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갓 스무살이 되고 아버지에게 술을 배운 적이 있는데 그때는 소주 다섯 잔에 뻗어버렸다. 아버지는 내게 '어디 가서 술 마시지 마라'고 말씀 하셨고, 나도 내 주량을 고려해서 대학시절에도 술은 입에도 안 대었다.


 그 후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도 회식은 웬만하면 피했다. 이 때문에 입사 후 몇주간은 눈칫밥을 먹으며 지냈지만 현재에는 아무도 뭐라 안한다.


 오늘은 회식날인데 이번엔 오랜만에 참여해서 밥만 좀 먹다가 나갈거다. 집에 대량으로 해둔 카레가 질려서 회식으로 저녁을 대신할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남들과 조금 떨어진 식당 구석에 앉으니 옆에 웬 여성 한 명이 방석을 깔았다.


"어머, 김대리가 있다니 별일이네요. 회사에선 매일 보지만 회식자리에서는 처음이네요."


 회사에서는 익히 절벽위의 꽃이라고 불리는 김얀진 과장이다. 예쁜 여자가 서른도 안되어서 과장의 자리를 달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녀는 남직원들에게 인기가 많다.


 나 역시 그녀의 실력을 높게 사기에 그녀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졌다. 다만 나만 유독 챙겨주는게 부담스러울 뿐이다.


"아... 그냥 밥만 먹고 가려고요. 과장님은 웬 일로 여기를... 과장님은 자리 있지 않으세요?"


 과장은 내 말을 듣고선 와이셔츠의 단추를 두어개 풀고 내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전 그냥 김대리 때문에 왔어요. ...것보다 목마르지 않아요? 이거 좀 마셔보세요."


 과장은 그렇게 말하며 잔에 가득 담긴 콜라를 넘겨주었다. 평소에도 과장은 나에게 커피등을 자주 선물했기에 나는 아무 의심 없이 콜라를 입에 대었다.


 콜라는 탄산이 적었고 약간 쓴 맛이 났다.


"과장님 저기 이거... 혹시 술 인가요?"


 술은 안마신지 오래 되었지만 그 알콜의 맛을 잊을 리가 없다. 하지만 과장은 눈을 초승달 같이 뜨고 말했다.


"...아니요? 후후"


 나는 그 말을 듣고 계속 식사를 이어갔다. 아무래도 내가 스트레스 때문에 착각 했나보다.


 내가 식사를 마치자 그녀는 콜라 한 잔을 다시 따라주었다. 꺼림칙한 예감에 잔을 거부하려 했으나 활짝 웃는 그녀의 모습에 얼떨결에 잔을 받아 마셨다.


 이번엔 확실히 술이었다. 한모금 마시니 눈이 확 풀렸다. 더이상 마시면 돌이킬 수 없겠다 싶어서 잔을 내려놓고 집에 가기 위해 비틀거리며 서류가방을 집었다.


"벌써 가려구요? 장난이었는데... 저 김대리 술 싫어하시는 거 몰랐요... 제가 미안한 마음에 숙취해소제 드릴게요."


 그녀는 내 손에 숙취해소제를 한 잔 쥐어주었다. 나는 이 상태로는 집에 가기 힘들겠다 싶어서 그녀가 준 숙취해소제를 마셨다.


 켑슐이 한 알 있는 숙취해소제 였다. 켑슐이 딸려있는 건 유산균 음료에서나 보던 거라 신기했다. 하여튼 이제 집에가기 위해 자리를 뜨자 그녀가 같이 일어났다.


"제가 역 앞까지만 바래다 드릴게요."


 그녀는 내 어깨를 잡고 가게 밖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가게의 주차장으로 갔다.


"도착했어요. 김대리."


"여기는 역이 아닌데요..."


 그녀는 내 말을 무시하고 나를 자신의 차 앞으로 끌고갔다.


"저는 술 안마셨거든요. 제가 운전해서 데려다 드릴게요. 뭐, 제가 김대리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겠지만... 후후"


 나는 불안한 마음에 그냥 택시를 타겠다고 말하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좀처럼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숙취해소제에 이상한거 없었어요? 그 캡슐. 그거 삼키면 큰일나는데. 웬만하면 몇분 안에 뻗어요."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자, 타세요."


 나는 점점 흐려져가는 정신을 애써 붙잡으려고 했으나 몸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조수석에 앉혀졌다.


 그녀가 내게 안전벨트를 채우는 동안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음란한 냄새가 났다. 그녀는 내게 살짝 입을 맞추고 음흉하도록 얇게 뜬 눈으로 미소지으며 말했다.


"얀붕아 너 술 깨면은 우리 알몸으로 마주볼텐데 괜찮겠어? 그렇게 되어도 안부끄럽도록 내가 존나 기분좋게 해줄게♥️"


후일담


 나는 그날 이후 퇴사하고 그녀와 곧장 결혼했다. 첫째를 낳고 나서 그녀는 가정이 있다는 중압감 때문인지 일을 더 열심히 했다. 그 결과 그녀는 순식간에 부장으로 승진했고, 현재 나는 유치원에 입학한 아들을 돌보며 전업주부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