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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 그 얄팍한 감정이 나를 지배했을 때,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아는가.


슬픈 표정이었나. 분노한 표정이었나. 그것도 아니라면 웃고 있었던가. 정답은 마지막 「웃고 있었다」였다.

꼴사나웠다. 남자답지 못했다.


나의 친구보다 나 자신이 뒤떨어진다는 사실이 내 심장을 옥죄어왔다. 더욱 끔찍한 점은 친구와 나를 비교하는 주체 역시 나였다는 점이다.


“오, 좋은아침!”

“좋은아침.”


친구는 오늘도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다.

얀붕은 입꼬리를 올리며, 친구를 향해 그 위선이 섞인 미소로 답했다.


오늘도 역시 너는 빛나는구나.

사람의 얼굴이 빛난다는 말이 허언이 아닐 정도로 친구의 얼굴은 오늘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친구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사기캐였다.

성적 우수, 스포츠 만능, 심지어 키도 크다. 그뿐인가, 아버지는 국내 유망 기업의 사장이었으며, 성격까지 시원시원했다.


학교는 물론이고, 학교 밖에서조차 친구의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한. 소위 인싸라고 불리는 부류였다.


그와 반대로 얀붕은 정반대였다. 성적 평균. 스포츠는 꽝에 가까웠고 키는 평균보다 살짝 위를 웃도는 정도였다.

가정환경 역시 남들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말을 잘하기는 커녕 새로운 사람과 대화하기를 꺼려하며 피했다. 성격은 더 가관이었다. 열등감은 심하지. 자기혐오는 눈뜨고 못봐줄 정도. 얀붕은 고작 그 정도의 남자였다.


자신과 정반대인 친구와 어떻게 10년이 넘도록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는 얀붕에게 조차 의문이었다.


친구에게는 늘 여자들이 꼬이다시피 모여들었다.


강한 수컷에게는 자연스레 암컷들이 모여든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 당연한 이치. 그것을 잘 알고 있던 얀붕이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었다.


하지만 열등감이란 것은 꽤나 강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신경쓰지 않겠다 다짐을 해봐도, 조금씩. 조금씩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대체 뭐지...’

친구는 여자라면 발에 치일 듯 들러붙는데.

지신은 단 한 번의 연애도 못하고 있는 꼴이라니. 사춘기의 정점에 다다른 소년에게는 꽤나 자존심에 흠집이 나는 일이었으리라.


자기효능감은 떨어질 때로 떨어졌고, 결국 얀붕은 자신에 대한 믿음마저 의심하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얀붕 역시 괜찮은 외모에 속했지만 친구가 옆에 있을 때에 객관적의 수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저기...얀붕아...”


하지만 그런 얀붕에게도 기회는 찾아왔다.

자신을 좋아한다며, 사랑한다고. 그렇게 자신에게 찾아왔다.


뛸 듯이 기뻤다. 옆에 있는 완벽한 친구가 아닌 저를, 보잘것없는 자신을 좋아해 준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으며 또한 감격스러웠다.


평생의 숙원이던 우울과 열등감도 깨끗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저기 얀붕아.. 네 친구 말인데...”


내게 다가온 그녀의 실체와 목적을 알아차리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씨발년. 아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평소에도 내가 아닌 친구를 바라보고 있었다는걸.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친구에게 접근하기 위해 이용했던 편리한 버림 말. 그것이 자신의 쓰임 용도였던 것이다.


대체 왜! 대체 왜! 대체 왜!

자신이 이런 비참한 꼴이 되어야 하는가.

얀붕은 매일 밤마다 이불에 머리를 처박고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래야만 속에 쌓인 울분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듯했으니까.


자신이 그저 친구로 향하는 중간 루트였다는 사실을 자각한 이후, 몇 번인가 더 여자들의 고백이 있었다.

허나, 결과는 소름 끼치도록 똑같았다. 


친구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저 자신 같은 못난 놈이 친구라는 사실이 친구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우울감과 열등감은 겉잡을 수도 없이 커졌다. 티는 안 냈지만 성격은 부정적으로 물들어갔고, 얀붕은 이윽고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었다.


여자라면 이젠 넌덜머리가 났다.

그 위선 가득한 교묘한 짐승들에게는 더 이상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친구의 연애를 도와주며 잘 되길 빌어주는, 그저 그런 가증스러운 위선의 탈을 쓴 채로 살았다. 내면의 자신이 울부짖는 절규 섞인 고함에 귀를 틀어막은 채로.


그러던 도중, 반에서는 전학생이 왔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무진장 예쁘다느니, 레전드라느니. 주변 녀석들이 계속해서 떠들고 있었지만 큰 관심은 없었다. 얀붕과는 관계없는 일일뿐이었으니까.


“자자, 주목. 오늘 전학생이 왔습니다. 반 친구들에게 자기소개해 주세요.”


언제나 그렇듯 출석부를 옆구리에 낀 중년의 여교사는 평소와 같은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담임을 따라 반으로 들어온 그녀와 우연찮게 눈이 마주친 얀붕은 무심결에 들고 있던 펜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얀순이라고 해. 앞으로 잘 지내보자.”


사람이 저 정도로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인가.


여자에 신물이 난 얀붕조차도 매료될 만큼 아름다운 외모. 마치 천상의 실력을 가진 조각가가 자신의 평생을 걸려 완성시킨 하나의 전능한 작품을 보는 느낌이었다.


혐오에 속박되어 기능을 멈추었던 얀붕의 심장이 다시금 뛰는 순간이었다.


제아무리 여자를 믿지 않겠다 맹세했어도 별수 있겠는가?

얀붕 역시 또래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갈구했던 한 소년의 불과했다. 마음속에 호감이 생기는 것을 억제할 만큼의 힘은 얀붕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얀붕아 안녕. 좋은 아침이야!”


대체 무슨 일인지 사고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멀리서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만족했던 그녀가 자신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다니. 꿈인가 싶었다.


“얀붕아 뭐해?”


그녀는 얀붕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주었다.

생글생글 웃음 지으며 얀붕을 향해 장난을 치기도, 또한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런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얀붕은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저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지.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수도 없이 많이 겪어본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고, 관심을 가졌던 여자들의 마지막 목적지는 한 곳뿐이었다.


‘너도 결국 친구가 목적이었겠지.’

부정해봤자 상처받는 건 자신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얀붕이었기에, 얀붕은 결국 그 사실에 순응하기로 결정했다.


“얀붕아-! 주말에 영화 보러…”

“미안 약속 있어.”


얀순의 관심에 포함된 불순한 의도가 다분하다 생각했기에, 얀붕은 더 이상 그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겠다 마음먹었다.


때문에 그녀의 말에 무심하게 답했고, 때로는 들리지 않는 척 무시해버리기도 했다. 이렇게라도 그녀를 자신의 곁에서 때 놓으려 한 것이다.


“뭐야- 둘이 분위기 뭐야...!”


나는 얀순과 친구가 단둘이 이야기하고 있을때면, 익살스럽게 그 안을 파고들어가 어떻게든 이어주려고 다분한 노력을 들였다.


한순간이라도 호감을 가졌던 그녀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다. 선남선녀. 그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이었기에 행복하길 바랐다.


잘 먹고 잘 살라지. 뭐.

얀붕은 친구와 얀순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버리는 길을 택했다. 그것이 자신을 감정을 마모시킬지라도 말이다.





**





그와의 첫 만남은 버스였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그저 그런 버스.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얀순이 모르고 방향을 착각해 탑승했다는 점이었다.


얀순이 버스를 잘못 탔다는 것을 인지하고 하차하려 던 때, 버스는 순간적으로 급정거를 해버렸다.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가는 자신을 그가 받아주었다.


“괜찮으세요...?”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얀순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던 모양이었지만 얀순은 똑똑히 보았다.

진심으로 자신을 생각해 주던, 그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그 순간, 얀순의 마음속에는 무언가 새로운 감정이 태어났다. 일평생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간질간질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탄생했다.


처음에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그를 떠올리면 가슴이 매어지듯 답답해지고,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다시 한 번만 그를 만나고 싶다.

얀순의 머릿속에서는 그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한 번만, 그의 얼굴을 확인하면 이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


그가 평소 타는 버스에서 얀순은 계속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내리면 잠시 뒤따라 내려 몰래 그를 추적했고 집까지 알아냈다.


숨어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사진까지 찍었다.

그의 모든 것을 알아내고 싶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이런 짓 하면 안돼는데에...”


이런 짓은 마치...마치 스토커 같잖아!


머릿속에서는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몸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와 만나고 싶어. 그와 이야기하고 싶어. 그를 가지고 싶어. 얀순의 머릿속은 욕망으로 어지럽혀졌다.


전학한 학교에 들어가서 조차,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에 첫 걸음을 내딛은 순간. 얀순은 두 눈을 의심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요 며칠 동안 따라다니며,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그가 교실 뒷자리에 앉아있었던 것이었다.


얀순은 너무 행복한 나머지 위로 상승하려는 입꼬리를 겨우 참아내며, 인사를 끝마쳤다. 


‘운명.’

그래, 그와 자신은 운명이라고.

얀순은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기 위해 열심을 다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에 대한 감정을 드러낸다면, 혹여 그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그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하며 얀순은 얀붕과의 관계를 최대한 전진시켰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얀붕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 뒤. 우리들은 서로를 아끼는 연인이 되리라고. 얀순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얀붕아-! 주말에 영화 보러…”

“미안 약속 있어.”


어느 순간부터 얀붕의 태도가 냉혹할 정도로 차갑게 돌변했다. 얀순이 무슨 말을 해도 살갑게 받아주었던 그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걸까.

아무리 떠올려도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어 얀순은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뭐야- 둘이 분위기 뭐야...!”


아니야. 아니란 말이야.

얀붕은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얀순이 바라는 것은 얀붕 뿐이었다.

옆에 있는 친구는 애당초 관심조차 없었다. 대체 왜 그걸 몰라주는 걸까. 얀순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왜 몰라주는 거야... 나는 너만...얀붕이 너만 있으면 되는데에...”


사소한 오해가 풀 수 없는 매듭을 묶어가고 있던, 7월의 무더운 여름날. 


언제나 그렇듯 학교 한구석에 숨어 얀붕이 하교하길 기다리던 얀순은 한 여자아이가 얀붕에게 다가가는 것을 목격했다.


옆반에 있었던 얀진이라는 아이였다.

대체 왜 자신의 얀붕에게 접근하는지 몰래 숨죽여 지켜보는 얀순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얀붕아...”

“응, 무슨 일이야? 얀진아.”

“사실...널 좋아해! 나랑 사귀어 줘!”


얀진의 속셈은 뻔했다. 얀붕을 통해 친구에게 접근하려는 심산이 이었다. 그것은 숨어서 지켜보는 얀순도, 심지어 고백을 받은 얀붕 역시 알고 있었다.


‘도둑고양이 같은 년!’

얀순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얼마나 강하게 움켜쥐었는지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저런 쓰레기 같은 벌레 년들이 얀붕에게 고백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자신의 얀붕이는 벌레 년들의 고백을 거절했으니 이번도 마찬가지리라.


얀붕의 옆에 있는 그 친구를 노리고 얀붕이를 향해 더러운 손을 뻗어오는 저 벌레 년을 이번에도 얀붕은 성대하게 걷어차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얀순의 생각은 빗나가고 말았다.


얀붕은 무척이나 지쳤다. 감정이 망가졌고, 삶이 피폐하게만 느껴졌다. 허울뿐이 관계라도 좋았다. 그동안 자신 역시 위로받고 싶었고, 이런 피폐한 생활은 안 해도 되겠지라며 생각했다.


“그래. 좋아.”


얀순은 들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떨어트려 버렸다.

다행히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으나, 얀순은 얀붕의 대답에 크나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아니야...아니야...거짓말이야...이런 거..”


얀순은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고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얀붕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얀붕의 모든 좋은 점을 말할 수 있는 것도 나뿐이었다.


그런데 저년은 뭐야?


왜 나의 얀붕이를 가로채는 거야? 

너는 얀붕이를 사랑하지도 않잖아. 얀붕이를 좋아하지도 않잖아.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왜 나에게서 얀붕이를 빼앗아 가는 거야?

그 자리는 내 것이어야만 하는데. 어째서 네가?


“되돌릴 거야...무슨 수를 쓰더라도...”


얀붕이의 옆자리는 내 것이여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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