 이곳 저곳에 불규칙적으로 박힌 괴물의 몸체를 보았다. 매튜의 부러진 목은 어느새 치료된 상태였고 그는 땅에 누운 코나를 향해 말했다.


『코...코코코코코코코오니이이으읏윽으나아아아나아......무무무사아아아...앗아아아아....해애애액애애애?』


코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말을 할 수도 숨을 쉴 수도 있는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뒤에 어느 철충 개체가 다가온 것을 보자 그녀는 그걸 경고해주려고 했지만 '그것' 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개체의 머리를 잡고 그대로 터뜨렸다. 모든 몸이 검처럼 날카로웠던 그 철충이 파괴되고 '그것'은 하늘을 향해 인간의 목으로 울부짖다가 곧이어 몸에 커다란 입이 열리더니 코나가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는 커다랗고, 기괴한 고함을 질렀다. '그것' 은 뒤의 철충 무리들에게 돌진했다. 감염체들이 쏜 모든 탄들은 '그것' 에게 데미지를 주었지만 데미지를 받자마자 재생시키고 재생한 부위는 더 커지고 강해져서 철충 군단을 모조리 파괴하기 시작했다. 모순적이었다. 매튜의 머리는 울고 있었는데, 아래의 괴물의 입은 웃거나,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매튜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기괴하게 비틀린 그 목소리는 코나의 공포를 유발했다. '그것' 의 난동은 계속되었다. 그 어떤 철충도 '그것' 을 이길 수 없었다. 데미지를 주면 줄 수록 더 빠르게 재생하고, 재생한 부위는 더욱 더 커지고 강대해져서 어느새 대기업의 본사처럼 거대해진 '그것' 은 마지막 남은 철충을 입으로 씹다가 뱉었다.


현장에 있던, 그 많던 철충 군단이 '그것' 하나에게 모두 전멸했다. 코나의 눈으로 그건 일방적인 학살 아니, 도살이었다. 모든 것이 끝났음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코나는 그 때 슬쩍 위를 보았고 입 안에 무언가를 뱉더니 한 장치가 나왔고 그 장치의 버튼을 누르자 코나의 주변에 파란 팔각형 막이 생겼다. 곧 방금까지 철충과 천인대의 전투가 벌어진 지역에 동시다발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은 '그것' 을 고통스럽게 하였고 '그것' 은 다시 재생해서 더욱 커지려던 찰나에 단 하나의 폭탄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고 그렇게 재생보다 더 빠른 파괴를 당해 '그것' 은 사살되었다.


시간이 흘러, 매튜가 눈을 떴다. 머리가 어지럽고 지끈거리는 고통에 매튜는 천천히 일어섰다. 일어섰다고? 자신의 행동에 의문을 느낀 그는 슬쩍 고개를 아래로 내려 자신의 하반신을 보았다. 어느 새, 자신의 몸은 다시 재생된 상태였다. 검처럼 생긴 한 철충에 의해 절단되었는데 어째서? 왜 주변에 적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거지? 그는 자신이 괴물이 되서 철충들을 도살한 것을 기억하지 못 하는 상태였다.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섬광. 섬광, 고열, 굉음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상태인 그는 하반신 갑옷을 남긴 채 죽은 전우의 갑옷을 대신 입었고 그의 죽음을, 천인대 모두의 죽음을 슬퍼했고, 동시에 자신의 처지를 슬퍼했다. 어째서, 형제자매들은 전부 죽었는데 왜 나는 살아있지? 여기서 죽자고 모두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나는 살아있나...그렇게 절망하면서 그저 붉기만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믿지도 않았고 있다고도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제발 이번 만큼은 있기를 바라는 신이 있는 하늘을 저주스럽게 쳐다보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는 일어서자마자 총성과 함께 등에서 강한 고통을 느꼈고 앞으로 넘어지면서 뒤를 보았다. 뒤에는 얼굴에 큰 화상을 입고, 갈비뼈와 안의 내장이 보이고, 왼쪽 상반신이 전부 날아가버린 것으로 모자라 왼쪽 다리가 새까맣고, 가느다랗게 타버린 에반이 서있었다.


『역시! 살아있군!』 시체나 다름 없는 모습임에도 에반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는 일어서려는 매튜의 등에 다시 총알 한 방을 먹여주고 천천히 다가갔다.


『인정한다! 넌 진짜 끈질기다! 하지만 끈질겨서 고맙지, 나한텐! 난 내 손으로 널 직접 죽이고 싶었으니까! 이 개같은 새끼....』


『ㅇ...왜...날...』


『몰라? 모른다고?』 다시 등에 총 한방 갈긴 그는 킥킥 웃다가 피를 토한 후 말했다.


『널 처음 만난 순간부터 널 죽이는 그림을 계속 그려왔어. 무미건조한 인생 때문에 지친 얼굴, 정해진 틀 안, 잘 정돈 된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너....나랑 너무 비슷했어. 적어도 나랑 똑같으면 안 된다는 걸 파악했어야지!』


미친듯이 광소한 그는 다시 방아쇠를 당겼지만 매튜는 몸을 굴러 총격을 피했다. 동시에 매튜는 근처에 있는 권총을 주웠고 똑같이 그를 향해 겨누었다. 일어선 상태서 매튜를 겨눈 에반과 누운 상태에서 에반을 겨눈 매튜. 매튜는 끝까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에반을 향해 말했다.


『너...에반...!! 같은 형제자매들이 널 미친놈, 싸이코, 괴물이라 불러도 난 네 곁에 있었어. 그런 네가 나한테 이런다고?!』


『네가 말해봐. 너 스스로랑 똑같이 생긴 놈이 자신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한다고 생각해보라고! 안 죽이고 싶어 배겨?』


『너랑 내가 똑같아서, 그게 싫어서, 날....죽이려고 한다고? 역시 넌 미친 싸이코 새끼야...! 너랑 난 틀려! 완전히 다르다고!』


매튜가 가장 먼저 쐈다. 에반의 오른팔에 총알이 박히고 에반은 그대로 총을 떨궜다. 고통에 주저앉은 그의 오른쪽 어깨에 두 발을 쏜 매튜는 이젠 자신이 서있는 상태였다. 반대로 에반은 주저앉은 상태였다. 에반은 아파하면서 신음을 흘리다가 신음을 웃음으로 바꾸고 재밌는 개그를 들은 것처럼 천진난만하게 그를 보며 웃었다. 그러면서 매튜를 보며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틀려? 내가 너랑? 병신새끼....진실을 원한다는 눈이나 하고 있는 주제에, 너랑 내가 완전히 똑같다는 걸 모른다고?』


『틀려. 확실하게 틀리지! 난 적어도 나한테 잘 해준 놈한테 이렇게 총질이나 해대는 너랑은 틀리다고!』


『답답해 미쳐버리겠네! 아직도 몰라!? 천인대의 선발 기준을?! 나랑 난 똑같아 이 새끼야! 부모도, 과거도! 그저 지금만 틀릴 뿐이지! 하지만, 난 알아. 너도 너가 어째서 천인대가 된 건지 알기만 하면....나처럼 될 걸? 확실하게!』


매튜는 끝까지 알 수 없는 소리나 지껄이는 에반을 보며 딱 한 마디를 했다.


『너를 위한 지옥이 있길 바란다. 그래야 내가 죽을 때 널 찾아갈 수 있을테니까.』


『지옥....그거 괜찮네. 널 몇 번이고 죽일 수 있다니! 하루 종일해대도 안 질릴 거 같아!』


광소하는 에반의 머리에 총을 계속 쏴갈긴 그는 곧 약실에 총알이 다 빌 때까지 총을 갈겼다. 손에 든 권총을 휙 던진 그는 죽은 에반의 시체를 씁쓸하게 쳐다보고, 뒤를 돌아 길을 갔다.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에반의 시체를 계속 돌아보면서 그의 씁쓸하고 안타까운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등이 너무 아프다. 치유가 발동되지 않고 있다. 걸을 때마다 근육이 움직이고, 그 근육에 박힌 총알 때문에 더 아프다. 자신이 지금 어딜 향해 가는 거지? 모른다. 그저 주위에는 죽은 천인대 형제자매들, 파괴된 철충과 AGS....계속 그것만 보인다. 불꽃....연기....그리고 AGS의 파괴된 파편 아래에 힘겹게 앉아있는 어느 인간. 그 인간은 스콧이었다.


스콧이 보이자 최대한 빠른 걸음걸이로 가려고 하였지만 스콧은 자신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매튜를 느끼자마자 외쳤다.


『매튜! 오지 마라! 진짜 배신자가 널 보고 있다!』


하지만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는지 그는 스콧에게 계속 다가갔다. 스콧이 무사하다. 그가 무사하다는 걸 알게 된 그에게 그 어느 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스콧의 경고를 듣지 않았던 대가는 차갑고 날카롭고 두꺼운 것이 자신의 종아리를 찌르고 그것이 정강이를 뚫고 발을 찌른 것으로 안 멈추고 바닥에 박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두 다리 모두. 고통에 짧은 비명을 지른 그는 쓰러졌고 쿵쾅대는 심장 덕에 호흡이 가파라졌다. 스콧도 철충에게 당한 것인지 여러 상처를 가지고 있었고 그 중에서 가장 심한 상처는 배를 꿰뚫고 등으로 통과되어있는 파편이었다. 매튜는 바로 옆에 들린 걸음 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고 사람의 다리를 보자 고개를 위로 들었다.


『....코나?』


코나, 자신의 연인. 살아있었구나....그녀의 생존을 확인한 것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그렇다면 자신의 다리를 찌른 게 코나이고 스콧을 저렇게 만든 것도 코나인가? 하면서 잠시 혼란을 느낀 그는 코나가 스콧을 향해 가는 것을 보았다. 혼란은 정말 짧게 그의 머리 속에 존재했다. 뭔가 이상하다. 자신과 스콧은 지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다쳤는데 코나가 입은 상처라고는 피가 흘러나오는 긁힌 뺨의 상처 뿐이다. 그녀는 사지 멀쩡했고 전투로 인한 피로도 없어보였다. 움직이려고 하면 다리에 박힌 것에 의해 움직일 수도 없고 고통도 흘러들어왔다. 어쩔 수 없이 매튜는 눈 앞에 있는 코나와 스콧을 보기만 했어야 했다. 코나의 손에는 아마 자신의 다리를 관통한 것과 똑같은 것으로 추정되는 철봉이 있었다.


스콧은 코나를 올려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멍청이 에반이랑 다른 멍청한 놈들이 배신자일 줄 알았는데 완전히 허를 찔려있었군. 코나, 언제부터였냐.』


『으음...맞춰보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이전처럼 부드럽고 단아하지 않았다.


『저 벌레 놈들은 본래 우리들을 감지할 수 없다. 천인대는 그렇게 만들어졌지. 저 놈들도 역시 뇌파로 추적하는 것 같다만, 우린 평범한 인간이나 바이오로이드와는 뇌파가 틀리지. 그런 뇌파를 탐지했다면 반드시 배후가 있을 게다.』


『그게 저라고요?』


『다른 대답이 있다면 들어보고 싶군. 이거 외엔 생각이 안 나서 말이지.』


스콧의 추리에 코나는 웃음을 작게 터뜨렸다. 그녀의 눈도 이전처럼 동그랗고 아름답지 않았다. 칼 같이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으음, 당신에게 들킬까 해서 조마조마했는데 생각보다 저에 대해서 파악을 잘 못 하셨네요? 일단, 그 추리는 맞다고 해드릴게요. 천인대들 사이에서 생긴 유전병, 기억하시죠? 천인대들은 이제 인간이 아니니까 인간이 걸리는 대부분의 질병은 더 이상 걸리지 않죠. 하지만 그 덕에 천인대만 걸리는 질병도 생겨났구요. 이 유전병은....본래 저희들이 걸렸어야 할 병이 변질되었던 거라고 볼 수 있죠.』


『본래 걸렸어야 했다고?』


『휩노스 병.』


스콧과 매튜는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고 그걸 확인한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둘 다 동시에 똑같은 반응을 보이다니! 역시, 당신 둘은 영락없는...』


그녀의 말을 끊고 스콧이 말했다.


『그건 증후군이지. 멍청한 놈들이 그저 세균이나 바이러스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게 변질되었다고?』


『인간의 중추신경과 접촉하는 순간 중추신경을 변질시키고, 그것 때문에 죽어가죠. 하지만 천인대는 200년 이상이나 앞서간 유전학 기술로 모든 질병에 대한 면역성을 가지게 되었어요. 휩노스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천인대 수술을 받았다면 휩노스 병에도 면역이 있을 테지만 이미 걸린 사람들이 천인대 수술을 받으니까 그에 따라 변질되었던 거죠. 이 유전병은....대충 타타로스 병이라고 해두죠.』


『증상은?』


『천인대 수술로 인해 강화된 부위들이 썩어 문들어지고, 혈관에 흐르는 피가 오염되서 항상 고이죠. 고이는 부위는 너무 많고요. 초기 증상은 이 정도고....시간이 꽤나 지나게 되면 오염된 피에서 나오는 독소가 온 몸을 중독시키고 독소에 의해 중독된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테고 계속해서 아파오죠. 최후엔, 온 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으로 모자라 내장과 근육들이 모두 비틀리고, 안구와 뇌가 쪼그라들죠. 더 심한 건, 안구와 뇌가 쪼그라드는 단계에 들어서기 전까지 신경은 그대로 살아있고 의식도 그대로여서 스스로가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어가는데 정신은 또렷하고 그걸 느끼는 시간도 길다는 거죠.』


『매튜가 죽을 고생을 해서 얻어낸 약은 뭐지?』


코나는 매튜를 슬쩍 보다가 장난스럽게 윙크했다. 그는 코나의 윙크가 귀엽다고도, 아름답다고도, 장난기가 넘친다고도 할 수 없었다.


『치료제죠. 내 자기, 매튜는 천인대 수술이 아니라 화학 물질을 뒤집어썼고 그 화학 물질들이 적절한 조화로 자기의 몸을 강화시켰죠. 자기의 유전 정보를 기반으로 만든 치료제에요.』


『저 녀석은 타타로스 병과 휩노스 병에 면역이었나?』


『내 자기는 휩노스 병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알 수 없는 혼합된 화학 물질들이 휩노스 병을 막아주고 있는 거죠. 자기의 혈액이 내뿜어내는 치유 인자를 대량 배양해서 만든 약....그 약을 먹은 천인대는 자기의 치유력을 일부 얻어서 병을 이겨낸 거지만 불행하게도 뇌파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기존의 인간의 뇌파를요.』


그는 연인과 스승이 나누는 대화가 대충 뭔지는 이해했다. 유전병의 정체는 휩노스 병이 변질된 것이고, 천인대에게 먹인 약은 자신의 혈액이 가진 치유 인자가 가득 들어있는 배양액이다. 그리고 그 배양액은 먹는 자의 뇌파를 기존의 인간의 것으로 돌아가게 만든다면....그걸 전부 정리한 매튜는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저....천인대를 학살한 놈들은 그 약을 먹지 않았어도 결국 나 때문에 모두....』


『으음, 그건 아니야 자기. 천인대의 강화인간의 뇌파는 아예 저것들이 감지할 수 없어. 코 앞에 있어도 지나가겠지. 하지만 자기만은 예외야. 자기만은 죽여야 할 대상으로 보고 마구 달려들겠지.』


『그럼 우리가 막을 것이었다.』


『네. 그럴 테니까 결국 저것들에게 몰살당하겠죠, 지금처럼.』


코나는 목을 풀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읏흠! 자, 이제 당신 차례에요. 스승님....저한테 물어볼 게 참 많을텐데.』


『그렇다. 질문이 너무 많아서 날을 새야 할 거 같군. 난 그러기도 전에 죽을 테지....그러니까 죽기 전에 정말로 가장 알고 싶은 것들이 있다. 난전 중에 널 봤지. 입에서 꺼낸 보호막 생성기, 그건 파이로 최정상 3명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네가 가지고 있는 거냐.』


『....알고 있었군요?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모를 리가. 파이로를 관리하는 3명의 회장들....전부 내 동생들이다. 내 동생들을 향한 암살 위험 때문에 과학자 놈들을 쥐어짜서 만들어낸 최첨단 방어기기다. 너가 그걸 가지고 있다는 건....』


『거의 진실에 다가왔네요.』


『그럼 내 동생들을 전부 암살한 건, 네 년이냐?』


파이로의 3명의 회장. 그들은 스콧의 동생들. 스콧은 동생들의 죽음을 두려워해 과학자들을 재촉해서 최첨단 방어기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걸 코나가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매튜도 스콧도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었다. 파이로 회장 살해범은 코나다. 그리고 코나도


『네. 파이로 과학기술재단의 3명의 회장을 죽인 건 바로 저 코나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지만 너무 어두운 거 아닌가요? 천인대는 1,000명인데 거기서 암살범이 나오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시다니.』


스콧의 미간이 꿈틀거린다. 매튜는 스콧의 분노를 감지했으며 자신 역시 코나의 행동에 무척 실망한 상태였다. 매튜는 그런 코나에게 물었다.


『파이로의 내분도, 천인대의 약화도, 천인대의 내분도, 모두 파이로 회장들의 죽음에서 시작됐어. 그 스타트를 끊은 게....너였다고...?!』


『파이로가 했던 짓을 생각하면 목만 찔러 죽인 것도 모자르지. 안 그래, 자기? 자기에게 무고한 어린아이를 죽이라고, 단란한 한 가정을 몰락시키라고 명령한 건 이 남자를 통해서 말을 전달한 그 3명이잖아? 왜 그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거야?』


코나의 웃음. 아름답다. 하지만 매튜는 이제 저 아름다운 웃음에, 저 행복한 웃음에 감춰진 가시를 알아보았다. 저게 코나라고? 내가 사랑하는 연인인 코나가 맞다고? 점점 매튜의 호흡이 가파라졌다. 매튜는 가파른 호흡을 진정시키면서 스콧을 대신해, 자신이 묻고 싶은 것들을 전부 물어보았다. 그의 눈과 표정은 간절했다.


『그러면....대체 뭐야? 응? 뭐냐고! 언제부터 그렇게 변한 거야...?』


『변한 게 아니야, 자기. 이게 나야. 삼안, 블랙리버, 펙스, 덴세츠보다 훨씬 더 질 나쁜 파이로를 없애기 위해 가면을 쓴 거고. 자기한테 속여서 미안해. 하지만.』


『하지만 뭐?!』


『자기에게 도와달라고 말해봤자 자기는 안 도와줄 거 같았어. 오히려 이 늙은이에게 전부 말할 거 같았어. 난 자기를 정말 사랑하지만 자기는 나를 파이로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건 아닌 거 같았어.』


『파이로가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야! 난 천인대의 모두가 더 소중했어! 너도 소중했고!』


『파이로를 무너뜨린다는 건 천인대 역시 적으로 돌린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야. 자기가 말해봐. 날 위해 천인대를 적으로 두고 싸울 수 있겠어?』


그 말에 매튜는 대답을 하지 못 했다.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 했지만, 대신 이런 질문은 할 수 있었다.


『이 일을 언제부터 계획했던 거지...?』 코나는 그 질문에 오랫동안 잠자코 있다가 매튜에게 다가가며 그의 머리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내 과거를 말해줄게, 자기. 기억나? 엄마랑 아빠가 나쁜 사람이야, 라고만 했던 아이.』


『....!』


그의 최대 트라우마. 아이의 그 말은 그의 가장 큰 수치이자 자신 스스로도 느끼는 최악의 기억이었다.


『나 역시 그런 아이였어. 엄마랑 아빠랑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 때, 회색 갑주를 입은 괴한들이 엄마랑 아빠를 죽이고 내 모든 것 앗아갔어. 거기엔 한 맹인도 있었지. 맹인은 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나를 그대로 데려가서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를 전사로 길렀어. 맹인의 주도 아래, 난 천인대 수술을 받았고 천인대에 소속됐지. 그 누구도 내 편이 아니었어. 맹인도, 다른 천인대 자매들도.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식을 부리는 것 뿐....그거라도 부리지 않았다면 난 망가졌을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가식보다 천인대의 추악함이....파이로의 추악함이 더 눈에 띄였어. 자살도 생각했을 때....마침, 자기가 나타난 거야.』


매튜는 고개를 들어 코나를 마주 봤다. 코나의 얼굴은 행복과 만족으로 가득 차있었다. 코나는 턱을 괴고 있던 두 손 중, 왼손을 턱에서 때어내고 그 왼손으로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매튜가 바라본 그녀는 자신과 함께 17일의 휴일을 보낼 때, 항상 행복하고 신난 코나의 그 얼굴이었다.


『자기는 위태롭고, 불안해보였어. 자기를 보면 내가 떠올랐어. 막 천인대가 된 내가....하지만 나랑은 확실하게 틀렸지. 가식으로 웃고, 떠들던 나에 비해 자기는 모두와 거리를 뒀으니까. 천인대의 잔인한 임무들로 힘들어하는 자기가 결국 망가져서 천인대의 모든 일에 보람을 느끼도록 스스로를 속이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어. 그래서 자기를 혼자 둘 수 없었고, 자기를 나한테 의지하게 하고 싶었지. 근데 그 때, 자기가 나한테 고백한 거야! 내가 먼저 접근하려고 했는데 자기가 먼저 다가왔어. 아, 절대로 놓쳐선 안 되겠구나 하고 나 자신을 다잡았고 자기와 계속 행복하게 지냈지.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잠시 쉬고 있던 때에 자기가 드디어 현실을 보기 시작했어.』


『....내가 힘들어하던 그 때?』 코나는 매튜에 눈에 흐르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대신 훔쳐줬다. 그녀는 손가락에 묻은 그의 눈물을 혀로 핥았고, 짜지도 않은지 오히려 눈물이 무척 감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기, 날 엄청 강하게 끌어안았어. 솔직히 뼈가 다 부러지는 줄 알았지 뭐야? 그런데 그 만큼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자기의 손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행복해 미치겠더라구. 자기를 위로하면서 자기의 온기와 살갗을 느꼈어. 자기와 몸을 섞으면서 자기의 사랑을 받았어. 이렇게 돌아온 자기가 이제 나한테만 의지하니까 너무 좋았어. 자기가....』


『나랑 함께 했던 17일.』


『아아, 그 때.』 코나는 눈을 감고 추억을 회상했다.


『너무 행복했어. 인생에서 최고로.』


『나랑 17일 동안 함께 있으면서 웃었던 건, 내 사랑을 받아줬던 건 전부 거짓말이었어...?』


『그건 진심이었어. 결혼하자고 했던 것도 진짜로 결혼하고 싶었어. 그리고 이제 곧 할 거야.』


매튜는 그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좋아해야할지....하나도 몰랐다. 고개를 숙이고 말도 미동도 없어진 매튜를 보다가 다시 스콧을 보러 간 그녀는 코피가 턱까지 흘러내려와서 방울을 떨어뜨리는 걸 보았다.


『스승님이 말하셨죠? 잘 해보라고. 잘 할 거에요, 당연히.』


『....매튜.』


스콧이 그를 불렀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스콧은 신경쓰지 않고 말했다.


『난 곧 죽을 거다. 내가 기운을 잃어서 죽든, 이 여자에게 죽든 난 죽는 게 확실해졌다. 그러니까 너가 들었으면 한다. 귓구멍 잘 파두고 들어라.』


곧 스콧은 눈 앞의 코나를 보았다. 이젠 더 이상 청각도, 촉각도, 후각도...모든 감각으로 느끼는 것들이 밋밋하다. 배를 깊숙히 찌르고 있는 파편이 주는 고통마저도. 스콧은 매튜에게 하는 말을, 자신의 질문으로 들려주었다.


『매튜를 그렇게 사랑했다면 그냥 매튜랑 야반도주나 했으면 되는 거지, 뭣하러 이런 짓까지 벌이는 거냐.』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어요. 그 쪽에서 암살자 보내는 건 당연할테고, 또 저는 저를 망가뜨린 파이로의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싶었으니까요.』


『호오, 그럼 천인대는 네 그 비틀린 욕망으로 인해 피를 본 셈이군.』


『피를 봤다뇨? 천인대도 명령이었다고는 하지만 악행을 저지른 악당들이잖아요? 업보의 탑이라고 자꾸 말하신 거 기억 안 나세요? 그 탑이 천인대에게 따로 있을 줄은 몰랐나봐요?』


『그렇다면 매튜도 너도 죄인일텐데?』


『네. 그래서 저와 매튜는 다른 죗값을 치룰 거에요. 우선 당신이 먼저 치루고요.』


그의 배에 박힌 파편을 잡아서 더 깊숙히 찌르자 스콧은 크헉 하면서 피를 토하였다. 매튜는 고개를 들어 코나를 향해 작게 말했다.


『제, 제발 코나....스콧도 나쁜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그래도 이렇게 죽어선 안 돼. 제발...』


『....코...나.』


『네, 스승님.』


그의 작은 간절한 바램이 안 들릴 리가 없음에도 그녀는 무시하고 천천히 그의 배에 박힌 파편을 더 깊숙히 넣었다. 스콧은 매튜를 보았다.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에 울고 있는 매튜....그 모습이 너무 불쌍했는지 그는 눈물 한 줄기를 흘렸다. 하지만 스콧은 매튜에게 작별 인사보다 다른 말을 했다.


『매튜에게 폭탄을 떨어뜨린 그것들....대체 정체가 뭐냐....』


『스승님, 감각이 무뎌지고 있다고 하셨는데 정말이네요? 이 고통은 무시 못 하는 것 같지만. 솔직히 자기가 그런 괴물이 될지는 상상도 못 했어요. 그것도 화학 물질의 영향인가요? 일단 정체를 말해주기 앞서 파이로가 아닌 양지와 음지의 상황을 모두 말해드릴게요.』


매튜는 계속 고개를 저었다. 만일 스콧을 잃는다면 그는....


『저것들로 인해 인류는 멸망에 도달했고 저항군으로나마 남아있죠. 바이오로이드들도 자신들을 지휘해줄 인간이 없으니 지휘 권한을 리셋했죠. 당신의 후 세대에 희망을 걸어본다는 판단은 전부 허사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곧 휩노스 병으로 인해 저항군으로나마 남아있는 인류는 전부 몰살될 거고, 인류는 완전히 사라지겠죠. 괴물이 된 자기를 향해 폭탄을 떨어뜨린 건 둠 브링어라고 하는 전략공군이죠. 저것들이 한 가득 있으니까 무차별적으로 폭격하라는 지시를 신호를 조작해서 내렸는데 그걸 진짜라 믿고 떨군 거죠. 근데 어느 한편으론 고맙네요. 저 바이오로이드들이 아니었다면 자기는 계속 괴물인 체로 있을 테니까.』


『허어...허어...매...튜...』


코나는 이제 그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깊숙히 집어넣고 있던 파편을 확 뽑았고 스콧은 그 한번의 행동으로 완전히 목숨이 끊어졌다. 그의 목숨이 끊어지자 매튜가 절규하며 외쳤다.


『안 돼!!!』


죽어가는 그는 매튜 쪽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렸고 그가 듣지 못 할 만큼 작게 말했다.


『아들...아...』


스콧의 죽음에 매튜는 깊은 슬픔에 젖어 그저 흐느끼기 밖에 못 했고 울고 있는 그에게 천천히, 그녀가 다가갔다. 코나는 울고 있는 매튜의 고개를 들고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자...우리 자기. 이제 자기랑 나 둘 뿐의 세상이야....잠깐은.』


『아버지...!』


『죽은 사람은 그만 찾아. 내가 여기 있는데.』


그의 볼에 자신의 볼을 비비면서 코나는 곧이어서 그의 울음 소리를 막기 위해 그와 억지로 키스했다. 그저 가만히 있는 그의 입술과 혀를 자신의 혀로 맹렬히 탐하고 탐하고 또 탐닉했다. 3분 간 지속된 진한 키스로 그녀가 입을 때자 둘의 입 사이로 긴 끈이 늘어졌다. 매튜는 그런 그녀에게 화를 내고 싶었지만 코나는 너무나도 황홀해보였다.


『코나....이럴 거면 왜....왜 나한테 접근한 거야...』


그저 절규했다.


『나에게 이런 상처를 줄 거면 어째서 나와 연인이 된 거냐고....왜 이렇게 이기적이야!!』


『이기적...?』


『너를 사랑하는 거 못지 않게, 난 천인대 역시 사랑했어! 그 녀석들이 밉기도, 혐오스럽기도 했지만....그래도 천인대는 내 형제였고 자매였어....스콧도 교활한 늙은이라고 여러 번 생각했지만 그래도 내 아버지나 다름 없는 인물이야! 너도 알고 있었잖아!!』


코나는 어떤 기기를 다시 조작했고 조작이 다 끝나자 기기를 저 멀리 던져버렸다. 기기는 부서지지 않고 그냥 땅을 나뒹굴었다.


『저 녀석들도 우리랑 환경이 똑같았을 거 아니야...받아줄 곳이, 돌아갈 곳이 여기 밖에 없으니까 여기에만 의존했잖아...! 그래서 모두 미친 거잖아....』


『맞아, 자기. 천인대 모두, 미쳤었어. 자기처럼 이제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 하는 몸으로 만들어지고, 집이라고 할 곳도 여기 외엔 없어져버렸지. 모두 길 잃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여기에라도 매달렸을 거야. 아마 자기가 나를 사랑하는 것 만큼 천인대를 사랑했던 것도 거기에 따른 이유였을 거야. 에반이 이렇게 말했던가? 똑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있다고....』


『너도 나도 그런 사람이었어.』


『집은 이제 여기말곤 없으니까 제아무리 무고한 사람을 학살하라는 명령에도 따랐어야만 했고, 명령이었다지만 자기혐오가 솟아올랐을 거야. 그래서 자신을 속이고 정당화했지. 천인대는 속죄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들이지만....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 역시 그 죄의 피해자였다니....자기는 역시 착해. 사려깊어. 그러니까 천인대를 놔주지 못 한 거구나. 그런데 자기....나도 하나 질문이 있어.』


여태껏 코나는 질문을 답해주는 입장이었고 이젠 자신이 질문을 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매튜는 딱히 대답하라고는 안 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말을 들어보고자 잠시 말을 멈췄다. 그녀는 매튜의 마음을 완전히 끊어놨다.


『왜 그런 놈들에게 내가 자기를 넘겨줘야 해?』


『뭐...?』


『자기는 내 거야. 내 거. 내 거라고, 내 거.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것. 자기의 눈도, 자기의 입도, 자기의 귀도, 피부도, 근육도, 내장도, 뼈도, 손도, 발도, 자지도, 손톱도, 머리카락 한 올도, 피 한 방울도. 자기의 모든 것이 내 건데 왜 내가 자기를 공유해야해?』


코나의 말은 쉬지 않고 계속됐다.


『나한테 이기적이라고 했지, 자기? 자기도 이기적이야. 아까 말했잖아? 난 파이로에게 모든 걸 잃고 그들의 도구가 되었다구. 자기는 그런 나를 위로도 안 해주네. 상처받았어.』


『코나....날 가장 상처 준 사람은, 너야...』


『그건 상관없어. 자기는 죽어야 해. 내 사랑에 깔려 죽어야 해. 나도 자기랑 같이 죽을 거야. 평생....지옥에 가도 평생 함께 할 수 있게. 천인대가 길 잃은 사람들이라고? 우리들처럼 길을 찾지 못 했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그렇잖아? 스콧이 자기의 아버지였다고? 이제 자기의 부인은 나야. 자기, 내가 램파트한테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자기, 괴물이 되어서 날 구해줬어. 기억 못 하는 것 같지만 난 전부 기억해. 이제 질문하지마. 무슨 말을 할지 다 아니까. 파이로에게 복수하고자 지금까지 일을 꾸며왔고 계획도 철저하게 세웠지만....그런 건 이제 전부 부차적인 이유로 돌아섰어. 내가 이런 일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자기를 독점하기 위해서야. 그녀의 행복한, 황홀한, 사랑에 가득 찬 말에 매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짓밟고 불태워 없애버린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니라 자신의 연인이었다는 진실에 그는 그저 눈물만을 흘린 채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녀는 그의 눈물을 해석했다.


『나와 영원히 함께 하는 게 그리 기뻐? 나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뻐...너무 기뻐. 너무너무 기뻐. 정말 기뻐. 정말 기뻐. 정말 기뻐. 정말 기뻐. 정말 기뻐. 정말 기뻐. 정말 기뻐. 정말 기뻐. 정말 기뻐.』


그를 억지로 일으키자 그의 다리를 관통해있던 철골로 인해 그의 뼈와 근육, 피부가 손상되었지만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영원히, 평생, 앞으로도, 계속 나랑 함께야. 사랑해, 매튜. 아아, 너무 사랑해 매튜. 매튜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서 미치겠어. 그 누구에게 넘겨주지 않아, 매튜. 내 거야, 매튜 자기는 내 거야. 지옥에서도 항상 함께 불타자.』


그리고 그녀가 조작한 기기로 인해 다시 돌아온 둠 브링어의 바이오로이드가 일시적으로 하나의 폭탄을 떨어뜨렸고, 그들은 폭탄이 착탄하여 퍼진 강렬한 섬광, 엄청난 고열과 강력한 굉음, 그 후에 발생한 폭발이 일어났고 둘은....거기에 휩쓸렸다.



☆ ★ ☆ ★


강렬한 섬광, 엄청난 고열과 굉음을 끝으로 번쩍 눈을 뜬 그는 마구 뛰어대는 심장과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몸, 그리고 코나에게서 느꼈던....오싹한 것을 느꼈다. 모닥불은 다시 꺼졌고 밤이 된 상태였다. 허억 허억 하면서 숨을 쉬는 그는 무언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이 감지되는 곳을 바라보았다. 무인도의 밤은 아주 깜깜하고 불이 없다면 어느 무엇도 볼 수 없다. 마침 그의 눈 앞에는 여러 붉은 빛들이 보였다.


철충에게 감염된, AGS들이 6체나 보였다. 그는 잠깐 잠에 들었을 때 꿈으로 구현된 과거에 의해 몸이 덜덜 떨리고 정상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머리는 차갑게 돌아갔다.


도망? 불가능. 방어? 불가능. 무기? 없음. 은신처? 만들지도 않았음. 어차피 뇌파로 인해 어디에 숨든 자신을 찾아낼 게 분명함.


오르카 호를 탈출했을 땐 바이오로이드가 자신에게 부상을 입히지 않으려고, 입혀도 최대한 경상으로만 끝내려고 소극적이게 교전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레오나가 자신을 향해 조금만 살기를 담은 공격 가했더라면 탈출은 실패하고 확실하게 제압당했을 것이다. 인간에게 해를 끼쳐선 안 된다는, 바이오로이드의 철칙이 되려 그녀들을 묶은 족쇄가 되었던 것이고 자신은 온 몸에 쇠사슬과 무게추를 달고 싸우는 자와 싸워 이긴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 철충에 감염된 AGS들은 그런 것이 없다. 철충과 만날 수 있다는 리리스의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예상하지 못 했지만.


하지만 어쩌면....하고 그는 생각했다. 죽지 못 했던 자신이 이제 죽을 수 있을 거라고 그는 기대했다. 자신을 도와주려고 했던 리리스와 모두가 자신을 욕할 때 옆에 있어주면서 응원해주었던 여러 바이오로이드들이 기억난다. 그녀들이 갑자기 보고 싶다. 심지어 자신을 내쫓았던 마리, 메이, 칸, 레오나, 레아마저도 보고 싶다. 그러나 AGS들은 그에게 더 이상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를 향한 공격을 시작했고 그 역시 여기서 죽되 최대한 맹렬하게 싸우다 죽자고 그것들과 맨손, 맨몸으로 교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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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과거씬 끝. 이제 본편 다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