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갓 스무살이 되어 왕위에 오른 여왕은 귀족들 앞에서나 전쟁터에서싸울때나 항상 냉철한 모습만 보이는데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과감한 정책들을 속전속결 진행하는 여왕을 두고 어린 것이 독기를 품었다, 냉혈한이다 하며 손가락질 했지만 점차 그 결정들이 선정을 베푼 것으로 돌아오자 칭송하기 바빴어

하지만 이런 결정의 과정 중에는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 귀족연합의 수장인 공작부인이 있었고 여왕에겐 어려서부터 왕가와 항상 대립하던 모습으로만 기억되었기에 눈엣 가시처럼 보였어

그러던 어느날 여왕의 무리한 정복 활동 중 병사들을 이끌던 여동생이 적군의 함정에 빠져 큰 부상을 입은채 돌아오게되는데

여왕은 동생이 아픈 모습을 보고나서도 귀족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각오에 세뇌되어 병력에 피해를 끼친 여동생을 크게 꾸짖으며 막사 주변 사람들을 전부 물러가게 만들었고 여동생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어

귀족들은 막사에서 빠져나와 여왕의 행동을 두고 독하기로 소문나더니 하나뿐인 혈육에게도 냉랭하다고 연신 혀를 내둘렀고

공작부인은 이 일을 회상하다가 다시 여왕의 막사로 발걸음을 돌렸어 항상 귀족들을 대표하며 왕가와 대립해왔지만, 어린 자매를 자식으로 둔 서른 중반의 어머니로서 이 일은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이런 공작부인의 우려는 이내 거품처럼 녹아내렸지 막사 바깥으로 새어나오는 소리는 여왕의 흐느낌이 분명했으니까

막사 안에 누가 들어오는 줄도 모르는건지, 여왕은 간이 침대 앞에 무릎꿇은채 깊게 잠든 동생의 손을 쓰다듬으며 연신 미안하다 말하고 다리를 감싼 갑옷 위에 눈물을 떨궜어.

이윽고 뒤에서 공작부인의 헛기침 소리가 들리자 울음을 멈추더니 돌아보지도 않고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어

"분명 모두 물러가라 했을텐데, 과인을 능멸하는겁니까?"

이미 예상한 답변이라는듯 공작 부인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대답했지

"송구하옵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무례를 범했나이다. 내일 바로 철군하는게 어떠신지요, 폐하."

공작부인의 발언에 '철군'이라는 단어가 들리자 여왕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닦을 생각도 않은채 등을 돌려 마주보았어.

"철군이라니. 곧 코닿으면 넘어질 거리에 적들의 수도가 있는데 그게 무슨...!"

"이제 그만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폐하."

"...솔직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처음부터 무리한 전쟁이었습니다. 선왕의 바람이셨다곤 하나, 이미 수복한 땅을 잠재우는 것에도 한계이옵니다. 또한 오늘입은 병력 손실 또한 만만치않습니다. 그리고.... 공주께서도 입은 부상이 크시지 않사옵니까."

"....이런 말을 하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항상 내 말에 반대만 하더니. 꼭 내가 거부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에 찬 듯한 말을 하는 이유."

"귀족들을 대표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폐하께 무례를 범했사옵니다. 하지만... 저 또한 폐하의 신하이옵니다. 더이상 폐하께서 혼자만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소신은 원치않습니다."

"......."

"국정도 좋지만 부디.. 옥체를 훼손하지마소서, 폐하."

여왕은 항상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공작부인의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 한 말들이 쏟아지는걸 들으며 잠시 고뇌하다가 울음이 다시 터져나왔어.

"미안해요... 내가 당신을 너무 나쁘게만 바라봤어."

마침내 여왕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흐느껴우는 어린 소녀를 바라보던 공작부인은 어느샌가 자기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소녀를 품에 안고 토닥거렸어.

"아닙니다. 제 역할은 언제나 이런 것이었습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폐하."

"왕이 되고 어떻게 해야할지 너무 무서워서... 계속 차갑게만 행동했는데...흐흑.."

"...잘 하셨습니다. 하아... 정말로... 흑. 잘 해내셨습니다. 선왕께서도 장하게 생각하실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마세요. 언제든 도움을 원하신다면, 그 손을 제가 잡아드리겠사옵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공작부인..."


그리고 다음날 여왕은 공작부인의 말대로 군사를 돌렸고 여동생을 병원에 옮긴뒤 깨어나자마자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하느라 정신이 없었음

이후의 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얼음같았지만 한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는데

"공작부인 저 손 좀 잡아주세요."

"이, 이런 식으로 잡아드린다는 소리는... 흐읏.. 잠깐.."

"뭐 어때요? 언제든 잡아준다면서요~"

"고, 공주님께선 왜 계시는..! 아아..!"

매일같이 침대로 불려온 공작부인에게 손 좀 잡아달라고 앵기면서 침대에 쓰러뜨리곤 공주와 함께 범한다는거였음.


마무리 엉성한데 어제 쓰다가 졸려서 잔거라 지금보니 오글거려서 걍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