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군 새끼들 참 좆같이 싸운다고 생각한 적 없냐?

사천왕이란 놈들은 맨날 힘 아끼다 지지, 하다못해 용사 파티 다구리치기라도 하던가



 그런데 그게 필연이라면?

그러니까 사천왕이 힘을 아껴야만하고 자기들끼리는 협력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이번 주제는 다인종 국가의 원심력과 지정학으로 살펴본 필멸의 마왕군이다.



 우선 마왕과 그 휘하 세력들의 특징을 정리해보자.

1. 다종족으로 구성된 군대

2. 사천왕이라 이름붙은 초고위 간부의 존재

3. 낮은 중앙 통제력

4. 마왕성은 물류의 중심지가 아닌 극단적으로 방어에 치중된 지형에 위치

5. 고급 간부로 갈수록 고위 마물의 비중이 높아짐

6. 땅이 척박하다, 사람이 살 수 없다는 묘사

7. 주기적인 인간계 침략

8. 전대 마왕이 인간들에게 사망했어도 어째서인지 새로운 마왕이 계속 태어남



 러시아의 체첸 학살, 중국의 신장 위구르, 미국과 흑인이나 유럽과 이슬람 같은 사례들만 봐도 알겠지만 '한 국가 내에서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두 집단이 존재하는 것은 사회 갈등과 분열'을 의미한다.



 그러니 마왕군처럼 인종을 넘어서 아예 종족이 다르다면 시위나 데모 수준을 넘어서 아예 국가로 기능하는게 불가능할 정도로 내부 갈등이 심각하다고 추측할 수 있어.



 하지만 로마나 페르시아처럼 다인종 국가이면서 오랫동안 제국을 유지한 국가들도 있는데? 혹은

 인종 차별은 유럽이 제국주의를 통해 식민지를 넓힐 때 발명되었고 오늘날처럼 세분화된 인종 구별과 정체성은 근대화 이후부터 이루어졌는데?라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모두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야.

다만 몇가지 첨언이 필요한데 우선 

 근대 이전엔 하루에 이동거리가 30km를 크게 넘지 못 하고 대부분 농부들이라 자신의 경작지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서 다른 인종끼리 만나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 제국의 유지가 가능했고


 인종 차별이 본격적으로 부각된건 생활 반경이 넓어진 근대 이후라 그 때부터 인종 차별이 일어난거 아니냐란 주장이 있을 수 있는데 구글에 ancient racism만 쳐도 알 수 있듯이 

인종차별은 적어도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있었다.

 그러니 '인종차별은 발명된 적 따위 없어.'



 마지막으로 지금처럼 세분화된 민족 정체성은 근대 이후부터 찾아볼 수 있단 주장은 어느 정돈 맞다라고 볼 수 있지만 꼭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어.



 당장 우리나라 역사만 봐도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정복한 후 백제와 고구려에서 부흥 운동이 벌어지지? 그런데 정작 신라 본토에선 안 벌어져, 왜 그럴까?



 이유는 삼국 시대에는 오늘 날의 대한민국보다 더더욱 세분화된 민족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이야.

외모에선 차이가 없지만 오늘 날의 우리가 일본인과 한국인의 민족 정체성을 다르게 보듯이 삼국 시대에는 백제인, 고구려인, 신라인의 민족 정체성이 달랐단 뜻이야.


 그래서 신라인에 맞서 고구려인과 백제인이 힘을 합쳐 맞서는 경우는 있었지만 신라 땅에 사는 신라인의 경우 고구려나 백제인과 유전적인 의미의 인종은 같았지만 같이 부흥 운동을 하는 경우는 없어.

 신라인은 한민족이 아니라 신라인이니까.



 다만 통일 신라,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며 계속 희석되고 융합해 현대에는 고구려나 백제인, 신라인이 아니라 한민족이란 정체성이 남은거지.



 현대의 세분화된 민족 정체성도 마찬가지야 식민지 시기의 독립 운동가들이나 선동가들이 조국의 역사를 재조명하며 부여된게 있다고 할 수 있지.


 다만 그건 외모가 거의 비슷한 민족들끼리의 이야기고 앞에서 봤듯이 흑인이나 백인같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경우의 차별은 그 뿌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깊어.



 여기서 결론을 다시 정리하자.

 '민족 정체성은 반드시 외모나 혈통으로 정의되지 않으며 문화나 시대의 흐름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면 마지막 물음이야.

민족 정체성이 문화나 시대 흐름에도 영향을 받는다면 문화적 동질성만으로 인종을 넘어 같은 정체성을 가지는게 가능하지 않을까?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냐?

 수 십년동안 명시적인 인종 차별을 폐지해 이젠 노인들이 어린 시절에 몇년동안 차별 받은게 전부고 현재는 오히려 소수자 전형으로 역차별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갈등이 심각한 미국을 봐라.


 태생부터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은 다른 이민자들을 쉽게 포용할 수 있는 개방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도 저 꼬라지다.


 적어도 현재까지 인간이 시도해본 어떠한 정치 제도나 방법으로도 피부색같이 외양적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두 인종을 완전히 융합하는건 불가능해.



 첫번째 결론을 내리자.

다양한 종족들이 사는 마계에서는 평화로운 방식으로 단일 정권을 이루는건 불가능하다.



 평화로운 방식이 불가능하다는게 뭘 뜻할까?


뭐긴 뭐겠냐? 제국주의지

마왕군은 사천왕과 마왕으로 대표되는 몇몇 강력한 종족들이 나머지 모두를 억압하고 학살하는 제국주의의 군대다.



 다만 몇몇 강력한 종족들이라고 말했듯이 어떠한 단일 종족도 혼자서 마계 전체를 지배하는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어.


 여기서 1가지 사실이 더 파생될 수 있는데

마왕의 종족을 도와서 마계를 지배하는 종족들은 마왕한테서 막대한 자치권을 얻어냈을 것이다.


 얼마나 자치권을 후하게 퍼줬는지 마왕도 왕(王)에 불과한데 사천왕따리도 왕(王)을 자칭할 수 있지. 사실상 연합왕국 형태라고 볼 수 있어.



 이제 1,2,3,5는 설명했어. 다종족 국가인 경우 몇몇 지배종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고위직을 독점하지, 그리고 마왕도 얘들 도움이 없으면 나라 전체가 쪼개지니까 빌빌 길 수 밖에 없어.



 그러니 중앙 통제력은 없고, 사천왕 사이에서도 동료가 아니라 이웃나라 왕일 뿐이니 목숨 걸고 서로 지켜줄 필요도 없지. 그런 짓했다가 배신당하면 이를 대신 처벌해줄 중앙 정부가 없으니까.



  6의 경우도 어느 정돈 설명할 수 있을거다.

외부의 인간들이 이 땅을 가질려면 마왕군이 골머리 앓았던 그 저주받은 지정학을 그대로 얻어맞게 되니까.

중동마냥 허구한날 자살 테러, 무장 강도, 납치, 강간이 벌어질텐데 사람이 살 수 있겠냐?

 판타지 판 언럭키 아프가니스탄이 바로 마계라 할 수 있어.



 여기서 1가지 합리적이지만 끔찍한 가정 하나만 더 하면 4, 7을 설명할 수 있어.


 종족별로 출산율이 다르다면?

고위 악마의 경우엔 아예 번식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매우 느리게 한다고 묘사되지만 고블린의 경우엔 인간보다도 훨씬 번식력이 좋지.



 미개발 상태라서 서로 숫자가 적을 때에는 고위 악마가 이기겠지만 경작지가 늘어나 생산량이 늘면 고블린은 그 속도에 맞춰 늘어나겠지만 악마는 그러지 못 하겠지.

 악마들이 차지해야할 생산량 파이를 고블린들이 잠식해 들어가는 모양새다.



 맞아 어떠한 가정을 해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강한 종족과 약한 종족이 달라져.



 힘의 밸런스가 깨졌다면 그 다음은 당연히...

 혁명이다.


 이제 4도 설명이 가능해

아까 고위 악마와 고블린만 비교했지만 마계에는 더더욱 많은 종족들이 살고 있을테니 혁명도 자주 일어날꺼야.


 마왕성을 물류의 중심지에 설치해 반란군들에게 어서 내 모가지 가져갑쇼할 생각이 아니라면 오지에 쳐박아둬서 시간을 버는게 현명하겠지.



 이게 싫다면?


 맞아, 대량 학살, 제노사이드다.

주기적으로 다른 종들을 학살해 숫자를 줄여야하지.


 중국이나 소련처럼 밀어버리고 치울 수 있음 좋겠지만

그랬다간 민심이 씹창나고 옆동네 다른 사천왕들이 세력을 넓힐 기회로 보고 겐세이를 놓겠지.


 그럼 어떻게 죽여야 별 탈 없이 끝낼 수 있을까?


 흐음, 그런데 내가 직접 죽이는게 안 된다면 남이 죽여주는건 된다는 소리 아니야?

 예를들면 사악한 인간군들이 고블린들을 죽이는거면 어때?


 맞아, 마왕군은 태생적으로 일정 주기마다 인간계를 침략할 수 밖에 없어. 

 다만 마계 종족들끼리의 파워 게임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 서로 죽고 죽일 때는 예외지.



 주변 인간국들이 새로운 마왕의 탄생을 무서워할만도 해,

왜냐하면 조만간 피지배 종족들의 숫자가 너무 불어나면 이 녀석들을 죽이기 위해 침략할 테니까.

 자, 7번도 설명끝.



 이제 사천왕들이 처음부터 온 힘을 다해서 싸우지 않고 이번엔 봐주지, 혹은 지금부터 전력을 내겠다 이지랄을 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앞서 말했듯이 마왕군의 인간계 침략의 주목적은 정복이 아니야, 자기가 끌고 온 노예들 머리 숫자 줄이려 온 거지.

그러면 자연스럽게 군대가 이원화되겠지?



 이번 전쟁에서 죽는게 목적인 고기 방패들과 그 고기 방패들을 통제하고 비상 사태에 대비해 데려온 마왕군 본대,



 이 둘의 목적과 무장, 사기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어.

적당한 전투에서 소모전으로 모조리 갈아버리는게 목적인 오합지졸들과 종전까지 아끼고 아껴 다시 본토로 되돌아갔을 때 통치 수단으로 쓸 정예병들이니까.



 특히 본대는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되는 이유가 또 있어.

통치 기반인 동족들로 구성된 군대니까. 대부분 전사한다면 다른 종족들의 반란 때 힘을 빌려줄 동족들의 지지도 잃어버리게 되겠지.



 정답이야. 마왕과 사천왕은 전력(본대)을 쓰면 죽어.

동족들에게 자신의 유능함을 과시할 수단이자 가족을 잃어버려 민심이 씹창난 타종족들을 억누를 수단이니까, 이 군대는 자기 수명을 갈아서 쓰는거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지.



 실제로 창작물에선 이제부터 힘의 100%를 사용하겠단 선언은 사망 클리셰잖아.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설령 지더라도 자기들 본대만 무사히 빼올 수 있으면 그렇게하는게 사천왕 입장에선 옳은 판단이야.


 하지만 그러지 않고 본대를 써 버린다는건?

 이미 퇴각은 물건너갔고 여기서 싸워 이기던가 모조리 전멸하던가 둘 중 하나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지.

 어차피 죽을 상황인데 마지막으로 힘의 100%는 사용해보고 죽는게 낫잖아?



 마지막이다. 8은 6과 연계해서 설명할 수 있어.

어째서 인간들이 마왕을 참살해 평정한 후에도 계속해서 마왕이란 제도가 유지될 수 있는걸까?


 6을 설명할 때도 말했다시피 마계는 그 저주받은 지정학 덕분에 판타지 판 아프가니스탄이다.

 원래 인간들이 안 살아서 국민들을 이주시켜 통치해야할 판인데 상황이 이러면 강제로 이주시킬 수밖에 없겠지.


 그러면 이주시키면 땡이냐? 아니야.

마계에 들어가면 인간들도 마계의 법칙을 따라야 해,

계속해서 다른 종족들이 연합해 도전해오겠지.

통치를 유지할려면 본국에서 계속 군대를 보내고 갉아먹힐 수 밖에 없어.


새로운 마왕의 탄생을 막겠다고 자기 국방력, 국민 갈아가며 마계에 새로운 정부를 세우기엔 수지타산이 안 맞아.


 그러니 어느 국가가 마계를 정복해도 도로 뱉어낼 수 밖에 없고, 자연 상태에 돌아간 마계는 다시 종족들끼리 파워게임을 시작하고...

 이게 판타지 세계의 마계가 돌아가는 방식이다.



 그러니 앞으로 판타지에서 마왕군의 삽질을 볼 때는

아니, 머저리 새키들 저걸 왜 봐줘(x)

아하, 저거 잡겠다고 친위대 쓸 바에야 다른 사천왕들 견제하게 살려주는게 낫겠구나(o)

라고 봐주는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