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님, 기사님! 용은 얼마나 강해요?”

“세상을 전부 불태워버리고도 남을 정도로 강하단다.”

“그러면 왜 그들은 세상에 나서질 않는 건가요?”

“내가 용이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아니? 단지 소문으로는 세상의 균형을 위해서라나 뭐라나”


어렸을 적 부모를 잃어 고아원에서 자란 내게 용사와 마왕의 격돌, 영웅들의 마수 처지 같은 영웅담은 하나의 동경이었다.

그들의 우정과 사랑, 모험에 나 자신을 투영하였고 나는 이야기 속에서 그들처럼 영웅이 될 수 있었으니깐.

이따금 오는 왕국의 기사들은 너무나도 듬직해, 나는 그들의 뒤를 쫓으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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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전쟁들은 다수의 고아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대부분 도시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철의 마찰음이 마을을 덮은 날, 나 또한 부모님을 잃었다.


전쟁의 최전선에 있었던 마을은 격동을 견뎌낼 힘이 없었고, 그대로 무너앉았다.

사랑하는 부모님, 동생. 항상 고기를 더 잘라주던 정육점 아저씨. 툴툴대지만 마음은 넓으셨던 촌장님.. 그리고 내 소꿉친구 아라까지..

전쟁은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되었다.


내 앞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부모님, 함성을 지르는 기사들. 

모든 것이 트라우마처럼 가슴에 자리 잡아, 최대한 멀리, 기억에도 안 나는 곳으로 달렸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나처럼 전쟁고아들이 모인 휴전지역의 한 고아원.

인근에 용의 숲이라는 용들이 거주한다는 거대한 숲이 있어, 함부로 철기를 휘두르거나 마법을 쓰지 않는 곳.

그 안전성에 인근 지역이 발전할거란 많은 사람의 예상과 달리, 오히려 범죄자나 나 같은 고아들이 대피하는 곳이 되어버린 곳.

그런 공간에서 나는 고아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고아원은, 갈 곳을 잃은 아이들을 전쟁 병기로 기르는 공간이었다.

훌륭한 병사와 노예를 납품하여 원장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곳.

나와 고아원의 다른 아이들은 남몰래 이곳을 전복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계획은 우리 중 배신자로 인해 바로 원장의 귀에 들어가, 나와 주동자들은 독방에 가둬졌다. 


“서준아. 어제는 재호가. 이틀 전에는 세연이가. 사흘 전에는 서연이가 사라졌어. 나도 이제 곧 사라지는 걸까?”

독방이라 해도 벽은 얇았기에 옆 방의 소리는 들려왔다.

“걱정 마. 우리는 살아남을 거야. 꼭. 살아남을 거야.”


그런 기대와 달리, 2일이 지난 후, 나만이 남게 되었다.

아무리 모든 걸 각오했다고 해도 죽음은 두려웠다,

차라리 먼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홀로 남아 그 압박감과 두려움에 몸을 가둘 수 없었다.

떨리는 두 다리를 팔로 감싸며 나는 끝을 기다렸다.


해가 지고 달이 고개를 들 때, 굉음이 바깥에서 들렸다,

캬오오오- 하는 어떠한 생물의 울음소리가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그저 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저릿저릿한 이 기분.

이것이…. 용이란 건가?


거대한 충격이 저택을 덮쳤다.

동시에 벽이 무너지며, 밖이 보였다.

밖이다. 나갈 수 있다. 나는, 살 수 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신발도 없이 맨발로 허기진 몸을 이끌고 무작정 달리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거대한 두 날개를 지닌 존재가, 빠르게 활강하며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고, 사방에서 종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용은 한번도 마을로 내려온 적이 없었을텐데.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녔다. 오로지 나의 생명뿐.

나의 탈출을 눈치챈 원장이 호위를 시켜 나에게 뭐라 외치지만 들리지 않는다.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면 아무 데도 좋다.

그때, 내 시야에 거대한 숲이 보였다.


불가침 영역. 너희는 여기로 오지 않을거야.

나는 절대로 죽지 않을거다.

살아서 죽은 이들의 복수를 해주겠어.

나는, 너에게 굴복하지 않아.


숲 앞에 멈춰서 뒤를 돌아보고는,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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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달렸을까, 다양한 생명체가 숲속에서 보이길 시작했다.

하나같이 위험한 마수 또는 마물들.

평범한 어린아이였던 내가 그들을 당해낼 수 없었기에, 무작정 돌고 돌았다.


시간 감각이 둔해지고,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간다.

거대한 나뭇잎에 몸을 숨겨 잠들며, 마수 시체를 먹으며 연명했다.

맨발에서는 자갈이 박혀 피가 계속해서 흘렀고, 옷은 거의 다 헤저 이제는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계속.. 얼마나 돌았을까, 눈앞에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깨어진 거울 조각처럼 크게 갈라진 채로, 공간 그 자체를 찢고 있는 이질적인 무언가.

거울 너머는 해가 떠 있었고, 모든 것이 푸르렀다.

어두운 숲속 마물에게 쫓기는 나의 처지와 정반대의 공간.

나는 홀린 듯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와아..”

입이 쩍 벌어질 듯한 풍경.

이야기 속 무릉도원처럼 구름이 근처에 떠 있으며, 신수들이 노다니고 있다.

나무에 맺힌 과실은 과즙이 셀 정도로 탐스러웠으며, 냄새 또한 달콤했다.


꼬르륵-

굶은 지 오래된 나는, 허기에 과일 하나를 베어 물었다.


!!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맛.

세상의 모든 꿀을 한 곳에 담은 듯한 달짝지근함과 파란 바다가 펼쳐지는 청량함.

허겁지겁 주위에 있는 모든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하나하나를 먹을수록 힘이 넘쳐나고, 그전까지의 허기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먹어도 먹어도 포만감이 들지 않지만, 기운이 넘치는 과일.

나는 그 나무에 열린 과일을 다 먹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때였다,

배가 아닌, 단전 부근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빠져나오려 하는 것을 느꼈다.

마치, 풍선 안에 든 물이 허용량을 초과한 듯, 모든 방향으로 날뛰고 있었다.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어, 바닥에 엎드린 채, 들숨 날숨을 뱉었다.


허억- 허억-

통증은 더욱 강렬해졌고, 급기야 폭발하듯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어, 고통을 감소시키려 했지만, 애꿎은 어금니에서 피만 흘러나올뿐,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안돼, 난 아직 복수를 갚지 못했어!!”

몸을 지렁이처럼 움찔거리며, 파동을 흘려보낸다.

그렇지만, 워낙 강대한 힘에 결국 의식을 잃어버렸다.


“응? 어찌하여 인간이 이 장소에? 호오…. 재미있는 상황이로구나.”라는 말이 얼핏 들린 것 같지만, 더는 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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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긴 어디?”

“인간의 아이야. 일어나자마자 하는 말로는 너무 예의 없다고 생각하지 않나?”

“너는 누구지?”


불타오르는 빨간 머리에 빨간 눈을 가진 남자는, 근육질의 몸매에 어울리는 험상궂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말할 때마다 눈썹이 움찔거리는데 신기한 자였지만, 이윽고 느껴지는 그 강대한 중압감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어..어..”

“크림슨. 너무 간 것 같소. 그대로 힘을 쏟으면 죽을 것이오, 그 아이.”

그런 빨간 머리 남자의 팔에 손을 데는 하늘색의 긴 머리를 가진 남자.

차분한 인상의 허리까지 뻗은 머리. 숨을 내쉴 때마다 그의 입에서 하얀 눈이 내렸다.


“페일, 이런 인간을 내게 가져온 이유는 뭐지?”

“재미있지 않소? 용들 이외에 출입이 금지된 용역을 경계를 뚫고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나무 한 그루에 열린 모든 용과를 다 먹다니! 단언컨대, 내 수만 년 용생 중 처음일 것이오. 궁금해서 미치겠군, 다만, 내가 의학 지식이 부족하기에 그대에게 데려온 것일 뿐.”

“용과는 성룡도 3개 이상을 먹으면 벅찰 텐데?”

“그래서 데려온 것이잖소. 이래서 빨간 것들은”

“그거 차별 발언이야 알아? 애초에 이 인간은 살 수 없어. 마력이 아직도 폭주 중인데, 내가 강제적으로 누르고 있는 것뿐. 이미 그릇이 깨졌거니와, 인간 주제에 무슨 용과야, 용과는.”


멍하니 그들의 말을 듣던 중, 도저히 넘길 수 없는 말을 들었다.

“내가 죽는다니? 무슨 말이야!”

“저거 아직도 상황파악 못하네. 넌 좀 더 자라.”

“무슨!!”

갑자기 눈앞이 햐얘지고,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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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스칼렛이 실험을 한다 했지 않았소?”

“내 딸일은 어떻게 알고 사는 거야?”

“인간 가지고 실험을 한다는 데 모를 리가 있나. 늙어서 노망이라도 난 거요?”

“후.. 내가 다른 레드 드래곤이었다면 넌 이미 불타고 있었을거야.”

“껄껄껄. 고룡 중에서도 최강인 내가?”

“마법이면 몰라도 육체는 내가 최강이지.”


“논점을 점점 벗어나고 있는 것 같소.”

“뭐?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지? 아! 이거?”

“이거라니, 인간한테.”

“잠깐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는 존재들인데, 뭐. 예전에 그 용사였나? 개는 좀 쓸만하더만.”

“어쨌든, 그를 살릴 수 있겠소? 나는 너무나도 궁금하오. 과연 용과를 먹은 인간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이건 스칼렛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아버지. 이미 듣고 있었어요.”

“기척을 느꼈으니 알고 있었소.”


“페일 아저씨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그래서, 딸아. 이 안건을 어찌 생각해?”

“흐응~ 뭐, 외모는 합격. 나머지는 제가 용인으로 만들면 써먹을 수 있겠는데요?”

“용인?”

“아빠도 참, 제가 저번에 말한 제 수하요. 그 악마들이 쓰는 사역마 같은.”


“근데 그건 사역마랑 달라서 일평생 한 명만 둘 수 있다며”

“그래도, 이 정도 마력에 외모면. 가까스로 합격은 주려구요.”

“난 반대다! 어딜 외간 남자를!”

“난 찬성이오. 인간의 용족화라. 최근 흥미로운 일이 많아져 기쁘기만 하구려.”


“단! 조건이 있어요!”

“조건말이오?”

“페일 아저씨랑 아빠도 이 아이의 수련을 도와주세요!”


“내가 내 딸 옆에서 서성댈 남자를? 헹! 차라리 지금 죽여버리고 말지!”

“속성의 왕 두 마리를 스승으로 삼을 남자라. 유희로는 최고로군. 난 동의하지.”

“약속한 거예요??”

“싫어”“알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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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정신이 좀 들어?”

“여긴 어디야?”

“이러니 기절하지. 용에게 대들고 살아남은 인간 순위를 매기면 넌 1등일걸?”


아까의 남자와 같은 빨간빛의 머리를 가진 소녀.

쾌활한 인상과 시원한 말투로 내게 계속 말을 한다.

용이라니? 그제야 눈을 들어 그녀의 머리 위를 보았다.


뿔이다. 거대한 붉은 뿔 두 개가 그녀 머리 양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기분이 좋은지, 꼬리는 좌우로 흔들리며 날개는 끊임없이 퍼덕거린다.


“잘 부탁해! 내 호위야!”

“엥?”


날 보며 웃음을 짓는 그녀를 보고, 무심코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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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고마워! 세계관 추가한다길래 중간에 끊었어

소재 준 애가 추가하면 이어서 쓸게! - 완결

2편 : https://arca.live/b/yandere/21840689

3편 : https://arca.live/b/yandere/21877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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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종합 : https://arca.live/b/yandere/20758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