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누구나 한 번쯤은 부모에게 바락바락 떼를 쓰며 바닥을 구르는 어린아이를 본 적 있을 것이다.


 원하는 걸 쟁취할 수 있는 수단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아이들로선, 나름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을 선택한 것일 테지만, 솔직히 제삼자 입장에선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뭐 그리 통탄스러운 일이 있다고 세상 떠나가라 울어대며 악을 써대는 건지. 그 너절한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전 세계의 출산율이 급감하고 있는 이유가 절로 통감이 될 지경이다.


 여자의 눈물이 무기라면, 아이들의 눈물은 흉기다. 그것도 클라스터탄 융단 폭격급.


 그리고 그러한 광경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예비 부모들의 머릿속엔, 은연중으로라도 꼭 이러한 사고가 스쳐 지나가기 마련이다.


 먼 훗날 내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게 된다면, 내 자식은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로 자라게 두지 말아야지. 나는 안 되는 걸 안 된다고 단호히 말하는 참된 부모가 되어야지.


 실제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현역 종사자들이 듣는다면, 코웃음 치며 술안주로 삼을만한 망언이다만. 


 무릇 사람이란, 자신이 실제로 해보지 않은 일들은 우습게 보고 마는 못된 천성이 있기에, 모두가 거쳐 가는 길이라고 미약하게나마 변호해주고 싶다.



''할.거.야.''



 내 허리를 붙들다시피 끌어안은 성녀님이, 맡겨놓은 걸 내놓으라는 듯이 내게 무언가를 종용했다.

 

 까치발을 든 채, 종종 제자리에서 뜀박질도 한다. 


 또래 아이들이 할 법한 귀여운 행동들이긴 하다만,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광증 어린 적안에 담긴 감정의 색채가 너무 거무죽죽하기 때문일까. 애틋함보단 공포심이 앞질러 움텄다.



''····안 됩니다.''



 벌써 몇 번째 내뱉는 건지조차 가물가물한 거절 의사. 허나 내 허리를 구속한 팔의 힘은 도무지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학창 시절, 인생에서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절세의 미녀가 내게 매달려줬으면 좋겠다고 급우들끼리 시시덕거리곤 했었는데, 비원을 이뤘음에도 달성감이 들긴커녕 마음만 착잡해졌다.


 성녀님께 아침 식사를 건네주러 왔을 뿐인 내가 어째서 성녀님에게 허리를 붙잡힌 채로 실랑이를 버리고 있는지에 대해선, 씹덕 라노벨 주인공들이 도입부에서 주절거리는 것과 같은 구구절절한 설명은 불필요했다.


 동화책을 잘못 골랐다. 


 지금 이 상황을 초래한 내 죄악은,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었으니까.




◈◈◈




 성녀의 전속 수호사제. 


 이름은 참 거창하다만, 이름이 번드르르한 직함일수록 이름값을 못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수호사제의 업무는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다. 성녀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 뒤치다꺼리를 도맡는 게 다인 심부름꾼. 아니, 사실상 돌보미에 가까웠다.


 그 외, 미국 하이틴 영화 보면 아가들이랑 놀아주고 돈 받는 교정기 낀 고딩 보모들 있지 않은가. 내게 이 직책은 딱 그 정도 인식이었다. 


 그래서 원인 모를 이유로 하루종일 고장 난 TV만 바라보고 있는 성녀님의 안구 건강이 걱정돼, TV로부터 그녀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는데, 이게 은근히 먹혀들어, 이렇게 남는 시간마다 동화책 낭송회를 여는 것이 어느덧 나와 성녀님 사이에 일과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한창 꿈을 먹고 자랄 나이인 성녀님이 이따금 동화책의 내용을 흉내 내고 싶어 하는 건 당연지사. 나도 한창 코 흘리고 다녔을 무렵엔, 친구들과 끼리끼리 모여 영웅 놀이에 심취해 있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 마음은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 


 하필이면 공주님과 왕자님의 키스신을 흉내 내고 싶다고 졸라댈 줄이야.


 여태까진 괴물을 무찌르는 기사 놀이라던가, 용을 사역하는 마법사 놀이 같은, 건전한 각본이 주를 이뤄왔기에 이런 핑크빛 각본을 성녀님과 연기한다는 건, 내겐 너무나 곤혹스러운 처사였다.


 

''성녀님. 거듭 말씀드렸지만, 남녀가 서로 입을 맞추는 건 장래를 맹세한 사이가 아니라면 섣불리 해선 안 되는 행위입니다. 더욱이 당신은 순결을 지향해야 하는 성녀. 저는 성녀님을 비호하는 수호사, 윽····.''


''····''


''물지 마세요····.''



 배를 깨물렸다.


 아무래도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다. 평소에도 하면 안 되는 일을 주의 주거나, 존댓말을 하면 화를 내긴 했다만,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건, 매사에 무감정했던 그녀로선 정말이지 드문 일이었다.


 삼류 감성 드라마에서 종종 소재로 써먹는, 사람의 마음을 배워가는 로봇이 연상될 정도로 감정 표현이 드문 그녀니까. 가끔 전원 버튼을 잠깐 꺼두고 싶어진다는 점도 비슷하다면 비슷한 부분이려나.



''이러셔도 소용없습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계속 이러시면 다음부턴 동화책 낭독회는 없습니다. 머리 쓰다듬어주는 것도, 안아드리는 것도 해드리지 않겠어요.''

 

''····''


''휴우.''



 내 결연한 의지가 전해진 것일까. 드디어 성녀님께서 나를 해방해 주셨다.


 아무래도 배를 깨물렸을 때,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며 엄살을 부린 게 먹혀든 모양이다.


 털썩.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는 성녀님의 침통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솔직히 그깟 키스가 뭐 대수겠는가. 나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다. 전생이었다면 말 한 번 못 섞어봤을 경국지색의 미인이 내 입술을 원한다는데, 여기서 혹하지 않을 남성이 누가 있을쏘냐.


 하지만 내 맡은바 입장과 세간의 시선을 생각하면, 여기선 단호히 내쳐야만 했다.


 일평생 성녀님을 보필하는 입장인 수호사제가 제 주제를 파악 못 하고 성녀님의 입술을 탐하려 했다는 추문이 다른 신도들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해봐라, 바로 그날이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하는 날이 될 게 분명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느 견습 사제가 성녀님의 그림자를 밟았다는 이유만으로 새끼손가락의 손톱을 뽑히는 형벌을 받아야 했을 정도니, 무지성하게 키스 같은 걸 갈겼다간 목이 뽑혀 나간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참고로 그 불쌍한 견습 사제가 바로 수년 전의 나 되시겠다. 솔직히 지금도 성녀님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때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종종 새끼손가락이 아려오곤 한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성녀님. 나중에 점심시간에 다시─''



 콰직.


 위기를 넘긴 자아가 이제 막 이완 되려 한 그 순간, 귓전을 때리는 살벌한 음색과 망막을 휩쓰는 선혈의 색채가 평온에 취하려던 내 자의식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정말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하면 사람의 뇌는 수 초 정도 얼을 탄다고 하던데, 그 말 그대로였다. 눈 앞에 펼쳐진 믿기 힘든 현실을 머리가 한사코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듯한 메스꺼운 감각이 시야를 뭉뚱그렸다.


 성녀님이. 뾰족한 쇠붙이로. 자신의 손등을 내려찍고 있었다.



''성녀님─!!''



 콰직. 콰직. 콰직. 


 내가 황급히 몸을 날리는 그 잠깐 사이에도 성녀님의 자해는 멈추지 않았다. 


 일정한 각도로, 일정한 속도로, 날카로운 쇠붙이를 제 자신의 손을 향해 사정없이 내려찍고 있는 그 모습은 감정이 없는 기계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다소 거칠게, 그녀의 손에 쥐어진 흉기부터 빼앗았다. 흉기의 정체는 아침 식사 때 사용한 식기용 포크. 아무래도 조금 전 나를 끌어안은 순간 몰래 빼돌린 모양이다.


 밥을 먹을 때는 손에 쥐는 시늉조차도 하지 않았던 걸 어째서····.



''상처···· 상처 보여주세요!''  


''····'' 

 


 붉게 물든 성녀님의 새하얀 손을 조심스레 들어 올리며 상처를 살폈다. 


 지독했다. 손등, 손가락 마디, 팔목, 앞뒤 안 가리고 자행된 상흔과 비강을 쑤시는 비릿한 혈향엔 무심코 눈살까지 찌부리고 말았다.


 다 큰 어른도 비명을 내지를 만한 중상일 터인데, 정작 당사자인 성녀님께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제 손을 부여잡고 있는 내 손을 멍하니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신이시여. 저는 당신의 손가락. 한낱 어린양. 당신의 권능 아래 이 땅의 모든 것에게 안식을 안겨줄지니. 그 영광은 모두 당신에게 바치겠나이다.''



 가슴팍에 있던 로자리오를 손에 쥔 채, 신속히 영창을 시작했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건, 수호사제의 기본 소양 중 하나인 회복의 권능. 


 주문이 쓸데없이 길고 오글거려서 남들 보는 앞에선 가급적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째서 이런 짓을····.


 의구심으로부터 비롯된 잡념을 애써 떨쳐내며 손안에 신성력을 끌어모으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내 머리카락을 살며시 들어 올린 누군가의 달뜬 호흡에 의식이 비상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콰당.



''큭····!''



 간발의 차였다. 황급히 뒤로 몸을 빼지 않았더라면 내 입술에 닿고 말았을 보드라운 감촉이 뺨을 스쳤다.


 그것이 또 다른 누군가의 입술의 감촉이었다는 건,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법한 명백하고 자명한 사실.


 가급적 외면하고픈 뼈아픈 진실이었다.


  

''웨, 웰나····!''


''····''



 동요의 감정이 역력한, 스스로 생각해봐도 다소 바보 같은 목소리로 그녀를 다그쳐보았지만, 애석하게도 내 탄원은 그녀에게 닿지 못한 듯 보였다.  


 새빨간 피로 얼룩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제 자신의 입술을 톡톡 즐겁다는 듯이 매만지고 있는 그 인형 같은 얼굴은 언제나처럼 무감정해 보였지만. 


 내 기분 탓인 걸까.


 어쩐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