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어릴 적, 얀붕이는 자기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눈을 마주치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준다'는 것.


어린 애가 뭘 알겠어.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쓰고 싶잖아.

그래서 눈 마주치고 「용돈 주세요.」라거나, 「과자 더 주세요.」라거나 등등, 어린애라면 원하는 것을 당당히 누리며 살려고 했지.


하지만, 능력에는 허점이 몇 가지 있었어.


평소와 지나치게 달라 위화감을 느끼거나, 본인하고 맞지 않는 최면이면 잘 안 통한다는 것 정도를, 얀붕이는 직접 겪어가며 깨달았어.


정신을 차린 다른 어른들은 그저, '저 얀붕이가 날 속여서 가져갔다' 정도로 생각하고 화를 냈지만

한 목사님만은 달랐어.


얀붕이의 눈을 마주보고 나서, 그게 자신이 원하는 일인지, 신이 원하는 길인지, 아니면 속는 건지 스스로 판단하고


'이 아이에겐 특별한 힘이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달은 거야.



곧, 목사님은 얀붕이의 스승님이 되려고 노력했어.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능력을 쓰는 것은 나쁜 일이다.' 라는 것을 가르치면서도

절대로 화내지 않았어.


목사님의 지갑에서 돈을 빼가려다 걸려도 화내지 않았어.

목사님이 가지고 있는 과자 상자에 몰래 손을 대다가 걸려도 화내지 않았어.


단지, 슬픈 표정으로


"얀붕아.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지켜보신단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해주실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만큼 자애롭지는 않을 거야. 얀붕아. 우리 다시 힘 내 보자. 착하게 살 수 있지?"


라고 다독일 뿐이었어.



얀붕이는 서서히, 목사님에게 감동을 받았고

결국, 거울을 보며, 자기의 눈을 보면서 최면을 걸었어.


"「나 자신만을 위해서, 남들에게 함부로 최면을 걸지 않을 거야.」"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것은, 매일 아침의 일과가 되었어.


그리고, 사실, 자기 자신에게 건 최면의 헛점을 이용해서

「나는 공부가 재밌어.」 라는 최면을 자신에게 가끔 걸기도 했어.

자기 자신을 위한 거지만, 남에게 거는 건 아니니까.


물론, 두세시간 정도면 금방 풀릴 정도로 공부와는 더럽게 안 맞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지만 말이야.



시간이 흘러 얀붕이가 좀 철이 들자

목사님께 은혜를 너무 갚고 싶었어.


부모님 역시 얀붕이가 목사님을 잘 따르니까, 이제 걱정 없이 해외로 일을 하러 갔고

얀붕이가 의지할 것은 목사님 뿐이었던 거야.


"목사님, 제가 목사님을 위해 도울 게 있을까요?"


목사님은,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어.


"내가 아니라, 길 잃은 어린 양들을 구해줘야 할 것 같구나."



불량 청소년 교화 목적으로

교회에 자원봉사를 오게 된 양아치에게


얀붕이는 최면을 걸었어.


왜 그렇게 되었나요

당신이 정말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은 미움받지 않을 수 있어요


다신 나쁜 짓을 하지 않게 목사님이 계도할 수 있게

얀붕이는 최면을 걸어서 내면을 읽어냈고

다른 최면으로 '남들을 도우면 기분이 좋다' 라는 것을 주입했어.



다음은 알콜중독자였어.


술은 해결책이 아니에요

술은 다른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아요.

당신을 위한 다른 길은 이렇게나 많아요.



곧, 교회는 '하나님의 뜻이 깃든 곳'이라고 여겨졌고

목사님과 얀붕이는 다른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했어.


최면에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며칠 뒤, 학교에 등교한 얀붕이에게 한 여자애가 말을 걸었어.


전교 1등에, 외모도 예쁘고, 운동도 잘하는 얀순이었어.


"너, XX교회에서 다른 사람들 치료하고 다닌다며?"


"...응? 아, 내가 아니라 목사님이 하는 거야. 난 그저 목사님을 도우려..."


얀붕이의 말은

얀순이가 내민 휴대폰에서 재생되는 영상에 막혀버렸어.



익명의 SNS 계정에서

한 여자가 얼굴을 가린 채로

남자화장실에서 자위를 하고 있었어.



"... 이게... 뭐..."


"우리 언니야. 마약 중독자였는데, 치료를 받고 오니까 저렇게 되어 있었어."



한 가지 욕구를 억지로 누르면

다른 쪽의 욕구가 폭발해버리는 것을


얀붕이는 이제야 깨달았어.



"어, 그... 미안해..."


어쩐지

어떤 사람은 치료받고 잠이 늘었어.

어떤 사람은 치료받고 먹성이 늘어서 살이 쪘어.

어떤 사람은 게임에 빠지고, 낚시에 빠지고...


하지만, 불법적인 것도 아니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술보다 낫다, 담배보다 낫다, 본드보다 낫다, 마약보다 낫다... 그 때보다는 지금이 낫다.' 하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었지.


"미안해. 다른 치료법을 찾아볼게. 정말 미안..."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야. 방과 후에, 잠깐 만나. 네 집에서."



얀붕이의 방은 살풍경했어.

방에는 교과서, 참고서와 이불, 베개 같은 학생의 필요 최소한도의 물품만 있었고

벽에는 큰 거울이 걸려 있었어.


"... 우리 집에... 왜?"


"왜겠어."


얀순이는 순간 옷을 벗기 시작했어.


"무, 뭐하는 거야!"


"내게도 최면을 걸어줘봐."


"...어?"


당혹해하는 얀붕이에게, 얀순이는 물었어.


"우리 언니, 원래 잘 나가는 대학생이었다가 쓰레기 같은 남친 때문에 마약에 한번 빠졌거든? 근데 그 뒤로 사람이 완전히 망가져 버리더라? 부모 말이고 동생 말이고 선생 말이고 들어쳐먹질 않았단 말이지. 근데, 치료 후엔 저렇게 자위만 하는 원숭이가 되어버렸어. 마약보다 더 큰 쾌감을 느낀다면서 말이야. 부모님이야 모르지. 나도 언니 컴퓨터를 보기 전까진 몰랐을 거야. 그런데, 저렇게 심각한 마약 중독자를 일상 상활은 가능한 수준의 자위 중독자로 바꿀 수 있는 쾌감이 있다는데, 당연히 궁금하지 않겠어?"


속사포처럼 내뱉는 얀순이에게, 얀붕이는 순간 멈칫했고

얀순이는 그 새 속옷 차림이 되었어.


"잠깐만, 잠깐만, 걸게, 걸 테니까, 잠깐만..."


얀붕이는 급하게, 눈을 마주치고 말했어.


"「30분간, 너는 멍해질 거야. 그 뒤엔, 오늘 일은 잊어. 너는 나한테 관심도 없어. 내 방을 나가면, 오늘 일은 잊는 거야.」"


멍 해진 표정이 된 얀순이에게 얀붕이는 급히 옷을 입혔어. 그리고, 들고 온 가방을 메게 하고, 인사를 하고, 내보냈어.

급하게 건 최면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속은 메슥거렸지만, 그래도 얀붕이는 안심했어.


그렇게 일이 끝날 줄 알았으니까.



다음 날 휴일

친구들이랑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얀붕이는 순간 멈칫했어.


얀붕이의 집 앞엔, 얀순이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거든.


"왜 이제 와? 기다렸잖아."


너무 당당히 웃는 얀순이에게

얀붕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또 다시 둘은 얀붕이의 방으로 들어왔어.


"... 어떻... 어떻게..."


"잘 들어봐. '30분간, 너는 멍해질 거야. 그 뒤엔, 오늘 일은 잊어. 너는 나한테 관심도 없어. 내 방을 나가면, 오늘 일은 잊는 거야.'. 잘 녹음됐지?"


"...어..."


얀순이는 미리

녹음기를 켜놓고 얀붕이의 집으로 왔던 거였어.


"매일매일 난 일기를 써둬.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다. 내일은 어떤 일을 할 것이다. 누가 어떤 일을 했고, 뭐가 흥미있고... 나는 널 한 달 전부터 주시했어. 내 일기장을 없애기 전까진 넌 결코 날 속일 수 없어. 자, 다시 최면을 걸어봐. 대체 그 쾌감이 어떤 건지 궁금하니까, 내 육체를 개발시켜봐. 당장. 어디, 한번 더 속여보던가. 다 풀어낼테니까."


"「잊어. 잊어. 다 잊어. 잊어버려. 오늘은 일기를 쓸 기분도 아니었어. 요즘 일기가 쓰기 싫어. 과거에 쓴 일기도 보고 싶지 않아.」"


간신히 얀순이에게 최면을 건 얀붕이는, 다시 얀순이를 내보냈어.

그리고, 심하게 구역질을 했어.


오늘 아침도 평소처럼, 거울을 보고 '「나 자신만을 위해서, 남들에게 함부로 최면을 걸지 않을 거야.」' 라고 했는데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얀순이에게 급하게 최면을 걸어버렸잖아.

저번에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말이야.


자기 자신에게 건 최면 때문에, 얀붕이는 한참동안 구역질을 하다가

결국 지쳐서 잠들었어.



얀붕이를 아끼던 목사님은

휴일에 얀붕이가 오지 않자 걱정되어서 얀붕이의 집으로 왔어.


그리고, 구역질한 흔적을 발견하고

학교에 연락을 넣어서 얀붕이를 며칠 쉬게 해 달라고 했어.


왜 구역질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얀붕이가 다른 아이와는 다르다는 건 아니까

혹시 '그 능력'을 과도하게 써서 그런 건 아닐까

그런 촉이 와버렸어.


"얀붕아. 미안하구나. 내 욕심이 너를 망가뜨린 것 같아. 미안해, 미안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목사님에게

얀붕이는 미소를 지었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니, 아니다. 다음부터는 편할 때 오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내 욕심 때문에 네 건강을 해쳤구나. 정말 미안하다."


목사님은 얀붕이에게 다짐을 받아뒀어.

완전히 건강해지기 전까지는 교회에 오지 않기.

자신이 건강해야 남을 도울 수 있으니까.


그리고 절대 부담갖지 않기.

목사님은 얀붕이를 언제까지나 기다려줄 수 있다고 했어.

얀붕이에겐 목사님이 은인이지만

목사님도 얀붕이가 은인이었으니까.



그리고 혼절하듯 잠들고 일어나 보니


눈 앞에는 얀순이가 있었어.


"...!"


입은 입마개에 막혀 있었어.

모든 문은 청테이프로 두껍게 덮여 있었고

얀붕이의 온 몸은 묶여있었어.


방에는 얀순이와 얀붕이 단 둘 뿐이었어.


"휴일에, 네가 나가 있을 때, 여기 미리 카메라를 다 설치해뒀었어."


"......."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네가 어떻게 내게 최면을 걸었는지, 매일 거울을 보면서 뭘 하는지, 계속 볼 수 있었어."


"..."


"눈을 마주치고, 말을 건다. 그럼, 눈이 뽑히거나 혀가 잘리면, 영원히 최면을 걸 수 없겠지?"


"!"


섬뜩하게 미소지으며, 얀순이는 얀붕이의 눈에 안대를 감고, 입마개를 풀었어.


"하지만, 그건 원하지 않아. 내게 최면을 걸어줘. 언니 말로는 마약이 뇌를 녹이는 쾌감이었댔어. 근데 그 최면 이후엔 자위하는 것이 그 마약보다 더 쩔었다는 거야. 너무 궁금해. 느끼고 싶어. 나도 느끼고 싶다고. 어떤 건지 알고 싶어. 뇌가 녹는다는 그 느낌이 뭔지 너무 궁금하단 말이야. 날 피하지 마. 서로 좋게 끝날 일을 이딴식으로 만들지 마. 내게 최면을 걸어. 걸겠다고 약속해. 어서, 어서!"


"눈, 안 마주치면, 최면, 못 해...."


"약속해. 걸어주기로. 내가 왜 문을 청테이프로 다 감아뒀는지 알아? 네가 나한테 다른 최면을 걸어서 속이려고 해도, 청테이프를 뜯는 동안 위화감 때문에 곧 정신을 차릴 거거든! 이제까지 어떤 사람들이 치료를 받았는지, 어떻게 받았는지, 최면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어떨 때 자신이 최면에 걸렸다고 알아챘는지 직접 다 물어물어가면서 조사했단 말이야. 넌 내 손 안이야. 넌 날 제압 못 해. 그러니까, 빨리 최면을 걸어 줘. 빨리! 그러겠다고 약속해!"


"눈, 풀어줘, 걸게. 걸 테니까..."


얀순이가 안대를 풀어주자

얀붕이는 바로 눈을 마주치고 최면을 걸었어.


"「여기 청소가 하고 싶어질 거야. 청테이프를 다 떼네고 싶어질...」"


"집어 치우라고 했지! 감히 날 속이려 들어!?"


분노로 얀붕이의 목을 조르는 얀순이의 눈에는 광기만이 가득했어.


얀붕이는 저 눈을 본 적이 있었어. 정신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사람들 중, 가끔 그런 환자들이 있었거든.

그런 사람들은 최면이 먹히지 않았어. 대신, 교육받은 다른 심리상담가들에게 맡겨야 했지.


그런데, 그런 눈을 여기서 볼 줄은 몰랐어.


얀붕이가 꺽꺽거리며 숨이 넘어가기 직전

얀순이는 손의 힘을 풀었어.


그리고, 얀붕이의 눈에는 다시 안대가 채워지고

얀붕이의 입에는 다시 입마개가 채워졌어.


"그래, 끝까지 가자 이거지? 내가 조사 안 해둔줄 알아? 네 부모님은 앞으로 2년동안 여기 안 올거야. 네가 그렇게 따르던 목사님도 죄책감 때문에 절대로 너한테 먼저 연락 안 할 거고! 어디, 얼마나 버티나 보자. 아무도 널 구해주지 않을 거야. 언제까지, 언제까지 그러나 보자고."


몸이 노끈으로 묶이고

쌀 포대같은 것이 몸에 뒤집어씌워진 채로


얀붕이는 방치되었어.



청테이프를 떼어 내는 소리가 멈추고

얀순이가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어.


"그래, 네 최면대로 청소를 좀 하고 싶어지긴 했네. 넌 이제 내 거야. 우리 집 지하실에서 영원히 살 거야. 날 조종해서 내게 쾌감을 줄 때까지, 내 뇌가 녹을 때까지, 내 머리가 온통 쾌감에 미쳐버릴 때까지 내게 최면을 걸어줘야 해. 안 그런다면..."


퍽 소리와 함께, 얀붕이의 몸에 통증이 찾아왔어.


"내가 다급한 만큼, 너는 아프게 될 거야."


그리고 몸이 번쩍 들리는 감각이 왔어.


얀순이는 그렇게, 얀붕이를 자기 집으로 끌고 갔어. 얀순이 말대로, 아무도 모르게.



p.s. 얀데레 채널에서 니들이 제일 재밌게 읽은게 어떤 글임? 재밌게 읽은거 댓글로 남겨주면 나도 좀 읽자.