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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 좀 많이 맵다.


프롤로그 : https://arca.live/b/yandere/8161916?target=all&keyword=%ED%9A%8C%EA%B7%80&p=1 

1편: https://arca.live/b/yandere/8221543?p=5 

분기-후배 1편: https://arca.live/b/yandere/8239033?p=1

분기-선배 1편: https://arca.live/b/yandere/8233455?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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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은 이게 다인가?'


25에 첫째를 임신한 이래 30년만에 든 생각이었다. 매일 똑같은 하루. 출근하는 남편과 두 아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하고, 반찬을 만들고 멍하니 TV를 보다 가족들이 퇴근하면 저녘을 먹고 잠이 드는 삶. 깨닫고보니 그렇게 나는 늙어가고 있었다.


 앞으로도 내 인생은 여기서 큰 변화가 없을 거다. 남편과 나 둘 다 몸은 멀쩡하니 이렇게 적어도 20년은 더 살겠지. 나는 앞으로 남겨진 20년이라는 세월에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라는, 얀순이라는 한 여성이 저 세월에 매몰되기 전에 그 굴레를 벗어던지기로 했다.


남편에게 이혼 얘기를 꺼냈을 때 남편은 마치 나에게 뺨이라도 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남편에게 이혼 서류를 건네는 그 순간, 나는 돌아왔다.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때의 파릇파릇한 이얀순으로. 갑작스럽게 펼쳐진 비일상에 잠시 얼떨떨했지만 나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잘됐네. 이걸로 귀찮게 이혼할 필요도 없어졌잖아?”


남편은 아직도 이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런 그에게 이별을 고하고 돌아섰다. 나는 그렇게… 내 30년의 결혼생활과 결별했다.


나는 그 뒤로 그와 함께여서 누리지 못했던 대학생활을 마음껏 누렸다. 매일같이 소개팅을 했고, 술을 마셨으며, 친구들과 카페를 드나들었다. 남편, 아니 김얀붕은 그 뒤로도 한동안 내 곁을 맴돌았다. 그는 내가 자신과의 결혼생활뿐만 아니라 우리 사이의 두 아이조차 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그가 보일 수록 더욱 옆의 남자들에게 아양과 교태를 부렸다. 오로지 그를 끊어내기 위해서 였다.


그렇게 1년 뒤, 결국 김얀붕은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모든 것이 잘 풀릴 줄 알았다. 김얀붕과 비교도 안되는 잘생기고 돈도 많고 나에게 좀더 관심을 가져주는, 그런 멋진 남자와 새 삶을 시작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얀순아 그래서 내가 존나…"


옆에서 민우 선배가 하는 말을 흘려들으며 나는 애써 머리끝까지 차오른 짜증을 식혀야만 했다. 무심코 머리 속에 떠오른 말들을 입에 담았다가는 '또' 남자친구를 차버릴 테니까.


나는 20살로 돌아오고 얼마 뒤 나는 나에게 접근하는 2학년 위의 상준 선배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내 기억 속의 상준 선배는 운동을 잘하고 잘생긴 선배였다.


'잠깐의 스쳐지나가는 연애로는 나쁘지 않겠지.'


그런 가벼운 생각으로 만난 상준 선배를 난 불과 일주일만에 차버리고 말았다. 20대의 남자는 내 생각보다 훨씬 어렸고… 훨씬 철이 없었으며 훨씬 저질이었다. 말에는 언제나 천박한 욕이 추임새처럼 들어가고 눈은 나와 대화하는 와중에도 내 몸을 훑어내리기 바빴다.


그렇게 상준 선배와 헤어지고 나서 몇 명을 더 사귀어 봤지만 내가 원하는 인생의 동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학과에서 나는 어느새 얼굴만 믿고 남자를 갈아치우는 걸레가 되어 있었다. 


학과에서 고립되어 버린 내게는 소문을 진짜로 믿고 껄떡대는 놈들 말고는 다가오는 이가 없었다. 나는 그런 놈들 중 그나마 나은 민우 선배를 골라잡았다. 그는 나에게 향하는 모욕과 험담을 무마할 수 있을 정도로는 학과 내에서 입지가 있었으니까. 그는 내가 그에게 기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든 진도를 빼려들었다.


"오빠 저 가볼데가 있어서요."


내 가슴으로 손을 뻗쳐오는 그를 피하듯, 나는 일어서서 말했다.


"어디가는데?"


아쉽다는 눈빛을 숨기지도 않는 그를 보며 나는 짜증을 다시금 꾹꾹 눌러담았다.


"도서관에요. 책 반납하러."


즉석에서 생각해내긴 했지만, 썩 괜찮은 핑계였다. 머리 속에 술이랑 여자밖에 없는 저 껄떡쇠는 책이랑은 담을 쌓은데다 여자친구를 데려다 줄 정도로 배려심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어 그래."


떼어내려고 한 말이기는 했지만, 빈 말로라도 데려다 주겠다고 하지 않는 그를 보며 나는 무심코 김얀붕을 떠올렸다.


'김얀붕이었으면 도서관까지 같이 가줬을 텐데.'


'김얀붕은 고운말만 썼는데.'


'김얀붕이었으면…'


회귀 후 여러 남자를 사귀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김얀붕과 지금의 남자친구를 겹쳐보면서 나는 불안해졌다.


'어쩌면 내가 잘못 선택한 게 아닐까?'


'사실 이 회귀는 김얀붕이랑 결별해 새 인생을 살라는 게 아니고 깨진 부부관계를 회복하라고 준 기회라면?'


'김얀붕과 다시 결합하지 않아서 벌을 받는 건가?'


이러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이 나는 어느새 도서관에 도착했다. 도서관에 들어가려는 순간 나는 김얀붕과 마주쳤다. 먼저 인사해야할까?


머뭇거리는 사이 그의 뒤에서 한 여자가 뛰어나오는 것이 보인다.


"하아... 하아.... 선배! 그냥 그렇게 할 말만 하고 가시면 어떻게 해요? 제가 저녘 산다니까요?"


'김얀붕 너도 나랑 똑같구나. 너도 나처럼 가정을 버린 거야.'


나는 안도의 미소를 띄곤 그를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